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가려진 왕회장 제약사 미등기 총수 백태

돈만 챙기고 법적 책임은 일꾼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재계 오너 일가의 미등기 임원 논란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권리는 누리고 싶고 의무는 피하려는 얄팍한 꼼수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그래도 변할 의지는 안 보인다. 제약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따가운 눈총을 받는 업체들을 확인했다.
 

2013년부터 미등기 임원에 대한 연봉공개 의무와 관련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효됐다. 개정안은 5억원 이상의 대기업 등기임원의 개인별 보수에 대한 공시의무를 명문화했다. 고액 연봉을 받는 기업 총수들의 연봉이 공개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부담스러워”
연봉 공개 때문?

그러나 기대감이 사라지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 기업들이 올린 사업보고서에서 총수들의 연봉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과는 반대로 대거 기업 오너 일가 경영인들이 미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려 자신의 연봉을 감췄다. 

이 같은 기조는 재계 상위 그룹부터 중견그룹까지 퍼져있다.

지난해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회계연도 2016년 1월부터 12월 사이 1878개 전체 상장사 임원 1만1706명 중 보수가 공시된 임원은 총 694명으로 전체 임원의 5.3%에 불과했다. 


전체 사내이사 6375명 대비로는 보수가 공개된 임원은 10.89% 수준이다.

제약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허일섭 녹십자 회장은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인 2013년까지 등기임원이었으나 이후 등기임원에 물러났다. 

그러나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녹십자의 등기이사(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위원 제외)는 4명이 있는데 1인당 평균 2억900만원을 보수로 챙겼다. 이들 가운데 개별 보수 공개 대상인 연봉 5억원 이상의 고액연봉자는 없었다.

허 회장은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5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경영대학원서 석사학위를, 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회사 생활은 1988년 한일시멘트서 이사로 시작했다. 1991년부터는 녹십자 전무이사로 자리를 옮긴 후 전 녹십자 회장이자 형인 허영섭 회장이 작고하면서 2009년 회장 직에 올랐다.

그는 녹십자를 1조원대 회사로 키웠다. 녹십자의 2016년 기준 매출액은 1조331억원 규모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693억원, 629억원 수준이다. 

그는 녹십자 지분 11만7173주를 가지고 있다. 지분율은 1% 수준이지만 녹십자그룹의 지주사이자 녹십자 지분 50.06%를 가지고 있는 녹십자홀딩스를 통해 녹십자를 지배한다. 녹십자홀딩스는 허 회장의 우호지분이 43.46% 달한다.


날선 비판에
미동도 없어

한미약품의 임성기 회장도 미등기 임원이다. 임 회장은 2014년 1분기까지 등기임원으로 있다가 같은 해 2분기부터는 미등기임원이 됐다. 이에 따라 2013년 임 회장의 연봉이 공개됐다. 

그의 당시 연봉은 8억4600만원이었다. 하지만 회장직은 계속 유지한 채 현재까지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2014년 1분기 당시 등기임원은 총 5명이었는데 이들의 누적 보수 총액은 6억200만원이었다. 

1인당 평균 보수액으로 환산하면 1억2000만원 수준이다. 한미약품도 녹십자와 마찬가지로 5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자는 없다. 

임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미약품은 2016년 연결 기준 매출액 8827억원, 영업이익 267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302억원 수준. 전년에는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하기도 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지분 5만7857주를 전 직원에게 증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도 했다. 1100억원 규모로 전 직원에게 증여하기까지 1년8개월이 걸렸다.

일동홀딩스 윤원영 회장도 임원 등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연결 기준 7951억원의 매출을 이끌었다. 현재 일동홀딩스의 지분 6.42%를 가지고 있다. 

윤 회장의 아들인 윤웅섭씨가 9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씨엠제이씨가 지분률 8.34%로 최대주주 자격을 가지고 있고 윤 회장이 뒤이어 2대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윤 회장도 다른 많은 총수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 전인 2012년까지 임원등기를 했다가 이듬해 미등기임원으로 전환했다. 그가 등기임원에 포함돼있던 2012년에는 총 5명이 등기임원이었는데 이들에게 총 16억7230만원의 보수가 지급됐다가 이듬해 15억7280만원으로 줄었다. 

2013년 이후 5억원 넘는 등기임원이 없다.

제일파마홀딩스 한승수 회장 역시 미등기임원이다. 제일파마홀딩스는 2016년 기준 6172억원 매출을 시현했다. 영업이익 93억원, 당기순이익 78억원 수준이다. 

제일파마홀딩스는 지난해 제일약품 등을 주력 계열사로 하고 제일헬스사이언스, 제일앤파트너스 등 4개 사업부분으로 구성된 지주사 체제를 갖췄다. 현재 지주사인 제일파마폴딩스는 오너 3세 승계 작업이 한창이다. 


한상철 사장이 제일파마홀딩스 대표이사직에 오르면서 승계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는 등기임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실적 부진에도 
꼬박꼬박 배당

제일파마홀딩스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한 회장이 27.31%의 지분으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이어 한응수씨가 6.91%, 한 사장이 4.66%, 한 회장의 부인 이주혜씨가 2.40% 등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다. 2016년 기준 제일파마홀딩스의 등기이사는 총 4명이다. 이들의 보수의 총 합은 10억6842만원이다. 1인당 평균 보수액은 2억6000만원 수준이다.
 

신풍제약 역시 오너 일가인 장원준 사장이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 사장은 신풍제약의 지분 5.12%를 가지고 있다. 그의 어머니 오정자씨는 11.95%의 지분율로 집계됐다. 

신풍제약의 최대주주는 지분 42.75%를 가지고 있는 송암사다.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송암사는 장 사장이 최대주주로 돼있다. 현재 전문경영인 유제만 대표이사가 회사를 이끌고 있지만 향후 장 사장이 회사를 이끌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장 사장은 2004년 3월 미등기임원으로 선임됐다. 따라서 그의 연봉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2016년 기준 등기이사는 2명이다. 보수총액은 3억3791만원이다. 1인당 평균보수액은 1억6895만원 수준이다. 최근 3개년 신풍제약의 실적은 부진했다. 

매출액을 살펴보면 2014년 2095억원, 2015년 1854억원, 2016년 1822억원 등으로 실적이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역시 미등기 임원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17년 9월30일 사업보고서 기준 임원 및 직원의 현황은 강신호 명예회장과 강정석 회장은 미등기임원으로 연봉 확인이 불가하다. 

2016년 기준 총 5명의 등기이사가 있는데 이들은 총 9억6600만원을 보수로 챙겼다. 1인당 평균보수액은 1억9300만원 수준으로 동아쏘시오홀딩스의 1년 매출은 7261억원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759억원, 1756억원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강 회장의 경영자로서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자회사 동아에스티 경영과 관련 2017년 8월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했다. 

그러나 강 회장은 현재까지도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업종 불문하고 미등기임원이 문제가 되자 관련법이 개정됐다. 개정안은 연봉 5억원 이상을 받으며 회사 보수 상위 5위 이내에 들면 급여 내역을 공개하도록 했다. 또 일반 직원도 연봉 5억원 이상에 상위 5위 안에 들면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것은 올해 공시하는 사업보고서부터다. 이에 따라 그동안 숨겨왔던 총수들의 연봉 내역에 대해 눈길이 쏠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개정안 시행
올해 다를까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 총수들이 회사 실적과 관계없이 연봉을 챙겨가는 경우가 상당했다”며 “관련법 개정안에 따라 이들의 연봉이 공개되면 상식밖에 연봉 책정은 줄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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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