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기무사 ‘수상한 연결고리’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8.06 10:56:15
  • 호수 1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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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들이 지금도 쪽지보고 올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두환씨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국회 관계자는 여의도 한 식당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서 국방부 업무보고 및 현안보고가 진행됐으며, 검찰과 군 특별수사단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합동수사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고, 67쪽 분량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가 공개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치권서 이 같은 소문이 퍼지는 이유는 전씨가 보안사(기무사의 전신)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1979년 3월5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2·12군사쿠데타가 있던 해다.

무소불위
육사 11기

당시 보안사령관은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1970년대 박정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대통령과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권력과의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군 내부서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국방부장관도 보안사령관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고 알려진다.

사실상 전두환정권이 들어선 1979년을 전후로 보안사의 힘은 정점을 찍었다. 전씨는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참모들에게 ‘시국 수습방안 연구’를 지시했다. 계엄 선포 시 보안사가 어떻게 정국을 바로잡을지에 대한 연구였다. 

이는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을 견제할 목적이었다. 차지철 실장은 당시 보안사령관의 대통령 대면 보고를 자신에게 하도록 하는 등 보안사 약화에 힘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이 돼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해 12월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내란방조죄로 체포하는 일로 12·12쿠데타를 시작했다. 

정승화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다.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였다. 이후 사회 불안을 안정시킨다는 명분 아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씨가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회’의 힘이 컸다. 보안사로 서울을 점거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11기, 12기생 회원들이 중심인 하나회 인맥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줬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된 군 사조직이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자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서울 한복판서 지지 행진을 주도해 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이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웠다.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은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하나회 인사들을 군 핵심 요직에 앉혔다. 쿠데타를 묵인한 이희성을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황영시를 육군참모차장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5월17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쿠데타를 일으켰다. 국회에 군 병력을 주둔시켜 임시국회의 개최를 막았다. 이에 항거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병력을 동원해 진압했다. 이때 하나회도 진압에 참여했다.

신군부 종식
그러나…


전씨는 당시 자신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서가 최근 공개됐다. 

5·18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인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기무사령부(옛 보안사)가 보존하고 있는 ‘직무유기 경찰관 보고’ 문서를 지난달 25일 공개했다. 이 문서는 고 이준규 5·18 당시 목포경찰서장을 직무유기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문서에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의 친필 서명이 담겨있다.

전 전 대통령이 만든 하나회는 김영삼(YS)정부 들어 쇠퇴의 길을 걸었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1993년, YS는 취임 9일 만에 하나회 청산에 돌입했다. 이는 대통령의 측근들조차 모를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시 YS는 권영해 국방부장관을 불러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예편하도록 지시했다. 하나회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어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하나회가 차지했던 군 요직을 비하나회로 채웠다. 이는 오늘날 YS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하나회는 사실상 육사 36기부터 종식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장성들 중 하나회 멤버가 아직 존재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다”는 국회 관계자의 말도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신군부의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육사 출신들이 군내 주류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 알자회는 34기부터 43기까지 결성돼있다. 승진과 관련해 군 내부서 육사 출신들의 알력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여전히 존재한다.

국회 주변서 소문 파다, 진실은…
육사 36기가 끝? 하나회 생존 의혹

지난달 23일 공개된 계엄령 문건의 세부계획이 12·12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계획과 일치하는 점도 이러한 의혹에 힘을 싣는다. 기무사가 작성한 보고서의 기본 틀은 전씨가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령관 시절 만든 계엄령 문건이다.

첫 번째로 지금의 기무사와 과거의 보안사는 언론 보도를 사전에 검열하고 각 언론사에 보도통제 요원을 배치하려는 공통된 계획을 세웠다. 보안사는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로 내려진 계엄에 따라 실시된 신문, 방송, 통신, 잡지에 대한 보도검열을 주도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진상 규명 자료에 따르면, 보안사는 ‘언론조종반 운영계획’을 만들어 ▲검열단과 언론기관 간의 견해 상 차이점 조정 ▲검열기준시행 상태 점검 ▲검열과정 상에서의 물의 배제 ▲현지 조언을 통해 제반 문제점 해소책 강구 등을 시행했다.

보안사령관이 직접 언론사주 및 언론사 간부와 면담을 갖고 언론인의 반응을 수집, 신군부 측에 협조하도록 요구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계엄령 문건에는 계엄선포와 동시에 발표될 언론, 출판, 공연, 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보문과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이 담겼다. 문건 말미에는 KBS,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 신문·방송·통신사 총 102개 매체의 보도내용을 사전 검열한다는 내용과 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과 매체 등록 취소에 이르는 제재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계엄사령부는 보도검열단 9개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원본, 영상제작물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할 계획이었다.

언론 검열
민간인 사찰

두 번째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제하려는 계획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쿠데타를 일으킨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를 씌워 그를 체포했다. 이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그를 연행해 구금했다가 1980년 내란기도방조죄로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이등병으로 강등했다. 

분명한 ‘하극상’이자 방해가 될 만한 인사를 축출하는 작업이었다.

지금의 기무사는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추천하려고 했다. 육사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


세 번째는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달 23일 국방부가 공개한 합참 계엄실무편람에는 기무사가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평시 계엄업무담당 조직은 국방부 기조실과 합참 계엄과다. 

그럼에도 기무사는 광화문과 여의도에 부대를 배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1980년 전 전 대통령 보안사가 지휘계통을 초월해 계엄 정국을 주도하려 한 점과 일치한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법적 권한이 없음에도 계엄 확대를 주도했다.

계엄령 문건 역시 1980년 5월에 내린 비상계엄령을 원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나오는 포고문에는 전두환 계엄사가 발표한 포고문들이 담겨있다. 이전 포고문을 참고해 이번 계엄령 포고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도 검열 역시 앞서 계엄령 때의 사례를 참고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보안사는 지난 1990년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다. 윤석영 이병이 보안사의 ‘청명계획’을 폭로했다. 청명계획은 보안사가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어 이들을 개별 사찰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찰 대상에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통일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국대학생협의회 의장 등 1303명의 인사가 포함됐다.

계엄령 문건, 12·12 계획과 일치
보안사→기무사, 이름만 바뀌었다

시민들은 크게 분개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보안사에 불어닥친 첫 위기였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보안사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리고 다시는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지만, 이름만 달라졌을 뿐 지금의 기무사는 보안사에서 하던 임무들을 그대로 답습해왔다.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는 청명계획처럼 지금의 기무사가 온라인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을 발표했다.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2014년 4월28일부터 그해 10월12일까지 약 6개월간 ‘세월호 관련 TF’를 운영했다. 문제는 해당 TF서 ‘불순세력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조사 TF는 “기무사는 2014년 당시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국회 동정’ 등의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육사 중심의 군 사조직은 기무사 개혁을 철저히 거부하며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공고히 지켜왔다. 최근 벌어진 송영무 국방부장관 ‘하극상’ 사태도 결국은 기무사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이라는 게 중론이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약 1년여 전 송 장관은 자신의 취임식을 마친 후 국방부에 기무사와 사이버사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방침에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오해를 사거나 사찰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기무사의 동향정보 수집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여러모로
닮아있어

결국 국회서 돌고 있는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보다 기무사가 그만큼 과거에 얽매여 개혁을 등한시해왔다는 점을 방증하는 의미가 크다. 국방부에선 지난 2일 기무사를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으로 조직을 재편성하고 현재 병력의 30%를 감축하는 개혁 권고안이 확정됐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점 못 잡는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본질서 벗어나는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달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원내대표는 기무사 비밀을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 대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점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같은 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논리가 부족하니 하등의 상관이 없는 내용까지 끌어와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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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