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등기임원 ‘문어발 겸직’ 백태

회장님 대표 명함 없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기업 오너 일가의 과도한 등기임원 겸직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겸직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 해당 계열사의 자율경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시선이 팽배한 탓이다. 반면 책임경영 강화 차원서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공개한 국내 30대 그룹 상장·비상장사 등기임원 겸직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2개 이상 회사에 등기임원으로 등재된 오너 일가는 총 51명이었다. 경영활동에 참여 중인 오너 일가 구성원 89명 가운데 절반 이상(57.3%)이 2개 이상 계열사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곳곳에 보이는
오너 일가 이름

오너 일가의 등기임원 겸직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은 GS그룹다. GS 창업주는 8형제를 뒀다. 고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 고 허학구 전 LG전선 부회장, 고 허준구 전 GS건설 명예회장, 고 허신구 전 GS리테일 명예회장, 고 허완구 전 승산 회장, 허승효 알토 회장,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이 이들이다.

GS그룹의 많은 후손은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GS 일가의 계열사 등기임원 등재율은 34.8%다. 30대 그룹 평균(21.1%) 대비 높다. 

GS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계열사 등기임원에 가장 빈번하게 이름을 올린 인물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이다. 현재 허광수 회장은 ▲삼양통상 ▲삼양인터내셔날 ▲옥산유통 ▲켐텍인터내셔날 ▲보헌개발 ▲삼정건업 ▲지에스아이티엠 ▲경원건설 등의 등기이사로 등재된 상태다. 


이외에도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이 5개, 허연수 GS리테일 대표가 4개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이다. 또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3개, 허세홍 GS글로벌 대표가 3개, 허용수 GS EPS 대표가 3개,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3개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LS그룹 오너 일가는 4인이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구자용 E1 회장이 5곳으로 가장 많고 구자균 LS산전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부회장이 3곳으로 동일하다. 

LS그룹은 구태회 전 LS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인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과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을 포함해 구평회 전 E1 명예회장의 아들인 구자열 LS 회장과 구자용 E1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 등이 계열사 경영을 나누어 담당하는 ‘형제경영’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받는 돈이…
연봉 때문?

한진그룹에선 조양호 회장이 6곳의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5곳, 조현민 진에어 부사장이 4곳서 등기임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조원태 사장과 조현민 부사장 모두 조양호 회장의 자녀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오너 일가 구성원 3명이 등기임원을 겸직 중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5곳으로 가장 많았고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4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직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롯데그룹을 비롯해 효성그룹, OCI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선 등기임원을 겸직하는 오너 일가가 2명씩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에선 신동빈 회장(9곳)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6곳)이 계열사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그룹과 마찬가지로 효성그룹서도 조현상 사장과 조현준 회장이 각각 6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이다. 


OCI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이 4곳, 이화영 유니드 회장은 3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사장은 각각 3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이다.

이외에 하림그룹(김홍국 회장), LG그룹(구본준 LG 부회장), 영풍그룹(장형진 회장)은 등기임원을 겸직하는 오너 일가가 1명씩이다.

30대 그룹 오너 절반 이상 임원 직함 2개
나온 이름 또 나오고…장단점은?

30대 그룹 오너 일가 중 등기임원에 가장 많이 등재된 인물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현재 ▲하림 ▲하림홀딩스 ▲팜스코 ▲팬오션 ▲하림식품 ▲농업회사법인익산 ▲엔에스쇼핑 ▲제일사료 ▲선진 등 12개 계열사에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홍국 회장에 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0대 오너 일가 가운데 등기임원 겸직 2위에 호명됐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 ▲호텔롯데 ▲롯데쇼핑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에프알엘코리아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건설 ▲롯데칠성음료에서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5명은 6개 회사에서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을 포함한 4명은 5곳,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외 5인이 4곳에서 등기임원직을 겸직 중이다. 3곳의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30대그룹 오너 일가는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10명이다.

오너 일가 구성원들이 계열사 등기임원에 겸직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다. 과도한 겸직은 해당 계열사의 자율경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시선과 책임경영 강화라는 긍정적 시선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등기임원 겸직에 반대하는 가장 큰 주체는 국민연금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주주에 올라 있는 상장사 정기주주총회에서 반대한 총 361개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가운데 그룹총수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도 다수 포함돼있다. 

국민연금이 이사선임에 반대한 오너 일가는 신동빈 회장(롯데케미칼, 롯데칠성음료)과 조양호 회장(한진칼, 한진), 김홍국 회장(선진, 팜스코), 조원태 사장(한국공항, 한진칼, 한진) 등 4명이었다. 이들 안건은 연금의 반대표와 관계없이 모두 통과됐지만 해당 그룹들에겐 분명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겸직 두고
찬반 팽팽

올해 정기 주주총회서 국민연금의 등기임원 겸직에 대한 반대 입장은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총 600조원 규모의 연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투자한 기업의 주총 등에서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장기 성장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 ‘스튜어드십 코드’를 올해 안에 도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30대 그룹 오너 일가 등기임원은 22명이고, 이 중 4명을 뺀 나머지 18명(81.8%)이 2개사 이상 겸직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올해 주총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그룹 총수의 원활한 경영을 위해선 다수 계열사 임원 겸직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오너 일가의 계열사 임원 겸직 시 상근 여부, 적정한 보수지급 여부를 따져보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장사 임원 보수 공개가 시작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재벌 총수 4명 중 1명의 연봉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회사인 지주회사나 주력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어 연봉 공개 대상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2016년 사업보고서 기준 대기업집단 26곳의 총수 26명 중 7명은 지주회사나 주력 상장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등록돼있지 않았다.

7명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등이다.  

등기임원이 아닌 총수들은 일선서 물러나 자녀가 실질적인 총수로서 역할을 하거나 회사에 상장사가 없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이건희 회장은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등기임원으로 등록돼있고, 이준용 명예회장의 경우 아들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등기임원이다. 

현재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상장사 등기임원은 의무적으로 보수를 공개하게 돼있는데 미등기임원인 총수들은 대상서 제외된다. 


여기저기서
직함 몇 개?

다만 올해부터는 이들 연봉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지난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2018년부터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회사 미등기임원과 직원이 회사 내 연봉 상위 5위 이내인 경우에는 보수 내역을 매해 반기마다 공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등기이사를 맡지 않고 연봉 공개를 피해온 총수 일가 역시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계열사 등기임원을 맡는 경우 경영 의사결정에 직접 책임을 지는 책임 경영 강화라는 장점도 있다”며 “등기임원서 제외되면 오히려 불투명한 경영 환경에 대한 불만이 더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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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