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여의도 탈환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1.29 10:32:53
  • 호수 1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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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내주고 서울 취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여유롭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강세가 각종 지표서 드러나고 있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있다. 6월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까. 그도 아니면 이대로 민주당 강세가 이어져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속내일까.
 

이대로라면 한국당의 필패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그 결말을 예상케 한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서 민주당 강세가 뚜렷하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젊고 참신한 인재영입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영입 리스트에 올려놨던 사람들로부터 퇴짜를 맞는 실정이다. 현 정부의 실축만 기다리기에는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다.

퇴짜 맞아도
여유만만∼

그러나 한국당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정부·대여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낙숫물로 극적인 반전을 꾀하기에는 부족하다. 평창동계올림픽, 가상화폐 이슈 등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를 흔들고 있음에도 여전히 60%대 전후를 유지하며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다.

정당 지지율을 보면 한국당 입장서 더욱 갈 길이 멀다.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등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 민주당은 50% 내외, 한국당은 20% 내외를 기록하며 더블 스코어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물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민주당은 출마를 희망하는 선수들이 줄을 잇는 반면, 한국당은 이렇다 할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여의도 한 커피숍서 사진 공동 기자간담회 자리서 “몇 달간 인재영입을 위해 전국을 다녀보니 민주당은 이미 (인재풀이)꽉 차 있어서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기회를 주지 않고, 한국당은 누가 봐도 미래가 없어 뜻을 펼칠 공간이 없다”고 한 발언은 두 당의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당은 인재영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최근 부산시장 후보로 공을 들였던 장제국 동서대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했으며 경남도지사로 하마평에 올랐던 안대희 전 대법관 또한 출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장 후보도 활로를 못 찾고 있다. 지난해 말 홍정욱 홍정욱 헤럴드 회장 영입에 나섰다가 퇴짜를 맞았다. 당시 홍 대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인재영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실적은 제로(0)다. 

본인이 직접 인재영입위원장 완장을 차고 있음에도 성과는 전무하다.

당내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경남도지사로 박완수 의원, 부산시장으로 조경태 의원 등에게 당이 손을 내밀었다가 퇴짜를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두 사람 모두 현재 자리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출마 고사가 지방선거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당의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게 중론이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홍 대표의 ‘홈그라운드’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 뼈아프다.

한국당은 그들이 제시한 지방선거 ‘마지노선’을 지키지 못할 위기다. 앞서 홍 대표는 부산·인천·대구·울산·경북·경남을 사수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부산·경남서 출전할 선수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 홍 대표의 계획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반면 민주당은 최소 9지역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정책·전략을 다루는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이 2014년 지방선거서 이긴 곳이) 9곳인데, ‘9 + 알파’로 현상유지 이상의 승리를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복수의 조사기관서 내놓는 예상치만 놓고 보면 연구원의 기준 설정은 다소 보수적이다. 

전국 17개 지역서 압승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9곳서 경기·부산·경남·대구 등 한국당이 광역단체장을 가져간 지역까지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몇몇 언론에서는 싹쓸이 전망도 심심찮게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민주연구원은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 지지도가 높고 여당으로서 선거를 치름에도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이유다. 자칫 샴페인을 일찍 터트리는 모습이 유권자들의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간 가는데
선수가 없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경기·인천·부산·경남서 (추가 승리를)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속으로 목표를 세우고 있다”면서도 지방선거 낙승에 대해선 “꼭 그렇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승리론’은 충분한 근거를 가졌다. 승리론을 넘어 ‘낙관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현역 의원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 

민주당 현역의원 121명 중 30여명이 자천타천으로 광역단체장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서울시장 자리는 박원순 시장의 3선 도전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여기에 4선인 박영선 의원, 3선 민병두·이인영·우상호 의원, 재선 신경민·전현희 의원 등이 출마 예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추미애 대표도 출마설의 중심에 있다.

경기도지사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도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3철’ 중 한 명인 전해철 의원이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석현·안민석 의원도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인천시장은 친노(친 노무현)계 핵심인 박남춘 의원과 19대 대선 때 문재인 당시 후보 선대위서 공보단장을 맡았던 윤관석 의원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충북도지사는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오제세 의원, 가상화폐 거래소 보안 취약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변재일 의원, 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인 도종환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묶인다.

충남도지사는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양승조 의원이 이미 출마 선언을 한 상태다. 양 의원은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과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전시장직에는 4선의 이상민 의원과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재선의 박범계 의원 등이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점쳐진다.

경남도지사는 친노의 성지라 불리는 경남 김해에 당선된 민홍철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경수 의원 출마 여부가 변수다.

실적 ‘0’에도 당당한 이유는?
민주당 30명 단체장 출마 예상

부산시장은 해양수산부장관인 김영춘 의원, 노 전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낸 박재호 의원, 마찬가지로 노 전 대통령 비서실서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최인호 의원 등이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대구시장은 행정안전부장관인 김부겸 의원, 제주도지사는 제주서 내리 4선에 성공한 강창일 의원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남도지사는 민주당 소속으로 유일한 광주·전남 지역 의원인 이개호 의원이 2월 말 경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민주당 현역 의원 중 많은 수가 대거 지방선거 출마자로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은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본선보다 치열한 경선은 달리 얘기하면 경선만 뚫으면 당선은 따좋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출마를 생각하는 의원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유혹이다.

문제는 현역 의원들의 대거 이탈로 민주당이 원내1당 자리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국회의원이 의원직 사퇴 없이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된 공직선거법 제53조 2항에는 ‘국회의원이 지자체장 선거에 입후보한 경우 선거일 30일 전까지 의원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최종 광역단체장 후보가 되면 의원직을 오는 5월14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당내 경선은 선거일 30일 이전에 끝난다. 이 같은 이유로 의원들의 ‘줄 사퇴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보들 입장서도 굳이 의원직을 내려놓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본선보다 치열한 경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배지’를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후보가 그렇지 않은 후보에게 “돌아갈 곳을 남겨두고 선거에 임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씌운다면 전자에게로 선거의 판이 기울 공산이 크다. 

결국 현역 의원의 줄 사퇴는 그 규모가 크든 작든 ‘4말 5초’에 일어날 현상임이 분명해 보인다.

너도 나도
출마 선언

현재 민주당의 의석수는 121석, 한국당 의석은 117석이다. 단 4석 차이에 불과하다. 앞서 30여명의 자천타천 민주당 지방선거 출마 예상자 중 단 5명만 현역서 내려와도 원내1당 자리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에게 돌아간다.

한국당의 원내1당 복귀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사퇴 외에도 몇 가지 복합적인 변수가 존재한다. ‘재판에 의한 의원직 상실’ ‘통합신당 이탈’ ‘구 여권 인사의 복귀’ 등이다.

앞서 엘시티 비리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배덕광 한국당 의원은 국회에 의원직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118석이던 한국당의 의석수는 117석이 됐다. 

배 의원 외에도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챙긴 혐의를 받는 최경환 의원, 뇌물과 불법 공천헌금 명목으로 13억원이 넘는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우현 의원, 지역구 업체들로부터 약 1억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원유철 의원,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권석창 의원 등이 한국당 소속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상당수의 의석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재판에 의한 의원직 상실이 한국당의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변수라면 ‘통합신당 이탈’ ‘구 여권 인사의 복귀’는 당의 규모가 커질 수 있는 변수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은 통합 초읽기에 들어갔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창당 1주년을 맞은 지난 24일 오전 당 소속 의원들을 소집해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하기 전인 2월7일 국민의당과의 통합전당대회 개최를 하자”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국민의당은 2월4일 전당대회(이하 전대)를 열어 바른정당과의 통합 관련 안건을 의결하기로 했다. 다음날인 5일에는 바른정당이 당원대표자회의를 열어 국민의당과의 통합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보수의 성지인 대구를 찾아 국민통합포럼이 주최하는 ‘로봇산업 및 4차 산업혁명’ 정책간담회에 유 대표와 함께 참석하는 등 통합의 불씨를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121 대 117’불안한 1위
호남파, 민주 복당이 변수

2월4일 국민의당 전대서 바른정당과의 통합 관련 안건이 의결될 경우 정치구도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우선 이틀 뒤인 6일 국민의당 통합반대파인 ‘민주평화당’이 창당 결의대회를 연다. 

이 중 일부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민주당의 의석수는 기존 121석에서 늘어나게 된다.

통합신당서 한국당으로 의원들이 넘어가는 그림도 그려진다. 통합이 이루어진 후 지방선거까지는 4개월이란 기간이 남는다. 어떤 정치적 이동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앞서 바른정당 소속이던 박인숙 의원은 지난 16일 탈당해 한국당으로 복당한 바 있다. 당시 유 대표는 “나를 포함해 아무도 (박 의원의 탈당을)몰랐다”라고 말했다. 언제 깜짝 탈당이 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님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정현 의원 등 구 여권 인사의 복귀 여부도 주목할만하다. 한국당 출신 무소속인 이 의원은 지난해 1월 “전직 당 대표로서 모든 책임을 안고 가겠다”며 한국당 탈당을 선언했다. 인명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핵심 친박 탈당 요구’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후 지난해 6월 국회 의원회관서 우박피해 관련 간담회 자리서 “한국당 복당에는 지금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탈·합류
복잡한 셈법

민주당 입장에선 문재인정부의 원할한 국정운영을 위해 원내1당만큼은 꼭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다. 안 그래도 ‘여소야대’의 상황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부여당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원내1당이 누리는 프리미엄인 국회의장을 국회 하반기에 한국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여야는 오는 5월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을 협상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현역 물갈이 신호탄
현역 단체장들 긴장

더불어민주당이 6·13 지방선거서 전략공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당 지방선거기획단은 지난 24일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15년 폐지했던 전략공천제를 부활시킨 셈이다. 

현 당헌·당규 상 전략공천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이는 광역단체장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에 기초단체장에 대한 전략공천이 이번에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 일부 현역 기초단체장들은 이번 전략공천 도입이 ‘물갈이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아직 내부적인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지도부가 일부 지역에 대해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현역 기초단체장을 배제하고 새로운 인물을 내세울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6·13 전략공천제 도입
광역단체장만 대상으로

당은 앞서 지방선거를 통해 기초단체장을 대거 배출했다. 이에 이번 지방선거서 상당수 출마자들이 재선 내지는 3선 도전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선 단체장에 대한 지역의 피로감 내지는 당이 판단했을 때 경쟁력이 부족한 인사들의 경우 전략공천을 통해 언제든지 배제될 수 있어 현역 단체장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방선거기획단은 전략공천의 방법과 비율에 관해 논의를 조금 더 진행한 후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추후에 전략공천제 도입안에 대해 발표하기로 했다. 도입안 발표 이후 크게 반발하는 지역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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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