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가평 별장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16 10:36:20
  • 호수 1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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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만 30억대 이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이던 시절부터 서울시장 때까지 애용한 ‘별장’. 그 별장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된섬’에 위치해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지난 2006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과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그 별장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의 ‘현대가 인맥’이 자자손손 물려주는 ‘부의 대물림’ 현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평 한적한 곳에 위치한 별장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해당 별장은 국도 46호선(경춘국도)서 신청평대교를 건너 설악면 쪽으로 가다가 사룡리 방면으로 10㎞가량 떨어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북한강 자락에 위치해 있다. 별장이 있는 ‘된섬’은 지역 주민들 사이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대로변서 진입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야 별장에 닿을 수 있다. 남향으로 북한강 줄기가 흐르고 있다. 북한강 뒤로는 산이 막고 있는 밀폐된 구조다.

한적한 장소
실소유주는?

별장 진입로 입구는 철대문으로 막혀있다. 철대문을 지나 15분 정도 걸어가면 20여m 간격으로 놓인 단층 주택 4동이 남향을 보고 나란히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15평형 3개와 25평형(사진) 1개동이다. 건물 사이에는 테니스장 등이 위치해 있다.

주택 내부는 방과 화장실 각 한 개, 그리고 거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거실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제작돼 거실서 북한강과 강변의 맞은쪽 야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두꺼운 커튼으로 통유리를 모두 가려놨었다. 앞마당에는 수백 평의 잔디밭과 벚꽃나무 등 정원수로 단장해 놓았다.

별장 부지는 1만3200㎡(4000평), 공시지가 기준 28억7100만원(1㎡당 21만7500원)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는 토지만 계산한 것으로 건물까지 포함하면 그 가치는 훨씬 높다. 인근의 한 부동산업자는 “모르긴 몰라도 35-40억원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당 별장은 지난 1988년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서 현대그룹 회장으로 승진한 때 건축됐다. 호화 파티 의혹이 제기됐을 때 당시 서울시는 “해당 별장은 현대건설이 장기 근무한 임원들을 위해 지어 나눠준 것”이라며 별장의 실소유주가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별장이 이 전 대통령의 소유임을 짐작케 하는 정황은 곳곳서 발견된다. 별장 인근서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 A씨는 <일요시사>에 “별장이 아니고 이 전 대통령 집안의 ‘안가’”라고 설명했다.

현대가 인맥? 
이렇게 관리!

지난 2006년 4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가평 ‘별장’서 선모 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과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선 전 협회장은 그해 3월 이 시장을 위해 테니스장을 사전에 독점 예약하고 테니스장 사용비용을 대납토록 해 ‘황제 테니스 파문’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우리당이 제기한 별장서의 호화 파티 의혹은 황제 테니스 파문의 장본인인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였는지를 입증하고자 하는 취지로 제기됐다.
 

해당 별장서 지난 2003년 10월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이 30대 중반의 성악과 강사를 포함해 몇 명의 여성들과 함께 별장에서 파티를 개최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안민석 우리당 의원은 “선 전 협회장이 여성들을 파티에 참석하도록 주선했다”며 “이 자리서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은 여흥을 즐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별장은 이 시장을 비롯한 7인의 현대 고위간부 출신 공동 소유로 등기부상 소유주는 이 시장의 처남과 현대 계열사 출신 6인 등 7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당의 의혹 제기에 당시 서울시 측은 “별장 파티는 없었고 모임의 날짜나 별장 소유 모두 허위”라며 “안 의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이런 정치공세를 계속해서 시정을 방해하고 이(명박) 시장을 음해해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보려는 정치공작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2004년 7월 테니스 동호인 모임의 수련회에 가서 저녁에 불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테니스를 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된섬’에 위치…한적하고 은밀한 곳
인근 주민 “별장 아닌 MB ‘안가’”

앞서 안 의원이 언급한 처남은 김재정씨다. 김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다스(DAS)의 최대주주이자 회장이었다. 다스는 최근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를 최고재무책임자로 선임해 실소유주 논란을 불러왔다. 

별장의 경우처럼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진짜 주인 아니냐는 의혹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등기부상 단층 주택 4동과 주변 토지는 7명이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은 권영미씨. 권씨는 지난 2010년 2월에 사망한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의 부인이다. 김씨가 가지고 있던 별장의 1/7 지분은 지난 2010년 2월7일 부인 권씨에게 넘겨졌다.

권씨는 별장 지분과 함께 김씨가 보유하고 있던 다스 주식도 물려받았다. 이후 승계된 주식 중 5%를 청계재단에 기부해 논란을 낳았다. 청계재단은 이 전 대통령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설립한 재단이다.

권씨의 남편 김씨는 현대가에 잠시 몸담은 바 있다. 1949년 대구서 태어나 경북중·고를 거쳐 명지대를 나온 후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6년 후인 1982년 국내공사지원팀 과장을 끝으로 현대건설을 나왔다.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으로 의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 전 대통령 ‘차명 재산’ 의혹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현대건설을 나온 후 5년이 지난 1987년,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상은씨와 함께 다스를 설립했다. 김씨는 지분 48.99%를 소유, 최대 주주인 동시에 회장까지 역임했다. 다스는 현대자동차에 부품(시트프레임)을 생산·납품하는 업체다. 

현대 출신인 이 전 대통령이 깊숙이 연관돼있을 것이란 의혹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MB 차명 재산
때마다 등장


다스는 BBK가 운영한 펀드에 190억원을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다. BBK는 재미교포 김경준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또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이 대주주로 있었던 ‘엘케이이뱅크 중개’(LKe뱅크의 자회사)에도 9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김씨는 땅을 사는 데 열성적이었다. 1982-1991년 사이 수도권·충청·경북 등 전국 47곳에서 총 224만㎡(67만7600평)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가평 별장도 그중 하나였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자금일 것이라고 의심받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은 김씨가 지난 1985년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상은씨와 함께 사들였다. 이 일대는 같은 해 10월 지하철 3호선(서대문~양재)이 개통되면서 개발붐이 일어 땅값이 크게 상승했다. 

김씨와 상은씨는 도곡동 땅을 16억원에 사 263억원에 되팔았다. 흥미로운 점은 김씨가 도곡동 땅 가운데 일부를 현대건설로부터 사들였다는 점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김재정’을 자신의 재산등록용 이름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짙다.

재산관리인 김재정, 이번에도 등장
대부분 자녀에 증여·상속된 상태


표면상으로 김씨는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다. 그러나 일련의 모습을 보면 그가 실제로 자산가였는지 의심을 갖게 한다. 1995년 수억원대의 채무를 해결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자택 가압류 조치를 당한 바 있다. 

1998년에는 서울 강남구청이 세금 미납을 이유로 김씨의 논현동 자택을 압류했다. 김씨가 자신이 가진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가 가능하다.
 

김씨 외 별장 지분을 가진 6인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현대가 인맥’이다. 김정국·김광명·박재면 전 현대건설 회장, 심철규 전 현대건설 부사장, 이양섭 전 현대증권 회장, 유재환 전 현대중공업 사장이 그들이다.

김정국·김광명·박재면·심철규는 현대건설 인맥이다. 이중 김정국·김광명·박재면은 이 전 대통령과 ‘정주영 사관학교’ 출신이다. 함께 테니스를 즐길 정도로 이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양섭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상학과 선후배다. ‘절친’인 두 사람은 이 전 대통령의 개인적 문제뿐 아니라 기업 문화를 함께 논의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로 정평이 났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 당선된 후에는 여러 언론으로부터 조언가 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지난 17대 대선 때 물밑서 이 전 대통령을 도왔다. 대선을 목전에 둔 12월 ‘서울포럼’ 고문으로 임명돼 이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막후서 움직였다. 현대가 출신들이 모여 만든 서울포럼은 이 전 대통령을 위해 움직인 대표적 사조직이다. 

선물 받아
자식에게로

이양섭은 지난 14대 대선 때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이끄는 국민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던 경력도 있다.

이들 6인은 소유하고 있던 별장의 1/7 지분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증여·상속했다. 즉, 사실상 별장의 주인인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현대가 인맥’을 위해 별장을 선물했고 이젠 자녀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부의 대물림’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좁혀지는 MB 포위망

이명박정권 시절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사이버외곽팀’을 담당한 국정원 직원, 양지회 전현직 간부, 외곽팀장 등을 지난 12일 무더기 기소했다. 양지회는 국정원 퇴직자 모임이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이날 “외곽팀 담당 국정원 직원 2명을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와 관련된 외곽팀 활동 관계자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9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심리전단 사이버팀과 연계된 민간인 외곽팀의 불법 정치관여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중 장모씨는 2011년 4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허위 외곽팀장 프로필 8건 작성·행사하고, 2014년 4월 원 전 원장 재판과정서 외곽팀 존재 및 활동 여부와 관련해 위증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취임하자마자 국정원 퇴직 직원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도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이 2009년 2월 취임 직후 퇴직직원 활용 특별지시를 내린 사실이 수사결과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에 원 전 원장은 양지회 회장 이모씨와 직접 만나 외곽팀 ‘사이버동호회’가 전격 창설됐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으로부터 수사의뢰된 외곽팀이 48개에 이르고 소속 팀원들도 다수이다. 이를 담당한 국정원 직원들 수도 많아 일부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나머지 외곽팀들 및 담당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수사도 상당 부분 진행됐으므로 추가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만간 신속히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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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