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국정감사 키워드7’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9.03 10:28:27
  • 호수 1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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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암초…파행이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의정활동의 꽃’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다음달 10일부터 29일까지 20일간 열릴 예정이다. 연례행사인 국감에선 그해 이슈들을 두고 입법부와 행정부간 숨가쁜 공방이 펼쳐진다. 과연 이번 2018국감에서는 어떤 이슈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까. <일요시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국감 키워드를 예측했다.
 

2018국감은 문재인정부를 향한 사실상의 첫 국감이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2017국감은 문정부가 출범한 지 약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열려 이전 정권인 박근혜정부를 향한 국감의 성격이 짙었다. 실제로 2017국감 당시 키워드가 ‘적폐 청산’ ‘국정 농단’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과연 2018국감을 수놓을 키워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키워드1]
[드루킹 사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드루킹 사건을 국감서 다루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3일 김성태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드루킹 게이트의 진실을 밝혀내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다양한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드루킹 특검은 수사기한 연장을 포기했다. 이에 한국당이 직접 나서서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특검이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모든 의혹이 종결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특검은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재판에 넘기고 혐의를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박상융 특별검사보는 지난달 22일 브리핑을 열고 “굳이 더 이상의 조사나 수사가 적절하지 않다고 봐 수사기한 연장 승인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드루킹 사건은 파워블로거 ‘드루킹’ 김모씨가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사용해 인터넷상에서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하는 과정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연루됐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특검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9일 드루킹 일당이 사용한 킹크랩 초기 버전을 보고 킹크랩 개발과 운용을 허락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드루킹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서 많이 읽힌 기사에 달린 댓글의 순위를 정치적 의도로 조작했다는 것이 특검 수사 결과다.

특검은 이들이 2016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7만5000여개 기사에 달린 댓글 118만개에 8800여만번의 호감·비호감 부정클릭을 했다고 본다. 국감에선 김 지사가 댓글 작업의 대가로 드루킹 측에 일본 총영사직을 제공하려 했다는 의혹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설 것으로 전망된다.

[키워드2]
[북한 석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에선 북한 석탄이 최대 화두로 떠오를 예정이다. 한국당 소속 의원실 보좌진은 “북한 석탄에 대한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7월17일, 북한 석탄이 러시아 항구를 통해 세탁됐고, 한국에 반입됐다고 보도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의 말을 빌어 “지난 6월27일 ‘연례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서 실린 북한산 석탄이 지난해 10월2일과 11일 각각 한국 인천과 포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한국당 ‘드루킹-김경수’ 정조준
산자위 ‘북한석탄’ ‘탈원전’ 예고

이는 유엔안보리가 지난해 8월5일 의결한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 위반이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석탄, 철광석 등 주요 광물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해당 의결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문정부의 늑장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교부는 즉각 “정부가 (지난해 10월)당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 2척의 배가 입항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며 “관계 당국서 선박에 대해 필요한 조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문정부가 북한 석탄의 유입을 묵인했는지 여부가 국감서 밝혀질지 관심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남북 대화와 북한 석탄 유입이 거래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바른미래당 권성주 전 대변인은 지난달 19일 논평을 통해 “이쯤 되면 급진전된 남북 대화와 북한 석탄유입이 거래됐다는 것은 국민들이 당연히 갖게 되는 합리적 의심”이라며 “조사결과 필요할 경우 처벌도 이뤄진다는 외교부 대변인 말대로 처벌의 대상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명심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키워드3]
[탈원전]

국회 산자위서 다뤄질 이슈는 비단 북한 석탄만이 아니다.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심도 깊게 다뤄질 예정이다. 한국당 소속 보좌진은 “탈원전을 꼭 지금 해야 했을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지적할 수 있는 사항도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경북 경주의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를 찾아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맹비난했다. 또 문정부가 탈원전 정책 추진을 위해 전력수요 예측을 왜곡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한수원 노조 관계자들을 의견을 듣는 자리서 “특정 집단들의 논리에 의해서 수급계획이나 수요 예측 같은 부분이 왜곡된 점이 있지 않나 걱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29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며 이번 겨울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를 8만5200㎿로 잡았다. 2015년 수립된 7차 전력수급계획보다 3000㎿를 줄인 것이다.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올해 한국은 재난에 가까운 폭염을 겪었으며 지난 7월 중순 이후엔 전력수요가 연일 최대치를 경신했다. 결과적으로 정부 예측이 틀린 것이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원전·석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이를 대체하도록 하는 탈원전 정책의 근거가 됐다.

[키워드4]
[항공사 사태]

항공사 오너들의 국감장 러시가 예상된다. 올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국적항공사가 나란히 갑질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대한항공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태, 이명희(69)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언·폭행 논란 등이 있었다.


앞서 경찰은 지난 5월4일 ‘물벼락 갑질’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 전 전무에게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 선에서 반려됐다. 당시 검찰은 “조 전 전무의 주거가 일정하고 현장 녹음파일 등 관련 증거가 이미 확보돼 증거 인멸이나 도주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고려, 불구속 수사할 것을 지휘했다”고 설명했다.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에게 폭언, 폭행을 한 혐의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 등을 받은 이 전 이사장을 상대로 청구된 두 번의 구속영장 청구는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납품업체에 갑질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직원 1000여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갑질과 비리에 대한 성토가 있었다.

이들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하청업체에 16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요구한 것이 이번 대란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서 단기간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키워드5]
[사법농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사건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사법부는 사상 최악의 재판 뒷거래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6월5일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행정처 문건 98개의 원본을 공개했다. 내용에는 양승태 사법부가 ‘BH(청와대) 관심 재판’을 고려한 정황이 담겼다. 행정처가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후 문건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추가로 공개된 문건에는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정치권과 언론 등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진행한 의혹 등이 담겼다. 양승태 사법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 등 당시 야당 지도부와 접촉하는 방안 등을 통해 상고법원 입법을 설득하는 방안을 검토한 정황이 드러났다.

‘항공사 갑질’ ‘라돈침대’ 도마에
최대 이슈 ‘양승태 사법 농단’도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이 불거질 당시 판사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으려고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방안을 구상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의 해외파견’이라는 사안을 갖고 박근혜 청와대와 ‘일본 강제징용 재판’ 거래를 모의했다는 정황도 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하드디스크서 발견된 문건에 의하면 ‘외교부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대법원에 제기했다’ ‘해외송달 등을 이유로 소송을 지연시키면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

[키워드6]
[고용쇼크]

최악의 고용쇼크 문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서 주로 다뤄질 예정이다. 고용쇼크가 과연 최저임금 인상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두고 한국당과 고용노동부 간 격돌이 예상된다.

한국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쇼크가 왔다고 주장한다. 신보라 의원은 지난달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 내용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권 안에 있는 업종의 타격이 심했다”며 “도소매·숙박업 분야서 8만명이 줄었고 경비원 등이 포함된 사업시설관리 분야서 10만명 정도가 감소했다. 종업원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도 대략 10만명 줄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고용노동부 측은 고용쇼크의 원인을 최저임금 인상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혀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근본적 원인은 조선과 자동차 등 제조업의 급격한 구조조정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키워드7]
[라돈침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서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를 대상으로 라돈침대 사태에 대한 국감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음이온 침대서 방사능 물질인 라돈이 검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진침대 등 국내 업체가 음이온 효과를 내고자 희토류(모자나이트, 토르말린 등)를 첨가했는데, 이 물질들이 자연붕괴 과정서 라돈을 배출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음이온 제품은 방사능 물질이 함유돼 있어 수년간 착용하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5월10일 원안위는 라돈침대 첫 발표서 “침대서 검출된 라돈은 실내 공기질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발표했다. 검사해보니 기준치 이하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원안위는 5일 만에 일부 제품은 기준치를 9배 넘게 초과했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과방위 간사인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은 지난 7월 전체회의서 “원안위가 안전기준 초과 제품에 대한 수거와 안전비닐 제공 명령 등 행정조치를 실시했지만, 소비자 제보가 있기 전까지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해당제품에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매번’ 반복되는 국감 무용론

매년 국정감사(이하 국감)를 전후로 무용론이 제기된다. 정국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여야가 국감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보이콧, 파행 등을 일삼기 때문이다. ‘의정활동의 꽃’이라는 명성이 무색하다.

앞서 2017국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감 시작부터 반말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헌법재판소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뭐하는 거야. 겁도 없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앉으시라고!” “박범계 의원님도 회의 진행 중에 반말하지 마십시오” “편파적으로 운영하니까 그렇지!” 등의 고성을 주고받았다.

과거 정권의 각종 비리와 권력 남용을 낱낱이 파헤쳐 ‘사이다 국감’으로 불렸던 명성이 무색하다. 국감은 1987년 개헌과 함께 부활하면서 여러 스타를 배출했다. 

지난 1988년 노무현, 이해찬, 이상수 의원은 서로 당이 달랐음에도 ‘노동위 3총사’로 불리며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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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