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5대 대도시 판세 분석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4.09 11:28:41
  • 호수 1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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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는 이미 승자를 알고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6·13 지방선거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는 예비후보들을 추려내는 과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광역단체장 선거서 1%의 승률이라도 올리기 위해 여야 지도부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 중이다. 선거 룰이 속속 정해지고 있으며 대진표도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방선거의 성적표라 할 수 있는 광역단체장 중에서도 5대 도시의 판세를 살펴봤다.
 

서울시장 선거의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은 지난 4일 장고 끝에 서울시장 선거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내심 서울시장 선거 낙승을 기대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입장에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안 위원장은 지난 19대 대선서 21%의 득표율을 기록, 건재함을 과시한 바 있다.

격동의 서울
단일화 변수?

안 위원장은 서울시의회 본관서 열린 출마선언식서 자신을 ‘야권 대표선수’로 소개했다. 이어서 그는 “7년 전 가을 안철수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어 하셨던 서울시민의 열망에도 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 죄송스러운 마음까지 되새기고 사과드린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의 출사표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을 바로 야권 대표선수로 소개한 부분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최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권 단일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김 전 지사보다 우위에 서려는 안 위원장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공식적으로 안 위원장은 한국당과의 야권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야권 연대는 없다. 기득권 정당은 우리가 싸울 대상”이라고 일축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단일화는 없으며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바미당은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당을 잡기 위해서는 야권 단일화가 필수라는 현실적인 주장이 양당서 제기되고 있다. 

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민주당 지지율이 50%인 상황서 두 야당이 모두 후보를 내는 것은 자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선거가 막판으로 치달을수록 야권 단일화의 불씨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던 7년 전 상황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선거서 ‘양보론’ 프레임을 적극 사용할 것이란 선전포고와도 같다.

민주당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경선 승리가 곧 당선’이었던 판세가 한순간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안 위원장의 출마에 날을 세웠다.

박원순 시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오늘(지난 4일) 안 위원장이 출마했으니 그분을 취재하는 것이 어떠냐”는 다소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상호 의원은 “안 위원장의 출마선언문을 꼼꼼히 읽어봤는데 후보로서 준비가 잘 안 돼있다고 생각했다”며 평가절하했다. 박영선 의원도 “(서울시장은) 대통령을 꿈꾸다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대선에 나가서 패한 사람들이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안 위원장은 박 시장이 타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지난 5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현장 방문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 시장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박영선·우상호 의원에 대해 “경선서 이길 가능성이 낮은 분들”이라며 “(두 사람의 비판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과 한국당, 바미당 구도의 3파전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당초 박 시장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쳤던 민주당은 서울시장 경선은 결선투표 도입 외에도 안 위원장의 출마로 셈법이 복잡해졌다.

설욕의 부산
리턴매치 성사?

민주당이 부산시장 후보로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을 단수공천하면서 한국당 후보인 서병수 부산시장과 리턴매치가 성사됐다. 지난달 16일 한국당은 일찌감치 서 시장을 부산시장 후보로 공천했으며 민주당은 지난 3일 오 전 장관을 단수공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앞서 오 전 장관 외에도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이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경쟁을 벌였지만 여론조사에서 오 전 장관이 정 전 부시장에 크게 우위를 보이면서 민주당은 오 전 장관을 단수공천했다.
 

오 전 장관과 서 시장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서 오 전 장관은 49.34%를 기록, 50.65%를 기록한 서 시장에게 단 1.31%포인트(2만701표 차이)로 석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 오 전 장관은 무소속이었다. 집권여당의 간판을 달고 설욕전에 나선 셈이다.

거물 등장에 서울 선거판 요동
오거돈 VS 서병수 빅매치 성사

서 시장은 현직 프리미엄을 활용하고 있다. 자신이 행한 시정을 적극 홍보하며 표심 잡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지난 5일을 서부산개발사업 추진상황보고회서 서 시장은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으므로, 서부산 개발 프로젝트 추진에 있어 발생되는 어려움은 현장을 자주 방문하고 점검하면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관계부서에 현장을 자주 방문할 것을 주문하고, 서부산 그랜드플랜 사업들을 현장 중심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부산시장 선거에는 오 전 장관과 서 시장 외에도 바미당 이성권 예비후보, 정의당 박주미 예비후보 등이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는 오 전 시장과 서 시장에게 견제구를 던지며 존재감 높이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 예비후보는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에 취한 오만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며 “도대체 부산시민들은 언제까지 올드보이 오거돈과 서병수를 봐야 한단 말인가”라고 두 후보 모두를 비판했다. 


박 예비후보 역시 “부산의 미래를 다시 서병수나 오거돈에게 맡길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부산은 이번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무너진 보수진영의 건재와 문재인정부 1년에 대한 평가를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다. 이에 총 4명의 예비후보들은 하나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시민의 표심이 과연 어느 쪽을 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보수의 대구
이변 나오나?

민주당은 내친김에 보수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다. 민주당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대구시장 후보 경선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1995년 첫 전국동시지방선거 후 민주당 계열서 대구시장 후보 경선이 진행되는 것은 23년 만이다.

이상식 전 국무총리 민정실장, 이승천 전 국회의장실 정무수석비서관, 임대윤 전 청와대 사회조정1비서관이 참여하는 대구시장 후보 경선을 통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경선은 권리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각 50%씩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갈 경우 본선서 통하는 후보를 가려내기 어렵고, 100% 여론조사로 갈 경우 한국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자신이 지지하는 당을 위해 상대당 후보 중 경쟁력이 낮은 후보를 선택하는 행위)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각 50%를 반영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에서는 이재만 전 최고위원, 권영진 대구시장, 이진훈 전 대구 수성구청장,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경선을 벌인다.

이 전 최고위원은 자유한국당 대구시장 경선과 관련해 “예상판세는 제 머릿속의 전략이 아닌 현장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경선 기호가 결국은 순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전 최고위원은 경선 기호 1번이다.

권 시장은 “한국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이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당선 가능성이 높고, 본선 경쟁력이 높은 후보 쪽으로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져 1강 3약의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지난 3일 TV 토론회 이후 부동층서 나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굳힌 책임당원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고 자신을 어필했다.
 

이 전 구청장은 한국당 책임당원 모바일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마음과 각오로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대구 발전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면서 당원동지 모두가 참정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전 장관은 “대구 시민의 높은 수준을 믿고 있다. 자식들의 앞날과 대구의 미래를 위해 능력 있는 시장을 선택할 것”이라며 “행정력과 미래비전, 실물경제 능력, 국제적 감각과 높은 청렴성을 가진 후보를 시민들이 선택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진보의 광주
대세론 굳히기?

광주시장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윤장현 광주시장의 불출마 선언과 ‘3자 단일화’ 등 민주당 경선이 급변하면서다. 윤 시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장이 되는 일보다 시장이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다”며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재선 도전을 공식화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민주당 경선후보인 강기정·민형배·최영호 예비후보는 강 예비후보로 단일화를 이뤘다. 세 사람은 광주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조사 결과와 시민사회의 의견 등을 바탕으로 단일화 협의를 거친 끝에 강 예비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했다”며 “우리가 만들려는 시민공동정부는 세 사람의 공동정부가 아닌 시민과의 공동정부”라고 강조했다. 

앞서 세 사람은 지역 시민사회에 후보선출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 바 있다.

보수·진보의 심장에서는…
여야, 중원에서 길을 찾다

이로써 민주당 예비후보는 3명으로 압축됐다. 단일후보로 확정된 강 예비후보와 양향자 예비후보, 이용섭 예비후보가 그들이다. 정치적 셈법이 복잡해진 민주당 예비후보 진영은 전략짜기에 고심하고 있다. 

변수는 과연 어떤 예비후보가 불출마 선언을 한 윤 시장의 지지층을 흡수하느냐다.

국민의당에 분리된 바미당,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은 후보 확정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바미당 광주시당은 지난 4일 김대중컨벤션센터 중소회의실서 바미당 전남도당과 공동으로 개편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주선·유승민 공동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섰다. 다만 아직 광주시장 선거에 나설 후보군이 안갯속에 가려있다.

민평당도 광주 지방선거 체제로 전환을 마무리했다. 최경환 광주시당위원장이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장병완·천정배·김경진 등 광주 국회의원들과 윤종록 조선대 교수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배숙 대표는 최근 광주시장 선거의 현역 국회의원 차출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두 당이 광주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민주당을 꺾을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이다.

혼돈의 대전
중원 승자는?

민주당 대전시장 경선에는 박영순 전 청와대 행정관, 이상민 의원, 허태정 전 유성구청장 등 3명이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경선서 결선투표를 전격 도입하기로 결정, 과연 어느 예비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권리당원 50%와 여론조사 50%로 진행되는 1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위와 2위 간 재투표를 진행될 예정이다.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결선투표 도입 이유에 대해 “국민들의 경선에 대한 주목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결선투표의 도입으로 2, 3위 간 연대 가능성이 높아졌다. 1차 경선 이후 과반 득표자가 없어 재투표가 이뤄지면 2, 3위 예비후보는 힘을 합쳐 일발역전을 도모할 수 있다. 막판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선 판세 전체를 흔들만하다.

반면 한국당은 경선 없이 박성효 전 대전시장 단일 체제로 선거를 준비 중이다. 전희경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지역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역 주민에 대한 애정, 여타 후보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봤다”며 박 전 시장에 대한 공천 확정 배경을 설명했다.

박 전 시장은 공천 확정 후 SNS에 “먼저 선의의 공천 경쟁을 벌였던 육동일 충남대 교수와 박태우 한국외대 초빙교수께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그분들께서 제시하신 좋은 발전 정책과 비전들을 충분히 받아들여 함께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본선 티켓을 부여받은 박 전 시장은 본선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또 공천서 탈락한 육 교수와 박 교수가 당의 결정을 곧바로 수용, 경선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바미당은 남충희 예비후보를 사실상 후보로 내정한 상태다. 그는 바른정당 시절부터 대전시당위원장을 맡아 시당을 잘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을 경제통으로 소개하는 남 예비후보는 최근 ‘돈 버는 대전 정책발표 2탄’ 발표회서 “임기 4년 내에 좋은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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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