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01)항복

백제의 운명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은고의 의사대로 그날 밤 의자왕은 야음을 틈타 은고와 소수의 궁녀들을 거느리고 웅진성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주시하며 밤을 새운 융이 날이 밝기 무섭게 의관을 갖추고 천복을 비롯한 남아 있는 신하들과 성을 나서 신라군이 아닌 당의 소정방에게 가서 항복을 청했다. 

“자네가 의자왕인고?”

융이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한숨만 내쉬었다.

“대장군께서 의자왕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소정방과의 만남

동보량이 눈썹을 치켜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소신은 백제의 태자인 융이라 하옵니다. 아버지인 의자왕께서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 일선에서 물러나 계시고 모든 일을 태자인 제가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의자왕은 지금 어디 있느냐?”

“신병 치료차 웅진성에 머물고 계십니다.”

소정방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동보량을 주시했다. 

동보량 역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고, 왜 우리에게 항복을 청하는 게냐?”

“저희 백제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옵니다. 신라와는 적대국이었지만 당국은 저희 백제의 상국이었으니 당에 항복을 청함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사료되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로고.”

답을 한 소정방의 얼굴에 흡족해 한다는 듯 미소가 흘렀다. 

순간 저만치서 소식을 접한 김유신 일행이 다가왔다.

“장군, 이 자가 항복을 청해왔소.”

유신이 가만히 융의 외모를 관찰하고는 그 사유를 다그쳐 물었다. 

융이 소정방에게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물론 당에 항복한 사유는 뺐다.

“그러면 네 아비는 지금 거동이 힘들다는 말이냐?”

“송구하오나 그런 지경에 처해있습니다.”

유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정방을 주시했다.

“어떻게 된 사유요?”


“대장군, 일단 이 자의 말을 받아들이도록 하시지요. 어차피 백제의 수도가 이곳이고, 백제의 성을 들어 모든 신하들과 함께 항복을 청하였으니 우선 항복을 받으시고 다음 일에 대해 논하시지요.”

“아니 됩니다, 대장군!”

곁에 있던 인문이 급하게 앞으로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무슨 일이오?”

“이 놈들이 또 간사한 계략으로 소 대장군을 능멸하려는 모양인데 제가 반드시 완전하게 항복을 받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 자는 제게 넘겨주십시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오. 그러나 이 자는 당나라의 포로이니만큼 어떤 위해도 가해서는 아니 되오.”

말을 마친 소정방이 급하게 사비성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며 유신이 인문에게 융을 처리하라 이르고는 소정방의 뒤를 따랐다.

“네 놈은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소정방과 유신의 모습이 사라지자 융을 무릎 꿀렸다.

“누구신지?”

융이 비록 무릎을 꿇었지만 상대가 신라인임을 알아채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나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너희 아비가 대야성에서 죽인 성주 김품석의 부인의 동생인 김인문이다.”

대야성과 김품석이라는 소리에 융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잘 모르는 일이오.”

“뭐라고, 내 이놈을!”

융이 시큰둥하게 답하자 인문이 일갈과 함께 칼을 뽑아 들었다. 

순간 곁에서 지켜보던 김문영이 인문의 손을 잡았다.

“저하,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물러서라. 내 이놈을 이 자리에서 처단하고 말리라!”

“이자는 우리 포로가 아니라 당나라의 포로입니다. 그러니 저하께서 결코 이자를 죽일 수 없습니다. 행여나 이자를 죽이게 되면 그간 당과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미 소정방으로부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김문영의 간절한 말에 인문이 들어 올렸던 칼을 내렸다.

“이 자를 처리하려면 먼저 소정방 장군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을 하다 말고 인문이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래, 네 놈 말마따나 너는 모르는 일이라 치자. 내 반드시 네 아비 놈을 먼저 죽이고 그 연후에 네 놈의 간을 씹어 먹으마!”

태자 융, 소정방에게 항복 청해
의자왕과 은고에 병사들이 포박

인문의 고함에 시큰둥하게 반응을 보이자 기어코 인문이 주먹으로 융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일시적인 충격으로 얼굴이 한쪽으로 기울었던 융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이러려면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않겠소.”

말뿐만 아니라 융이 천천히 일어났다.

“이 놈이 뭐라고!”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한 모양인데 그냥 죽이거라!”

순간 인문이 다시 칼을 들자 김문영이 급하게 융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고 인문의 팔을 끌고 저만치 물러났다.

“당나라가 무서워서 나를 죽이지 못한단 말이냐. 이 당나라의 개야!”

융의 일갈에 문영의 손에 이끌려 물러나는 인문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태자 융이 당에 항복하고 갖은 수모를 당하고 있을 즈음 웅진성에 도착한 의자왕이 은고와 함께 눈을 붙이고 있었다. 

“일어나시오!”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듯 느껴졌다.

“전하!”

이어지는 소리 역시 아련하게 느껴졌지만 분명 은고의 목소리가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눈을 떴다. 

바짝 달라붙은 은고가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주고 있었다. 

은고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웅진방령(웅진성 최고 책임자)인 예식이 차갑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잠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은고의 볼을 만져보았다. 

은고의 볼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분명 꿈은 아니었다. 그를 살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냐!”

예식의 표정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을 감지한 의자왕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의관을 갖추시오!”

무표정한 예식이 흡사 명령하듯 말을 이었다. 그를 의식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이로 바른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외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똑바로 아뢰지 못하겠느냐!”

의자왕의 고함에 예식이 순간 움찔거렸다.

“제대로 고하지 못하겠느냐!”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의자왕의 재차에 걸친 외침에 예식이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곧바로 문이 열리면서 병사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이닥쳤다.

의자왕 포박되다

“이 두 사람을 포박하라!”

포박이라는 소리에 의자왕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놈이 감히!”

노기로 가득 찬 의자왕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달려들던 병사들이 멈칫했다.

“포박하라는데 뭐하는 게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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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