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가평 별장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16 10:36:20
  • 호수 1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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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만 30억대 이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이던 시절부터 서울시장 때까지 애용한 ‘별장’. 그 별장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된섬’에 위치해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지난 2006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과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그 별장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의 ‘현대가 인맥’이 자자손손 물려주는 ‘부의 대물림’ 현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평 한적한 곳에 위치한 별장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해당 별장은 국도 46호선(경춘국도)서 신청평대교를 건너 설악면 쪽으로 가다가 사룡리 방면으로 10㎞가량 떨어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북한강 자락에 위치해 있다. 별장이 있는 ‘된섬’은 지역 주민들 사이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대로변서 진입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야 별장에 닿을 수 있다. 남향으로 북한강 줄기가 흐르고 있다. 북한강 뒤로는 산이 막고 있는 밀폐된 구조다.

한적한 장소
실소유주는?

별장 진입로 입구는 철대문으로 막혀있다. 철대문을 지나 15분 정도 걸어가면 20여m 간격으로 놓인 단층 주택 4동이 남향을 보고 나란히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15평형 3개와 25평형(사진) 1개동이다. 건물 사이에는 테니스장 등이 위치해 있다.

주택 내부는 방과 화장실 각 한 개, 그리고 거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거실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제작돼 거실서 북한강과 강변의 맞은쪽 야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두꺼운 커튼으로 통유리를 모두 가려놨었다. 앞마당에는 수백 평의 잔디밭과 벚꽃나무 등 정원수로 단장해 놓았다.

별장 부지는 1만3200㎡(4000평), 공시지가 기준 28억7100만원(1㎡당 21만7500원)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는 토지만 계산한 것으로 건물까지 포함하면 그 가치는 훨씬 높다. 인근의 한 부동산업자는 “모르긴 몰라도 35-40억원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당 별장은 지난 1988년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서 현대그룹 회장으로 승진한 때 건축됐다. 호화 파티 의혹이 제기됐을 때 당시 서울시는 “해당 별장은 현대건설이 장기 근무한 임원들을 위해 지어 나눠준 것”이라며 별장의 실소유주가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별장이 이 전 대통령의 소유임을 짐작케 하는 정황은 곳곳서 발견된다. 별장 인근서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 A씨는 <일요시사>에 “별장이 아니고 이 전 대통령 집안의 ‘안가’”라고 설명했다.

현대가 인맥? 
이렇게 관리!

지난 2006년 4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가평 ‘별장’서 선모 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과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선 전 협회장은 그해 3월 이 시장을 위해 테니스장을 사전에 독점 예약하고 테니스장 사용비용을 대납토록 해 ‘황제 테니스 파문’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우리당이 제기한 별장서의 호화 파티 의혹은 황제 테니스 파문의 장본인인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였는지를 입증하고자 하는 취지로 제기됐다.
 

해당 별장서 지난 2003년 10월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이 30대 중반의 성악과 강사를 포함해 몇 명의 여성들과 함께 별장에서 파티를 개최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안민석 우리당 의원은 “선 전 협회장이 여성들을 파티에 참석하도록 주선했다”며 “이 자리서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은 여흥을 즐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별장은 이 시장을 비롯한 7인의 현대 고위간부 출신 공동 소유로 등기부상 소유주는 이 시장의 처남과 현대 계열사 출신 6인 등 7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당의 의혹 제기에 당시 서울시 측은 “별장 파티는 없었고 모임의 날짜나 별장 소유 모두 허위”라며 “안 의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이런 정치공세를 계속해서 시정을 방해하고 이(명박) 시장을 음해해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보려는 정치공작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2004년 7월 테니스 동호인 모임의 수련회에 가서 저녁에 불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테니스를 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된섬’에 위치…한적하고 은밀한 곳
인근 주민 “별장 아닌 MB ‘안가’”

앞서 안 의원이 언급한 처남은 김재정씨다. 김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다스(DAS)의 최대주주이자 회장이었다. 다스는 최근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를 최고재무책임자로 선임해 실소유주 논란을 불러왔다. 

별장의 경우처럼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진짜 주인 아니냐는 의혹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등기부상 단층 주택 4동과 주변 토지는 7명이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은 권영미씨. 권씨는 지난 2010년 2월에 사망한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의 부인이다. 김씨가 가지고 있던 별장의 1/7 지분은 지난 2010년 2월7일 부인 권씨에게 넘겨졌다.

권씨는 별장 지분과 함께 김씨가 보유하고 있던 다스 주식도 물려받았다. 이후 승계된 주식 중 5%를 청계재단에 기부해 논란을 낳았다. 청계재단은 이 전 대통령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설립한 재단이다.

권씨의 남편 김씨는 현대가에 잠시 몸담은 바 있다. 1949년 대구서 태어나 경북중·고를 거쳐 명지대를 나온 후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6년 후인 1982년 국내공사지원팀 과장을 끝으로 현대건설을 나왔다.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으로 의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 전 대통령 ‘차명 재산’ 의혹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현대건설을 나온 후 5년이 지난 1987년,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상은씨와 함께 다스를 설립했다. 김씨는 지분 48.99%를 소유, 최대 주주인 동시에 회장까지 역임했다. 다스는 현대자동차에 부품(시트프레임)을 생산·납품하는 업체다. 

현대 출신인 이 전 대통령이 깊숙이 연관돼있을 것이란 의혹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MB 차명 재산
때마다 등장


다스는 BBK가 운영한 펀드에 190억원을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다. BBK는 재미교포 김경준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또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이 대주주로 있었던 ‘엘케이이뱅크 중개’(LKe뱅크의 자회사)에도 9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김씨는 땅을 사는 데 열성적이었다. 1982-1991년 사이 수도권·충청·경북 등 전국 47곳에서 총 224만㎡(67만7600평)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가평 별장도 그중 하나였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자금일 것이라고 의심받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은 김씨가 지난 1985년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상은씨와 함께 사들였다. 이 일대는 같은 해 10월 지하철 3호선(서대문~양재)이 개통되면서 개발붐이 일어 땅값이 크게 상승했다. 

김씨와 상은씨는 도곡동 땅을 16억원에 사 263억원에 되팔았다. 흥미로운 점은 김씨가 도곡동 땅 가운데 일부를 현대건설로부터 사들였다는 점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김재정’을 자신의 재산등록용 이름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짙다.

재산관리인 김재정, 이번에도 등장
대부분 자녀에 증여·상속된 상태


표면상으로 김씨는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다. 그러나 일련의 모습을 보면 그가 실제로 자산가였는지 의심을 갖게 한다. 1995년 수억원대의 채무를 해결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자택 가압류 조치를 당한 바 있다. 

1998년에는 서울 강남구청이 세금 미납을 이유로 김씨의 논현동 자택을 압류했다. 김씨가 자신이 가진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가 가능하다.
 

김씨 외 별장 지분을 가진 6인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현대가 인맥’이다. 김정국·김광명·박재면 전 현대건설 회장, 심철규 전 현대건설 부사장, 이양섭 전 현대증권 회장, 유재환 전 현대중공업 사장이 그들이다.

김정국·김광명·박재면·심철규는 현대건설 인맥이다. 이중 김정국·김광명·박재면은 이 전 대통령과 ‘정주영 사관학교’ 출신이다. 함께 테니스를 즐길 정도로 이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양섭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상학과 선후배다. ‘절친’인 두 사람은 이 전 대통령의 개인적 문제뿐 아니라 기업 문화를 함께 논의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로 정평이 났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 당선된 후에는 여러 언론으로부터 조언가 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지난 17대 대선 때 물밑서 이 전 대통령을 도왔다. 대선을 목전에 둔 12월 ‘서울포럼’ 고문으로 임명돼 이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막후서 움직였다. 현대가 출신들이 모여 만든 서울포럼은 이 전 대통령을 위해 움직인 대표적 사조직이다. 

선물 받아
자식에게로

이양섭은 지난 14대 대선 때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이끄는 국민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던 경력도 있다.

이들 6인은 소유하고 있던 별장의 1/7 지분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증여·상속했다. 즉, 사실상 별장의 주인인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현대가 인맥’을 위해 별장을 선물했고 이젠 자녀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부의 대물림’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좁혀지는 MB 포위망

이명박정권 시절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사이버외곽팀’을 담당한 국정원 직원, 양지회 전현직 간부, 외곽팀장 등을 지난 12일 무더기 기소했다. 양지회는 국정원 퇴직자 모임이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이날 “외곽팀 담당 국정원 직원 2명을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와 관련된 외곽팀 활동 관계자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9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심리전단 사이버팀과 연계된 민간인 외곽팀의 불법 정치관여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중 장모씨는 2011년 4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허위 외곽팀장 프로필 8건 작성·행사하고, 2014년 4월 원 전 원장 재판과정서 외곽팀 존재 및 활동 여부와 관련해 위증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취임하자마자 국정원 퇴직 직원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도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이 2009년 2월 취임 직후 퇴직직원 활용 특별지시를 내린 사실이 수사결과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에 원 전 원장은 양지회 회장 이모씨와 직접 만나 외곽팀 ‘사이버동호회’가 전격 창설됐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으로부터 수사의뢰된 외곽팀이 48개에 이르고 소속 팀원들도 다수이다. 이를 담당한 국정원 직원들 수도 많아 일부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나머지 외곽팀들 및 담당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수사도 상당 부분 진행됐으므로 추가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만간 신속히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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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