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홍준표 전략공천 히든카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4.02 09:48:58
  • 호수 1160호
  • 댓글 0개

더 빨갛게∼ 더 우클릭∼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략공천 바람이 심상치 않다. 당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최근 잇따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인재난을 겪고 있는 한국당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당선확률을 높일 수 있는 전략공천이 상수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전략공천 대상에서 제외된 예비후보들이 당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등 당은 점점 혼돈 속으로 빠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전략공천보다 경선을 암시했던 홍준표 대표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보다 못한 반홍준표계는 행동에 나섰다.
 

한국당 공관위는 최근 경기 수원·고양·용인·성남과 경남 창원 등 인구 100만명 내외의 대도시 5곳을 중점전략특별지역으로 선정하고, 이 지역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자를 전략공천 대상자로 결정했다. 수원시장 후보인 정미경 전 의원, 성남시장에 박정오 전 성남시부시장, 고양시장에 이동환 고양병 당협위원장, 용인시장에 정찬민 현 시장과 창원시장에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가 그들이다.

속속 확정
지역선 부글

앞서 한국당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남경필 현 지사, 대전시장에 박성효 전 대전시장, 강원도지사에 정창수 전 국토해양부 1차관을 공천하기로 확정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직후 브리핑을 통해 “지역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역 주민에 대한 애정, 여타 후보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봤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달 16일 한국당은 대대적인 광역단체장 전략공천을 단행한 바 있다.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부산시장 후보로 서병수 현 시장, 인천시장에 유정복 현 시장, 울산시장에 김기현 현 시장, 충북도지사에 박경국 전 안전행정부 차관, 제주도지사에 김방훈 제주도당위원장을 공천하기로 했다.

전 대변인은 직후 브리핑을 통해 “중앙당 공관위가 광역단체장 공천 신청자 31명에 대한 면밀한 서류 심사와 집중 개별면접, 현지 여론 청취 등을 통해 5개 지역의 단수 후보자를 선정했고, 오늘 최고위를 거쳐 의결했다”고 말했다.
 


홍문표 사무총장은 “이번 심사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발전시킬 자격이 있는가, 지방을 발전시킬 능력이 있는가, 시장경제를 통해 국민 행복시대를 열 자격이 있는 후보인가를 봤다”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와의 관계도 살펴봤고, 지역 여론까지 수렴해 심사했다”고 강조했다.

보궐선거 후보도 속속 결정되고 있다.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의 최측근인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을 부산 해운대을 당협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김 원장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부산 해운대을 보궐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전 대변인은 선임 배경에 대해 “부산의 여론을 많이 청취했고, 부산 지역의 현안과 정치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다는 점을 주요하게 봤다”고 전했다. 

김 원장 외에도 길환영 전 KBS 사장을 충남 천안갑 당협위원장으로, 배현진 전 MBC 앵커를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으로 선정했다. 두 사람은 해당 지역구에서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다.

사실상 ‘전략공천’ 방침에 여타 후보들의 반발이 격화하고 있다.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당이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전략공천하자 무소속 출마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맞서고 있다.

측근들 줄줄이 공천 받아
이탈자 속출…항의 방문도


지난달 29일 안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문을 통해 “창원시장 공천이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시민과 당원의 지지도가 극히 낮은 꼴찌 수준의 당 대표 측근을 공천하려는 사천의 부정공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한 과정으로 지역 연고도 없고 지지도 꼴찌 수준으로 적임자도 아닌 자에게 공천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창원시민과 창원·경남의 당원의 뜻을 배신하는 것”라이며 저 “역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승복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시장과 홍 대표의 악연은 정치권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지난 2010년 한나라당 7·14 전당대회에서 맞붙었으며, 안 시장이 승리한 후에도 최고위원회의서 번번이 신경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지역 정가에선 홍 대표가 안 시장을 배제하기 위해 조 전 부지사를 전략공천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토사구팽’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다. 한때 홍준표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이종혁 전 최고위원은 부산시장 후보로 서병수 현 시장이 확정되자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나섰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마시던 물에 침 뱉지는 않겠다”면서도 “다만 반시대적, 반개혁적 길을 걷다 망한 새누리당의 전철을 답습하는 한국당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친홍만 득시글
반홍 불만 고조

한국당이 서울과 충남, 경남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함으로써 선거를 준비하던 기존의 예비후보들은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서울시장 공천을 신청한 김정기 전 중국 상하이 총영사는 한국당이 서울시장 공천을 발표하자 “1995년 서울시장 직선제 도입 후 한국당은 그 전신이 되는 당에서부터 자유경선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는데 이를 홍 대표가 짓밟고 있다”며 “원래부터 전략공천 예정이었다면 서울시장 후보는 왜 공모했나. 정치 사기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충남도지사를 준비하던 정용선 전 충남지방경찰청장은 최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정치 신인을 배제한 채 기존 정치인 중에서 전략 공천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고, 도민과 당원의 참된 민의를 묻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해달라”고 중앙당에 요구했다.

앞서 한국당 당원 20여명도 홍문표 사무처장의 홍성지역 사무실을 찾아 “일방적으로 공천을 강행하면 당원들이 실망해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는 데 따른 후유증은 커질 것”이라며 “한국당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바라는 일반 유권자들의 실망감도 상당할 것”이라고 항의, 정 전 청장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는 당시 한국당이 충남도지사 후보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을 전략공천하기로 가닥을 잡은 데 대한 반발이었다. 앞서 김태흠·성일종·이명수 의원 등 한국당 소속 충남지역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이 전 최고위원의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 정론관서 열기도 했다.


당적을 옮긴 사람도 있다. 충북도지사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던 신용한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은 박경국 전 안전행정부 차관의 전략공천이 사실상 확정되자 일찌감치 한국당을 탈당해 바른미래당으로 옮겼다.
 

홍 대표를 직접 저격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 신청을 한 박종희 전 의원은 공천 면접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면접서 홍 대표가 당의 얼굴이기 때문에 위기라고 말했다”며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탈당 러시
이대로 끝?

당내 반홍계 의원들의 불만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주영·나경원·정우택·유기준 의원 등 한국당 중진 의원 일부는 지난달 29일 간담회를 갖고 홍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지난달 22일 첫 번째 간담회에 이어 재차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반홍계는 최근 홍 대표의 독선을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첫 번째 간담회를 통해 ▲민주적 당 운영 ▲지지율을 높일 획기적 대책 제시 ▲진중한 언행 ▲인재영입 전력투구 등 네 가지 요구사항을 홍 대표에게 전달한 바 있다.


이들은 두 번째 간담회가 끝난 직후 홍 대표에게 앞서 요구했던 4가지 사항 외에 추가로 ▲품격있는 언행 ▲조기 선대위 구성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외부 우파 경제학자 대거 영입 등 당 역량 극대화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주영 의원은 두 번째 간담회 자리서 “(지난달 22일) 홍 대표에게 요구한 사항들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고 비난과 험담만 되돌아올 뿐이라 매우 착잡하다”며 “공천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주요 지역에선 인재영입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많은 걱정들이 있고 또 일부 지역에선 홍 대표의 사천이라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 대표는 계속 나만 따르라는 식으로 해서는 지방선거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판단”이라며 “그래서 홍 대표 자신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방선거에 임하는 결연한 각오를 밝혀주길 거듭 촉구한다”고 전했다.

정우택 의원은 홍 대표의 ‘막말’에 대해 “당대표가 이러니(막말을 하니) 당 대변인도 막말을 한다”며 “우리 중진들에게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연탄가스’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 당 대표의 품격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게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들어보면 결국 결론적으로 하는 말은 당 대표 입조심 좀 시키라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유기준 의원은 홍 대표가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다시 대표직을 맡아 다음 총선까지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홍 대표가 전대를 위해 일단 대표직을 내놓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거기다 우리 중진들을 다음 총선 때 험지에 차출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런 의미(다음 총선까지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것)가 아니겠냐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 최고위원회 3석이 공석인데 아직도 최고위를 선출하지 않는 게 조기 전대 위한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중진들 “사당화 심각하다”
당내 비판에 철퇴로 응수

나경원 의원은 최근 한국당 윤리위가 김정기 전 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대해 제명을 결정한 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과연 이게 공당인가 싶다”며 “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선당후사의 마음이어야 될 텐데 선사후당이 된 게 아닌가 싶어 매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 전 총영사는 서울시장 후보 공천을 신청했으나 중앙당이 전략공천 방침을 정하자 “정치 사기 아니냐”라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홍 대표에 반발한 당원을 ‘해당행위’ 등 이유로 제명한 사례는 김 전 총영사가 세 번째다.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홍 대표를 ‘후안무치’ ‘배은망덕’ 등으로 비난한 류여해 전 최고위원을 제명했고, 지난 1월 류 전 최고위원에 동조해 당 위신을 해쳤다는 이유로 정준길 전 대변인마저도 제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세 차례의 제명 조치가 홍 대표의 사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입을 모은다.

“원수지간이라 해도 이길 사람으로 공천하겠다.” 

홍 대표는 지난해 11월 국회 헌정기념관서 열린 한국당 정치대학원 19기 수료식서 지방선거 공천 기준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공천 매뉴얼을 만들고 대폭적인 물갈이 공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며 “공천권자와 개인적 인연을 가지고 공천하면 당이 망한다. 지난 총선 때 ‘진박(진짜 친박근혜)’ 공천을 해서 국민이 얼마나 역겨움을 느꼈나”라고도 말했다.

홍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선 곧바로 전략공천 확대를 시사했던 홍 대표가 경선에 중점을 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앞서 대구를 방문한 홍 대표는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전부 전략공천으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도 말했었다. 

그간 “야당이 경선을 남발하면 통제가 안 된다”며 전략공천 확대를 강조해온 모습과는 확연히 대조를 보였다. 당시 출마를 저울질 중이던 한국당 내 인사들은 홍 대표의 이 같은 변화를 믿고 지방선거에 뛰어들었다.

확장 위한
거짓이었나?

경선을 암시하는 발언이 나왔던 자리는 정치대학원 수료식이었다. 여기에는 주로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인사들이 참여했었다. 당시 홍 대표의 발언은 ‘공천을 받고 싶다면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하라’는 메시지로도 읽히는 셈이다. 

실제 당시 홍 대표의 경선 암시로 일부 출마예정자들은 경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책임당원 확보에 집중하거나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인 바 있다. 결과적으로 홍 대표의 경선 암시는 지방선거 전 당의 세를 확장하기 위한 노림수였던 것으로 읽힌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