[잠입취재] 가짜뉴스 공장 들어가 보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0.15 10:16:42
  • 호수 1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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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임종석을 최고 실권자로 보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가짜뉴스’가 정국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한겨레> 신문이 가짜뉴스의 뿌리를 추적해 집중 보도함으로써 중요 의제로 부상했으며,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년여 간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고 있는 단체채팅방 3곳에 잠입해 어떤 가짜뉴스가 있었는지, 누구를 겨냥했는지 등을 취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을 전후로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는 단체채팅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채팅방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 활동한다. <일요시사>가 약 2년 전부터 취재차 들어가 있는 채팅방 3곳에는 주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채팅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사, 인터넷주소(URL), 합성사진, 종교성 짙은 글 등이 공유된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채팅방 3곳 중 가장 활발하며 74명의 극우 성향 유권자들이 속해 있는 ‘다시 집권 OOOOO’ 채팅방서 ‘문재인’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1593개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지난 11일 오후 3시30분 기준). 

문제는 개중에 가짜뉴스도 상당수 확인된다는 점이다. ‘뭉가’ ‘문죄인’ 등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이 최근 문 대통령을 비하할 목적으로 부르는 명칭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 정부 기관의 이름을 따온 가짜뉴스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4일 ‘CIA 극비 보고 내용’이라는 글에는 남북 교류협력과 관련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내용의 대부분이 과거 보수정권의 ‘종북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이다.


이를 테면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남한 측 근로자 등 대규모인력을 유사 시 김정은의 핵인질로 만들려는 김정은의 고도로 계산된 북한의 미국 북폭 방어 전략의 일환”이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또 이 글의 작성자는 “문재인은 고려연방제를 추진할 것이며, 서울에 입성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의 목사, 군인, 경찰관, 정부 공무원, 정치인, 태극기집회 주동자, 종교인, 민노총, 전교조 등 주사파 세력들과 남한의 개돼지들을 북한 지역 오지나 탄광촌으로 강제격리 이주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작성자는 이러한 내용이 “미 CIA의 동북아 책임자가 며칠 전 백악관 비공개 비밀 보고에서 북한 관련 김정은과 문재인의 계략이 담긴 정보를 비공개 브리핑에서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CIA 보고서로 보기 힘들다. 작성자는 CIA 동북아 책임자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내용을 입수하게 됐는지 등 정보의 신뢰와 관련된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이는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공식이다. 

가짜뉴스공장에서는 시중에 나도는 글, 또는 자신이 작성한 글에 신뢰할 만한 기관의 이름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

미국이 침공?
도 넘은 수준

‘미국의 남한 점령 전략’이라는 글에는 “미국의 저명한 국제전략 연구소의 아시아 정책연구소장이 미국은 문재인의 공산화 과정서 문재인정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연구 중이다. 미군의 주둔 병력도 증강 재배치하고 전략자산의 한반도 영구배치까지 계획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문재인의 공산주의 고려연방제 시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소리 없이 남한점령 작전을 전개 중”이라고 나와 있다. 


액면 그대로만 보면 미국이 한반도 침공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작성자는 미국을 ‘우주패권국’으로 추켜세웠다.
 

비단 문 대통령에 대한 가짜뉴스만 있는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회차원의 방북 무산을 기획·주도했다는 가짜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작성자는 이 대표의 이러한 기획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축출하려는 속셈이며 문재인정부 내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임 비서실장이 대한민국의 최고 실권자라는 CIA 보고서가 백악관에 보고됐다는 가짜뉴스도 눈에 띈다.

75명이 속한 채팅방 ‘위대한 개혁 OOOOOOO’에는 문재인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 쟁점 법안의 찬성·반대를 촉구하는 글, 극우 성향의 유튜브 URL 등이 주로 개제된다.

채팅방 3곳 2년간 체크…유언비어 넘쳐나
근거 없는 대통령 비난 정부 인사도 타깃

한 극우 성향의 유권자는 문재인정부와의 대결을 성전으로 규정하며 “목숨을 겁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다윗은 짱돌로 남산 만한 골리앗의 대굴빡(머리)을 깨부숴 이긴 겁니다. 아멘”라고 채팅방의 사람들에게 촉구했다.

음모론을 기정사실화하는 글도 눈에 띈다. 한 사람은 “노무현이 자살하기 전날 밀착 경호원을 바꾼 것은 문재인이었다”고 반복적으로 글을 올렸다. 다른 사람은 “김대중이 2001년 문재인 등 법관들을 시켜 민주화운동 유공자 자격 심사를 하게 했는데, 이때 김대중이 선출한 심사위원들 중에 김일성 장학생들이 대거 포함돼있었다”고 제기했다.

쟁점 법안 찬성·반대를 촉구하는 글의 경우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의 URL을 첨부하는 식으로 채팅방에 게재된다.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및 김경수 의원 등 연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의 URL을 올린 이는 “만명 만듭시다. 찬성 올려주세요. 5월3일까지 마감입니다”라고 촉구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URL을 올린 이는 “이 법이 통과되면 유튜브나 카톡으로 악한 것을 악하다고 할 수 없게 됩니다. 국민청원과는 다릅니다. 입법예고는 만명만 반대하면 자동 폐기된다고 합니다. 꼭 폐기해야 합니다. (10/6 마감)”이라고 독려했다.

극우 채널
URL 첨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URL을 첨부하는 글도 있다. ‘개헌안, 차별금지법의 독소조항이 포함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을 즉각 철회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의 URL을 붙인 사람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동성애, 공산주의, 이단, 이슬람 등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반대도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성평등 정책에 대해서는 “남녀평등인 양성평등 아니라 동성혼 합법화의 수순”이라며 청원에 동참해 줄 것을 채팅방서 호소했다.

39명이 속한 ‘탄핵 10적 OOO OOO’ 채팅방은 진보뿐 아니라 보수 정치인도 비난한다. 주로 2016년 12월 국회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을 때 찬성표를 던진 비박계 정치인이 타깃이다. 한국당 김무성 의원과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이를 테면 “이명박이 지 앞날을 모르고 김무성을 시켜 탄핵을 획책한 꼴이 자승자박”이라고 평가한 사람이 있으며, “박근혜를 출당시키고 친박을 몰아내는 홍준표는 바른정당 놈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주로 한국당 친박계의 주장과 일치한다.

최근 문재인정부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국무회의서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현안은 물론,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안보나 국가원수와 관련한 턱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극비보고서? 극우·친박계 문법 답습
고민하는 방통위 “자율규제로 가닥”


가짜뉴스 근절 방안은 2018국정감사서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11일 국회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주요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춘 가짜뉴스 확산 방지 대책을 12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통위가 직접 나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면 헌법상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서 진성철 방통위 대변인은 “범정부 대책과 방통위 방안은 별개로 추진되는 사안”이라며 “방통위는 민간에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가짜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로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이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날 국감장에서는 가짜뉴스 대응방안을 놓고 질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에게 “조작된 허위정보만을 대상으로 하면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데 왜 국가기관 7개가 동원되느냐”며 “선진국서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국무총리가 나서는 경우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언론
재갈물리기?

같은 당 박성중 의원도 “가짜뉴스 판명은 현행법으로 처리 가능하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국무총리가 나서고, 전 정부가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누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나서지 말고 자율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고 나선 것은 표현의 자유는 물론 보수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권위주의적 행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수준서 허위조작정보에 한해 대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짜뉴스’ 페이스북 대처

페이스북이 미국 내에서 사용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가짜 페이지와 계정을 발견해 없앴다고 지난 11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잘못된 정보와 스팸의 확산을 이끄는 559페이지와 251개의 계정을 삭제했다. 대부분 미국 내에서 생성된 것들이다.

이번에 삭제된 가짜 페이지와 계정은 정치뉴스로 가장해 클릭하면 급전대출 등과 같은 상업성 비공인 금융 사이트로 연결된다. 모두 페이스북 이용 규정을 어긴 것들이며,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인들의 관심이 정치에 몰리고 있는 점을 역이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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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