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보안’ 대통령경호처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4.16 10:49:47
  • 호수 1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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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경호받는 박근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 연장 건으로 대통령경호처(이하 경호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호처는 전현직 대통령과 그 가족을 경호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일요시사>는 이 여사에 대한 경호 연장 건을 포함해 독자들이 궁금해할 경호처의 업무들을 추려봤다.
 

경호처는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기존 대통령경호실을 개편해 현재의 명칭에 이르렀다. 개편 당시 장관급 실장이 차관급 처장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예전보다 힘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호처의 경호업무 대상은 ▲대통령과 그 가족 ▲대통령 당선인과 그 가족 ▲퇴임 후 10년 이내의 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 ▲대통령권한대행과 그 배우자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 원수 또는 행정수반과 그 배우자 ▲그 밖에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국내외 요인 등이다.

2027년까지
박근혜 경호

경호처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2027년 3월9일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경호한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변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한 경호다.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을 보면 탄핵된 대통령이라도 필요한 기간의 경호를 받을 수 있다. 

경호를 계속 지속하는 이유는 전직 대통령을 위해서 경호할 목적보다 전직 대통령이 적성단체·적성국(적으로 간주될 수 있거나 전쟁 법규상 공격·파괴·포획 따위의 가해행위를 할 수 있는 범위에 드는 단체 및 국가)에 납치돼 국익에 손해가 되는 일이 발생할 소지를 막기 위해서다. 


또 전직 대통령에게 원한을 품은 국내 민간인이나 단체로부터 암살의 우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이 받는 경호가 여타 다른 전직 대통령이 받는 경호와 다른 점은 기간이다. 현행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은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에 대해 경호처가 퇴임 후 10년에 본인이 원할 시 추가로 5년을 더 경호하도록 하는 ‘10+5’다.
 

그러나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심판 선고일로부터 5년에 추가로 5년이 더해지는 ‘5+5’로 그 기간이 여타 대통령 및 배우자에 비해 5년이 적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일은 2017년 3월10일, 이 때문에 2027년 3월9일까지 경호처서 경호가 이뤄진다.

박 전 대통령 경호에 소요되는 예산은 경호처에 배정된 전체 예산서 집행된다. 경호처 관계자는 “(별도로 예산이 책정된 것이 아닌)전체 예산 중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차지하는 부분이 있다. 인원과 장비에 예산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경호기간 연장
박근혜도 해당

현재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된 상태다. 앞서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변은 법원과 교정당국에 넘어가 있는 상태. 그렇다면 경호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경호처 관계자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순 없다”면서도 “현재 신변 안전에 대해서는 법원과 교정당국서 하고 있어 (경호처가)지속적인 임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변은 교정당국서 맡고 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신변안전에 대한 부대업무들이 있다. 이에 대해선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다. 그런 부대업무들을 경호처서 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호 기간에 대해서는 “현행법에 따라 2027년에 (경호가)종료되는 게 맞다. (박 전 대통령이)교정당국에 수용돼있다고 해서 시간을 정지시키는 게 아닌 수용된 날까지 기간에 포함해 법이 정하는 날짜에 정확히 종료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변수는 존재한다. 최근 여야가 뜨거운 공방을 벌였던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 만료일은 2027년 3월9일서 5년이 추가된 2032년 3월9일까지가 된다.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희호 여사, 권양숙 여사,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경호 기간이 모두 5년씩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일부 법학자들 사이에선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경호 기간 문제를 특별법으로 따로 제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모 대학 법학과 교수는 “탄핵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특별법으로 경호 기간 연장을 막거나 다른 전직 대통령과 다르게 적용되도록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헌법서 말하는 탄핵 소추 요건은 대통령이 그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즉 대통령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탄핵된다. 현행법서 규정하는 대통령 경호 기간보다 교정당국서 보내는 기간이 더 길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탄핵된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현행법의)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경호처가 아닌 경찰이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맡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핵된 대통령도 ‘5+5’ 경호
이희호 경호 연장·박통도 해당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10월20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물론 올해 2월24일로 경호처 경호가 종료되는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업무 기간을 연장하기 위함이었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경호 기간이 만료되면 경호업무는 경호처서 경찰로 이관된다.

개정안이 발의될 당시 경호처는 경호기간 연장의 필요성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사생활 보호 차원서 경호기관 변경에 따른 불편을 사전에 방지 ▲경찰로 이관시 예산 및 담당기구의 준비, 경호 유관기관과의 협조 등에 애로사항 발생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률 개정안은 이 여사의 경호가 종료되는 지난 2월24일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바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과 관련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출석을 요구, 국회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가 파행을 맞았기 때문이다. 경호처의 소관 상임위가 바로 운영위다.

김성태 VS 임종석
발목 잡힌 개정안


이 여사 경호 종료일을 하루 앞둔 지난 2월23일, 운영위는 경호 연장을 골자로 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임시회를 열었다. 당시 임시회 현장에는 이상붕 경호처 차장이 참석해 개정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운영위원장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돌연 임 비서실장의 출석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김영철 참석에 따른 엄청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임 비서실장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국회가 국민들을 위해서 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임 비서실장은 오늘(지난 2월23일) 오후 4시에 운영위에 출석해 주실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그 부분은 위원장으로서 판단한다”고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운영위원들은 극렬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간사인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간사 간 합의도 없는데 (위원장)마음대로 하시면 되느냐”고 따졌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 농단을 못하니 상임위 농단을 하고 있다”고 맞섰다. 

회의장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됐다. 참석한 이상붕 경호처 차장은 경호 연장과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돌아가야만 했다.

한 달여가 지나 해당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운영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서 다시 한 번 발목이 잡혔다. 법사위원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일 경호처에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당일 입장문을 통해 “이 여사에 대한 경호처의 경호는 지난 2월24일로 종료됐다”며 “경호를 즉시 중단하고 경찰청에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나 경호를 계속할 근거는 될 수 없다”며 “4일까지 이 여사에 대한 경호를 중단하고 결과를 알려달라”고 밝했다. 

그는 “불응할 경우 형법상 직권남용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형사 고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법학자들 “특별법 제정 필요”
한국당 형평성 지적 “손명순은?”

이에 경호처는 개정안의 국회 부결에 대비해 경찰에 인수인계 절차를 밟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시에 법제처에 이 여사에 대한 경호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 여사에 대한 경호 연장 건이 난상토론으로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경호처의 이 여사 경호와 관련해 “국회서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6호에 따라 이 여사를 경호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제4조 1항6호에 따르면 경호처장이 그 밖에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국내외 요인이 있으면 경호처서 해당 인물을 경호대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점을 거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국회가 이 여사 경호 연장과 관련한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경호 연장 건은 문 대통령에 대한 공세로 비화됐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경호처서 웬일로 순순히 이 여사 경호를 경찰로 이관하나 했더니 문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며 “지금 정부는 법 해석도 다 대통령이 직접 하나보다”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김 원내대표는 “현행법상 경호처장이 인정하는 국내 요인은 경호처가 경호할 수 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미망인 손명순 여사는 경호처 경호 기간이 끝나 경찰 경호를 받고 있다”며 “손 여사에 대해서는 경호처 경호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경찰이 경호하고 있나”라고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현재 경호처의 경호 대상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 여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반면 손 여사의 경호는 지난 2010년 개정 전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7년이 지난 2005년 2월 경호처의 전신인 대통령경호실서 경찰청으로 이관됐다.

청와대는 즉각 한국당 측의 형평성 지적에 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두 분(이희호 여사, 손명순 여사)간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시기상의 문제”라며 “손 여사는 안 해드리고, 이 여사는 해드린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커지는 불씨
양보 없는 여야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이 여사 경호 연장 건에 대해 지속적인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당 일각에선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오는 6·13지방선거서 김대중정권 지지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유권해석까지 해가며 이 여사 경호를 경호처서 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여야의 공방은 향후 개정안이 상정되는 국회 본회의장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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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