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84)전투 개시

백제의 기습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 이야기는?”

“소장이 고구려의 침략을 봉쇄하겠습니다. 아울러 김흠운(김춘추의 딸인 요석공주의 남편)으로 하여금 백제군의 침략을 방어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시고 속히 장기적인 측면에서 군사력을 강화시켜야 할 일이옵니다.”

“당에 말이오?”

“지금 저들이 합세해서 총공세를 펼친다 함은 단지 국경의 성 몇 개가 아니라 우리 신라 자체를 점령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소장이 목숨을 걸고 방어해 보겠으나 만에 하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당장 당에 지원을 요청해서 그들의 침략행위를 잠시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장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하고요.”

“반드시 우리 손으로 이 민족을 통일해야 하옵니다.”

유신의 건의를 받아들인 무열왕은 즉각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김유신과 김흠운은 전장으로 향했다. 

김유신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 군과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을 즈음 흠운은 급히 백제의 양산(陽山, 충북 옥천)으로 진군하여 조비천성(助比天城) 가까이 이르러 진을 쳤다.

저녁 무렵 진이 완성되자 흠운이 다음날의 결전을 위해 일찌감치 휴식을 취하라 지시하고 막사에 들었다. 

막 잠에 빠져들려는 시점에 함성이 일어났다. 

급히 밖으로 나서자 화살이 어둠을 가르고 빗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백제군이 야음을 틈타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신라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를 살피던 흠운이 급히 말 위에 올랐다.

“장군, 멈추십시오.”

어둠 속에서 다가선 대사(大舍, 관직) 전지가 급하게 고삐를 잡았다. 그를 확인한 흠운이 잠시 멈칫하다가는 고삐를 빼앗았다.

“어서 물러나거라!”

“이 어둠속에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무얼 하다니, 당연히 저 백제 놈들을 쳐부수어야지!”

“어둠속에서 적진으로 들어감은 기름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입니다. 즉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잠시 고정하시고 수진에 임하시고 내일 설욕하도록 하심이 마땅합니다.”

전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고삐를 낚아챘다.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려는 게냐. 어서 물러나거라!”

흠운의 고함에 전지가 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군께서 지금 적진으로 들어가 싸우다 죽게 되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장군은 전하의 사위이니, 만약 적의 손에 죽는다면 백제는 자랑으로 삼을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전지의 말이 절규에 가까웠다.

“대장부로서 이미 나라에 몸을 바쳤는데 남이 알아주고 말고 무슨 상관이더냐. 그러니 어서 손을 놓아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다…김유신 출격
성충, 은고에 빠져있는 의자왕에 직언

말뿐이 아니었다. 

칼을 뽑아 고삐를 잡고 있는 전지의 손을 찌르고 그 순간을 틈타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 내달리지 않아 백제군의 선두와 마주쳐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중에 장수로 보이는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 백제의 계백인데 장군은 누구요!”

흠운이 일언반구 없이 그대로 계백을 향해 칼을 휘둘러나갔다. 

순간 계백이 뒷걸음질 쳤고 그 틈을 노려 백제 병사들이 창으로 흠운을 찔렀다. 이어 흠운의 온 몸에서 피가 흐르며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흠운의 주위로 백제 병사들이 몰려들어 다시 칼질하려 하자 계백이 급하게 다가가 멈추라 하고는 그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미 저승길로 접어든 그를 살피는 중에 다시 흠운의 출전 소식을 접한 신라의 대감(大監, 장군을 보좌하던 무관) 예파와 소감(小監, 하급 무관) 적득이 칼을 휘두르며 현장으로 급하게 다가섰다. 

그러나 계백 앞에 이르기 전에 두 사람 모두 백제군의 칼과 창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진덕여왕의 죽음과 신라군과 전쟁에서의 승리로 의자왕의 은고에 대한 신임은 도를 더해갔다. 

단지 신임 여부를 떠나서 오석산을 마시고 빠져드는 황홀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급기야 은고를 위해 태자궁을 사치스럽게 꾸미고 그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은고가 벌이는 향연에 함몰되었다.

“전하, 드시지요.”

“오늘은 무엇을 준비했는고?”

“먼저 말씀드리면 재미가 반감되옵니다. 그러니 직접 보시며 체험하심이 이로울 일이옵니다.”

살짝 눈을 흘기는 은고의 안내로 오석산을 먹고 태자궁의 호화스러운 방에 들자 의자왕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궁녀 네 명이 술상을 앞에 두고 자신을 맞이했던 때문이었다. 

그를 의식하며 헛기침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약효가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어색함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당당함이 대신했다. 

마치 그를 알고 있다는 듯 은고가 달려들어 옷을 벗기자 의자왕 역시 은고의 옷을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그를 신호로 알몸의 여인들이 의자왕에게 달려들었다. 

곧바로 여인들과의 사투가 이어졌다. 

네 여인이 의자왕의 사지를, 중앙은 은고가 담당해나가기를 잠시 후 여섯의 몸뚱이가 한 데 어울려 흐느적거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의자왕이 정신을 가다듬고 은고와 술로  여운을 달래는 중에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전하, 신 성충이옵니다.”

“장군이 어인 일이오!”

“긴급히 아뢸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대전에서 하면 아니 되겠소?”

“아니 되옵니다. 바로 이곳에서 아뢸 일입니다.”

잔을 비우고 은고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라!”

성충이 방에 들자 기상천외한 광경에, 아랫도리 부근이 피로 발갛게 물들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알몸의 여인들을 주변에 두고 의자왕이 은고와 함께 알몸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에 한동안 눈동자를 고정시키지 못하다가는 급하게 부복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하시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성충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렸다.

“무엇을 통촉하라는 게요, 술이나 한잔하자는데.”

“전하, 부디…….”

“부디고 뭐고 어서 이리 와서 잔 받으시오!”

의자왕과 성충의 소리에 널브러져 있던 여인들이 정신이 드는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성충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들이 가벼운 천으로 주요 부분을 가리며 급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하, 먼저 용포를 거치심이 가당한 줄 아옵니다.” 

성충이 의자왕을 직시하자 은고가 자리에서 일어나 용포로 되는대로 의자왕의 몸을 가리고 저 역시 갈기갈기 찢긴 옷으로 대충 주요한 부분을 가렸다. 

순간 성충이 무릎걸음으로 상 가까이 다가갔다.

“장군에게 술 한 잔 따르게.”

은고가 조신하게 움직여 잔을 채워 성충에게 건넸다.

“전하, 왜 이러십니까!”

직언하다

손을 들어 은고가 건네는 잔을 거부하고 성충이 작심한 듯 소리를 높였다.

“뭘 말이오?”

“연이은 이런 행동 말입니다.”

“이게 어떻다고.”

“국정을 소홀히 하고 요망한 계집에게 휘둘러 지내는 지금이 정상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뭐, 뭐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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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