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기무사 ‘수상한 연결고리’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8.06 10:56:15
  • 호수 1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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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들이 지금도 쪽지보고 올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두환씨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국회 관계자는 여의도 한 식당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서 국방부 업무보고 및 현안보고가 진행됐으며, 검찰과 군 특별수사단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합동수사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고, 67쪽 분량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가 공개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치권서 이 같은 소문이 퍼지는 이유는 전씨가 보안사(기무사의 전신)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1979년 3월5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2·12군사쿠데타가 있던 해다.

무소불위
육사 11기

당시 보안사령관은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1970년대 박정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대통령과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권력과의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군 내부서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국방부장관도 보안사령관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고 알려진다.

사실상 전두환정권이 들어선 1979년을 전후로 보안사의 힘은 정점을 찍었다. 전씨는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참모들에게 ‘시국 수습방안 연구’를 지시했다. 계엄 선포 시 보안사가 어떻게 정국을 바로잡을지에 대한 연구였다. 

이는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을 견제할 목적이었다. 차지철 실장은 당시 보안사령관의 대통령 대면 보고를 자신에게 하도록 하는 등 보안사 약화에 힘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이 돼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해 12월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내란방조죄로 체포하는 일로 12·12쿠데타를 시작했다. 

정승화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다.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였다. 이후 사회 불안을 안정시킨다는 명분 아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씨가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회’의 힘이 컸다. 보안사로 서울을 점거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11기, 12기생 회원들이 중심인 하나회 인맥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줬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된 군 사조직이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자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서울 한복판서 지지 행진을 주도해 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이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웠다.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은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하나회 인사들을 군 핵심 요직에 앉혔다. 쿠데타를 묵인한 이희성을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황영시를 육군참모차장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5월17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쿠데타를 일으켰다. 국회에 군 병력을 주둔시켜 임시국회의 개최를 막았다. 이에 항거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병력을 동원해 진압했다. 이때 하나회도 진압에 참여했다.

신군부 종식
그러나…


전씨는 당시 자신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서가 최근 공개됐다. 

5·18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인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기무사령부(옛 보안사)가 보존하고 있는 ‘직무유기 경찰관 보고’ 문서를 지난달 25일 공개했다. 이 문서는 고 이준규 5·18 당시 목포경찰서장을 직무유기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문서에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의 친필 서명이 담겨있다.

전 전 대통령이 만든 하나회는 김영삼(YS)정부 들어 쇠퇴의 길을 걸었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1993년, YS는 취임 9일 만에 하나회 청산에 돌입했다. 이는 대통령의 측근들조차 모를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시 YS는 권영해 국방부장관을 불러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예편하도록 지시했다. 하나회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어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하나회가 차지했던 군 요직을 비하나회로 채웠다. 이는 오늘날 YS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하나회는 사실상 육사 36기부터 종식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장성들 중 하나회 멤버가 아직 존재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다”는 국회 관계자의 말도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신군부의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육사 출신들이 군내 주류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 알자회는 34기부터 43기까지 결성돼있다. 승진과 관련해 군 내부서 육사 출신들의 알력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여전히 존재한다.

국회 주변서 소문 파다, 진실은…
육사 36기가 끝? 하나회 생존 의혹

지난달 23일 공개된 계엄령 문건의 세부계획이 12·12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계획과 일치하는 점도 이러한 의혹에 힘을 싣는다. 기무사가 작성한 보고서의 기본 틀은 전씨가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령관 시절 만든 계엄령 문건이다.

첫 번째로 지금의 기무사와 과거의 보안사는 언론 보도를 사전에 검열하고 각 언론사에 보도통제 요원을 배치하려는 공통된 계획을 세웠다. 보안사는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로 내려진 계엄에 따라 실시된 신문, 방송, 통신, 잡지에 대한 보도검열을 주도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진상 규명 자료에 따르면, 보안사는 ‘언론조종반 운영계획’을 만들어 ▲검열단과 언론기관 간의 견해 상 차이점 조정 ▲검열기준시행 상태 점검 ▲검열과정 상에서의 물의 배제 ▲현지 조언을 통해 제반 문제점 해소책 강구 등을 시행했다.

보안사령관이 직접 언론사주 및 언론사 간부와 면담을 갖고 언론인의 반응을 수집, 신군부 측에 협조하도록 요구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계엄령 문건에는 계엄선포와 동시에 발표될 언론, 출판, 공연, 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보문과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이 담겼다. 문건 말미에는 KBS,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 신문·방송·통신사 총 102개 매체의 보도내용을 사전 검열한다는 내용과 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과 매체 등록 취소에 이르는 제재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계엄사령부는 보도검열단 9개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원본, 영상제작물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할 계획이었다.

언론 검열
민간인 사찰

두 번째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제하려는 계획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쿠데타를 일으킨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를 씌워 그를 체포했다. 이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그를 연행해 구금했다가 1980년 내란기도방조죄로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이등병으로 강등했다. 

분명한 ‘하극상’이자 방해가 될 만한 인사를 축출하는 작업이었다.

지금의 기무사는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추천하려고 했다. 육사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


세 번째는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달 23일 국방부가 공개한 합참 계엄실무편람에는 기무사가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평시 계엄업무담당 조직은 국방부 기조실과 합참 계엄과다. 

그럼에도 기무사는 광화문과 여의도에 부대를 배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1980년 전 전 대통령 보안사가 지휘계통을 초월해 계엄 정국을 주도하려 한 점과 일치한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법적 권한이 없음에도 계엄 확대를 주도했다.

계엄령 문건 역시 1980년 5월에 내린 비상계엄령을 원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나오는 포고문에는 전두환 계엄사가 발표한 포고문들이 담겨있다. 이전 포고문을 참고해 이번 계엄령 포고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도 검열 역시 앞서 계엄령 때의 사례를 참고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보안사는 지난 1990년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다. 윤석영 이병이 보안사의 ‘청명계획’을 폭로했다. 청명계획은 보안사가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어 이들을 개별 사찰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찰 대상에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통일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국대학생협의회 의장 등 1303명의 인사가 포함됐다.

계엄령 문건, 12·12 계획과 일치
보안사→기무사, 이름만 바뀌었다

시민들은 크게 분개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보안사에 불어닥친 첫 위기였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보안사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리고 다시는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지만, 이름만 달라졌을 뿐 지금의 기무사는 보안사에서 하던 임무들을 그대로 답습해왔다.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는 청명계획처럼 지금의 기무사가 온라인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을 발표했다.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2014년 4월28일부터 그해 10월12일까지 약 6개월간 ‘세월호 관련 TF’를 운영했다. 문제는 해당 TF서 ‘불순세력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조사 TF는 “기무사는 2014년 당시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국회 동정’ 등의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육사 중심의 군 사조직은 기무사 개혁을 철저히 거부하며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공고히 지켜왔다. 최근 벌어진 송영무 국방부장관 ‘하극상’ 사태도 결국은 기무사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이라는 게 중론이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약 1년여 전 송 장관은 자신의 취임식을 마친 후 국방부에 기무사와 사이버사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방침에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오해를 사거나 사찰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기무사의 동향정보 수집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여러모로
닮아있어

결국 국회서 돌고 있는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보다 기무사가 그만큼 과거에 얽매여 개혁을 등한시해왔다는 점을 방증하는 의미가 크다. 국방부에선 지난 2일 기무사를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으로 조직을 재편성하고 현재 병력의 30%를 감축하는 개혁 권고안이 확정됐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점 못 잡는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본질서 벗어나는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달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원내대표는 기무사 비밀을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 대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점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같은 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논리가 부족하니 하등의 상관이 없는 내용까지 끌어와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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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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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