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재일한국인 작가’ 곽덕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선 노화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37년 일본 교토서 태어난 곽덕준 작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체성 논란서 자유롭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 국적이 박탈되면서 그는 이민족으로 분류됐다. 결국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았다.
 

갤러리현대가 지난 18일부터 일본 교토서 활동 중인 재일작가 곽덕준의 개인전 ‘1960년대 회화-살을 에는 듯한 시선’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곽덕준이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60년대 초기 작품으로 구성됐다. 

1964년부터 1969년까지 5년에 걸쳐 제작한 회화와 소묘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한자리에 모아 전시된다.

정체성 혼란

1960년대 곽덕준이 제작한 회화는 총 37점이다. 이 중 20점이 갤러리현대에 걸린다. 나머지 17점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교토 국립근대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등 대부분 한국과 일본의 국공립미술관에 소장돼있다.

일본에서는 1998년 동경 아사히갤러리, 2014년 오사카 국제국립미술관서 곽덕준의 1960년대 작품으로만 특별전이 개최됐다. 2015년 이후 갤러리현대서 3년 만에 개최된 두 번째 개인전에는 소묘 34점 등 총 54점이 공개된다.


곽덕준은 23세에 결핵을 앓아 한쪽 폐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 후 3년간은 생사를 넘나드는 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그때 그가 선택한 것은 그림이었다. 그 시기 곽덕준의 그림은 젊은 날 격투의 흔적이자 우울함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 했던 어두운 청춘의 상징이다.

양국에 모두 속하지 못한 이방인
1960년대 초기작 국내 최초 공개

그는 투병생활 동안 병실 침대 위에서 근처의 집들과 자연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곽덕준이 그려낸 엄청난 수의 소묘에는 신비로운 형상이 얽힌 것처럼 교착하는 추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1960년대 회화로 이어졌다.

곽덕준은 합판 위 석고와 호분으로 두꺼운 층의 요철을 만들어 채색하고 목공용 본드로 코팅한 후 못으로 무수한 선을 긁어내기를 반복한다. 특수한 기법으로 제작된 회화의 단단한 표면은 마치 태고의 동굴 벽화를 연상시킨다.
 

곽덕준이 즉흥적으로 그려낸 선묘는 자유로운 곡선이 돼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멀리서 화면 전체를 조망하면 섬세한 선묘와 기괴한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고 조합돼 사람의 얼굴이나 인체로 나타난다.

자신에게 남은 신체적 트라우마와 태생적 딜레마가 뒤섞인 심상의 풍경이 구현된 작가 특유의 화면 속에는 인간의 형상이 해학적으로 담겨 있다. 그들은 고독감과 얽매임 동시에 강한 생명력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곽덕준은 국적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위화감과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을 함께 맛봤다. 역사와 정치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변하는 것을 느낀 그는 사회로부터 농락당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정신적 방랑자라고 표현했다. 


이로 인한 갈등은 이후 그를 움직이는 강한 에너지로 작용했다.

23세때 결핵으로 한쪽 폐 잘라
신체적·태생적 트라우마 내재

곽덕준은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에 존재하지만 예술이라는 보편적인 공통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공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만큼 이 정도로 모국과 공통의 장을 찾을 수 있는 예술은 없을 것”이라며 “미술작품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 중에서는 역시 예술가의 지역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예술행위는 재일한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제외하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야스기 마사히로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주임연구원은 “곽덕준은 전후 일본 사회서 재일한국인으로, 예술가로 항상 타자에 머물러야 했던 소외감에 시달리면서도 그 세계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시대의 증언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태도서 그의 일관된 자세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무엇보다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조형세계로 전개해온 재능의 희소성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정신적 방랑자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평생 일본과 한국 모두서 이질적인 존재로 살아온 곽덕준만의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표현이자 삶의 성찰이 발현된 결과물”이라며 “여든을 맞이한 원로 화가의 초기작을 통해 반세기에 이르는 조형적 역작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jsjang@ilyosisa.co.kr>

 

[곽덕준은?]

▲1937 일본 교토 출생
▲일본 교토시립 히요시가오카 고등학교 일본화과 졸업(1955)
▲현재 교토서 거주 및 작품 제작 활동 중

▲개인전

2018 ‘1960년대 회화-살을 에는 듯한 시선’ 갤러리현대, 서울
2015 ‘타임리스’ 갤러리현대, 서울
2014 ‘곽덕준: 1960년대의 회화’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 오사카, 일본
2012 ‘곽덕준: 넌센스와 유머로 보여준 세계의 무의미’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06 ‘곽덕준 초대전’ 라인갤러리, 서울
2006 ‘곽덕준, 또 다른 1960년대’ 갤러리 마로니에, 교토, 일본
2006 ‘대통령과 곽’ 미타카시미술갤러리, 동경, 일본
2003 ‘올해의 작가 2003: 곽덕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2 ‘곽덕준 개인전’ 박영덕화랑, 서울
2001 ‘곽덕준 개인전’ 니가타시미술관, 니가타, 일본
2001 ‘재외작가전: 곽덕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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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