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5주년 특별대담> 윤석헌 아태경제문화연구회 회장

“한·중은 위기의 부부…특사보다 밀사 보내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중관계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사드를 둘러싼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서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 1992년 수교 이래 최악의 한중관계를 풀 묘수가 필요한 시기다. <일요시사>는 ‘한중수교의 산증인’ 윤석헌 아태경제문화연구회 회장을 만나 그 해법을 들어봤다.
 

오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25주년 되는 날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과 중국이 기념행사를 각각 따로 여는 형태로 분출됐다. 

2012년 20주년 행사에 당시 부주석이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장차관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양국 정부는 각국 행사에 관계자를 참석시키는 등 최대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반쪽 행사’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중 갈등의 불씨는 단연 사드 문제다.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포럼 조찬 강연에서 “한국에 사드 전개를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한국의 사드 배치 움직임을 감지한 중국이 수차례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그러다 지난해 7월8일 사드 배치가 공식화되면서 한중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최고의 중국통’이라 불릴 만큼 중국 정세에 밝은 윤석헌 아태문화경제연구회 회장은 최근 한중관계를 두고 “위기의 부부”라고 칭했다. 


1992년 수교를 맺기 전부터 한국과 중국을 누비며 민간외교관 신분으로 양국 관계를 물밑에서 조율해 온 윤 회장은 현 상황을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입장서 다각도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회장과의 일문일답.

-올해로 한중수교 25주년입니다. 현재 한중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국가 간의 관계는 결혼 생활하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20년 넘게 무탈하게 살다가 최근 위기를 맞은 부부죠.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백년해로 하는 것이고 대화가 잘 안되면 결혼 생활이 복잡하게 얽혀 서로 불행한 상태에 접어드는 거죠.
 

-위기의 원인은 사드입니다. 중국은 왜 이렇게 사드에 민감한가요?

▲한국과 미국은 사드를 통해 북한의 핵 도발을 막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 말을 믿지 않아요. 북한의 핵 공격 억제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미국이 중국 견제 용도로 사드를 활용할 거라고 보고 있죠.

수교행사 따로…현 상황 반영
사드 두고 미·중 ‘대리전쟁

-이 상황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추가 배치 결정은 자위권 차원서, 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내려야 할 결정입니다. 단호한 결정이었고 시의 적절했다고 봐요. 하지만 결정 이후 나온 뒷말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결정 이후의 뒷말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에서 사드 배치는 국가적 중대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사업 기준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건 너무 안일한 위기 대처 방식이에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현 상황을 국가위기 상황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재난 지역은 일반 지역과 예산 집행 방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처럼 국가재난 상황으로 가정하고 정부·여야·진보·보수할 것 없이 초당적, 거국적으로 사드 문제를 다뤄야 해요.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명확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외교 무대서 한국의 대응은 어떻습니까?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사드 추가 배치에 중국이 반발하자 ‘방어 차원’이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적절한 대응이었습니다. 사드가 방어 차원의 자위권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주권국가의 외교부장관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고, 오히려 더 강하게 말했어도 괜찮았다고 봅니다.

-중국은 북한 미사일 문제보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더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중국 역시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자국의 입장서 사드 배치를 두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양국 모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권리가 있어요. 국가 간에 중대한 현안을 두고 갈등을 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전 정권인 박근혜정부서 중국과의 대화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정부의 대응이 아쉬웠다는 말씀이시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밀월관계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때가 있었죠. 그때 외교적으로 사드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관계가 지금만큼 악화되진 않았을 겁니다. 문재인정부가 그 짐을 한 아름 떠안은 셈이 됐어요. 또 국정 농단 사태가 일어나면서 외교시스템이 아예 정지된 것도 현 정부로선 상당히 부담이었을 겁니다.

-어려운 상황서 정권이 출범한 지 100일이 됐습니다. 현 정부의 대중외교 전략을 평가해 주신다면?


▲정상적으로 정권을 승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딱 잘라서 평가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취임하자마자 4대 강국(미·중·일·러)에 특사를 보내는 등 발 빠르게 외교 관계를 복원한 건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없으십니까?

▲저는 특사보다는 밀사가 필요다고 보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 방법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현재 중요한 건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입니다. 정치권의 공개적인 특사보다는 중국 정부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밀사를 파견해 한국의 입장을 진정성 있게 전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죠.

-특사보다 밀사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특사로 갔지만 중국 정부는 눈에 보이는 외교적 홀대를 했습니다. 중국이 한국 정부에 보내는 시그널이라고 봐도 되죠. 중국은 한국 정부와 사드에 대한 대화를 계속 거부하는 중입니다. 이럴 땐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악수를 하는 것보단 비공개적으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밀사 파견이 사드 문제 해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거라 보십니까?


▲사실 사드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사드의 본질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중 양국의 힘겨루기 싸움의 중간에 있습니다. 구한말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던 대한제국처럼요.

-사드 문제에 있어서도 ‘코리안 패싱’이 진행 중인 건가요?

▲6·25전쟁 때처럼 한반도서 미중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거죠. 물론 그때와 한국의 위상을 비교할 순 없지만 세계정세는 비슷하다고 봅니다.

"경제보복은 미국이 나서야"
"문재인정부 위기를 기회로"

-그래서 중국의 경제보복에도 속수무책인 건가요?

▲중국의 경제 보복 문제는 한국의 입장보다는 한미동맹 차원서 미국이 나서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게다가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돼있다고 할 정도로 대중무역 의존도가 높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이 중국과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중국과의 냉각기가 장기화되면 한국이 입는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요?

▲롯데그룹을 보세요. 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큰 피해를 봤죠. 자동차, 제조, 전자 심지어는 김치, 콩, 두부, 고사리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중국산이 안 들어온 데가 없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드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무엇인가요.

▲시기가 문제일 뿐 사드는 한반도에 배치됩니다. 최종적으로 사드 배치가 완료되면 중국은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할 것이고 양국 관계는 지금보다 최악으로 치달을 겁니다. 서로 ‘강대강’으로 치받고 있는 상황서 미국과 중국의 빅딜, 말 그대로 극적인 타결이 결국 해결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중국 간의 빅딜을 언급하셨는데요.

▲빅딜이라는 건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하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좋다, 사드로 절대 너희를 탐지하지 않을게, 믿어줘’라고 했을 경우 중국이 ‘그래, 믿을게. 대신 너희들도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공격하지 않겠다는 평화 조약을 체결해줘’라는 일련의 예상 가능한 조건들을 제시해 합의를 한다면 이게 바로 빅딜이자 극적인 타결이지요.

-미국과 중국은 북한을 두고도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총론에는 동의하고 있어요. 다만 북한을 제재하는 각론서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번 유엔 안보리 회의서 새 대북제재안에 찬성한 건가요?

▲중국은 국제사회서 이미 미국과 함께 세계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두고 미국의 의도대로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걸로 보입니다. 다만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이 너무 큰 부담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원유 수출 금지에는 반대하는 등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붕괴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뭔가요?

▲전쟁이 발생해 만약 북한이 무너진다면 중국은 당장 미국과 국경을 맞대야 합니다. 또 북한 난민 수백만 명이 대륙으로 들어가는 문제도 있죠. 중국 입장서 생각해보면 현재 태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도 북한이 좋아서 보호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중국은 통일한국을 바라지 않겠네요.

▲중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 모두 통일한국보다는 현상 유지가 나쁘지 않을 겁니다. 통일의 견인차보다는 방임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현 상태 유지가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사드나 대북 문제에 한국 정부가 끼어들 자리가 없네요?

▲미국은 한국의 건국을 함께한 옛 친구이고, 중국은 21세기 새로운 동반자이자 새 친구입니다. 한국으로선 옛 친구와 새 친구에게 마땅한 도리를 다하고 저자세도 고자세도 아닌 정자세로 작금의 폭풍 속을 헤쳐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이 취해야 할 정자세는 무엇입니까?

▲한국은 주권국가예요. 할 말이 있을 땐 당당하게 요구하고 협상 자리서 비굴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방식, 즉 할 말은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한국의 국가위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또 미중 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새 친구를 위해 옛 친구를 버릴 수 없고, 옛 친구를 위해 새 친구를 사귀지 않을 수 없다는 자세로 새 시대에 걸맞은 외교를 추구해야 합니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대중 수출 의존도를 줄여야 합니다. 수치상으로 한국의 대중 의존도는 26%에 달해요.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개인무역이나 보따리상 같은 거래를 가상하면 실제로는 더 높을 겁니다. 한 나라와의 거래량이 전체의 30% 가까이 이른다는 건 양쪽 나라에 모두 부담이 될 수가 있습니다. 다변화가 필요합니다.

-어떤 나라를 눈여겨보고 있으신지요.

▲우선 그동안 닫혀있던 중동의 이란 시장을 전략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이 1970∼80년대 누렸던 중동 특수를 한 번 더 경험할 수 있는 시기예요. 중국의 대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인도도 새로운 시장으로 이미 세계 앞에 다가와 있어요. 세계 시장은 국제 각축장입니다. 다른 국가에 기회를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문재인정부의 대중외교에 있어 조언하실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위기는 돌이켜보면 기회입니다. 이 위기를 문재인정부가 잘 극복해 기회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사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양국은 21세기의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 총리를 2번이나 역임하고 외무장관을 3번 역임한 파머스턴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단지 영원한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
 

<jsjang@ilyosisa.co.kr>

 

[윤석헌 회장은?]

윤석헌 회장은 현재 아세아-태평양 경제문화연구회와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중국 국제상회(한국의 전경련 격) 고문에 임명됐고, 중국 국영회사이자 중국 최대 건축회사인 중국건축의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 내 가장 정통한 중국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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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