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노래방 꽃뱀 주의보 천태만상

도우미와 하룻밤 다음날 피의자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가정, 학교, 직장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호소가 이어지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게 이른바 꽃뱀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일요시사>가 꽃뱀 관련 사건들을 추적해봤다.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가해자로 안태근 법무부 소속 검사가 지목됐고 사건 장소에 법무부장관이 동석한 사실도 알려졌다. 검사를 상대로 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자 여성들은 더 이상의 안전지대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사까지?
성폭력 만연

그럼에도 과거 숨기기 급급했던 성폭력 범죄는 최근 SNS 발달 등으로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공론화 하는 데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저하지 않는 모양새다. 

성폭력 범죄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피해자에 공감하고 나아가 예방과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서 검사 관련 글을 올렸다. 그는 “딸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서지현 검사님이 겪은 일들을 읽으며 분노와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이따위 세상에 나아가야 할 딸들을 보며 가슴이 무너진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서 그쳐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내 앞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절대로 방관하지 않고 나부터 먼저 나서서 막겠다는 #Me First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성폭력 범죄 상황을 꾸며내거나 악용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를 더디게 만든다는 점이다. 

최근 합의금이나 명예훼손을 목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거짓 신고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무고죄 발생 건수는 모두 3617건으로 2012년 2734건보다 1000여건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무고죄의 40%가량이 성범죄 관련이다.

지난해 8월 학생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던 전북 무안의 한 중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직위해제 상태로 교육청 산하 학생인권교육센터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처음 신고한 학생이 거짓말이라고 털어 놓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학부모까지 나서 교사를 처벌하지 말라고 탄원서를 냈지만 인권센터는 성희롱과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성추행 교사로 낙인찍힌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행법상 무고죄는 최대 법정형 징역 10년, 벌금 1500만원 수준의 처벌을 받는 중범죄지만 초범의 경우 집행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허위 신고를 당한 사람은 성추행범, 성폭행범 등으로 알려져서 사회적 타살 위기에 처한다. 2016년 10월 한 SNS 이용자는 시인 박진성씨가 2015년 미성년자인 자신을 성희롱했다는 글을 올렸다. 당시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고 있던 때라 해당 글은 빠르게 확산됐다.

성폭력 사건 공론화↑
사회적 인식 변화 중

최초로 문제가 제기된 후 1년 가까이 지속된 사건은 지난해 10월 검찰이 박씨를 무혐의로 불기소 처리하면서 마무리됐다. 박씨는 자신을 허위로 고소한 두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했는데, 각각 기소유예와 벌금 처분을 받았다. 

“사회적 생명이 끊겼다”고 토로한 박씨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가족에게 발견돼 의식을 회복했다.

지난해 무고로 기소된 2105명 가운데 109명만 구속됐고 나머지 95%는 불구속 기소되거나 약식 명령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무고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아님 말고’ 식의 고소를 양산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금전 등의 이유로 일단 신고하고 보자는 식의 행위가 늘고 있는 것.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형사 사법질서를 왜곡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수사력 낭비와 재판을 방해한 거짓말 사범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했다. 이 과정서 40대 노래방 도우미 A씨가 합의금을 받기 위해 손님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허위 신고한 사례가 적발됐다.

A씨는 생활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손님으로 만난 남성 B씨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가진 후 성폭행을 당했다고 허위로 신고했다. 

A씨와 B씨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지만, 이후 A씨는 전화와 문자 등으로 협박해 합의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 B씨는 1000만원을 건넸고, A씨는 남은 1000만원을 더 받기 위해 경찰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했다가 범행 사실이 들통 났다.

지난 2013년 대전에서는 손님과 두 차례 성관계를 가진 후 합의금을 뜯어내기 위해 협박한 노래방 도우미가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노래방 도우미는 성관계 이후 “네가 나를 강간했지? 네 가정부터 모든 것이 파탄난다”며 돈을 요구해 1150만원을 챙겼다. 

그러다 추가로 돈을 받아내기 위해 강간당했다는 취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면서 만난 손님을 상대로 혼인 빙자 사기를 쳐 거액을 뜯어낸 일도 있다. 충북 음성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심모씨는 손님으로 찾아온 이모씨에게 접근해 사채를 갚아주면 같이 살겠다고 속여 1억5000만원을 가로챘다. 피해자는 심씨의 꾐에 빠져 모든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과 함께 역할을 분담해 범행 대상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도 부지기수다. 

중년 교사들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맺고 간통이나 성폭행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은 사기단도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공범으로 활동했다. 

최모씨는 2014년 5월 김모씨에게 전남의 한 중학교 교사와 성관계를 맺도록 만들고는 남편 행세하며 협박해 1억1000만원을 뜯어냈다. 이들은 전남 인근 한 고등학교 교감에게도 비슷한 수법으로 1억원을 갈취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무고죄 처벌
초범은 약해

30대 재력가를 유혹한 후 성폭행 당했다며 합의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뜯어내려한 남녀 사기단도 있었다. 바람잡이, 꽃뱀 등으로 역할을 분담한 이들은 피해 남성이 꽃뱀 역할을 맡은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으려 하자 경찰에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사기단은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서 3000만원에 합의하자고 종용했지만 피해자가 결백을 주장하며 거절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들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됐다.


초등학교 동창을 상대로 꽃뱀을 붙여 돈을 갈취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5년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고향 친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꽃뱀 여성을 소개한 후 돈을 뜯은 혐의로 박모씨를 구속했다. 이들은 총책, 꽃뱀 등으로 일을 분담해 범행을 저질렀다. 

박씨 일행은 노래방으로 고향 친구를 불러내 꽃뱀 역할을 맡은 김씨와 단둘이 있게 만든 후 “왜 강간하느냐”고 협박해 1700만원을 뜯은 혐의를 받았다.

지인을 이성과 합석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후 성추행을 당한 것처럼 협박해 돈을 가로챈 범행도 발각됐다. 주범이 꽃뱀 역할을 할 여성을 섭외하는 등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각각 임무를 부여하는 식이다. 

송년회 등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주범은 범행 대상과 술을 마시면서 미리 섭외한 꽃뱀 역할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게 합석을 권유한다.

이후 노래방으로 유인해 범행 대상에게 만취할 때까지 술을 권한 후 꽃뱀 역할의 여성만 두고 자리를 피하는 수법이다. 일정 시간을 기다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 꽃뱀 역할의 여성이 눈물을 흘리는 등 성추행을 당한 것처럼 연기하고, 공범들은 만취한 피해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추궁하며 협박했다. 

공범들은 꽃뱀 역할의 여성을 귀가 시킨 후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석만남을 통해 만난 남성을 술집으로 유인해 바가지를 씌우는 범죄도 기승을 부렸다. 이들은 남성들이 메뉴판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고가의 술을 주문하는 수법으로 돈을 뜯어냈다. 

여성 섭외해
지인까지 농락

예를 들어 한 남자는 맥주 한두 잔을 비우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후 두 곳의 술집서 나온 술값 370만원을 결제해야 했다. 카드 한도가 넘어서면 이른바 ‘어깨’들이 나타나 은행서 돈을 찾아오도록 협박했다.

꽃뱀 여성들은 대부분 인터넷 아르바이트 모집공고를 보고 찾아왔다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범행에 가담했다. 나이트클럽 등에서 만난 남성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간단하게 맥주나 한 잔 더 하자’는 말로 꼬드겨 술집으로 유인하고 술값 바가지를 씌웠다. 

술집 점주는 여성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의사나 판사 등은 데려오지 말라고 사전 교육까지 시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과거 술집, 나이트클럽 등 유흥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꽃뱀은 이제 집회 등 생소한 장소까지 그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노래방 등의 원래 활동 장소로 유인해 돈을 갈취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보수단체의 집회가 활발했던 무렵 그들의 단체채팅방에는 이른바 ‘꽃뱀주의보’가 내려졌다. 집회에 참석한 노인들을 상대로 “술 한 잔 하자”며 접근한 뒤 노래방 등에 데려가 바가지를 씌우는 수법이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일을 당했다는 부끄러움에 관련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집회가 열리기 전날 관련 내용을 공지하는 단체채팅방을 통해 만남 장소와 시간을 결정한다. “내일 대한문에서 봐요, 커피 한 잔 해요” 등의 방식이다. 

현장 만남이 성사되면 개인 채팅을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집회가 열리는 날 실제 만남이 이뤄진다. 보통 팀을 구성해 움직이는 꽃뱀 사기단은 만남 장소서 술판을 벌인다. 피해자가 거나하게 술에 취하면 사기단은 “노래나 부르자”며 노래방으로 이끈다.

합의 하에 했는데
“당했다” 돈 뜯어내

피해자가 자리를 비우면 그 때부터 사기단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이때 꽃뱀들은 피해자가 두고 간 금반지, 시계 등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피해자가 노래방으로 다시 돌아오면 점주는 술값을 요구한다. 술값은 보통 술집서 받는 것보다 2배 이상 비싸다.

모든 일처리가 끝나면 사기단은 단체채팅방과 개인채팅방서 모두 자취를 감춘다. 노인들은 수치심에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못한다. 사기단은 여러 개의 집회 단체채팅방을 드나들며 또 다른 범행대상을 물색한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꽃뱀 범죄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젊은 재력가, 중년 사업가 등 돈이 많은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와는 달라진 풍경이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외로움을 파고드는 방식으로 수법도 진화 중이다. 

꽃뱀들은 낮 시간대 공원 등에 혼자 앉아있는 노인에게 접근한다. 처음에는 말동무로 시작하지만 상대가 관심을 보이는 등 호감을 나타내면 성매매를 하자고 유인한다. 돈은 10만∼15만원가량 요구한다.

범행 대상이 꽃뱀의 요청에 응하면 집으로 이동한다. 꽃뱀은 먼저 돈을 받고 담배를 사오겠다고 둘러댄 후 그대로 도망간다. 심지어 노인들에게 같이 살자고 접근한 후 급전이 필요하다고 돈을 뜯어낸 후 잠적하는 사례도 있다. 

평소 다른 사람과 별다른 교류가 없던 노인들은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들에게 선뜻 큰돈을 내어준 것.

2015년에는 충북 보은서 다방을 운영하던 한 여성이 단골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관계를 갖고 운영자금 등을 갈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피해자들이 경작한 농산물을 비싼 값으로 팔아주겠다며 가로채기도 했다. 

해당 여성은 노인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해 환심을 사거나 스킨십을 하면서 자신을 믿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에는 치매노인을 꾀어 혼인신고까지 한 뒤 90억원대의 재산을 빼돌리고 이혼한 꽃뱀이 구속돼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던 80대 노인에게 이모씨는 건강에 도움을 주겠다고 접근했다. 

신뢰를 쌓아가던 이씨는 형제들과 상속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 도와주겠다고 달콤한 말을 흘린다. 이씨를 철석같이 믿은 노인은 재혼은 물론 재산처분권까지 맡겨 버렸다.

철썩 믿은 노인
전 재산 털려

심지어 “모든 재산을 이씨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유언장과 양도증서까지 만들도록 했다. 이 과정서 이씨는 노인이 자신을 더욱 믿도록 혼인신고까지 했다. 하지만 이씨는 가로챈 돈을 가지고 동거남 등과 함께 호화롭게 지냈다. 

혼인관계를 지속하면 재산상 손해가 난다는 말로 이혼을 제안해 법적 관계도 정리했다. 그 사이 노인의 모든 재산은 처분됐다. 노인의 자녀들은 미국에 있어 이씨에 대해 이렇다 할 제지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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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