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총수들의 쓸쓸한 연말 스케치

실적에 웃고 사정에 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다사다난했다. 재계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유쾌하지 못한 한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강도 높은 사정당국의 압박으로 총수들 역시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난히 쓸쓸한 연말이다.
 

삼성은 올해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위기로 읽히는 모습이다. 총수의 부재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몇 해째 와병 중이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10일 밤 심근경색을 일으킨 뒤 3년여간 계속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아직도 빈자리
기약없는 복귀

현재 이 회장의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측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건강하다. 이따금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병실 복도를 오갈 만큼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만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 회장도 연말을 편하게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룹 안팎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주가로 반영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자료에 따르면 이달 12일 기준 현대차그룹주 11개 종목 시가총액 합계는 93조5388억원으로 2014년 말(114조4553억원)보다 16.08% 감소했다. 시총이 뒷걸음 친 것은 10대 그룹 가운데 현대차가 유일하다. 


시총감소 원인으로는 부진한 실적 전망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증권가는 올 한해 현대차의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에 따라 수출 환경 여건이 부정적으로 바뀐 것이 뼈아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마음 편히 한해를 마무리하기 어렵긴 매한가지다. SK그룹 역시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우선 그룹내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SK케미칼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인 ‘홈클리닉 가습기 메이트’의 주성분을 제조해 애경에 납품했다. 그동안 양사는 제품 라벨에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공정위는 지난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올해 재조사에 들어가 결국 고발에 이르게 됐다. 공정위는 최근 심사보고서를 해당 업체에 통보하고 이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해당 사건을 재조사한 TF는 지난 19일 “(사업자가)안전 관련 정보를 표시하지 않은 건 부당한 광고”라고 지적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이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SK건설은 이달 초 검찰로부터 본사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SK건설이 평택 주한미군기지 공사 입찰 과정서 수십억원의 돈을 미군기지 공사 관계자 등에게 건네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SK건설이 건넨 뇌물을 받고 일감을 준 미군 관계자는 본국으로 도주했다가 현지서 체포돼 미 연방 검찰에 기소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에
세무조사도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그룹이 사정 당국 칼날 위에 서면서 ‘좌불안석’인 모양새다. 타깃은 LG상사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 4대 그룹 가운데서는 처음이다. 

그동안 LG상사는 그룹내 승계 작업의 핵심 발판으로 평가됐는데 조사4국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국세청의 중수부라 불리는 조사4국은 통상 탈세 및 탈루 정황이 포착된 경우 투입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정기 세무조사의 경우 4년마다 실시하는 것이 맞지만 조사4국이 투입되는 일은 없다”며 “그동안 의혹이 있었던 부분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 오너 일가가 24.7%의 지분을 쥐고 있는 LG상사는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상사의 특성상 역외 거래가 많은데 부적절한 자금 흐름이 포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에서는 문재인정부 출범 후 LG그룹이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사정당국의 칼날을 받은 점을 주목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각종 리스크에 따뜻한 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 신 회장은 경영 비리 관련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해 올 한해 치열하게 법정 공방을 벌였다. 부진한 실적도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요인이다. 

롯데그룹은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잘나가던 롯데백화점이 임금을 동결했다. 2009년 이후 8년만이다. 롯데백화점은 3분기 매출액 1조9020억원, 영업이익 570억원으로, 각각 작년 동기 대비 3.6%, 8.6% 줄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유통과 면세점 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다른 계열사도 큰 폭의 임금 인상은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롯데제과 등 식품 계열사의 경우 평년 수준인 3% 내외 수준 인상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계열사 중 실적이 양호한 롯데케미칼은 이보다 더 높은 폭으로 인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오너 일가가 검찰로부터 기소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편치 않은 연말을 보낼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 따르면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이 홈쇼핑 채널 사업권 재승인을 청탁하면서 대가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검찰로부터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불구속 기소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허 부회장은 고(故)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의 아들로 허 회장의 막냇동생이다. GS홈쇼핑은 2013년 전 전 수석이 회장·명예회장을 지낸 한국e스포츠협회에 1억50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각종 현안들에 피로감 극대
당국 칼날 위 아슬아슬 행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승계구도를 놓고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세 아들의 승계에 대한 윤곽을 잡아왔다. 

재계에서는 태양광, 화학은 첫째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금융은 둘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건설은 셋째 김동선 한화건설 전 팀장에게 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맡길 것으로 예상해왔다.

문제는 셋째 김 전 팀장이었다. 김 전 팀장은 두 차례 폭행사건을 일으키면서 자질 논란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연초에 폭행사건으로 한화건설을 떠난 뒤 1년이 못가 또다시 술자리서 폭행 시비가 불거졌다. 

1년에 두 차례나 자제력을 잃은 모습을 보이면서 승계 후보자의 자격에 적절성이라는 물음표가 찍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노사 갈등
편법 승계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는 노사간 팽팽한 갈등을 올 한해 마무리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해결 방안 모색에 골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현재 2016년도와 2017년도 임금과 단체협약 통합교섭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근 권명호 울산 동구청장은 지난 20일 동구청 광장서 지역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 등 60여명과 함께 현대중공업 노사의 연내 임단협 타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만큼 임단협에 가지는 지역사회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다. 최근 실무교섭과 본교섭을 번갈아가며 진행하면서 연내 임단협 마무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측 간 입장차가 워낙 커 해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중론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정 당국의 칼날 위에 있다. 경찰은 호텔 공사비 30억원을 자택 공사비로 유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위반 배임)로 조 회장과 배우자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따르면 조 회장과 이 이사장은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본인의 소유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용 총 7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비슷한 시기에 영종도 H2호텔(전 그랜드하얏트인천) 공사비용으로 떠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두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할 만큼 강력한 수사 의지를 표명했지만 검찰이 반려하면서 불구속 상태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조 회장이 현재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법리 다툼이 있을 전망이다.

조 회장의 제수인 최은영 전 한진해운(현 유스홀딩스)은 법정구속 상태다. 이달 8일 열린 1심 재판서 재판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전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또 벌금 12억원과 추징금 5억300여만원을 선고했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신청을 발표하기 전 미공개 정보를 알고 가지고 있던 주식을 매각해 약 10억원의 손실을 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 전 회장과 검찰은 법원이 선고한 양형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함에 따라 해를 넘겨 법정 다툼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사정 기관의 압박을 받고 있어 마음 편한 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회장은 현재 가족 명의의 회사를 통해 수십억원 대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고발당했다. 공정위도 친족회사 7곳을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 현황 신고 때 누락한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역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공정위가 미래에셋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어서다. 문제가 확대될 경우 지배구조 개편에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7월 금융당국에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 인가 심사가 보류됐다고 지난 15일 공시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7월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 인가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서면 자료 요청 등 조사 진행으로 인가 심사가 보류될 것이라고 금융당국으로부터 지난 14일 통보받았다”고 설명했다.

악화된 건강관리부터
해결 못한 문제들까지

자본시장법상 대주주를 상대로 형사소송 절차가 진행되고 있거나 금융위, 공정위, 국세청, 검찰청, 또는 금감원 등의 조사, 검사 등의 절차가 진행되는 경우에는 인허가를 보류한다. 금감원은 자산 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통상적 검사 도중 미래에셋대우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달 초 금융감독원서 미래에셋대우가 공정거래법 위반 징후가 있다며 통보해왔다”며 “관련 절차에 따라 해당 업체에 자료 요청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래에셋대우 지배구조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특히 계열사들이 박현주 회장(48.63%)과 부인(10.24%) 등 박 회장 일가가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있었다. 

미래에셋대우는 이번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현재 내부거래 관련 자료 제출을 준비 중”이라며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도 올해 초, 조현준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줬지만 총수 시절 벌어진 일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0월 탈세 혐의로 진행된 2심 재판이 재개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2003년부터 10여년간 8900억원대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37억원을 포탈하고 2007~2008년 효성 회계처리를 조작해 주주배당금 500억원을 불법으로 취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서 법원은 조 명예회장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다만 조 명예회장이 고령에 과거 담낭암 판정을 받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점을 들어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2018년도…
강한 압박 예고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재계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이어지고 있다”며 “지배구조 상단에 있는 기업 총수들의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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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