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의 빅브라더론 ‘득과 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7.30 10:27:40
  • 호수 1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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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 떴다!’ 경계령 발동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살벌한 선거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26일 전당대회 예비경선(컷오프)을 통해 8명의 당 대표 후보들 중 5명을 탈락시켰다. 살아남은 3명의 후보는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이번 컷오프의 핵심 키워드는 흔들리는 ‘이해찬 당 대표론’이다.
 

‘시계제로’ 민주당 이해찬 후보가 무난히 당 대표로 당선될 것이라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빙이었다. 당 내에서 김진표·이해찬 후보가 넉넉히 컷오프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돼왔던 가운데 마지막 한 자리를 송영길 후보가 꿰찼다. 앞서 2016년에 있었던 전당대회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바 있는 송 후보에게 동정표가 쏠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살얼음판

그럼에도 여의도 민심은 아직 이 후보를 가장 유력한 당권주자로 분류한다.

국회 관계자는 컷오프가 있고난 후 “일각에선 이 후보가 셋 중 3위라는 말이 있다”며 “그래도 이 후보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많은 수의 친문 후보가 컷오프됐다. 그 표가 이 후보 측으로 쏠리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이 후보가 가장 앞서 있다고 예상하는 이들은 그만이 현재 흔들리는 민주당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 강변한다. 이른바 이해찬 ‘빅브라더’다. 빅브라더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당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친문(친 문재인) 후보들로 인해 혼잡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외부서 볼 때는 당이 잘 돌아간다고 보여질 수도 있다”면서도 “실상은 교통정리가 안 되고 있다. ‘김부선’ ‘조폭’ 등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관련된 여러 의혹들이 나왔을 때도 당내에서 이런저런 뒷말이 새나갔다”고 말했다.

이번 상임위원장 및 위원 배정을 할 때도 정리를 해주는 빅브라더의 부재로 힘든 과정을 보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몇몇 전문성을 지닌 의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인기 상임위로 가려고 한다”며 “정무위도 그렇고 국토위도 그렇고 이번 상임위 배정 때 특히 의원들이 많이 몰렸다. 제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고 언급했다.

이는 추미애 대표의 임기가 끝나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추 대표의 오는 8월27일자로 임기 2년을 꽉 채운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2020년으로 예정된 제21대 총선서 공천으로 인한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리더십보다 더욱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후보도 이러한 점을 어필하고 있다. 이 후보는 컷오프 당일 정견 발표서 “저는 국민의정부에서 장관도 하고, 참여정부에서 책임총리를 했다”며 “이제 유능하고 강한 리더십으로 문재인정부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량 미달 친문 컨트롤 ‘득’ 
문도 버거운 정치대선배 ‘실’ 


반면 이해찬 빅브라더가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측도 있다. 그가 ‘상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친노(친 노무현), 친문의 좌장인 그가 당 대표로 당선되면 청와대와의 권력관계가 역전될 수 있다는 우려다. 청와대와 보폭을 맞추겠지만, 이 후보 특유의 ‘돌직구 발언’이 계속될 경우 현재 원활한 당청관계가 삐걱댈 소지가 있다.

현재 청와대 비서관들 중 7선인 이 후보와 경력과 연륜서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 후보는 정치 대선배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이 후보는 국무총리였다.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6·13지방선거 국면서 “문재인의 상왕은 이해찬, 안철수의 상왕은 박지원, 태상왕은 김종인”이라고 대여 공세를 펼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야당에게 이러한 공세의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존재한다.

이 후보가 젊은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노쇠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대 총선과 19대 대선, 6·13지방선거서 민주당은 기대 이상의 선전을 기록했다. 이는 젊은 유권자들의 힘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최근 전화통화서 “(이 후보는)나이도 너무 많고, 청년을 상대로 강의나 그런 행사들도 거의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 지역 청년조직서 활동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 모으겠나. 차라리 진문 중 최재성 후보가 올라왔으면 다른 후보에게 더 위협이 됐을 것”라고 밝혔다.

이 후보와 경쟁을 벌이는 김진표·송영길 후보 측은 컷오프 후 “해볼만하다”는 반응인 것으로 전해진다. 송 후보 측근의 한 지역보좌관은 “일각에선 동정표라고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구도가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해볼만 한 단계까지 올라왔다”고 의지를 다졌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내달 25일에 열린다. 본선에 안착한 김진표·송영길·이해찬(가나다 순) 후보는 3인3색을 뽐내며 앞으로 한 달간 치열한 각축전을 펼칠 예정이다.

김 후보는 ‘경제 대표론’을 부각하고 있다. 컷오프를 앞둔 모두발언서 “2020년 총선은 경제 총선이다. 앞으로 남은 1년9개월 동안 경제를 살려야 우리가 산다”며 “유능한 경제정당을 이끄는 경제 당 대표로서 승리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3인3색

이 후보는 경륜과 ‘강한 대표론’을 내세운다. “총리 시절 문 대통령과 당정청 협의를 수차례 해봤는데 호흡이 잘 맞았다”며 “문 대통령을 고구마라고 하는데 고구마는 칠성 사이다와 먹어야 맞다”고 말했다. 칠성사이다는 7선의 이 후보를 가리키는 별명이다. 

송 후보는 ‘통합 대표론’을 제시했다. 그는 “친문과 비문이 하나로 모여야 한다. 영호남이라는 지역과 세대를 넘어야 한다”며 “저는 통합의 아이콘을 자처한다”고 선언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이 본 한국당 비대위, 한국당이 본 민주당 컷오프

제21대 총선 승리로 가는 길목서 원내 1, 2당은 상대당의 ‘비대위 구성’ ‘컷오프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사람마다 온도차가 있겠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측 관계자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비대위 구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내린다. 

민주당 의원실 보좌진은 “카톡(카카오톡 메시지)으로 비대위원 명단을 받아보고 ‘아,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당 측 관계자들은 민주당 컷오프를 보고 부러움이 들었다고. 친문 당권주자들에 대한 교통정리가 되지 않았음에도 큰 잡음 없이 컷오프가 완료됐다는 게 그 이유다.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우리 의원들 같았으면 (컷오프) 불복한다면서 ‘박’ 터지게 싸웠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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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