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무늬 철옹성’ 군내 성폭력 막전막후

조용히 묻히는 ‘여군 미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상하·수직관계서 성범죄가 일어날 경우 피해자들은 쉽게 입을 열기 어렵다. 미투(Me Too) 운동은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낸 캠페인. 지난 1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피해자들의 고발로 발칵 뒤집힌 여러 분야에 비해 군대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군대가 성폭력 문제서 자유로웠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 3월 군인권센터는 ‘군 성희롱·성폭력 피해 신고 전화’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각계각층서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당시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미투 운동이 유독 군대서 반향이 없는 이유는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해도 보호받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사건 진행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외부자가 필요하다”고 운영 배경에 대해 밝혔다.

성폭력 근절
부르짖지만

앞서 국방부는 지난 2월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고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성범죄 특별대책 TF’를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당시 TF는 성범죄 신고 접수부터 피해자 보호, 사건 처리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각급 부대 양성평등담당관과 성고충전문상담관을 통해 군에 복무 중인 여성인력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도 병행한다고 소개했다.


3개월 뒤 국방부는 지난 5월8일 TF 활동에 대해 발표했다. TF장을 맡았던 이명숙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서 “활동기간 중 신고된 사건은 총 29건이고, 그중에 성희롱 15건, 강제추행 11건, 준강간 2건, 인권침해 1건”이라며 “이 중 상급자에 의한 성폭력은 20건”이라고 알렸다.

또 “현재 사건처리는 종결된 것이 2건, 함구 중 3건, 조사 중인 것이 24건”이며 “준강간이 2건 있었는데 긴급구속된 사건이 하나, 한 건은 구속영장 청구를 위해 추가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가해자의 계급은 대부분 피해자보다 높았다.

TF는 군대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양성평등 의식 개선과 신고접수 및 피해자 지원조직 전문성 확보, 사건 및 2차 피해 방지 등을 위해 활동기간 동안 17건의 정책 개선과제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군대 내 다수인 병사를 포함한 전 장병의 성폭력 방지 및 보호를 위한 전담조직 편성, 사건 처리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인력을 보강하고, 징계처리 기준을 세분화해 온정적 처리를 차단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로부터 2개월 뒤 국방부의 노력이 무색하게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터졌다. 심지어 사건은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서 실질적인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제정된 양성평등 주간(7월1∼7일)에 일어났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계급과 서열에 의한 성범죄
신고 못한 사건 더 많을 것

지난 3일 해군 장성이 부하 여군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준장 계급의 A장성은 과거 같이 근무했던 여군 B장교와 지난달 27일 함께 술을 마셨다. A장성은 B장교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하자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시사했다. 

송 장관은 지난 4일 국방부 대회의실서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를 시작에 앞서 “이번 기회에 군대 내 잘못된 성 인식을 완전히 바로잡겠다”며 “최근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 근절이 새로운 시대적 과제임을 모두가 인식해야만 한다”며 “오늘 이 자리를 국민 앞에 엄숙히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장관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 성폭력 문제 개선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여군이 피해자인 성범죄가 드러난 것만 여러 건인데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라고 할 만큼 미미했기 때문이다.

군대는 보수적이면서 폐쇄성을 띠고 있어 실제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성범죄가 상당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가해자 대부분
피해자의 상관

2013년 10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한 주차장에서 C대위가 숨진 채 발견됐다. C대위가 타고 있던 승용차에는 반쯤 탄 번개탄이 남아 있었다. 자살이었다. 

C대위가 자살한 뒤 공개된 유서에는 “10개월 동안 언어폭력, 성추행. 하룻밤만 자면 모든 게 해결된다며 매일 야간 근무시키고 아침 출근하면서 야간 근무 내용은 보지도 않고 서류 던짐. 약혼자가 있는 여장교가 어찌해야 할까요?”라는 내용이 담겨 파장이 일었다.

직속상관인 D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군인권센터가 자살예방센터 등에 C대위의 유서와 일기장을 근거로 심리부검을 의뢰,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을 밝힌 결과도 그랬다. 

군인권센터는 당시 기자회견서 “C대위가 D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정신질환 상해를 입었고 이것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발표했다.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C대위는 해당 부대로 전입하기 전까지 자살요인이 전혀 없었다.

이 사건은 재판에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 휩싸였다. 1심 재판에 앞서 군 검찰은 D소령을 성관계 요구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다. 군 수사당국이 피해자인 C대위가 받았다는 성관계 요구를 성적 농담에 따른 모욕으로 판단한 것. 

그 결과 1심서 D소령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유족 측 변호사는 “재판부는 D소령의 언행이 지나쳤다고 설명하면서도 강제 추행의 정도가 약했다고 판단하는 모순적인 판결을 내놓았다”며 “영관급 장교에 대한 군의 온정론적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고등군사법원은 원심 집행유예를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고, 2015년 7월 대법원서 D소령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C대위 사건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해군서 또 다른 성희롱, 성추행 등 성범죄가 일어났다. 은폐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2014년 3월 해군 초계함에 근무하던 E대위는 여군 숙소 겸 사무실에 무단 침입, 여군 소위를 상대로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E대위는 여군 소위의 어깨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았다.

문제는 E대위 외에도 이 여군 소위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던 해군 관계자가 있었던 것. 심지어 성희롱 사건은 E대위의 성추행 사건보다 앞서 일어났다. 부함장인 F소령이 같은 피해 여군 소위에게 한 성희롱 발언으로 감봉 3개월에 처해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F소령은 세면장 등에서 여군 소위에 성적 폭언을 마구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군 상대 성범죄 늘어도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


피해자 한 명을 상대로 E대위와 F소령의 성범죄가 일어났지만 해군은 E대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당시, F소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었음에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F소령의 성희롱 사건은 피해자가 타부대로 전출된 뒤 고충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났다. 

해군은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한 의혹은 없다”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성범죄는 해군에서 연이어 일어났다. 같은 해 7월에는 해군 호위함 함장이 만취 상태에서 부하 여군 간부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보직해임됐다. 경기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소속 호위함 함장인 G중령은 부대 인근 식당에서 부하들과 회식을 한 뒤 2차로 간 주점서 여군 간부 2명을 양옆에 앉혀놓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등 성추행했다.

당시 G중령은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다.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상부에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해군은 사건을 파악한 뒤 G중령을 보직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G중령은 처음에는 너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하다가 이후 성추행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

같은 해 12월에는 해군사관학교서 영관급 장교들이 여군 부사관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인 여군 부사관은 해사 전 감찰실장과 헌병파견대장이 여군들을 대상으로 범죄예방 상담을 하면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했다고 신고했다. 

조사과정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국군병원도 성범죄가 일어났다. 2016년 8월 국군병원의 한 간부가 수개월에 걸쳐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기도의 한 국군병원서 근무 중이던 H중령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약 5개월간 부하 여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은 물론 노래방서 신체접촉을 하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6명에 달했다.

이보다 앞서 같은 병원의 병원장도 여군 대위를 성희롱한 사실이 드러났다. 시기상으로 따지면 H중령이 성추행 혐의로 6월 보직해임되고 조직이 발칵 뒤집힌 상황서 병원장이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국군병원서 일어난 사건들은 군대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지휘관들의 안일한 의식 수준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5월, 해군본부 소속 I대위가 자신의 원룸 숙소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해군은 조사과정서 I대위가 친구에게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것을 파악하고 직속상관인 J대령을 체포했다.

I대위는 ‘빈손으로 이렇게 가나보다, 내일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등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메모도 남겼다. 당시 J대령은 “회식 후 만취상태서 I대위와 성관계를 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1심서 J대령에 징역 17년 및 신상공개 10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 4월 열린 항소심서 J대령은 징역 15년, 신상정보공개 5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항소심 단계서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사건 범행은 상관의 지위와 권한을 악용한 중대한 성범죄로서 피해자와 유족에 고통을 준 것은 물론 단결과 사기, 명예에도 해악을 끼친 행위이므로 중형으로 엄단할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고 봐 이같이 선고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6년 군사법원서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최근 5년간 육군 내 여군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 의원에 따르면 육군서 여군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입건된 장병은 2012년 16명, 2013년 23명, 2014년 25명, 2015년 29명, 2016년 상반기까지 18명 등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계급별로는 가해자의 대부분이 군 간부로 드러나 군대 내 성폭력이 계급과 서열에 의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은 실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여군 대상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상담, 치료 및 법률 지원, 청원휴가 확대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여군을 상대로 한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군대 내 성폭력 실태에 대한 직권조사를 바탕으로 국방부장관에게 이같이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201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발생한 성폭력 형사피해 여군 사건 173건을 반년간 조사했다.

가중처벌하고
“피해자 보호”

그 결과 계급이 낮을수록 상관에 의한 성폭력 위험에 더 노출된다는 사실을 도출했다. 또 군사법원이 가해자에게 군형법 대신 형량이 경미한 일반형법을 적용하는 등 미온적인 처벌 관행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실제 가해자 가운데 징역은 9명에 불과한 반면 집행유예는 22명, 벌금 12명, 기소유예 16명 등 대부분 처벌이 관대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휘관이 성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하고 재판도 신속하게 진행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또 공소제기 뒤 즉각 징계절차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군인징계령을 개정하고 징계위원회에 외부위원을 반드시 포함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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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