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특검’ 가부로 본 국회 계파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5.28 10:53:32
  • 호수 1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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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1년 만에…친문 방어선 무너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오랜 진통 끝에 ‘드루킹 특검법(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국회의원 250인 중 찬성 183인, 반대 43인, 기권 24인. <일요시사>는 드루킹 특검 가부 명단을 토대로 각 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여야는 지난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열어 드루킹 특검법을 의결했다. 이로써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첫 특검이 확실시된다. 국회의장의 ‘서면 요청’이 특검의 첫 단추. 정세균 국회의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29일 이후 바통을 넘겨받은 차기 의장이 문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문정부 출범
첫 특검 실시

그간 여야는 특검법안 상정을 두고 진통을 겪어왔다. 특검 규모와 수사 기간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4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국회의장실에 모여 협상을 벌였고, 결국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 사안에 따르면 특검 규모는 특별검사(이하 특검) 1명과 특검보 3인, 파견검사 13인, 특별수사관 35인, 파견공무원 35인 등 총 87명으로 구성된다. 수사 기간은 준비기일 20일을 포함해 수사기간 60일, 1회에 한해 연장기간 30일로 정했다.

특검 추천 방식은 야3당 교섭단체(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가 합의를 통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4인 중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하게 했다.


수사 범위는 ▲드루킹 및 드루킹과 연관된 단체 회원 등이 저지른 불법 여론조작 행위 ▲상기 사건의 수사과정서 범죄 혐의자로 밝혀진 관련자들에 의한 불법행위 ▲드루킹의 불법자금과 관련된 행위 ▲상기 의혹 등과 관련한 수사과정서 인지된 관련사건 등이다.

재석 국회의원 250인 중 찬성 183인, 반대 43인, 기권 24인의 결과였다. 찬성한 183인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원내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반면 반대 43인은 모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다(강훈식, 권미혁, 김경협, 김두관, 김병기, 김병욱, 김종민, 김한정, 김현권, 민병두, 박광온, 박재호, 박정, 박찬대, 백재현, 서영교, 설훈, 소병훈, 손혜원, 송기헌, 심기준, 심재권, 안규백, 우상호, 원혜영, 위성곤, 유동수, 유승희, 유은혜, 윤후덕, 이석현, 이원욱, 이인영, 이재정, 이철희, 인재근, 정재호, 조승래, 조응천, 조정식, 표창원, 한정애, 홍의락). 이 중 상당수가 친문(친 문재인)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반대 43인
친문재인계

강훈식 의원은 자천타천 친문계 핵심이다. 같은 당 최민희 전 의원은 한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서 강 의원에 대해 “이 ‘훈남’은 진짜 결이 곧고, 재기발랄한 친문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대변인을 한 바 있다.

권미혁 의원은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인물. 그러나 당내에서는 대선을 기점으로 민주당 주류에 합류했다는 평이 있다. 문재인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서 전략본부 부본부장으로 활약했다.

김경협 의원은 친노서 친문으로 발전한 주류 인사다. 


한때 자신의 SNS에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는 정당서 당연히 비노(비 노무현)는 당원 자격이 없다”며 “비노는 당원 자격이 없다. 새누리당원이 잘못 입당한 것이다. 새누리당 세작들이 당에 들어와 당을 붕괴시키려 하다가 들통났다”고 밝힌 바 있다.

김두관 의원은 원조 친노로 분류된다. 그러나 확실한 친문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병기·손혜원·표창원 의원은 ‘문재인 키즈’로 불린다.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문 대통령이 국회 앞에서 무기한 장외연설에 나서자 김 의원은 “그 사람(문 대통령)의 그림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손 의원은 자신을 문재인 키즈로 직접 규정했다. 손 의원과 표 의원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당대표 시절 영입한 인사들이다.
 

김병욱 의원은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인물.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로 가지 않고 이재명 캠프를 선택해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김종민·정재호·조승래·한정애 의원은 범친노로 분류된다. 김한정 의원은 ‘영원한 DJ(김대중) 참모’로 불리며 동교동계의 막내로 정치권에 입문, 한때 비노계로 분류됐으나 최근 친문 성향으로 분류된다.

김현권·유동수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86그룹으로 친문계와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다. 민병두 의원은 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이던 시절 친문과 비문이 계파갈등을 벌이자 중간지대서 ‘통합행동’을 결성했을 만큼 계파와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번 6·13지방선거 국면서 친문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회 통과, 찬성 183, 반대 43
반대표 전원 민주당, 친문 다수

박광온 의원은 친문 핵심이다. 문재인 캠프서 미디어본부장 겸 수석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박재호·조응천 의원은 친문 직계다. 박정 의원은 뚜렷한 성향이 없는 비노계로 통한다. 박찬대·조정식 의원은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백재현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정세균계로 지난 대선 경선서 안희정 캠프에 합류한 바 있다.

서영교·설훈 의원은 과거 범친노서 최근 범친문으로 분류된다. 소병훈·유승희·유은혜·인재근 의원은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정파그룹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에 속한다. 그 중 인 의원은 민평련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김 전 상임고문의 부인인 그는 남편과 함께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왔다. 민평련계는 당내 범주류·중도로 분류된다.

송기헌·심재권 의원은 계파색이 짙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심기준·윤후덕 의원은 대표적 친문 인사 중 한 명이다.

안규백·이원욱 의원은 정세균계로 범주류에 속한다. 우상호·이인영 의원은 86그룹의 대표다. 원혜영·위성곤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주류 측 인사다. 이석현 의원은 대표적인 비노계 인사다. 이재정 의원은 본인이 정서적으로 친문과 가깝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이철희 의원은 친문과 다소 거리가 먼 비주류로 분류되지만, 어떤 이들은 그를 친문 직계로 분류하기도 한다. 홍의락 의원은 대표적인 비노·비문계로 분류된다.

기권 24명
유승민도

야당과 특검법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던 우원식 전 원내대표, 홍영표 현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법 통과에 찬성표를 던졌다. 강병원, 최인호, 김해영, 금태섭, 정춘숙, 김성수 의원 등 친문 직계로 분류되는 상당수의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기권표를 던진 24인의 국회의원들도 상당수가 민주당 의원이다(권칠승, 기동민, 김상희, 김태년, 남인순, 박범계, 박영선, 박주민, 박홍근, 백혜련, 서형수, 신경민, 신동근, 오영훈, 윤호중, 이종걸, 이학영, 전재수, 전해철, 전현희, 황희).
 

이들 중 김태년, 박주민, 서형수, 윤호중, 전재수, 전해철, 황희 의원 등이 친문 직계로 분류된다. 

그 외 권칠승·기동민·남인순·박범계·신경민·이학영 의원은 범친노 그룹으로, 김상희·백혜련 의원은 범친노 성향의 정세균계로, 박홍근 의원은 86그룹, 전현희 의원은 손학규계로, 이종걸 의원은 대표적 비문계로, 신동근·오영훈 의원은 계파 없음으로 알려진다.

박영선 의원은 과거 중도 성향 비주류 모임인 통합행동이었다가 최근 친문 측 성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바미당·정의당서 기권표가 나왔다는 점이다. 바미당 유승민 공동대표와 같은 당 이언주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기권을 했다.

유 공동대표는 지난 23일, 바미당 최고위원회의서 “지금의 특검법 수사 범위로 경찰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고, 대통령 최측근과의 연루 가능성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애매한 특검법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기권했던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기권 24인, 친문 직계 많아…
유승민·이언주·추혜선 왜?

그는 “김경수·송인배·백원우 이 사람들은 문 대통령과 24시간을 같이하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최순실, 청와대3인방과 조금도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대통령과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미 통과됐기 때문에 특검은 임명될 것이고 특검 수사는 이뤄질 것”이라며 “특검이 만약 드루킹 사건에 대해 문 대통령과 그 최측근 민주당에 대해 면죄부만 주는 특검으로 끝난다면 이 범죄 자체는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날을 세웠다.

드루킹 특검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특검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와 함께 곧바로 정부에 이송됐으며, 법제처는 당일 소관부처인 법무부에 공문을 보내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부로부터 회신을 받으면 법제처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29일까지 그 내용을 확인·검토한 뒤 다른 모든 부처에 이를 공유하고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한다.

6월 하순경
수사 시작

특검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무회의서 법을 공포한 지 14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해야 한다. 국무회의가 열리는 29일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지방선거 전날인 다음달 12일이 특검 임명 마감시한이다. 

국회의장은 특검법이 공표되면 3일 이내에 대통령에게 특검 임명을 서면으로 요청한다. 대통령은 3일 이내에 한국당과 바미당 등 야당에게 서면으로 특검 추천을 의뢰하고, 야당은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5일 이내 2명의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 

대통령은 3일 이내에 2명 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돼있다. 특검이 임명되더라도 수사는 지방선거 이후인 6월 하순경에나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검이 통상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하는 데 열흘가량이 소요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권성동 체포동의안 결과는?
극에 치닫는 국민 분노

자유한국당 염동열·홍문종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서 부결되면서 같은 당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안 결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홍문종·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서 부결됐다. 지난 21일 표결 결과 재석 국회의원 275인 중 찬성 129인, 반대 141인, 기권 2인, 무효 3인으로 집계됐다. 반대가 오히려 찬성을 앞선 상황이 벌어진 것. 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 중에서도 20명 이상이 반대표를 던진 결과였다.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무기명 투표를 기명 투표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응답률 4.9%)에게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의 찬반 명단 공개 의견 물은 결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명단 공개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두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을 비판하거나 재투표, 유기명투표, 불체포특권 폐지 등을 요구하는 글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에 민주당은 사과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23일 최고위원회의서 “국민께 송구하단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 안에 안일함과 게으름이 있었고 국민 분노의 회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소야대 장벽을 탓하지 않고 당내 규율을 강력히 잡겠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 연루된 한국당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로 넘어갔다.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변화를 약속하면서 권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지금 체포동의안은 국회 정상운영을 가로막는 아주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가능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하겠다. 불체포특권 무기명 방식 등이 (국민들의 상식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부족하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체포동의안 기명 투표, 더 나아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방법을 시사한 것이다.

권 의원은 염 의원과 함께 강원랜드 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지난 19일 업무방해, 제3자 뇌물수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권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 표 단속을 예고한 민주당이 전원 찬성표를 던지고 권 의원과 같은 소속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전원 반대표를 던질 경우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표심에 따라 권 의원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권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대통령의 결재가 한미정상회담으로 인해 미뤄져 6월 임시국회나 돼서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당초 권 의원 체포동의안은 지난 24일 소집된 본회의서 보고된 후 28일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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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