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기무사 ‘수상한 연결고리’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8.06 10:56:15
  • 호수 1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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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들이 지금도 쪽지보고 올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두환씨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국회 관계자는 여의도 한 식당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서 국방부 업무보고 및 현안보고가 진행됐으며, 검찰과 군 특별수사단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합동수사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고, 67쪽 분량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가 공개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치권서 이 같은 소문이 퍼지는 이유는 전씨가 보안사(기무사의 전신)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1979년 3월5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2·12군사쿠데타가 있던 해다.

무소불위
육사 11기

당시 보안사령관은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1970년대 박정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대통령과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권력과의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군 내부서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국방부장관도 보안사령관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고 알려진다.

사실상 전두환정권이 들어선 1979년을 전후로 보안사의 힘은 정점을 찍었다. 전씨는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참모들에게 ‘시국 수습방안 연구’를 지시했다. 계엄 선포 시 보안사가 어떻게 정국을 바로잡을지에 대한 연구였다. 

이는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을 견제할 목적이었다. 차지철 실장은 당시 보안사령관의 대통령 대면 보고를 자신에게 하도록 하는 등 보안사 약화에 힘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이 돼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해 12월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내란방조죄로 체포하는 일로 12·12쿠데타를 시작했다. 

정승화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다.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였다. 이후 사회 불안을 안정시킨다는 명분 아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씨가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회’의 힘이 컸다. 보안사로 서울을 점거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11기, 12기생 회원들이 중심인 하나회 인맥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줬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된 군 사조직이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자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서울 한복판서 지지 행진을 주도해 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이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웠다.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은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하나회 인사들을 군 핵심 요직에 앉혔다. 쿠데타를 묵인한 이희성을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황영시를 육군참모차장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5월17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쿠데타를 일으켰다. 국회에 군 병력을 주둔시켜 임시국회의 개최를 막았다. 이에 항거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병력을 동원해 진압했다. 이때 하나회도 진압에 참여했다.

신군부 종식
그러나…


전씨는 당시 자신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서가 최근 공개됐다. 

5·18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인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기무사령부(옛 보안사)가 보존하고 있는 ‘직무유기 경찰관 보고’ 문서를 지난달 25일 공개했다. 이 문서는 고 이준규 5·18 당시 목포경찰서장을 직무유기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문서에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의 친필 서명이 담겨있다.

전 전 대통령이 만든 하나회는 김영삼(YS)정부 들어 쇠퇴의 길을 걸었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1993년, YS는 취임 9일 만에 하나회 청산에 돌입했다. 이는 대통령의 측근들조차 모를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시 YS는 권영해 국방부장관을 불러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예편하도록 지시했다. 하나회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어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하나회가 차지했던 군 요직을 비하나회로 채웠다. 이는 오늘날 YS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하나회는 사실상 육사 36기부터 종식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장성들 중 하나회 멤버가 아직 존재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다”는 국회 관계자의 말도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신군부의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육사 출신들이 군내 주류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 알자회는 34기부터 43기까지 결성돼있다. 승진과 관련해 군 내부서 육사 출신들의 알력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여전히 존재한다.

국회 주변서 소문 파다, 진실은…
육사 36기가 끝? 하나회 생존 의혹

지난달 23일 공개된 계엄령 문건의 세부계획이 12·12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계획과 일치하는 점도 이러한 의혹에 힘을 싣는다. 기무사가 작성한 보고서의 기본 틀은 전씨가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령관 시절 만든 계엄령 문건이다.

첫 번째로 지금의 기무사와 과거의 보안사는 언론 보도를 사전에 검열하고 각 언론사에 보도통제 요원을 배치하려는 공통된 계획을 세웠다. 보안사는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로 내려진 계엄에 따라 실시된 신문, 방송, 통신, 잡지에 대한 보도검열을 주도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진상 규명 자료에 따르면, 보안사는 ‘언론조종반 운영계획’을 만들어 ▲검열단과 언론기관 간의 견해 상 차이점 조정 ▲검열기준시행 상태 점검 ▲검열과정 상에서의 물의 배제 ▲현지 조언을 통해 제반 문제점 해소책 강구 등을 시행했다.

보안사령관이 직접 언론사주 및 언론사 간부와 면담을 갖고 언론인의 반응을 수집, 신군부 측에 협조하도록 요구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계엄령 문건에는 계엄선포와 동시에 발표될 언론, 출판, 공연, 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보문과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이 담겼다. 문건 말미에는 KBS,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 신문·방송·통신사 총 102개 매체의 보도내용을 사전 검열한다는 내용과 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과 매체 등록 취소에 이르는 제재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계엄사령부는 보도검열단 9개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원본, 영상제작물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할 계획이었다.

언론 검열
민간인 사찰

두 번째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제하려는 계획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쿠데타를 일으킨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를 씌워 그를 체포했다. 이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그를 연행해 구금했다가 1980년 내란기도방조죄로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이등병으로 강등했다. 

분명한 ‘하극상’이자 방해가 될 만한 인사를 축출하는 작업이었다.

지금의 기무사는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추천하려고 했다. 육사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


세 번째는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달 23일 국방부가 공개한 합참 계엄실무편람에는 기무사가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평시 계엄업무담당 조직은 국방부 기조실과 합참 계엄과다. 

그럼에도 기무사는 광화문과 여의도에 부대를 배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1980년 전 전 대통령 보안사가 지휘계통을 초월해 계엄 정국을 주도하려 한 점과 일치한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법적 권한이 없음에도 계엄 확대를 주도했다.

계엄령 문건 역시 1980년 5월에 내린 비상계엄령을 원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나오는 포고문에는 전두환 계엄사가 발표한 포고문들이 담겨있다. 이전 포고문을 참고해 이번 계엄령 포고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도 검열 역시 앞서 계엄령 때의 사례를 참고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보안사는 지난 1990년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다. 윤석영 이병이 보안사의 ‘청명계획’을 폭로했다. 청명계획은 보안사가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어 이들을 개별 사찰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찰 대상에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통일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국대학생협의회 의장 등 1303명의 인사가 포함됐다.

계엄령 문건, 12·12 계획과 일치
보안사→기무사, 이름만 바뀌었다

시민들은 크게 분개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보안사에 불어닥친 첫 위기였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보안사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리고 다시는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지만, 이름만 달라졌을 뿐 지금의 기무사는 보안사에서 하던 임무들을 그대로 답습해왔다.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는 청명계획처럼 지금의 기무사가 온라인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을 발표했다.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2014년 4월28일부터 그해 10월12일까지 약 6개월간 ‘세월호 관련 TF’를 운영했다. 문제는 해당 TF서 ‘불순세력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조사 TF는 “기무사는 2014년 당시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국회 동정’ 등의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육사 중심의 군 사조직은 기무사 개혁을 철저히 거부하며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공고히 지켜왔다. 최근 벌어진 송영무 국방부장관 ‘하극상’ 사태도 결국은 기무사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이라는 게 중론이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약 1년여 전 송 장관은 자신의 취임식을 마친 후 국방부에 기무사와 사이버사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방침에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오해를 사거나 사찰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기무사의 동향정보 수집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여러모로
닮아있어

결국 국회서 돌고 있는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보다 기무사가 그만큼 과거에 얽매여 개혁을 등한시해왔다는 점을 방증하는 의미가 크다. 국방부에선 지난 2일 기무사를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으로 조직을 재편성하고 현재 병력의 30%를 감축하는 개혁 권고안이 확정됐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점 못 잡는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본질서 벗어나는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달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원내대표는 기무사 비밀을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 대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점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같은 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논리가 부족하니 하등의 상관이 없는 내용까지 끌어와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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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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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