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남매 각축 기업들

아들 승계 옛말 ‘딸들의 전성시대’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과거 재계는 장자 승계 원칙을 따랐다. 불가피하게 장자가 승계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차선책으로 아들들에게 그룹 지배권이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이 같은 기조가 바뀌고 있다. 남녀구분 없이 모든 자식들에게 사업권을 분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남매 경쟁구도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재계는 지금 그룹 승계를 두고 남매 경쟁이 한창이다. 때론 뭉치고 때론 대립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경쟁이 그룹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세계그룹은 현재 가장 치열하게 남매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 경쟁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장남인 정용진 이마트 부회장에게는 마트 및 종합쇼핑몰 사업부분을, 장녀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에게는 백화점 사업부문을 맡겼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세계의 경우 이 회장이 지분 18.22%로 최대주주 신분이고 뒤이어 정 총괄사장이 9.83%로 2대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오빠인 정 부회장은 신세계에 지분이 없다. 반대로 이마트는 18.22%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 회장의 뒤를 이어 정 부회장이 9.83% 지분으로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분구조가 눈길을 끈다. 명확하게 남매가 가진 지분은 신세계와 이마트로 지분이 갈렸지만 둘 중 누군가 사업 부진으로 경영 능력을 의심받게 되면 이 회장이 다른 자녀에게 지분을 몰아줘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아직까지 두 남매는 어머니인 이 회장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들의 경영 행보는 조심스럽다.

최근 정 총괄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 총괄사장은 가정용 가구 산업인 ‘홈퍼니싱(집 꾸미기)’ 사업에 손을 댔다. 신세계는 지난달 24일 공시를 통해 중견 가구기업 까사미아 주식 681만3441주(92.35%)를 1837억1762만원에 취득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정 총괄사장이 신세계의 책임경영을 본격화한 2015년 이후 첫 기업 인수합병(M&A)이다.

아픈 손가락으로 평가받던 화장품 사업 부문서 최근 처음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도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화장품 사업서 매출 627억원, 영업이익 57억원을 달성하며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더구나 사드 여파로 화장품 업계가 힘든 시기임을 감안하면 이번 성과는 유의미한 지표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일각서 여전히 그의 경영 능력에 물음표를 찍기도 한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정 총괄사장이 그룹 내에서 패션·뷰티 영역을 맡았던 2012년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 코스메틱스’를 인수해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화장품 업계가 호황기에 접어들 것이란 판단과 신세계 그룹이 가지고 있는 유통망에 대한 지원을 기대한 것이다. 판단은 틀리지 않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의 화장품 기업들은 뷰티업계의 호황을 타고 큰 폭으로 성장했지만 정 총괄사장의 비디비치는 적자 행진을 거듭한 바 있다. 
 


이 점 때문에 정 총괄사장의 까사미아 인수에도 기대와 불안감이 상존한다. 정 총괄사장 선택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존재감 과시 위해 신사업에 매진
밀려났다 다시 기회 엿보기 반복 

정 부회장도 활발히 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 역시 활발한 투자 행보를 펼치고 있는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가 집중되는 곳은 복합쇼핑몰 스타필드와 이마트24다. 스타필드의 경우 하남과 코엑스, 고양 등에 이어 창원에도 오픈을 계획하면서 공격적인 영토확장에 나섰다. 

정 부회장은 기존 국내 복합쇼핑몰의 규모보다 더욱 큰 규모의 복합쇼핑몰을 구상했다. 시장서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지난 9월 신세계가 스타필드 하남 개장 1주년을 맞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년간 약 2500만명이 스타필드 하남을 방문했다. 

현재까지는 스타필드와 관련된 시장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마트24 사업에서는 온도차가 존재한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이마트24를 그룹 내 핵심 사업으로 키울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3000억원의 투자계획도 전했다. 사실 이전에도 이마트는 이마트24(당시 위드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마트24를 인수한 직후인 2014년부터 유상증자를 통해 2080억5000만원의 자금이 편의점 사업에 들어갔다. 

이에 힘입어 점포수도 늘었다. 2014년 501개였던 점포수는 2017년 2653개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수익성 지표는 긍정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2016년까지 이마트24의 누적손실은 751억원 규모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343억원으로 집계되면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결과적으로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 모두 불투명한 신사업에 승부수를 띄웠다. 이들의 선택이 신세계그룹 후계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도 남매 간 경영경쟁을 펼치고 있다. 현재 현대차는 현대차를 비롯한 비금융 계열사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금융계열사는 정명이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부문장이 나눠 경영하고 있다. 
 

다만 금융 계열사의 경우 정명이 부문장의 남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지분 관계는 정 부회장, 정 부문장 둘 다 불안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


뒤에 있다가
뒤늦게 두각

이상 징후가 감지된 곳은 정태영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현대라이프생명 등이다. 그동안 정태영 부회장은 정명이 부문장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서 이들 회사를 이끌었다. 

따라서 정 회장이 정명이 부부에게 금융 부분을 맡길 것이라는 전망이 중론이었다. 다만 아직 금융계열사 지분이 많지 않아 확실한 승계를 받았다는 평가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 부부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현대커머셜 지분 50%(정명이 33.33%, 16.67%)가 전부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주식은 없다. 

이 같은 상황서 최근 이들 계열사가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면서 정명이 부부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금융부분을 맡은 후 2016년 기준 실적점유율 15.11%로 업계 3위 자리에 올랐으나 최근에는 지난해 1분기 14.86%로 0.25% 감소하면서 4위인 KB국민카드(13.44%->14.09%)와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양상이다.

현대캐피탈도 성적이 좋지 않다. 국내 자산기준 상위 13개 캐피탈사들의 2017년 3분기 누적 실적을 비교해 본 결과 3년 대비 현대캐피탈을 제외한 모든 캐피탈사가 플러스 성장을 기록해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현대라이프생명는 2012년 인수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연말 정기 임원인사 전 현대차그룹은 정명이 당시 현대커머셜 고문을 현대커머셜의 커머셜부문장, 현대카드 브랜드 부문장, 현대캐피탈 브랜드부문장으로 선임했다. 

정명이 부문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정태영 부회장의 입지가 줄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정명이 부문장이 경영에 직접 나설 만큼 정명이 부문장 부부의 입지가 그룹 내에서 크게 줄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향후 금융계열사의 성적이 이들 부부에게 중요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대차의 주요 계열사를 맡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은 중국의 사드 여파 및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중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달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서 기자들을 만나 “굉장히 심각했지만 오히려 좋은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에는 중국에서 90만대, 많으면 100만대까지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엎치락뒤치락 
살얼음 구조

재계에서는 어려운 업황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모양새다.

한진그룹도 남매가 승계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자녀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진에어 부사장 등이 주인공이다.

현재 조원태 사장이 그룹 내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그는 지난 1월 평창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조양호 회장가 함께 나서 그룹 내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의 경영 실적은 긍정적으로 읽힌다. 대한항공 사장으로 취임한지 1년이 넘은 조 사장은 인천~스페인 바르셀로나 직항 노선 취항을 적극 추진하는 등 주력 노선에 힘을 실었다. 그 결과 해당 노선은 지난해 4월 취항 이후 평균 82% 수준의 탑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장거리 노선의 안정적인 운영은 실적 안정에 보탬이 됐다. 대한항공은 중국발 사드 보복 여파를 딛고 2분기 172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8.5% 증가했다. 3분기에는 전년동기 대비 22.7% 줄어든 3555억원을 기록하긴 했지만 환차손, 고유가 리스크라는 영업환경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조현민 사장도 진에어서 경영 능력을 검증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진에어를 성공적으로 상장시키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실적도 좋다. 진에어는 2017년 한해 매출은 8883억 원, 영업이익은 969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1일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23.4% 늘었으며 영업이익도 85.5% 증가했다. 진에어는 지난 12월 상장하며 올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하고, 중장거리 및 지방발 해외 노선을 개설해 50개 이상 노선에 취항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현아 전 사장은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아직까지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이륙을 준비 중이던 항공기 안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지적하면서 난동을 부리고, 비행기를 회항해 수석 승무원을 내리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난해 말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으면서 재판이 마무리됐다.

경영능력 입증에 주력
지분증여까지 조마조마

그러나 법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도덕적인 문제가 제기되면서 아직까지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경영 복귀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남매 승계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아워홈도 역시 남매 전쟁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현재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이 내부 안팎으로 공격 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경영능력을 인정받기까지 갈길이 멀다는 평가다. 구 부회장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22개 브랜드를 오픈했다. 

여동생 구지은 캘리스코 대표의 주력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2015년 7월 구지은 대표가 아워홈을 떠나기 전까지 경영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붙는다.

반면 구지은 대표는 캘리스코 대표를 맡아 경영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2016년에는 매출 639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100억원 넘게 증가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구지은 대표의 아워홈 복귀설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구본성 부회장의 아워홈 지분이 경영권을 장악할 만큼 많지 않다는 점도 향후 갈등의 소지로 남을 수 있다.

구지은 대표는 아워홈 지분 20.67%를 보유하고 있어 구본성 부회장(38.56%)에 이어 아워홈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구지은 대표와 우호적인 관계인 언니 구명진씨(19.6%)와 지분을 합치면 구 부회장의 지분보다 많다. 여기에 구 대표는 캘리스코의 최대주주로 지분 46%를 소유하고 있어 그룹 내 존재감 면에서 구 부회장이 앞선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현재 구 대표의 뚜렷한 행보는 감지되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지 남매 경영권 경쟁이 수면위로 올라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J그룹도 남매 승계 경쟁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이재현 회장의 장녀 이경후(33) 상무대우가 승진 8개월 만에 상무로 또 한 번 승진했다. 

이경후 상무는 미국 콜럼비아대 석사 졸업 후 2011년 CJ 기획팀 대리로 입사, 6년 만인 지난해 3월 임원으로 승진한 바 있다. 반면 이선호 CJ그룹 부장은 승진 대상자서 아예 제외됐다.

한입씩∼
쪼개기도

이에 따라 이들 간 경영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선호 부장은 1년째 승진 대상자 명단서 빠지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다만 지분 승계는 이선호 부장 쪽이 앞선다. 

지분 승계의 핵심 계열사로 분류되는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은 이선호 부장이 이경후 상무보다 더 많다. 

이 부장은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7.97%를 보유해 CJ에 이어 CJ올리브네트웍스의 2대주주다. 이 상무는 지분 6.91%를 소유하고 있다. 이밖에 이선호 부장은 CJE&M 지분 0.68%을 가지고 있다. 이 상무는 CJ 0.13%, CJE&M 0.27%로 이선호 부장보다 지분이 적다.

이에 따라 각자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된다. 또한 향후 이경후 상무가 경영능력을 입증하면 승계구도에 변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승계를 두고 더욱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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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