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황태자’ 미국 국적 논란

아버지는 나라사랑 아드님은 미국사람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S&T그룹 최평규 회장이 입길에 올랐다. 방산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답게 평소 국가 산업에 대한 소신을 밝혔는데 정작 그의 아들은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자연스럽게 병역을 피하는 모양새가 됐다. 논란에 휩싸인 S&T그룹을 조명했다.
 

최근 재계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슈가 있다. S&T그룹의 오너이자 대표인 최평규 회장의 아들이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다. S&T그룹 측은 최평규 회장의 장남 최진욱(23)씨의 미국 국적 취득 사실을 인정했다.

23세의 장남
병역회피 의혹

S&T그룹 측은 지난 14일 “최씨는 관련 법 절차를 거쳐 시민권을 취득했다. 6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올해 퍼듀공과대학을 졸업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논란은 최씨의 병역회피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23세인 최씨는 징집 대상이다.

최씨가 국적을 취득한 시점은 2016∼2018년으로 알려졌다. 병무청은 만 19세부터 징집대상으로 하고 있다. 최씨가 병역회피를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은 이 같은 배경서 나왔다. 


병역법 제3조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특히 S&T그룹이 방산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되는 모양새였다. S&T그룹은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S&T그룹은 방위산업을 비롯해 자동차부품사업, 플랜트사업, 금융/서비스사업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S&T중공업의 경우 1959년 설립돼 고신뢰성 방위산업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S&T모티브는 1981년 설립돼 방위산업을 모태로 사업을 시작했다.

방위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의 특성은 국가의 세금으로 성장한다. 이번에 나온 실망감은 국가의 세금에 기대 성장세를 이어간 S&T그룹의 오너 일가의 행보에 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세균 의원은 과거 “현직 공무원과 유수 기업체 임원, 대학교수 등이 자녀의 국적을 포기한 것을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응당 책임을 묻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도 여론을 악화시키는 분위기다. 최 회장은 국가에 대한 생각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학파 최평규 회장 아들 미 시민권 취득
군대 갈 나이인데…의도적으로 한국 포기?


최 회장은 “정도경영과 현장경영, 기술보국 등 기업가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최악의 상황 대응 시나리오로 위기를 더 큰 기회로 변화시켜왔다”며 국가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의 경영행보를 인정하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2002년에는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금탑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03년 11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이하 방산진흥회) 회장을 맡으면서 국내 방산기업으로서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공군회관서 열린 2018년 방산진흥회 정기총회를 통해 최평규 회장은 제16대 방산진흥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전임 방산진흥회 회장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었다.

방산진흥회의 권위는 높다는 평가다. 방산진흥회는 1976년 출범했다. 현재 한화, KAI, LIG넥스원 등 250여개 국내 주요 방산기업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유일한 협의체다. 대한민국의 국방이 이들 기업의 손에 달렸다는 말이 어떤 측면에서는 결코 과장은 아니다.

방산진흥회 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그러나 국내 유일의 방산기업협의체 수장으로서 방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방산진흥회의 회장직을 최 회장이 맡으면서 그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흙수저로 시작해
굴지의 기업으로

당시 최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군 전력증강과 국가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의 성장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이른바 ‘흙수저’였다. 

최 회장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공부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정도로 못 살았다는 것. 그래서 전 유년시절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겠고”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공부를 재능이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경희대학교 기계공학과의 학사모를 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에어콘 업체 센츄리에 입사해 5년간 직장생활을 경험한다. 

이 기간 가운데 1년간은 일본 히타치제작소에 기술연수를 갔다왔는데 거기서 만난 미국인 맥얼로에게 열 교환기 소재인 ‘핀튜브’를 만드는 피닝머신을 수입했다. 최 회장은 이 기계를 기반으로 삼영열기공업을 1079년 설립했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남자 기준 27세면 취업 준비생이 한참 많을 나이 그는 기업을 설립해 경영에 나섰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창업할 때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너무 어리다 보니 초기엔 명함을 두 개씩 갖고 다녔어요. 하나는 ‘부장 최평규’고 다른 하나는 ‘대표이사 최평규’. 장사하러 갈 때는 부장 명함 들고 가고, 수주하면 대표이사 명함 보여줬죠. 그래도 열심히 하다보니 사업한 지 1년 만에 은행 빚을 다 갚았어요.”

이후 수차례 기업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웠다. 2003년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 2006년 S&T대우(옛 대우정밀), S&T모터스(옛 효성기계) 등을 차례차례 인수하면서 S&T그룹은 완성돼 갔다. 2006년 7월 S&T그룹을 출범시키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겉만 봐선 순탄하게 그룹의 외연이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인수 과정에서 노사간 갈등이 불거졌다.

최 회장은 ‘강골’ 그 자체였다.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요구에는 물러섬이 없었다. 노사간 갈등으로 폭행까지 당한 최 회장은 “노조는 한 번 부당한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더 달라고 한다”며 원칙을 고수하기도 했다.


2005년 5월 최 회장은 강성노조로 알려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 노조 집행부와 해고자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원칙을 지키려다 그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최 회장은 당시 폭행으로 전치 6주의 부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졌다. 최 회장은 당시 사고로 경추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기도 했다.

최 회장은 S&T대우를 인수한 후인 2007년 7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S&T대우 본사 건물과 사내식당을 점거하는 과정에서도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최 회장은 당시 집단폭행을 당하고서도 단식투쟁에 들어간 일화는 유명하다. 최 회장은 장기화되고 있는 S&T대우의 노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조가 점거 농성을 하고 있는 S&T대우 사내 식당을 찾았으며 하루가 넘은 지금까지 농성장을 떠나지 않고 단식을 하고 있다. 

세금으로 성장
군대는 남의 일?

성난 노조 옆에서 그들을 달래기 위해 단식투쟁을 하는 회장은 재계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는 대화의 창구는 열어뒀다. 

최 회장은 “노동조합의 지속적인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 조합 사무실 바로 아래에 있는 사내식당서 단식 농성을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놀라운 것은 한번더 최 회장은 한 번 더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최평규 S&T그룹 회장은 S&T기전 사업장 내에 설치한 천막에 현수막을 걸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180여명을 직접 찾아가 회사 밖으로 나가 달라고 요구하다 멱살이 잡히고 목이 졸리고, 심지어는 둔기로 맞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격적인 외연확장에 대한 성장통이었다. 현재 노조와의 관계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그룹은 정상화됐다.

하지만 그의 강골기질은 여전하다. 지난해에는 S&T중공업에서 임금피크제, 휴업휴가 등을 놓고 노사간 갈등이 불거졌다. 입장차에 따라 노조는 농성을 했다. 최 회장은 집회 중인 노조를 혼자 찾아가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비록 당시 대화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회장 혼자 노조가 집회중인 농성장을 찾은 것을 두고 강골 성향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외연 성장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능력도 준수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S&T그룹의 지주사 S&T홀딩스의 자산은 연결기준 2조1461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규모는 1조5081억원 규모다.

방산사업으로 그룹 일궈
국가에 헌신 강조하더만…

한편으로는 최근 최 회장의 아들 국적포기로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일각에선 최 회장을 문재인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최 회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학교 한 학번 선배다. 

둘은 같은 해 경희대 총학생회 임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 대통령의 재계라인으로 분류됐다. 문재인정부 입장에선 국방 사업서 S&T그룹에 일감을 몰아주기에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결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나랏돈을 들여 기업에 일감을 제공해줬더니 해당 오너 자식은 미국 국적을 취득해 국방의 의무를 피한 모양새가 됐으니 어쩔 수 없는 것.

현재 S&T그룹의 실적이 잘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올해 2분기 S&T그룹의 주요기업 실적은 줄줄이 하락했다.
 

지주회사인 S&T홀딩스는 올해 2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3463억1600만원, 영업이익 166억 원, 순이익 299억4400만원을 시현했다. 전년 같은 기간과 견줘 매출은 9.5%, 영업이익은 29.1%, 순이익은 15.3% 줄었다.

S&T모티브는 올해 2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2572억2000만원, 영업이익 163억5200만원, 순이익 302억9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기간 대비 매출은 12.1%, 영업이익은 26.1%, 순이익은 8.8% 감소했다.

S&TC는 올해 2분기 별도기준 매출 362억원, 영업이익 12억원, 순이익 5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매출은 34.8%, 영업이익은 75.9%, 순이익은 22.9% 줄었다.

S&T중공업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 1015억5300만원, 영업손실 3억4700만원, 순이익 807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매출은 5.0%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45.4% 증가했고, 순이익은 69.6% 감소했다.

원칙주의자?
반전의 회장님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평규 회장은 재계서 원칙주의자이자 강골로 유명하다”며 “평소 올바른  길을 걷는 경영인으로 잘 알려진 그이기 때문에 장남의 미국 국적 선택에 일종의 배신감(?)을 국민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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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