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10·26이 남긴 것들③환호 속 민주당 대굴욕

시민세력 ‘응집력’ 정당정치 ‘조직력’ 눌렀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여야의 불꽃 튀는 격돌로 치달았던 10‧26 재보선이 막을 내렸다. 특히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던 ‘서울대첩’에서 박원순 시민후보의 승리로 기존 정당정치가 격랑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제1야당의 자존심과 체면을 보기 좋게 구겼다. 서울시장 재보선에 후보도 못 냈을 뿐만 아니라 텃밭이던 호남지역에서만 겨우 승리를 거두어서다. 게다가 민주당의 쇄신방향이 ‘호남물갈이’를 겨냥하고 있어 당내 분쟁까지 겹쳐지며 위기에 봉착한 모양새다.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하며 굴욕 맛본 민주당
박원순 위한 전방위적 지원사격에 공로는 ‘안풍’

10‧26 재보선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서울대첩’ 이었다.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가 될 서울시장을 두고 집권여당 후보와 시민후보 간 사상 초유의 대결로 전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것.

여기에는 임기말로 치닫는 현 정권에 대한 심판과 더불어 정당정치의 위기, 시민정치의 실험, 유력 잠룡들의 전초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양상으로 전개되며 선거판이 한층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민세력의 영향력
‘박’ 당선으로 확인

뚜껑이 열린 서울시장 재보선은 시민세력의 응집력이 정당정치의 조직력보다 더 강함을 여실히 증명했다. 여당 지도부의 총출동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가세하며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았던 나경원 후보가 무소속의 박원순 시장에 처참하게 무너진 것. 이처럼 정치 전면으로 등장한 시민세력의 위력이 입증되며 여야 할 것 없이 기성 정치권의 판도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간 정치권은 구시대적인 좌우 이념논쟁과 지역갈등, 여기에 권력형 비리까지 더해지며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최근 부패하고 부조리한 정치판을 국민 스스로가 바꿔보자는 움직임을 보이며 기성 정치판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교적 진보색채를 지닌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바람에 가장 타격을 입은 것은 다름 아닌 제1야당인 민주당이다. 눈에 띄게 입지가 축소되며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것.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야권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의 박영선 후보가 박 시장의 시민세력에 맥없이 무너지며 ‘불임정당’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보수진영인 한나라당 못지않게 민주당도 신뢰하지 못하는 젊은 계층의 거부반응도 직접 확인했다.

게다가 이러한 책임론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손학규 대표의 ‘사퇴파동’ 해프닝은 위기상황에서 대안능력이 없다는 당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결국 위기의 민주당은 재보선에서 정면승부로 사활을 걸었었다. 서울시장 재보선을 대통합 정신에 입각해 야권단일후보였던 박 시장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원유세를 펼치며 반격을 꾀한 것. 공조를 통한 승리로 다시 정치적 입지를 넓히겠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범야권의 승리가 사실상 안철수 서울대 융학과학기술대학원장의 ‘한마디’에 의한 것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민주당의 공로는 ‘안풍’에 묻혀버렸다.

‘텃밭’ 호남 제외
민주당 후보 전멸

이에 손 대표는 지난달 27일 의원총회에서 “당 대표로서 당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당원ㆍ국민에 대한 송구스러움 면할 길 없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부겸 의원 역시 “세대와 지역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어떤 후보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것은 선거 대행업체가 하는 일이지 정당의 일이 아니다”라고 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꼬집었다.

여기에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재보선에서 텃밭인 호남지역을 제외하면 ‘전멸’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민주당 명함으로는 텃밭을 제외하면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게다가 ‘민주당 간판’이 아니어도 2번이라는 ‘프리미엄 기호’가 없어도 박 시장처럼 큰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됐다.

이에 한나라당과의 ‘1대1’ 대결 구도를 만들지 않고서는 내년 총·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기류가 당내에 형성되며 야권통합 기류가 한층 더 탄력 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심을 잃은 민주당이 제1야당의 역할과 대안정당으로서 제 기능을 못해 야권의 중심축이 시민사회단체로 이동해다는 점이다. 떠오르는 시민세력이 민주당의 대체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이에 향후 야권통합의 주도권도 시민세력이 쥐게 될 것으로 보이며 민주당의 역할론은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사실상 서울시장 재보선의 후보단일화에도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필두로 친노그룹과 시민사회 진영이 주축을 이루는 ‘혁신과 통합’이 분위기를 주도해왔다.

그동안 손 대표가 대통합을 강조하며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때문에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대통합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 시각이 나오는 실정이다.

여기에 민노당은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으로는 당심을 통합으로 모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민주당과는 선거연대라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참여당도 민노당과의 소통합을 우선순위로 여기고 있는 상태라 민주당의 고민에 골이 깊어지고 있다.

힘 잃은 민주당에…야권통합 주도권 시민세력으로  
‘야권통합=호남양보’ 등식에 민주 내분 양상 조짐

이에 따라 향후 혁신과 통합이 주도적으로 야권통합에 나설 공산이 커 보인다. 실제로 혁신과 통합은 11월중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권의 제 정당이 참여하는 ‘혁신적 통합정당추진기구’를 발족해 통합 논의의 페달을 밟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혁신과 통합은 우선 민주당의 12월 전당대회를 ‘통합창당대회’로 치르자며 대통합 압박을 가할 계획이다. 내년 총선에 나갈 ‘선수’들의 예비후보 등록일이 오는 12월14일인 만큼 이때까지 통합정당을 만들어야 선거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요구가 봇처럼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시민들이 정치 참여를 갈망하는데, 그 변화의 주체가 민주당이 아니라는 현실을 확인했다”며 “한나라당의 실정에만 기대어 내년 총선을 준비해온 것은 아닌가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민주당 일부에서는 야권의 ‘헤쳐모여식의 혁신적인 통합정당 창당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야권대통합은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 내부적으로 통합의 방식과 수준에 대한 입장차를 보이며 통합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의 호남지역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대통합=호남양보’란 등식이 성립된다면 대대적인 ‘호남물갈이’가 단행되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야권 ‘헤쳐 모여’식
통합 정당 창당대회


실제로 당 지도부는 내년 총선을 겨냥해 대대적인 공천혁신을 단행한다는 복안이다. 이렇게 공천혁신이 이루어질 경우 호남지역의 중진의원들은 물갈이 대상 ‘0순위’로 꼽힌다. 때문에 호남지역 기반의 구주류 의원들과 통합을 추구하는 주류간의 충돌과 갈등이 예고되며 당 내부의 분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합을 하면 현역 의원이 얼마나 살아남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맞다”면서도 “이는 통합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현상이지, 인위적인 물갈이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번 10‧26 재보선을 통해 민주당은 ‘변해야 산다’는 위기감 속에 변화와 쇄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하지만 본격 선거정국을 앞두고 당내 지분싸움으로 분열국면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당의 외부적으로도 민주당과 시민세력이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민주 위기감 확산
변화와 쇄신 요구

게다가 민주당은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는 게 생존을 위한 시급한 과제임을 확인했다. 또 대안정당의 위치를 시민세력에게 내주며 당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간 정치권은 위기만 닥치면 ‘쇄신론’을 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며 헛구호에 그치곤 했다. 민심이 정당정치를 불신하는 이유다. 때문에 이번에도 위기상황에 직면한 민주당에 변화의 바람이 크게 불고 있다. 이러한 당내의 바람이 어떤 성과를 거두어 떠나가는 민심을 붙잡고, 정당정치의 불신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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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