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북 프레임’ 전쟁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3.05 10:13:34
  • 호수 1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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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치고받고…일은 언제하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엎치락뒤치락, 여야 정치권의 프레임 정쟁이 치열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 직전부터 이어지던 문재인정부 대북 외교에 대한 공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문정부의 성과를 칭찬하며 남북, 미북 대화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야당은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보였던 대북 퍼주기와 같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여야 네거티브전을 살펴봤다.
 

평창올림픽이 끝났음에도 여야의 대결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서 평창올림픽 개막일인 지난달 9일에도 여야는 북한 대표단의 방남을 놓고 ‘평화올림픽’ 대 ‘평양올림픽’ 프레임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평화 VS 평양
끝없는 프레임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평화올림픽을 언급했다.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서 개최된 평창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이제 몇 시간 뒤면 평창의 겨울이 눈부시게 깨어나고, 아름다운 개회식과 함께 우정과 평화가 시작된다”며 “평창올림픽이 ‘평화가 시작된 겨울올림픽’으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여당은 즉각 화답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서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하나 된 힘을 바탕으로 한 치의 소홀함 없이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며 “어렵게 재개된 남북대화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평화 무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평창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는 가교가 되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았으면 한다”며 “올림픽의 최고 가치인 평화가 평창에서 실현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보수야당은 평양올림픽이라는 프레임을 개막 직전까지도 이어갔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개막식날 SNS에 “오늘 평양올림픽으로 둔갑한 우리의 평창올림픽이 개막하는 날”이라며 “개막식에 참가는 하지만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선수들의 땀방울과 국민의 헌신은 때맞춰 찾아온 김씨 왕조의 세습공주 김여정과 북한 공연단의 빨간 코트에 가려졌다”고 날을 세웠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은 지난달 6일 만경봉 92호를 타고 동해 묵호항에 들어왔으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9일 남한 땅을 밟았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5분 리셉션’ 논란은 또 다른 정쟁을 불러왔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서 “펜스 부통령이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 늦게 왔다가 5분 만에 퇴장했다”며 “미북간 대화쇼를 연출하려던 문재인정부가 빚은 외교참사”라고 날을 세웠다.

같은 당 김성원 원내대변인은 다른 논평서 “평창올림픽 개막식서 1조원을 넘게 후원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기업인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며 “기업인 홀대가 도를 넘었다. 이런 사례들이 문정부가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에 기반한 실질적 남북관계 진전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시진핑 중국 주석 특별 대표 자격으로 방한한 한정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장과 슈타인 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잇달아 예방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적극적 협력과 지원을 약속 받았다”고 문정부 외교를 높이 평가했다.


평창올림픽이 한창 진행되던 때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수면위로 올랐다. 

지난달 10일 김여정에 의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가 문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접견 및 오찬 결과 브리핑서“김 위원장은 이날 특사자격으로 청와대를 예방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통해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방북 초청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화답했다.

올림픽 내내
평창 때리기

한국당은 남북정상회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무엇을 위한 친서이고, 무엇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인가”라며 반문한 뒤 “문정부는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회담은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에 넘어가 북핵 완성의 시간만 벌어주는 이적행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당시 국민의당도 한국당의 기조와 함께했다.

신용현 수석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제안 등 평창올림픽 기간 중의 북한 측 행보가 핵고도화와 ICBM 완성을 앞 둔 시간벌기나 핵 체제 공고화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남북 정상회담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당은 남북 정상회담 3불가론까지 제시했다. ▲국제적 여건 미성숙 ▲대한민국 내부 여건 미성숙 ▲북의 내부 여건 미성숙이 그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대북 제재 의지가 강한 상황서 남북 정상회담은 한미 균열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평창올림픽을 두고도 국론 분열이 극심한데 정상회담이 힘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바로 그날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겠다”고 한 발언을 내세웠다.

한국당은 이 같은 3불가론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옛날 중국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쟁 당시 홍문연 사건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항우가 유방을 풀어줬을 때 항우의 책사 범증이 “항우가 한낱 아녀자의 정을 베풀어 범을 숲에 놓아 주었으니 장차 우리가 유방의 포로가 되겠구나”라고 한탄한 사건이다. 

한국당은 “힘이 있고 상황이 될 때 확실히 적을 제압하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는 교훈”이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할 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당한다”고 역설했다.

‘평화’ 대 ‘평양’…끝나지 않은 논쟁
‘성과’ 대 ‘참사’…문 외교 평가 갈려

민주당은 한국당의 논리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백혜련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북 문제는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의 참가결정부터 본격적인 방남에 대한 대처 및 후속 조치 역시 미국과의 조율을 거쳐 진행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당이 일말의 양심과 책임감을 느낀다면,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 전반에 파탄을 불러온 박근혜정부의 무능함에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며 되받아쳤다.


‘김일성 가면’ 논란도 여야의 충돌지점이었다. 북한 응원단이 평창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경기서 젊은 남성 얼굴의 가면을 쓰고 응원한 데 대해 한 언론사가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란 제목을 달면서 사태는 촉발됐다.

논란이 불거지고 얼마 후 통일부가 직접 나서 “가면의 인물은 김일성이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김일성 가면이라고 보도한 해당 언론사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공식 사과문을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빠른 사실 확인으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상대방에 대한 공격 소재로 활용했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서 “평창올림픽에 전범 김일성이 등장했다”며 “아이스하키팀은 남북단일팀에 희생된 것도 모자라 김일성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경기를 펼친 것”이라며 문정부의 ‘사죄’를 요구했다.

당시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국회 브리핑까지 열어 “가장 중요한 본질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가면을 응원도구로 쓴 것이 적절했느냐라는 것”이라며 “통일부 발표처럼 배우 얼굴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얼굴이 김일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라고 가면 응원 금지 조치를 문정부에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김일성 가면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볼썽사나운 트집 잡기”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백혜련 대변인은 서면논평서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여겨지는 김일성 주석의 얼굴을 응원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와 문화를 감안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여전히 볼썽사나운 트집 잡기와 색깔론으로 응수하는 야당의 행태는 옥에 티”라고 지적했다.

옛 고사까지
정쟁에 활용

그러나 보수야당은 김일성 가면 이슈를 계속적으로 정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지난달 20일 국회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회의에 참석한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향해 논란의 가면 인물과 김일성 북한 주석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종이를 흔들며 “이게 누구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조 장관이 “분명하게 북한 측에서 입장을 밝혔고 우리가 판단할 때도 북한의 김일성이나 이런 쪽으로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통일부 장관이 북한 대변인이냐”고 조 장관을 질타했다.

김 의원은 이어 “많은 사람들이 (사진 속 인물을)김일성 젊은 시절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북한 대형 벽화에 (김일성이)젊었을 때 미화한 그림으로 나오는데 북한에 물어보고 아니라고 한다”며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대변하는 것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김 의원은 “전혀 김일성과 상관없는 것이냐. 이렇게 막 찢어버려도, 짓밟아도 되느냐”고 물었고 이에 조 장관은 “예, 예”라고 답하자 논란의 사진을 현장서 찢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 소식이 전해지자 여의도는 두 동강 났다. 한국당은 길거리로 뛰쳐나왔고, 민주당은 그런 한국당의 행보를 ‘안보장사’라며 평가절하 했다.

‘환영’ 대 ‘불가’…남북회담 도마 위
‘대화’ 대 ‘반역’…김영철 방남 논란

한국당은 청계광장에 나와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규탄대회’ 결의문을 통해 문정부의 김영철 방남 승인을 ‘국정 농단이자 반역 행위’라고 발표하며, 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앞서 한국당은 김영철을 ▲천안함 폭침의 주범 ▲연평도 포격의 책임자 ▲목함지뢰 도발의 기획자로 규정했다.

한국당은 체제전쟁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며 김영철 방남을 극렬히 반대했다. 결의문을 통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문정부와의 체제전쟁을 선포한다”며 “체제전쟁서 반드시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평화통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규탄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홍준표 대표는 김영철을 ‘살인범’으로 표현하며 “국군통수권자(문 대통령)가 살인범을 불러놓고 짝짜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는 것은 한국당의 존재 이유”라며 “국민적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영철의 방남을 끝내 강행한 문정부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공세에 대해 ‘색깔론’이라며 응수했다. ‘한국당 = 구시대 정당’ 프레임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추미애 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서 “평창올림픽 기간 중 딱 하나의 오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제1야당 한국당의 행태”라며 “국민을 부끄럽게 하고 국격을 떨어트린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날을 세웠다. 

대규모 장외투쟁에 대해서는 “민생을 팽개치고 장외로 나가려는 이유는 ‘색깔론 물타기’의 저급한 속셈”이라며 “검찰 소환이 임박한 이명박 정권의 타락과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 눈 가리기의 얄팍한 속임수”라고 꼬집었다. 장외투쟁을 전전 정권에 대한 수사와 결부시켜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로 읽힌다.

김영철 방남
대립 정점

우원식 원내대표는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평화의 길을 넓혀가야 하는데 북한의 실력자일수록 도발과 무관치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에 대해 체포·사살을 얘기하며 평화를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의 길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체포하거나 사살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에 대한 저격성 발언으로 풀이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월 북미 정상회담설 추적
트럼프 동의없이 남북회담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도 평창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별도로 회동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미북 접촉을 강하게 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1시간여 동안의 접견에서 김영철은 문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 의향을 공식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인 미북 접촉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는 평창올림픽 대표단에 북한 핵문제와 미북 관계 등에 정통한 관료를 각각 파견해 미북이 대화를 위해 실무단을 파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 대표단 지원인원으로 ‘최강일’이라는 인물이 포함됐는데, 그는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 최강일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강일은 지난해 9월 스위스서 열린 민간 주최 회의에서 미국의 전직 관료와 대화한 경험이 있다.

김영철, 대화 의향 전해
합동훈련 전 만나는 그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보좌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에도 백악관서 남북한 문제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비공식 수행원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평창올림픽 폐회식을 전후로 미북 양국이 대화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4월 초 한미 합동군사훈련 재개 이전에 미북 양국이 만나는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3월 중 대한민국의 중재로 미북 대화가 성사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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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