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선 막판 변수 ‘안철수 바람’

근혜가 뛰니 철수도 뛴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됐다. ‘서울대첩’의 승리를 위해 유력 잠룡들까지 선거전에 뛰어들며 ‘대선 전초전’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이다. 초반에 ‘안풍’이 불어 닥치며 여권에 위기감이 감돌자 ‘구원투수’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등 떠밀려 선거판에 뛰어들었고 판세는 역전됐다. 야권 역시 ‘박풍’의 효과가 반대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선거판으로 불러들일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근혜와 기싸움 이미 시작…장외대결 점화
안 “박원순 요청해 오면 지원 생각해 보겠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관심이 ‘박풍’과 ‘안풍’의 파괴력으로 옮겨 붙은 양상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 지원사격에 나선 박근혜 전 대표와 박원순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후광효과가 얼마만큼 발휘될 것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무엇보다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 소식에 힘입어 나 후보가 부동의 1위를 지키던 박 후보를 역전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지난 13일 10·26 재보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박 전 대표가 4년 만에 선거 지원에 나섰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지원유세 이후 처음으로 나 후보의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선거의 여왕’ 납시자
일거에 판세 역전?

그간 정치권은 ‘안철수 신드롬’이 불어 닥치며 크게 출렁거렸다. 이는 지난 4년 동안 줄곧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박근혜 대세론’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안 원장의 지지를 받은 야권의 박 후보는 삽시간에 10·26 서울시장 재보선 여론조사에서 1위로 비약했고, 급기야 여권에 위기감을 안겼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이 내년 총·대선의 바로미터라는 분석 때문이다.

가장 다급해진 건 박 전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처럼 수수방관할 경우 보수층의 이탈과 당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게 돼 이번 재보선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박 전 대표는 서울을 시작으로 재보선 ‘제2의 격돌지’인 부산을 찾아 동구청장 재선거 지원 유세 등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그간 친박계 인사들의 말에 따라 박 전 대표가 지원 의사를 알렸을 당시만 해도 나 후보에 대한 지원은 흉내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서울시장 보선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박 전 대표이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봤던 것.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지원유세 첫날부터 서울 금천·구로구 일대의 산업공단 등을 돌며 나 후보와 공동유세로 7시간 가까이 강행군을 펼쳤다. 금천·구로구는 서울 지역 중 한나라당 지지율이 가장 낮은 곳으로, 홍준표 대표 역시 이 일대에서 첫 유세를 벌이는 등 지지층 끌어안기에 주력했다.

지원유세 틈틈이
정책발언 쏟아내

박 전 대표는 유권자들 앞에서 나 후보를 일컬어 ‘우리 나경원 후보’라고 표현하며 적극적인 유세를 펼쳤다. 박 전 대표는 특히 나 후보의 경쟁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장애아동에 대해 힘썼던 따뜻한 마음이 있다”며 “서울시정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끌 것이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특히 선거 지원유세 첫날 박 전 대표는 각종 정책발언들을 쏟아내며 집중조명을 받았다. 구직자와의 간담회에서 박 전 대표는 “일자리 문제는 공동체 전체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라며 “복지의 핵심이 되는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자립과 자활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선 “젊은 벤처인들이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는 또 “우선 집 구하기 어려운 분을 위해 다양한 공공주택을 지어 보급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금융권에서 목돈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생 안철수 존경해…젊은층 폭발적 지지
막판 ‘박’ 지원 유세로 박빙의 판세 뒤집을까? 


중소기업과 대기업 상생 문제에 대해서도 “시급한 게 양극화와 중소기업·대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라며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높이고 노력한 만큼 성과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성과공유제가 더 활성화되도록 하는 게 중소기업 돕는 길”이라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적극적 지원유세와 맞물려 공개된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나 후보가 박 후보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나며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 지난 13일 ‘서울신문-엠브레인’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나 후보는 47.6%를 얻어 44.5%의 박 후보를 3.1%p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지난 3일 박 후보가 야권후보로 선출된 뒤 나 후보는 많게는 10%p 가량 뒤처져 왔지만 점차 격차를 줄여왔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지지율을 뒤집은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은 박 전 대표의 지지 의사로 보수층이 결집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여론조사에서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를 묻는 질문에는 박 후보가 44.1%로 37.5%의 나 후보를 6.6%p 앞섰다. 또 박 전 대표의 나 후보 지지선언 이후 지지후보를 바꾸었다는 응답자는 2.5%에 그쳤지만, 안 원장이 박 후보 지원에 나서면 지지후보를 바꾸겠다는 응답자는 6.6%나 됐다.

안철수 지원 여부에
세간의 관심 쏠려

게다가 ‘헤럴드경제-케이엠조사연구소’가 지난 11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와 안 원장이 지원에 나설 경우 나 후보 40.5%, 박 후보 49.9%로 격차가 9.4%p로 격차가 벌어진 바 있다.

이는 안 원장의 행보가 향후 나 후보 지지층의 표심을 흔들어 놓을 잠재력이 그만큼 더 높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시선은 자연스레 안 원장이 박 후보의 구원투수로 등판할지에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안 원장은 지원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한국연구재단 주최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 서울시장 보선 지원 여부에 대해 “제가 인문학은 아는데 정치 쪽은 잘 모른다”며 애매한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앞서 안 원장은 박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다음날인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참 잘된 것 같다”며 간접적인 지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안 원장은 지난 9일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의 저자사인회에서도 박 후보에 대한 강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박 후보를 찍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당연하죠”라며 지금까지 한 발언 중 가장 강한 어조로 박 후보 지지 의사를 전달한 것. 이어 “박 후보가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도울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요청이 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언급해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여권은 병역문제와 대기업 기부금 등을 놓고 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집중 공세를 가한데 이어 박 전 대표까지 적극 나서 지원하며 조직적으로 야권에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전이 계속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박빙과 혼전 양상으로 진행되거나 박 후보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다면 안 원장 측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후보 측 송호창 공동대변인은 “지금은 계획이 없지만 때가 되면 도움을 청할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박풍 vs 안풍
정면 힘겨루기

손학규 민주당 대표 역시 지난 12일 저녁 한 언론사 주최의 특강에서 “무슨 일을 할 때 권유로 끌려나올 수 있지만 일단 끌려나오면 자기 뜻이 확고해져야 한다”며 “나라를 책임지고 싶으면 그것을 내놓고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요구함과 동시에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보선에서의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박 후보로서도 그리 녹록치 만은 않아 보인다. 조만간 안 원장이 지원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이다. 결국 이번 선거전은 중도층과 대학생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로 꼽히며 젊은 층의 폭발적 지지를 받고 있는 안 원장의 지원유세가 막판 변수가 될 전망이다.

만약 안 원장까지 나서서 박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를 펼친다면 서울시장 보선은 이른바 ‘안풍’과 ‘박풍’의 힘겨루기 대결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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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