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실’ 대선조선 경영권 보전 의혹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8.20 10:30:04
  • 호수 1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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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선조선 재매각을 둘러싼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은 오너 일가 소유 주식을 전부 무상소각하고도 일가의 경영권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3월 대선조선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한 대선조선 주주는 지분이 없는 오너 일가가 경영을 계속하는 데 수은이 뒷배를 봐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요시사>는 대선조선 재매각을 둘러싼 의혹들의 전모를 파헤쳤다.

대선조선은 부산에 본사와 공장을 둔 국내 최초 민간자본 조선소다. 1945년 12월 안성달씨(창업주 1세)가 대선철공소를 창업해 1980년 12월 안강태(창업주 2세) 현 대선조선 회장으로 이어지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안 회장은 2012년 9월 장남인 안재용(창업주 3세)씨에게 대표이사직을 물려줘 3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 악화로
채권단 관리

대선조선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인 조선업계 불황으로 적자누적 및 부채 확대를 겪어왔다. 재무구조가 열악해지자 대선조선은 지난 2010년 상장폐지 및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체제로 전환됐다. 채권단은 수은과 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으로 구성됐다. 

그중 대선조선 지분의 67.3%(오너일가 지분 무상감자 전 기준)를 보유한 수은이 주채권은행이다.

수은은 지난해 11월 삼일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대선조선에 대한 공개매각에 나섰다. 워크아웃 이후 7년 만에 새 주인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매각은 유찰됐다.


지난 3월 대선조선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창업주인 안씨 일가가 가진 지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주총에 참여한 주주는 “안씨 일가 주식을 모두 무상감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씨 일가가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음에도 부산‧경남지역 내 영향력을 바탕으로 경영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선조선은 올해 3월 재무제표 상 부채가 자산보다 4018억원을 초과하는 등 완전히 자본잠식상태다. 올해 1분기만 해도 50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다. 안 회장과 안 대표이사 등 안씨 일가는 부산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부산 내 유력 정치인 및 재계 인사들과 학맥으로 연결돼 있다.”

안 대표이사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했다. 대선조선은 2008년 238억 규모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이후 9년째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이사로서 대선조선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해 왔는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조선 경기가 정점에 있었음에도 이런 흐름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뒤늦게 중국에서 플로팅도크(해상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바지선 형태의 대형 구조물)를 수입하는 등 무리한 시설 확장과 저가 수주로 엄청난 당기손실을 발생시켰다. 상장 폐지 및 채권단 관리 체제 이후 7년간 매년 영업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당기순 누적적자만 2746억원에 이른다.”

회사는 휘청
여전히 경영

이에 주주는 안씨 일가의 주식을 무상감자(주식을 보유한 사람이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결정된 감자 비율만큼 주식수를 잃게 되는 것)하고 일가가 경영서 손을 땔 것을 요구했다. 

1차 매각에 실패한 수은은 안씨 일가의 보유주식이 대선조선 매각의 걸림돌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지난 5월23일 오전 10시 대선조선 1공장 회의실서 진행된 임시주주총회서 ‘지분의 감소 승인의 건’을 의결해 안씨 일가가 가진 29만3502주(안 회장 29만2226주, 안 대표이사 1276주)를 무상소각했다.


수은은 안씨 일가의 주식을 모두 소각했음에도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고 있다. 이는 대선조선과 마찬가지로 수은이 대주주로 있는 성동조선과 비교된다. 수은 등 성동조선 채권단은 지난 2012년 3월31일 성동조선 오너일 가를 경영진서 물러나게 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수은 측은 두 회사가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 “개별 회사의 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성동조선과 대선조선이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조선소 규모도 다르고 진행해온 프로세스도 달랐다”며 “성동조선이 (경영진을) 교체했으니 대선조선도 교체해야지 공정한 것 아니냐는 시각은 제3자인 우리가 봤을 때 좋은 결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선조선 주주는 안 대표이사가 경영을 계속하고 있는 현 상황과 관련해 다양한 의혹을 제기한다. ▲대선조선에 채용된 수은 출신 전무 ▲안 회장의 ‘덕경회’ 인맥 등으로 인해 수은이 경영진 교체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1차 매각 유찰 “오너 일가 때문”
지분 무상소각…경영은 그대로

공주식 대선조선 전무는 수은 외환업무실장, 무역금융부장, 남북협력사업부장 등을 거쳐 2010년 1월 수은 부산지점장에 올랐다. 2012년 6월 지점장을 그만둔 공 전무는 1년 뒤인 2013년 6월 대선조선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공 전무는 지점장으로 있을 당시 수은서 대선조선으로 파견된 채권단 관리인이었다. 수은을 나와 본인이 관리하던 회사의 전무로 이동한 것이다.
 

공 전무는 연세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안 대표이사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조선 경영기획실 측은 “학부 상으로 (공 전무가 안 대표이사의) 선배가 맞다”고 확인해줬다. 의혹을 제기한 주주는 “이들이 4년간 대선조선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면서 회사에 부채만 안겼지만, 의문스럽게도 수은 등 채권단은 이들의 경영권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는 특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 전무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서 또 다시 사내이사로 연임됐다. 공 전무는 지난 2014년 3월28일 사내이사로 임명된 후 지금까지 사내이사직을 이어오고 있다.

‘덕경회’는 경남고·부산 출신 인사들의 모임이다. <월간조선> 2017년 6월호에 따르면 2010년 출범한 덕경회에는 오완수 대한제강 회장을 비롯해 안강태 대선조선 회장, 윤성덕 태광 사장, 홍하종 DSR제강 사장, 구자신 쿠쿠홈시스 회장 등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사업체를 둔 70여 명의 동문이 가입해 있다.

<월간조선>은 최근 덕경회가 문재인 대통령의 재계인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모임에 자주 참여하거나 학맥을 챙기지는 않지만, 정치 입문 이후 모임 인사들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받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971년 경남고를 졸업(25회)했으며, 안 회장은 1957년 졸업(11회)했다.

회장님 무기
덕경회 파워

문 대통령은 2016년 9월22일 오전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대선조선소를 방문한 사실이 있다. 이날은 부산의 한 선주사의 석유화학제품선 명명식이 있었다. 당시는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대권행보를 이어가던 시점이었다. 


이날 행사장서 문 대통령은 “조선·해운산업은 우리나라 핵심 기간산업”이라며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국가경쟁력을 살리는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안 회장을 비롯해 안 대표이사도 참석했다. 특히 안 대표이사는 문 대통령을 지척거리서 수행했다.

대선조선 측은 문 대통령이 대선조선소에 방문한 사실에 대해 “우리 쪽에서 초대하지 않았다. 선주사 쪽에서 초대했다”고 해명했다. 해당 선주사 측은 “오래된 일이라 (문 대통령을 우리 쪽에서 초대했는지)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주주는 덕경회에 대해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재계모임 중 단연 최고의 파워를 자랑한다. 기득권 중에 기득권이다. 부산상공회의소의 주력 멤버도 덕경회에 들어가 있다. 수은이 덕경회 멤버인 안 회장의 눈치를 살피느라 대선조선 경영진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수은과 대선조선 측은 모든 의혹을 반박하고 있다. 

수은 측은 안씨 일가의 주식을 모두 소각했음에도 여전히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리 입장에서는 매각을 추진하는 데 있어 사람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지만, 현재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높은 사람이 (대선조선을)운영하면서 적당한 매수자를 찾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유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조선의 상황이 다른 중소조선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채권단의 추가 자금지원 없이 자기 자본으로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안 대표이사는 영업 위주로 경영을 하고 있다”며 ”수주를 잘 하려면 인맥도 있어야 하고 사업에 대한 전문성도 있어야 한다. 중소조선소 전체가 어려운 상황서 특정인에 의해 회사가 어렵게 됐다는 (주주 측)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안 대표이사를 임기 중에 해임할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공 전무의 존재가 대선조선 매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건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라며 “이미 떠난 사람이다. 우리는 (대선조선을) 합리적인 가격에 매각하는 게 최선이지 그 이외 다른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안 회장이 덕경회 멤버라는 점이 매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덕경회를) 처음 듣는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감안할 사항도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수은 출신 전무·덕경회 뒷배 의혹
수은·대선 측 “매각에 영향 없어”

대선조선 역시 수은과 비슷한 입장이다. 

안 대표이사를 전문경영인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대선조선 측은 “안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으로 선임됐다. 구 사주(안 회장과 안 대표이사)의 지분이 없는 상태이니 (안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이다. (안 대표이사가) 중소 조선 분야를 잘 아니 채권단서 선임을 해 준 것이다.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 전무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서 또 다시 사내이사로 연임되는 과정서 수은 출신이자 안 대표이사의 학부 선배라는 점이 고려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연 쪽은 영향이 없다. 주주나 외부에서 퇴직자 낙하산을 얘기하지만, 회사 정상화의 성과를 창출했기 때문에 연임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채권단 초기에는 수은이 절대 지분을 가진 게 아니어서 (공 전무의 사내이사 연임에 대해 수은 측에서)일방적인 의사결정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마치 수은이 처음부터 (공 전무를 사내이사로) 결정한 것으로 비춰진 것 같은데 히스토리를 따져보면 여러 채권금융기관이 초기부터 협의한 것이지 수은만의 결정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덕경회 의혹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대선조선 매각 의사가 없어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지는 않다. 안 대표이사나 공 전무, 수은 모두 매각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반대할 이유도 없다. 지난해는 너무 준비가 안 되서 매각에 실패했다. 하반기에도 매각하는 쪽으로 계속 작업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수은·대선
전면 부인

대선조선 측은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주주 측에게 아쉬움을 전했다. “주주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에 대해 어느 정도 아시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경영 정상화에 도움을 주셔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그런 좋지 않은 효과가 나올 것 같다. 의혹이 있다면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히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음하는 중소 조선업계

국내 조선업계가 양극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형조선소는 시황이 개선돼 차츰 살아나고 있는 반면, 중소조선소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6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대한민국 조선업계는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 201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중 절반에 가까운 97만CGT을 수주했다. 이는 14%에 그친 중국에 두 배를 넘는 세계 1위다.

그러나 편중 현상이 심하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빅3는 지난 7월까지 누적 수주량 645만CGT를 기록했다. 중국 501만CGT, 일본 159만CGT를 크게 앞서는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대선조선, 성동조선, SPP, STX 등 중소조선사들의 실적은 대형사들의 2%도 안 되는 10만1000CGT에 그쳤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상반기 중소조선사들의 총 수주 금액은 4억7000만달러다. 지난해 동기보다 45%나 급감했다. 봄을 맞이한 대형조선사들과는 달리 중소조선사들의 겨울은 계속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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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