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접고 ‘서울대통령’ 노리는 천정배 전 민주당 최고위원

정치생명 건 大도박 “뭔가 보여 주겠다”

[대담=이주현 기자] 천정배 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함도 개봉하지 못하고 무산되자 다음날 바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오세훈 전 시장이 사퇴하기 이전이라 모두가 의아해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발 빠른 행보였다. 4선을 쌓는 동안 지역구가 경기 안산시 단원갑인 천 전 최고위원은 지난 7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 당시 “나는 그동안 전체 국가의 비전과 경영에 대해 늘 고민해왔다”며 차기 대권도전을 시사했었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복지국가 건설’을 내걸고 대권 출마를 준비해온 그가 방향을 급선회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천 전 최고위원을 직접 만나 명쾌한 해답을 들어보았다.

“야권의 수권능력 보여주고, 통합 이끌어 내
승리할 수 있는 적임자라 생각해 출마 결심”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천 전 최고위원은 “이번 인터뷰가 의원실에서 하는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네요”라며 나지막이 말했다.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하며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 의원회관을 비우고 직함 앞에 ‘전’자를 달게 된 소회를 나타낸 듯 보였다.

천 전 최고위원은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이번 출마에 대한 각오와 굳은 결심을 스스로 다졌다”며 “이제 수도 서울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시민들을 만나는데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며 비장한 각오를 나타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스타트가 너무 빨라 우사인 볼트가 실격하자 너무 빠른 출마 선언에 빗댄 ‘천사인 볼트’라는 별명도 제기 됐지만 볼트가 대회 마지막 날 세계신기록을 기록하며 2관왕을 달성했듯이 그의 마지막 피날레도 기대감을 가져 봄직해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함께 잘사는
 서울 만들 것”


- 갑작스런 출마 배경은 무엇인지?
▲ 민주개혁진보세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유신과 5공 세력의 후예인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차별과 불안에 허덕이며 희망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미니대선이며 내년 총선과 대선의 길목에 있는 전초전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이기는 세력이 총선, 대선에서도 승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 야권의 수권능력을 보여주고, 또 통합을 이끌어 내서 승리할 수 있는 적임자이라 생각해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 각오는 어떠한가?
▲ ‘더불어 함께 잘사는 서울을 만들어 달라’는 서울시민의 열망에 부응할 것이다. 선거운동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나 자신의 삶과 정치인생, 비전, 철학을 서울시민께 최대한 알리겠다. 또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운동, 시민과 소통하는 모범적인 선거운동을 앞장서서 벌일 것이다. 서울시민들께서 ‘천정배’라는 인물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주시리라 믿는다.

- 지향하는 서울의 모습은?
▲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서울을 ‘사람수도’, ‘복지수도’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어떤 외국인이  “서울은 재밌는 지옥이고 유럽 도시는 재미없는 천국이다”라고 평가하더라. 나는 서울을 재밌는 천국으로 만들고 싶다. 차별과 불안이 없고 정의와 복지가 저 한강물처럼 흐르도록 할 것이다.

- 의원직과 지역구를 너무 쉽게 버리는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 정치인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어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나는 2009년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날치기 했을 때 의원직을 사퇴한 적이 있다. 미디어법은 국민의 미디어 주권, 미디어 공공성을 위험에 빠뜨렸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특권과 반복지의 시대로 후퇴할 것인지, 정의와 복지라는 미래로 갈 것인지 결정짓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복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실천하는 정치, 이것이 나를 선택한 지역주민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지역주민들께는 이런 사정을 설명하며 인사하고 있다. 아쉬움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성원해 주시고 계신다.

- 당 내에서 너무나 많은 후보군들이 난립(?)하자 이를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너도나도’식 후보 선언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지?
▲ 많은 후보들이 나와서 공정한 경쟁을 할 때 훌륭한 경선이 된다고 본다. 훌륭한 경선이 있어야 훌륭한 후보를 낼 수 있고, 결국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지지자들이 결집하게 되기도 하고 서울시민들도 좋은 시장을 뽑게 된다. 훌륭한 후보를 뽑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일이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민주당의 전통이다. 교통정리는 지도부 일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당원과 국민이 하는 것 아니겠는가?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후보들이 많다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 환영할 일이다.

- 다른 후보들보다 서울시장으로서 ‘적임자다’라고 주장할 부분이 있다면?
▲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그리고 오세훈 전 시장의 부자들만을 위한 정치를 심판하는 것이다. 콘크리트와 토건 중심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세상, 더불어 함께 잘사는 서울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심장이다. 나는 16년 동안이나 서울을 포함하는 전국 단위의 중앙정치를 했고, 사실상 40년 가까이 서울에서 생활했다. 무엇보다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서울시민들은 ‘사람서울’, ‘복지서울’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내가 그동안 준비해온 정의로운 복지국가라는 국가비전과 똑같다. 그동안 준비해온 국가비전을 서울시민을 위해 쏟아 부을 것이다. 서울을 대한민국을 살림하듯이 하겠다. 나는 민주 개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회정치를 통해 나라살림살이가 어떤지 잘 알고 있다. 또 법무부 장관으로 국정경험도 쌓았다. 정치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법무장관을 지낸 국정경험과 16년간 중앙정치를 해온 제 정치력과 경륜에 서울시민의 열망이 더해진다면 더불어 함께 잘사는 서울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 ‘오세훈 정책’과 차별화 방안은?
▲ 오세훈 시정은 이명박 정부의 서울시 복사판이다. 토건 행정, 전시성 행정, 예산낭비성 행정으로 가득 찼다. 이런 것들은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한다. 부자들만의 서울이 아니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서울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서민과 소외된 약자들을 포함한 모든 서울시민들이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정말 시민에게 봉사하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서울을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곧 최고의 성장 동력이다. 이것이 최고의 복지이자 최선의 정의다.


- 서울시 부채가 상당한데 해결 방안은?
▲ 오 전 시장 재임 당시 부채가 상당히 늘었다. 현재 25조5000억의 부채가 있고 이중 오 전 시장 재임 시 14조가 늘었다. 1년 이자가 1조원 정도 낭비되고 있다. 난제다. 서울시의 1년 예산이 약 20조다. 현재 구조에서는 서울시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하기는 힘들다 본다. 근본적으로 서울시 자체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복안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구체화 한 다음 밝히겠다.

“서울시 재정건전성
 확보할 복안 있다”

- 시청광장 개장 의견을 밝혔는데.
▲ 나 천정배가 당선된다면 ‘서울시의 주인은 시민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하겠다. 서울시민들이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정당하게 누릴 수 있게 하겠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오 전 시장 재임당시 시청광장은 시민의 광장이 아니라 공권력에 갇혀 규제당하고 간섭받고 진압받는 광장이었다. 마음 편히 쉬고 즐기고 맘껏 주장하는 광장으로 개방하도록 하겠다.

- 손학규 대표와 의원직 사퇴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 손 대표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 대표로서 당내 민주주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목적달성을 이유로 민주주의를 생략하면 목적도 이루지 못한다. 그 목적이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면 더욱 민주주의는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벌써 2주가 넘게 우물쭈물하고 있지 않는가?

- 손학규 대표의 ‘통합후보추진위’ 제안은 ‘꼼수’라고 비난했는데?
▲ ‘통합후보추진위’ 제안에 대해서 나는 원칙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환영 성명도 냈다. 이때 나는 손 대표의 발언을 ‘반드시 당내 경선을 거쳐 후보를 뽑고, 이 후보로 야권통합에 나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바로 일부에서 민주당의 주자를 3~4명으로 축약한 다음 다른 당 등의 주자와 통합경선을 하자고 하는 말들이 나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투표 결과를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으로서 어떠한 합리성도 공정성도 개혁성도 찾아볼 수 없는 꼼수이며 편법이다.

- 최근 외부인사 영입설이 나오고 있는데?
▲ 당 대표가 외부인사를 영입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외부영입을 통해 외연을 확장했었다. 민주당에 들어와 경선을 한다면 환영한다. 내가 국회의원직과 당직을 모두 사퇴한다고 한 것도, 외부에서 오시는 분이든, 다른 당직이나 의원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이든, 공정한 기회를 갖고 깨끗한 경선을 하려고 한 것이다.

- 경선 방식에 대한 입장은?
▲ ‘선 민주당 경선, 후 야권통합경선’이 이기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민주당이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고 그 후보를 통합경선에 내보내야 한다. 민주당의 경선다운 경선이 ‘이기는 통합’을 이루는 쉽고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다. 야권통합후보를 뽑는 것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야권의 모든 세력을 결집시키고 좋은 후보를 내야한다. 경선을 해야 민주당 지지자와 당원들이 결집하지 않겠는가? 경선을 해야 검증된 좋은 후보를 뽑을 수 있다. 이것이 또한 민주주의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민주당이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고 통합경선에 나서야 한다.


서울을 ‘사람수도’, ‘복지수도’로 만들겠다!
‘서울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분명히 할 것

- 4선의원이고 정치적 관록은 높지만 서울에서의 기반은 약하다는 시각도 있는데?
▲ 진심을 가지고 정도를 갈 것이다. 나의 정치철학과 정치인생을 숨김없이 보여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국가를 책임지고자 준비해온 국가비전을 서울시민을 위한 비전과 정책으로 내놓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보여드리고 진심으로 서울시민들을 만날 것이다. 그러면 서울시민께서도 이런 점을 평가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입장은?
▲ 서울시민의 위대한 승리다. 1987년 6월에 민주항쟁이 있었다면 2011년 8월엔 복지항쟁이 일어났다. 서울시민들은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의 독점과 탐욕 정치를 심판하고 정의와 복지를 선택했다. MB시대의 종식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서울시민은 부자들만의 서울이 아닌 다함께 더불어 사는 서울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호소했다고 본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정의로운 복지국가의 역사적 서막을 열어젖힌 서울시민들께 깊은 존경을 표한다.

- ‘복지’가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복지관’은 어떠한지?
▲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들어서 우리 사회는 차별이 심화되고 불안이 일상화되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강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고 정의와 공정이라는 원칙하에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복지가 바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할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귀하게 대접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복지가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나는 정치인 중에서 최초로 복지를 중심으로 한 ‘정의로운 복지국가’라는 국가비전을 제시했다. 정의와 복지가 우리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복지를 위해서는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복지라는
미래로 갈 전환점”

-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 1967년 일본 도쿄도지사로 미노베가 당선되었다. 그는 당시 혁신시장이라 불렸다, 미노베 도쿄도지사가 이긴 후, 자민당 간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 “오늘 도쿄에서 일어난 일은, 내일 일본 전체에서 일어날 것이다” 민주개혁진보세력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다. 서울을 변화시켜 대한민국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선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오세훈 서울시정을 심판하자. 그리고 정의와 복지가 흘러넘치는 더불어 함께 잘사는 사회, 서울을 함께 만들어 가는 국민과 서울시민들의 힘을 모아 주시길 부탁드린다. 있는 힘을 다하겠다. 나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드리고 평가를 받겠다.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린다.

- 추석을 맞아 <일요시사> 독자들께 인사 한 말씀만 해 달라.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 추석은 높은 물가로 서민들이 시름에 빠져 있다. 그래도 한가위만큼은 모든 시름을 잊고 가족들과 평안한 시간을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천정배 전 최고위원 프로필>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 합격
▲1976년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1996년 제15대 국민회의 국회의원
▲2000년 제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2003년 열린우리당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2004년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2005년 제57대 법무부 장관
▲2007년 제17대 국회의원
▲2007년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2008년 제17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2008.05~2011.08 제18대 민주당 국회의원
▲2010.10~2011.08 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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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