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특검’ 가부로 본 국회 계파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5.28 10:53:32
  • 호수 1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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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1년 만에…친문 방어선 무너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오랜 진통 끝에 ‘드루킹 특검법(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국회의원 250인 중 찬성 183인, 반대 43인, 기권 24인. <일요시사>는 드루킹 특검 가부 명단을 토대로 각 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여야는 지난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열어 드루킹 특검법을 의결했다. 이로써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첫 특검이 확실시된다. 국회의장의 ‘서면 요청’이 특검의 첫 단추. 정세균 국회의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29일 이후 바통을 넘겨받은 차기 의장이 문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문정부 출범
첫 특검 실시

그간 여야는 특검법안 상정을 두고 진통을 겪어왔다. 특검 규모와 수사 기간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4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국회의장실에 모여 협상을 벌였고, 결국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 사안에 따르면 특검 규모는 특별검사(이하 특검) 1명과 특검보 3인, 파견검사 13인, 특별수사관 35인, 파견공무원 35인 등 총 87명으로 구성된다. 수사 기간은 준비기일 20일을 포함해 수사기간 60일, 1회에 한해 연장기간 30일로 정했다.

특검 추천 방식은 야3당 교섭단체(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가 합의를 통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4인 중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하게 했다.


수사 범위는 ▲드루킹 및 드루킹과 연관된 단체 회원 등이 저지른 불법 여론조작 행위 ▲상기 사건의 수사과정서 범죄 혐의자로 밝혀진 관련자들에 의한 불법행위 ▲드루킹의 불법자금과 관련된 행위 ▲상기 의혹 등과 관련한 수사과정서 인지된 관련사건 등이다.

재석 국회의원 250인 중 찬성 183인, 반대 43인, 기권 24인의 결과였다. 찬성한 183인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원내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반면 반대 43인은 모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다(강훈식, 권미혁, 김경협, 김두관, 김병기, 김병욱, 김종민, 김한정, 김현권, 민병두, 박광온, 박재호, 박정, 박찬대, 백재현, 서영교, 설훈, 소병훈, 손혜원, 송기헌, 심기준, 심재권, 안규백, 우상호, 원혜영, 위성곤, 유동수, 유승희, 유은혜, 윤후덕, 이석현, 이원욱, 이인영, 이재정, 이철희, 인재근, 정재호, 조승래, 조응천, 조정식, 표창원, 한정애, 홍의락). 이 중 상당수가 친문(친 문재인)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반대 43인
친문재인계

강훈식 의원은 자천타천 친문계 핵심이다. 같은 당 최민희 전 의원은 한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서 강 의원에 대해 “이 ‘훈남’은 진짜 결이 곧고, 재기발랄한 친문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대변인을 한 바 있다.

권미혁 의원은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인물. 그러나 당내에서는 대선을 기점으로 민주당 주류에 합류했다는 평이 있다. 문재인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서 전략본부 부본부장으로 활약했다.

김경협 의원은 친노서 친문으로 발전한 주류 인사다. 


한때 자신의 SNS에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는 정당서 당연히 비노(비 노무현)는 당원 자격이 없다”며 “비노는 당원 자격이 없다. 새누리당원이 잘못 입당한 것이다. 새누리당 세작들이 당에 들어와 당을 붕괴시키려 하다가 들통났다”고 밝힌 바 있다.

김두관 의원은 원조 친노로 분류된다. 그러나 확실한 친문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병기·손혜원·표창원 의원은 ‘문재인 키즈’로 불린다.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문 대통령이 국회 앞에서 무기한 장외연설에 나서자 김 의원은 “그 사람(문 대통령)의 그림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손 의원은 자신을 문재인 키즈로 직접 규정했다. 손 의원과 표 의원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당대표 시절 영입한 인사들이다.
 

김병욱 의원은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인물.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로 가지 않고 이재명 캠프를 선택해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김종민·정재호·조승래·한정애 의원은 범친노로 분류된다. 김한정 의원은 ‘영원한 DJ(김대중) 참모’로 불리며 동교동계의 막내로 정치권에 입문, 한때 비노계로 분류됐으나 최근 친문 성향으로 분류된다.

김현권·유동수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86그룹으로 친문계와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다. 민병두 의원은 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이던 시절 친문과 비문이 계파갈등을 벌이자 중간지대서 ‘통합행동’을 결성했을 만큼 계파와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번 6·13지방선거 국면서 친문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회 통과, 찬성 183, 반대 43
반대표 전원 민주당, 친문 다수

박광온 의원은 친문 핵심이다. 문재인 캠프서 미디어본부장 겸 수석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박재호·조응천 의원은 친문 직계다. 박정 의원은 뚜렷한 성향이 없는 비노계로 통한다. 박찬대·조정식 의원은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백재현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정세균계로 지난 대선 경선서 안희정 캠프에 합류한 바 있다.

서영교·설훈 의원은 과거 범친노서 최근 범친문으로 분류된다. 소병훈·유승희·유은혜·인재근 의원은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정파그룹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에 속한다. 그 중 인 의원은 민평련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김 전 상임고문의 부인인 그는 남편과 함께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왔다. 민평련계는 당내 범주류·중도로 분류된다.

송기헌·심재권 의원은 계파색이 짙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심기준·윤후덕 의원은 대표적 친문 인사 중 한 명이다.

안규백·이원욱 의원은 정세균계로 범주류에 속한다. 우상호·이인영 의원은 86그룹의 대표다. 원혜영·위성곤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주류 측 인사다. 이석현 의원은 대표적인 비노계 인사다. 이재정 의원은 본인이 정서적으로 친문과 가깝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이철희 의원은 친문과 다소 거리가 먼 비주류로 분류되지만, 어떤 이들은 그를 친문 직계로 분류하기도 한다. 홍의락 의원은 대표적인 비노·비문계로 분류된다.

기권 24명
유승민도

야당과 특검법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던 우원식 전 원내대표, 홍영표 현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법 통과에 찬성표를 던졌다. 강병원, 최인호, 김해영, 금태섭, 정춘숙, 김성수 의원 등 친문 직계로 분류되는 상당수의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기권표를 던진 24인의 국회의원들도 상당수가 민주당 의원이다(권칠승, 기동민, 김상희, 김태년, 남인순, 박범계, 박영선, 박주민, 박홍근, 백혜련, 서형수, 신경민, 신동근, 오영훈, 윤호중, 이종걸, 이학영, 전재수, 전해철, 전현희, 황희).
 

이들 중 김태년, 박주민, 서형수, 윤호중, 전재수, 전해철, 황희 의원 등이 친문 직계로 분류된다. 

그 외 권칠승·기동민·남인순·박범계·신경민·이학영 의원은 범친노 그룹으로, 김상희·백혜련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정세균계로, 박홍근 의원은 86그룹, 전현희 의원은 손학규계로, 이종걸 의원은 대표적 비문계로, 신동근·오영훈 의원은 계파 없음으로 알려진다.

박영선 의원은 과거 중도 성향 비주류 모임인 통합행동이었다가 최근 친문 측 성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바미당·정의당서 기권표가 나왔다는 점이다. 바미당 유승민 공동대표와 같은 당 이언주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기권을 했다.

유 공동대표는 지난 23일, 바미당 최고위원회의서 “지금의 특검법 수사 범위로 경찰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고, 대통령 최측근과의 연루 가능성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애매한 특검법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기권했던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기권 24인, 친문 직계 많아…
유승민·이언주·추혜선 왜?

그는 “김경수·송인배·백원우 이 사람들은 문 대통령과 24시간을 같이하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최순실, 청와대3인방과 조금도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대통령과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미 통과됐기 때문에 특검은 임명될 것이고 특검 수사는 이뤄질 것”이라며 “특검이 만약 드루킹 사건에 대해 문 대통령과 그 최측근 민주당에 대해 면죄부만 주는 특검으로 끝난다면 이 범죄 자체는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날을 세웠다.

드루킹 특검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특검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와 함께 곧바로 정부에 이송됐으며, 법제처는 당일 소관부처인 법무부에 공문을 보내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부로부터 회신을 받으면 법제처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29일까지 그 내용을 확인·검토한 뒤 다른 모든 부처에 이를 공유하고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한다.

6월 하순경
수사 시작

특검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무회의서 법을 공포한 지 14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해야 한다. 국무회의가 열리는 29일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지방선거 전날인 다음달 12일이 특검 임명 마감시한이다. 

국회의장은 특검법이 공표되면 3일 이내에 대통령에게 특검 임명을 서면으로 요청한다. 대통령은 3일 이내에 한국당과 바미당 등 야당에게 서면으로 특검 추천을 의뢰하고, 야당은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5일 이내 2명의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 

대통령은 3일 이내에 2명 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돼있다. 특검이 임명되더라도 수사는 지방선거 이후인 6월 하순경에나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검이 통상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하는 데 열흘가량이 소요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권성동 체포동의안 결과는?
극에 치닫는 국민 분노

자유한국당 염동열·홍문종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서 부결되면서 같은 당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안 결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홍문종·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서 부결됐다. 지난 21일 표결 결과 재석 국회의원 275인 중 찬성 129인, 반대 141인, 기권 2인, 무효 3인으로 집계됐다. 반대가 오히려 찬성을 앞선 상황이 벌어진 것. 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 중에서도 20명 이상이 반대표를 던진 결과였다.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무기명 투표를 기명 투표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응답률 4.9%)에게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의 찬반 명단 공개 의견 물은 결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명단 공개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두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을 비판하거나 재투표, 유기명투표, 불체포특권 폐지 등을 요구하는 글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에 민주당은 사과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23일 최고위원회의서 “국민께 송구하단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 안에 안일함과 게으름이 있었고 국민 분노의 회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소야대 장벽을 탓하지 않고 당내 규율을 강력히 잡겠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 연루된 한국당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로 넘어갔다.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변화를 약속하면서 권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지금 체포동의안은 국회 정상운영을 가로막는 아주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가능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하겠다. 불체포특권 무기명 방식 등이 (국민들의 상식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부족하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체포동의안 기명 투표, 더 나아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방법을 시사한 것이다.

권 의원은 염 의원과 함께 강원랜드 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지난 19일 업무방해, 제3자 뇌물수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권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 표 단속을 예고한 민주당이 전원 찬성표를 던지고 권 의원과 같은 소속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전원 반대표를 던질 경우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표심에 따라 권 의원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권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대통령의 결재가 한미정상회담으로 인해 미뤄져 6월 임시국회나 돼서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당초 권 의원 체포동의안은 지난 24일 소집된 본회의서 보고된 후 28일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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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