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북 프레임’ 전쟁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3.05 10:13:34
  • 호수 1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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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치고받고…일은 언제하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엎치락뒤치락, 여야 정치권의 프레임 정쟁이 치열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 직전부터 이어지던 문재인정부 대북 외교에 대한 공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문정부의 성과를 칭찬하며 남북, 미북 대화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야당은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보였던 대북 퍼주기와 같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여야 네거티브전을 살펴봤다.
 

평창올림픽이 끝났음에도 여야의 대결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서 평창올림픽 개막일인 지난달 9일에도 여야는 북한 대표단의 방남을 놓고 ‘평화올림픽’ 대 ‘평양올림픽’ 프레임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평화 VS 평양
끝없는 프레임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평화올림픽을 언급했다.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서 개최된 평창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이제 몇 시간 뒤면 평창의 겨울이 눈부시게 깨어나고, 아름다운 개회식과 함께 우정과 평화가 시작된다”며 “평창올림픽이 ‘평화가 시작된 겨울올림픽’으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여당은 즉각 화답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서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하나 된 힘을 바탕으로 한 치의 소홀함 없이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며 “어렵게 재개된 남북대화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평화 무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평창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는 가교가 되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았으면 한다”며 “올림픽의 최고 가치인 평화가 평창에서 실현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보수야당은 평양올림픽이라는 프레임을 개막 직전까지도 이어갔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개막식날 SNS에 “오늘 평양올림픽으로 둔갑한 우리의 평창올림픽이 개막하는 날”이라며 “개막식에 참가는 하지만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선수들의 땀방울과 국민의 헌신은 때맞춰 찾아온 김씨 왕조의 세습공주 김여정과 북한 공연단의 빨간 코트에 가려졌다”고 날을 세웠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은 지난달 6일 만경봉 92호를 타고 동해 묵호항에 들어왔으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9일 남한 땅을 밟았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5분 리셉션’ 논란은 또 다른 정쟁을 불러왔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서 “펜스 부통령이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 늦게 왔다가 5분 만에 퇴장했다”며 “미북간 대화쇼를 연출하려던 문재인정부가 빚은 외교참사”라고 날을 세웠다.

같은 당 김성원 원내대변인은 다른 논평서 “평창올림픽 개막식서 1조원을 넘게 후원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기업인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며 “기업인 홀대가 도를 넘었다. 이런 사례들이 문정부가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에 기반한 실질적 남북관계 진전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시진핑 중국 주석 특별 대표 자격으로 방한한 한정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장과 슈타인 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잇달아 예방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적극적 협력과 지원을 약속 받았다”고 문정부 외교를 높이 평가했다.


평창올림픽이 한창 진행되던 때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수면위로 올랐다. 

지난달 10일 김여정에 의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가 문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접견 및 오찬 결과 브리핑서“김 위원장은 이날 특사자격으로 청와대를 예방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통해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방북 초청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화답했다.

올림픽 내내
평창 때리기

한국당은 남북정상회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무엇을 위한 친서이고, 무엇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인가”라며 반문한 뒤 “문정부는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회담은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에 넘어가 북핵 완성의 시간만 벌어주는 이적행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당시 국민의당도 한국당의 기조와 함께했다.

신용현 수석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제안 등 평창올림픽 기간 중의 북한 측 행보가 핵고도화와 ICBM 완성을 앞 둔 시간벌기나 핵 체제 공고화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남북 정상회담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당은 남북 정상회담 3불가론까지 제시했다. ▲국제적 여건 미성숙 ▲대한민국 내부 여건 미성숙 ▲북의 내부 여건 미성숙이 그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대북 제재 의지가 강한 상황서 남북 정상회담은 한미 균열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평창올림픽을 두고도 국론 분열이 극심한데 정상회담이 힘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바로 그날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겠다”고 한 발언을 내세웠다.

한국당은 이 같은 3불가론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옛날 중국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쟁 당시 홍문연 사건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항우가 유방을 풀어줬을 때 항우의 책사 범증이 “항우가 한낱 아녀자의 정을 베풀어 범을 숲에 놓아 주었으니 장차 우리가 유방의 포로가 되겠구나”라고 한탄한 사건이다. 

한국당은 “힘이 있고 상황이 될 때 확실히 적을 제압하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는 교훈”이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할 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당한다”고 역설했다.

‘평화’ 대 ‘평양’…끝나지 않은 논쟁
‘성과’ 대 ‘참사’…문 외교 평가 갈려

민주당은 한국당의 논리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백혜련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북 문제는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의 참가결정부터 본격적인 방남에 대한 대처 및 후속 조치 역시 미국과의 조율을 거쳐 진행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당이 일말의 양심과 책임감을 느낀다면,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 전반에 파탄을 불러온 박근혜정부의 무능함에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며 되받아쳤다.


‘김일성 가면’ 논란도 여야의 충돌지점이었다. 북한 응원단이 평창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경기서 젊은 남성 얼굴의 가면을 쓰고 응원한 데 대해 한 언론사가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란 제목을 달면서 사태는 촉발됐다.

논란이 불거지고 얼마 후 통일부가 직접 나서 “가면의 인물은 김일성이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김일성 가면이라고 보도한 해당 언론사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공식 사과문을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빠른 사실 확인으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상대방에 대한 공격 소재로 활용했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서 “평창올림픽에 전범 김일성이 등장했다”며 “아이스하키팀은 남북단일팀에 희생된 것도 모자라 김일성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경기를 펼친 것”이라며 문정부의 ‘사죄’를 요구했다.

당시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국회 브리핑까지 열어 “가장 중요한 본질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가면을 응원도구로 쓴 것이 적절했느냐라는 것”이라며 “통일부 발표처럼 배우 얼굴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얼굴이 김일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라고 가면 응원 금지 조치를 문정부에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김일성 가면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볼썽사나운 트집 잡기”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백혜련 대변인은 서면논평서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여겨지는 김일성 주석의 얼굴을 응원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와 문화를 감안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여전히 볼썽사나운 트집 잡기와 색깔론으로 응수하는 야당의 행태는 옥에 티”라고 지적했다.

옛 고사까지
정쟁에 활용

그러나 보수야당은 김일성 가면 이슈를 계속적으로 정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지난달 20일 국회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회의에 참석한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향해 논란의 가면 인물과 김일성 북한 주석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종이를 흔들며 “이게 누구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조 장관이 “분명하게 북한 측에서 입장을 밝혔고 우리가 판단할 때도 북한의 김일성이나 이런 쪽으로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통일부 장관이 북한 대변인이냐”고 조 장관을 질타했다.

김 의원은 이어 “많은 사람들이 (사진 속 인물을)김일성 젊은 시절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북한 대형 벽화에 (김일성이)젊었을 때 미화한 그림으로 나오는데 북한에 물어보고 아니라고 한다”며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대변하는 것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김 의원은 “전혀 김일성과 상관없는 것이냐. 이렇게 막 찢어버려도, 짓밟아도 되느냐”고 물었고 이에 조 장관은 “예, 예”라고 답하자 논란의 사진을 현장서 찢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 소식이 전해지자 여의도는 두 동강 났다. 한국당은 길거리로 뛰쳐나왔고, 민주당은 그런 한국당의 행보를 ‘안보장사’라며 평가절하 했다.

‘환영’ 대 ‘불가’…남북회담 도마 위
‘대화’ 대 ‘반역’…김영철 방남 논란

한국당은 청계광장에 나와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규탄대회’ 결의문을 통해 문정부의 김영철 방남 승인을 ‘국정 농단이자 반역 행위’라고 발표하며, 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앞서 한국당은 김영철을 ▲천안함 폭침의 주범 ▲연평도 포격의 책임자 ▲목함지뢰 도발의 기획자로 규정했다.

한국당은 체제전쟁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며 김영철 방남을 극렬히 반대했다. 결의문을 통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문정부와의 체제전쟁을 선포한다”며 “체제전쟁서 반드시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평화통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규탄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홍준표 대표는 김영철을 ‘살인범’으로 표현하며 “국군통수권자(문 대통령)가 살인범을 불러놓고 짝짜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는 것은 한국당의 존재 이유”라며 “국민적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영철의 방남을 끝내 강행한 문정부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공세에 대해 ‘색깔론’이라며 응수했다. ‘한국당 = 구시대 정당’ 프레임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추미애 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서 “평창올림픽 기간 중 딱 하나의 오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제1야당 한국당의 행태”라며 “국민을 부끄럽게 하고 국격을 떨어트린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날을 세웠다. 

대규모 장외투쟁에 대해서는 “민생을 팽개치고 장외로 나가려는 이유는 ‘색깔론 물타기’의 저급한 속셈”이라며 “검찰 소환이 임박한 이명박 정권의 타락과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 눈 가리기의 얄팍한 속임수”라고 꼬집었다. 장외투쟁을 전전 정권에 대한 수사와 결부시켜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로 읽힌다.

김영철 방남
대립 정점

우원식 원내대표는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평화의 길을 넓혀가야 하는데 북한의 실력자일수록 도발과 무관치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에 대해 체포·사살을 얘기하며 평화를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의 길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체포하거나 사살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에 대한 저격성 발언으로 풀이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월 북미 정상회담설 추적
트럼프 동의없이 남북회담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도 평창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별도로 회동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미북 접촉을 강하게 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1시간여 동안의 접견에서 김영철은 문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 의향을 공식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인 미북 접촉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는 평창올림픽 대표단에 북한 핵문제와 미북 관계 등에 정통한 관료를 각각 파견해 미북이 대화를 위해 실무단을 파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 대표단 지원인원으로 ‘최강일’이라는 인물이 포함됐는데, 그는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 최강일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강일은 지난해 9월 스위스서 열린 민간 주최 회의에서 미국의 전직 관료와 대화한 경험이 있다.

김영철, 대화 의향 전해
합동훈련 전 만나는 그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보좌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에도 백악관서 남북한 문제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비공식 수행원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평창올림픽 폐회식을 전후로 미북 양국이 대화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4월 초 한미 합동군사훈련 재개 이전에 미북 양국이 만나는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3월 중 대한민국의 중재로 미북 대화가 성사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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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