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김정은’ 3차 남북정상회담 신중론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3.12 10:21:21
  • 호수 1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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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가 일본에 달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평창올림픽)을 시작으로 북한을 빠르게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모습이다. 1박2일의 방북 일정을 마친 대북특별사절단(이하 특사단)은 유의미한 성과를 안고 귀국했다. 특사단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도 진척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을 둘러싼 열강에선 여전히 북한의 태도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두 정상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을 계기로 방남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고위급 대표단 방문을 언급하며 “김여정 특사의 답방형식으로 대북 특사를 조만간 파견할 계획”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밝혔다.

북 왔으니
우리도 간다

두 정상은 남북 대화의 진전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남북 대화의 모멘텀을 한반도 비핵화로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당시 한미 정상 간 통화는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정상통화가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도발, 그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면 당시 정상통화는 북한의 도발이 없는 상태서 진행됐다는 점이 달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 방침에 힘을 실어줬다. 


김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대북특사가 북한의 2차례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과정서 남북 간의 논의를 더 풍성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남북 간의 대화와 교류협력이 활성화될수록 신뢰를 기반으로 한 남북과 북미 간 문제 해결은 더 수월해진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 4일 특사단 명단과 일정을 발표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 5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실무진 5명을 포함한 총 10명은 지난 5일 오후 특별기 편으로 출발했다.

윤영찬 수석은 당시 춘추관 브리핑서 “특사단은 5일 오후 특별기 편으로 서해직항로를 통해 방북한 뒤 1박2일간 평양에 머물며 북측 고위급 관계자들과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대화에 나설 예정”이라며 “특사단은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 여건 조성, 남북 교류 활성화 등 남북관계 개선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석 특사로 대북 특사단을 이끌게 된 정 실장은 방북 전 결의를 다졌다. 

춘추관서 그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간 대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을 살려서 한반도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대통령의 확고한 뜻과 의지를 분명히 전달할 것”이라며 “아울러 이를 위해 남북 대화는 물론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다양한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협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 원장을 포함한 이번 특사단은 남북문제에 관해 풍부한 경험과 높은 식견을 갖추고 있는 인사로 구성됐다”며 “특사단이 소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특사단 6개 선물보따리 들고 복귀
문 “합의 차질 없이 이행” 강조


마지막으로 “나와 모든 특사단원은 이번 방북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 국내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각오가 무색하지 않게 특사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유의미한 성과를 이뤄냈다. 정 실장은 지난 5일 저녁 조선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서 이뤄진 만찬장을 통해 김 위원장과 접견하며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우리 측 특사와 만나 “수뇌상봉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뜻을 전해 들으시고 의견을 교환하셨으며 만족한 합의를 보셨다”며 “최고령도자 동지는 해당 부문에서 이와 관련한 실무적 조치들을 속히 취할 데 대한 강령적인 지시를 주셨다”고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음을 암시했다.

이는 김 제1부부장이 지난달 10일 청와대서 문 대통령에게 “빠른 시일 내에 평양서 뵀으면 좋겠다”고 남북정상회담을 시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당시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친서를 전달하며 “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한 바 있다.
 

예상대로 특사단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귀국했다. 정 실장은 귀국일인 지난 7일 오후 춘추관서 방북 성과 브리핑을 열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구체적 실무협의를 진행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특사단은 남북 정상간 핫라인(Hot Line)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첫 통화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이뤄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특사단은 북한 측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보였다고 전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며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3차 정상회담
특사단 성과

북측은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또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차원서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정 실장은 브리핑 말미에 “정부는 이번 특사단의 방북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며 “앞으로 북한과의 실무 협의 등을 통해 이번에 합의된 사안들을 이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핵화의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그러한)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미북관계 정상화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며 “북미대화의 의제로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의지를 지난 6일 특사단과의 접견 자리서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이하 한미훈련)에 대해서도 진일보된 반응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4월부터 (한미훈련이) 예년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며 “그러나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진입하면 한미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특사단의 성과에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특사단 방북 성과를 보고받은 자리서 만족감을 드러내며 “남북간 합의 내용을 차질 없이 이행하라”고 정 실장에게 지시했다. 


추미애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특사단이 짧지만 꽉 찬 평양 일정은 마무리했다”며 “대화는 미사일보다 강했다. 대화가 꽁꽁 얼어붙은 남북의 길을 텄고 대화가 일촉즉발의 한반도를 비핵화의 길로 인도했다. 한반도 평화로 가는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특사단은 방북 성과를 가지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은 백악관 주요 인사들을 만나 김 위원장이 밝힌 구체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북한의 대화 의지와 비핵화 구상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1일 귀국한 정 실장은 중국과 러시아, 서 원장은 일본을 각각 방문해 방북 결과를 설명한다. 한반도 주요 4개국을 방문하며 북미대화 여건 조성과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국제 사회 지지를 확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남북 교류로
분위기 이어

그중 미국은 북한의 대화 의지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동의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핵과 재래식 무기 전반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는 특사단의 성과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비핵화 언급에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수년 만에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남북·미북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북한의 대화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몇가지 불안요소도 상존하는 상태다. 특히 북한의 태도에 대한 일본의 부정적 반응이 미북 대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일본은 대화의 장에 나오려는 북한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우리 정부의 특사단을 파견에 대해 “과거의 대화가 비핵화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북한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특사단이 김 위원장과 만찬을 가진 데 대해 “북한이 열심히 ‘미소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눈길을 빼앗기지 말고 확실히 비핵화로 향한 일보를 내딛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교도통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북 압력 강화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해당 언론에 따르면 특사단이 방북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귀환하기 전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면서 여러 국가와 연계해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측의 이 같은 반응은 북한의 비핵화 진의를 아직까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서 원장의 방일을 앞두고 한국 정부로부터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일본이 대북 압박정책 유지를 우선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대북 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정보 교류의 폭과 깊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떨떠름한 ‘일’, 미일 공조 강화
비핵화 침묵하는 ‘북’ 언론 왜?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에 의해 미북 대화의 불씨가 사그러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마침 일본은 대북 압력을 근간으로 하는 미일 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이던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자민당 총재 외교특별보좌는 지난 6일(현지시각), 일본 기자들에게 “북한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약속이 필요하다는 일본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라”는 아베 총리의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음날 아침 스가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계속 되풀이하며 미일 간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신중론은 과거 북한이 보여줬던 태도 변화와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는 북한 언론의 미심쩍은 태도에 기인한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과거 북한이 여러번 핵포기를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핵개발을 그만두지 않았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도쿄신문>은 지난 8일, 북한 언론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발언에 대해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신문은 오히려 북한 언론이 거꾸로 핵전력의 강화를 정당화하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진행되는 한미훈련도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김 위원장이 한미훈련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전까지 북한의 행동을 고려한다면 북한 측이 갑자기 입장을 변화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게 중론이다.

일 딴지에
훈풍 흔들?

이와 함께 미국의 입장도 고려할 부분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고위관리는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와 관련한 최소한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의사를 한국의 특사단에 밝혔다는 내용을 한국 정부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북한은 미군철수와 같은 불필요한 언급을 하며 예전의 태도와 변함없다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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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