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국정감사 키워드7’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9.03 10:28:27
  • 호수 1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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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암초…파행이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의정활동의 꽃’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다음달 10일부터 29일까지 20일간 열릴 예정이다. 연례행사인 국감에선 그해 이슈들을 두고 입법부와 행정부간 숨가쁜 공방이 펼쳐진다. 과연 이번 2018국감에서는 어떤 이슈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까. <일요시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국감 키워드를 예측했다.
 

2018국감은 문재인정부를 향한 사실상의 첫 국감이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2017국감은 문정부가 출범한 지 약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열려 이전 정권인 박근혜정부를 향한 국감의 성격이 짙었다. 실제로 2017국감 당시 키워드가 ‘적폐 청산’ ‘국정 농단’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과연 2018국감을 수놓을 키워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키워드1]
[드루킹 사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드루킹 사건을 국감서 다루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3일 김성태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드루킹 게이트의 진실을 밝혀내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다양한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드루킹 특검은 수사기한 연장을 포기했다. 이에 한국당이 직접 나서서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특검이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모든 의혹이 종결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특검은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재판에 넘기고 혐의를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박상융 특별검사보는 지난달 22일 브리핑을 열고 “굳이 더 이상의 조사나 수사가 적절하지 않다고 봐 수사기한 연장 승인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드루킹 사건은 파워블로거 ‘드루킹’ 김모씨가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사용해 인터넷상에서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하는 과정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연루됐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특검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9일 드루킹 일당이 사용한 킹크랩 초기 버전을 보고 킹크랩 개발과 운용을 허락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드루킹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서 많이 읽힌 기사에 달린 댓글의 순위를 정치적 의도로 조작했다는 것이 특검 수사 결과다.

특검은 이들이 2016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7만5000여개 기사에 달린 댓글 118만개에 8800여만번의 호감·비호감 부정클릭을 했다고 본다. 국감에선 김 지사가 댓글 작업의 대가로 드루킹 측에 일본 총영사직을 제공하려 했다는 의혹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설 것으로 전망된다.

[키워드2]
[북한 석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에선 북한 석탄이 최대 화두로 떠오를 예정이다. 한국당 소속 의원실 보좌진은 “북한 석탄에 대한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7월17일, 북한 석탄이 러시아 항구를 통해 세탁됐고, 한국에 반입됐다고 보도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의 말을 빌어 “지난 6월27일 ‘연례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서 실린 북한산 석탄이 지난해 10월2일과 11일 각각 한국 인천과 포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한국당 ‘드루킹-김경수’ 정조준
산자위 ‘북한석탄’ ‘탈원전’ 예고

이는 유엔안보리가 지난해 8월5일 의결한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 위반이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석탄, 철광석 등 주요 광물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해당 의결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문정부의 늑장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교부는 즉각 “정부가 (지난해 10월)당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 2척의 배가 입항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며 “관계 당국서 선박에 대해 필요한 조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문정부가 북한 석탄의 유입을 묵인했는지 여부가 국감서 밝혀질지 관심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남북 대화와 북한 석탄 유입이 거래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바른미래당 권성주 전 대변인은 지난달 19일 논평을 통해 “이쯤 되면 급진전된 남북 대화와 북한 석탄유입이 거래됐다는 것은 국민들이 당연히 갖게 되는 합리적 의심”이라며 “조사결과 필요할 경우 처벌도 이뤄진다는 외교부 대변인 말대로 처벌의 대상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명심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키워드3]
[탈원전]

국회 산자위서 다뤄질 이슈는 비단 북한 석탄만이 아니다.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심도 깊게 다뤄질 예정이다. 한국당 소속 보좌진은 “탈원전을 꼭 지금 해야 했을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지적할 수 있는 사항도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경북 경주의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를 찾아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맹비난했다. 또 문정부가 탈원전 정책 추진을 위해 전력수요 예측을 왜곡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한수원 노조 관계자들을 의견을 듣는 자리서 “특정 집단들의 논리에 의해서 수급계획이나 수요 예측 같은 부분이 왜곡된 점이 있지 않나 걱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29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며 이번 겨울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를 8만5200㎿로 잡았다. 2015년 수립된 7차 전력수급계획보다 3000㎿를 줄인 것이다.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올해 한국은 재난에 가까운 폭염을 겪었으며 지난 7월 중순 이후엔 전력수요가 연일 최대치를 경신했다. 결과적으로 정부 예측이 틀린 것이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원전·석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이를 대체하도록 하는 탈원전 정책의 근거가 됐다.

[키워드4]
[항공사 사태]

항공사 오너들의 국감장 러시가 예상된다. 올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국적항공사가 나란히 갑질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대한항공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태, 이명희(69)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언·폭행 논란 등이 있었다.


앞서 경찰은 지난 5월4일 ‘물벼락 갑질’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 전 전무에게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 선에서 반려됐다. 당시 검찰은 “조 전 전무의 주거가 일정하고 현장 녹음파일 등 관련 증거가 이미 확보돼 증거 인멸이나 도주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고려, 불구속 수사할 것을 지휘했다”고 설명했다.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에게 폭언, 폭행을 한 혐의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 등을 받은 이 전 이사장을 상대로 청구된 두 번의 구속영장 청구는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납품업체에 갑질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직원 1000여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갑질과 비리에 대한 성토가 있었다.

이들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하청업체에 16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요구한 것이 이번 대란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서 단기간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키워드5]
[사법농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사건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사법부는 사상 최악의 재판 뒷거래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6월5일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행정처 문건 98개의 원본을 공개했다. 내용에는 양승태 사법부가 ‘BH(청와대) 관심 재판’을 고려한 정황이 담겼다. 행정처가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후 문건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추가로 공개된 문건에는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정치권과 언론 등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진행한 의혹 등이 담겼다. 양승태 사법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 등 당시 야당 지도부와 접촉하는 방안 등을 통해 상고법원 입법을 설득하는 방안을 검토한 정황이 드러났다.

‘항공사 갑질’ ‘라돈침대’ 도마에
최대 이슈 ‘양승태 사법 농단’도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이 불거질 당시 판사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으려고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방안을 구상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의 해외파견’이라는 사안을 갖고 박근혜 청와대와 ‘일본 강제징용 재판’ 거래를 모의했다는 정황도 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하드디스크서 발견된 문건에 의하면 ‘외교부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대법원에 제기했다’ ‘해외송달 등을 이유로 소송을 지연시키면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

[키워드6]
[고용쇼크]

최악의 고용쇼크 문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서 주로 다뤄질 예정이다. 고용쇼크가 과연 최저임금 인상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두고 한국당과 고용노동부 간 격돌이 예상된다.

한국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쇼크가 왔다고 주장한다. 신보라 의원은 지난달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 내용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권 안에 있는 업종의 타격이 심했다”며 “도소매·숙박업 분야서 8만명이 줄었고 경비원 등이 포함된 사업시설관리 분야서 10만명 정도가 감소했다. 종업원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도 대략 10만명 줄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고용노동부 측은 고용쇼크의 원인을 최저임금 인상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혀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근본적 원인은 조선과 자동차 등 제조업의 급격한 구조조정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키워드7]
[라돈침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서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를 대상으로 라돈침대 사태에 대한 국감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음이온 침대서 방사능 물질인 라돈이 검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진침대 등 국내 업체가 음이온 효과를 내고자 희토류(모자나이트, 토르말린 등)를 첨가했는데, 이 물질들이 자연붕괴 과정서 라돈을 배출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음이온 제품은 방사능 물질이 함유돼 있어 수년간 착용하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5월10일 원안위는 라돈침대 첫 발표서 “침대서 검출된 라돈은 실내 공기질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발표했다. 검사해보니 기준치 이하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원안위는 5일 만에 일부 제품은 기준치를 9배 넘게 초과했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과방위 간사인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은 지난 7월 전체회의서 “원안위가 안전기준 초과 제품에 대한 수거와 안전비닐 제공 명령 등 행정조치를 실시했지만, 소비자 제보가 있기 전까지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해당제품에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매번’ 반복되는 국감 무용론

매년 국정감사(이하 국감)를 전후로 무용론이 제기된다. 정국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여야가 국감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보이콧, 파행 등을 일삼기 때문이다. ‘의정활동의 꽃’이라는 명성이 무색하다.

앞서 2017국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감 시작부터 반말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헌법재판소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뭐하는 거야. 겁도 없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앉으시라고!” “박범계 의원님도 회의 진행 중에 반말하지 마십시오” “편파적으로 운영하니까 그렇지!” 등의 고성을 주고받았다.

과거 정권의 각종 비리와 권력 남용을 낱낱이 파헤쳐 ‘사이다 국감’으로 불렸던 명성이 무색하다. 국감은 1987년 개헌과 함께 부활하면서 여러 스타를 배출했다. 

지난 1988년 노무현, 이해찬, 이상수 의원은 서로 당이 달랐음에도 ‘노동위 3총사’로 불리며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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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