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스승 곁으로 간 이왕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10 11:40:25
  • 호수 1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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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설이 된 플라잉 드롭킥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프로레슬링의 레전드이자 간판스타였던 이왕표가 영면에 들었다. 길지 않은 삶 64세. 하지만 그의 삶은 뜨거웠다.
 

이왕표가 지난 4일, 향년 64세로 별세했다. 이왕표는 2013년 ‘세기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과 빅 매치전을 앞두고 담낭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병을 이겨냈지만 수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로 인해 120kg에 육박하던 체중이 79kg 가까이 감소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도 최근 이왕표는 암이 재발하면서 갑작스럽게 눈을 감았다. 

갑작스런 별세
사회 각계 애도 

이왕표는 임종을 앞두고 “먼저 가게 돼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역도산, 김일 선배님들이 닦아 놓은 길에서 내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가게 된 것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한다”며 “평소에 레슬링을 사랑하고 중계방송해준 배기완 SBS국장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백 국장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각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일 이왕표의 빈소에 방문했다. 이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늘 프로레슬러 이왕표님 빈소. 모두 한 시대를 우리와 함께 하셨기에, 조용히 고별인사를 드렸습니다”고 전했다.  

후배이자 스포츠 해설가인 김남훈도 SNS에 “영원한 프로레슬러 이왕표 회장님께서 다른 세상의 링으로 원정을 떠나셨다. 담도암 등 세 차례 암과 싸우면서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글을 게재했다. 


JTBC 손석희 앵커도 지난 4일 방송서 “프로레슬링의 끝자락에 서 있던 이왕표가 오늘 세상과 작별했다. 과거 ‘저도 헤드록 해줄 수 있다’고 말했었는데 ‘오늘은 좀 참아달라’며 다음을 기약했었다”라며 “조금은 민망하더라도 그때 그냥 해보시라고 할 걸 그랬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왕표는 1954년 6월11일에 충남 천안서 태어났다. 이왕표는 선수 생활 초기에는 일본서 활약을 펼쳤고, 1980년대 국내로 돌아와서는 어린이들 사이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운동을 놓지 않으며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2013년 담도암 수술 후 최근 재발
향년 64세…영원한 레슬러 잠들다

190cm의 거구로 링 위를 휘젓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한국 대표 파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김일 도장 1기생으로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40년 동안 1600번의 경기를 치렀다. 7번 아시아 및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신일본프로레슬링(NJPW) 활동 당시 미국 최고의 스타 헐크 호건과도 대결하는 등 한국인으로 국제적인 위상을 지닌 마지막 프로레슬러로 추억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러 ‘박치기왕’이라고 불렸던 김일의 1기 제자였다. 김일은 한국의 영웅이었으며 동양레슬링의 거목이었던 역도산의 제자기도 했다. 김일이 역도산 밑에서 동문수학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와 벌인 한일 레슬링 대결은 모든 국민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내 최초의 실내 경기장인 장충체육관서 김일의 레슬링 경기가 열릴 때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에 모여 열광했다. 김일은 반칙을 당해 피투성이가 돼도 박치기 한 방으로 응징해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조마조마하던 국민은 정의가 불의를 이기는 장면에 환호했다.


국민 영웅의 제자였던 이왕표도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왕표는 21살이던 1975년 김일의 제자로 사각의 링에 입문해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서 활동했을 때엔 오니타 아츠시와 데뷔전을 가지고, 후치 마사노부에게 승리하는 등 유망주였다. 김일의 또 다른 제자 역발산과 함께 이왕표의 장기인 ‘플라잉 드롭킥(뛰어올라 두 발을 모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을 선보이며, 한국레슬링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가 처음 링에 올랐을 때만 해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이왕표는 마치 영화 속 ‘슈퍼히어로’처럼 링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선수였다. 그의 화려한 공중기술에 많은 팬, 특히 어린이들이 열광했다. 

1985년 NWA(national wrestling association) 오리엔탈 태그팀 챔피언 등극. 1987년에는 NWA 오리엔탈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에도 욕심이 생겼다. 드래곤 스페셜 킥, 파워킥 등 주특기를 강화했다.

1975년 입문
펄펄 날아다녀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프로레슬링은 야구, 축구 등 다양한 프로스포츠의 인기에 밀려 쇄락을 맞이했다. 잊을만하면 불거진 ‘쇼’ 논란은 프로레슬링에 결정적인 치명타였다. 한국 프로레슬링은 1990년대 GWF(세계레슬링연맹)에 흡수된다. 

이왕표는 미국 남서부의 최강자였던 로드 프라이스를 꺾었다. 1993년 9월,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 빅 존 호크와 GWF(Global wrestling Federation)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겨뤄 이겼다.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것. 
 

이후 부커T, 마이크 어썸 등과 경기를 가지면서 25번의 타이틀 방어전에 성공했으며 GMF 챔피언 벨트를 영구 보관하고 있다. 2000년에는 자이언트 콜린과 겨뤄 루테스, 역도산, 김일 등이 챔피언을 지녔던 WWA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는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떨어진 뒤에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프로레슬링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링을 설치하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경기를 펼치며 프로레슬링 알리기에 나섰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러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종합격투기 단체인 울트라FC를 만들었다. 

2008년에 당시 이종격투기 스타였던 밥샙과의 경기를 발표해 검색어 순위 1위까지 올라가는 등 엄청난 흥행을 예고했다. 이왕표는 밥샙을 이긴 후 전적 1전 1승 0패로 울트라FC의 초대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이후에도 밥샙과 연계해 WWA 흥행에서 프로레슬링 룰로 시합을 가지다가 밥샙에게 패해 벨트를 뺏겼다. 

하지만 이왕표는 2010년에 밥샙을 이기며 또다시 WWA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각본 있는 종합격투기’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엔터테이너로서 판을 짜는 기획력과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대결이었다. 

훨씬 크고 힘이 센 상대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고 맞서 싸웠던 이왕표를 쓰러뜨린 것은 병마였다. 60세가 가까워 질 즈음 은퇴를 생각하고 마지막 경기를 준비했지만 2013년 담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계획한 경기를 모두 취소하고 투병을 시작했다. 수술을 통해 암이 전이가 된 담낭과 쓸개, 췌장 1/3을 제거했다. 2차 수술을 마치고 나니 120kg였던 체중이 80kg로 줄었다. 

아시아 넘어 
세계 챔피언

더 이상 링위에 오를 수 없었고 결국 2015년 5월25일, 장충체육관서 은퇴하며 40년 동안의 프로레슬러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왕표는 선수로는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지만 최근까지 대회 유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꿈꿨다. WWA 협회 총재로 레슬링 시합 주선 및 후배 양성에 힘썼다. 암 때문에 운영을 중단했던 이왕표 레슬링 체육관도 다시 운영할 계획이었다. 

이왕표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체육인의 귀감이었다. 특히 생전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을 펼쳤다. 다문화가정, 소년소녀가장을 도왔다. ‘격기도’라는 무예를 만들어 책을 낸 뒤 출판기념회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서 개인 후원 독력에 앞장섰으며 학교 폭력 근절에 앞장섰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서 “폭력을 무예로 오인하는 아이들에게 무인들이 소통에 나서면 효과가 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자신의 각막을 개그맨 이동우에게 기증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13년 KBS2 교양프로그램 <여유만만>서 담도암 수술을 앞두고 “위험한 수술이고, 죽을 확률도 있다고 하니 최후를 생각하게 됐다”며 ‘나 이왕표는 수술 중 잘못되거나 차후 불의의 사고로 사망 시 모든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다. 나의 눈은 이동우에게 기증하고 싶다’고 휴대전화 속 유서를 공개했다. 


이동우는 그룹 틴틴파이브 출신 방송인으로 희귀병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지난 2010년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왕표 각막은 현행법상 이동우에게 기증될 수 없다.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장기이식법)에 따르면 생전에는 특정인을 지정한 장기 기증이 심사를 거쳐 허용된다. 그러나 안구(각막)의 경우 생전 장기기증이 불가능한 장기로 분류돼 사후 기증만 허용된다. 

국민들에게 희망 주고 떠난 ‘나는 표범’
김일 수제자로 프로레슬링 전성기 이끌어

사후 기증의 경우 안구는 기증자가 뇌사 또는 사망 전 장기 적출에 동의한 경우에만 적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족 및 유족이 장기 등의 적출을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본인의 동의는 고인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나 그 외 민법상 유언의 형식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의가 적법하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특정인을 지정해 안구를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장기이식법 제26조는 장기이식대상자 선정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식대상자는 법상 선정기준에 따라 이식대기자 중에서 선정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안구의 경우 병원장(의료기관장)이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병원장이 선정하는 경우 이식대상자 선정사유와 선정결과를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에 통보해야 한다.

즉 사망자가 특정인을 지정해 안구를 이식하려는 유언 등을 남겼다 해도 이는 병원장에 대한 촉구의 의미만 갖게 된다. 단 가족을 지정해 안구 이식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선순위로 이식이 가능하다.
 

의학적으로도 이동우의 질환은 각막 이식으로 치료될 수 없다. 이동우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이라는 질환으로 시력을 잃었다. 이는 빛을 받아들이는 눈의 광수용체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대표적인 ‘유전성 망막질환’이다. 

문제는 망막 이식을 해도 시력 회복이 어렵다는 것.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의 주인공 임재신씨도 이동우에게 망막 기증을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우세준, 주광식 교수팀이 발표한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법에 대한 최신 지견’에 따르면 유전성 망막질환은 인구 3000명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실명하게 되는 ‘난치성 질환’이다. 

우리의 챔프
링과 ‘작별’

현재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 ▲유전자치료 ▲줄기세포치료 ▲인공망막이식의 4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이 중 근본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유전자치료’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제가 유전자치료 분야서 처음으로 미국 식약청 FDA에 의해 승인됐지만,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가 제한될 뿐만 아니라 치료효과도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비록 이왕표의 각막 기증은 무산됐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이왕표의 장지는 고양시 청아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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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