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5주년 특별대담> 윤석헌 아태경제문화연구회 회장

“한·중은 위기의 부부…특사보다 밀사 보내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중관계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사드를 둘러싼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서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 1992년 수교 이래 최악의 한중관계를 풀 묘수가 필요한 시기다. <일요시사>는 ‘한중수교의 산증인’ 윤석헌 아태경제문화연구회 회장을 만나 그 해법을 들어봤다.
 

오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25주년 되는 날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과 중국이 기념행사를 각각 따로 여는 형태로 분출됐다. 

2012년 20주년 행사에 당시 부주석이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장차관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양국 정부는 각국 행사에 관계자를 참석시키는 등 최대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반쪽 행사’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중 갈등의 불씨는 단연 사드 문제다.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포럼 조찬 강연에서 “한국에 사드 전개를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한국의 사드 배치 움직임을 감지한 중국이 수차례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그러다 지난해 7월8일 사드 배치가 공식화되면서 한중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최고의 중국통’이라 불릴 만큼 중국 정세에 밝은 윤석헌 아태문화경제연구회 회장은 최근 한중관계를 두고 “위기의 부부”라고 칭했다. 


1992년 수교를 맺기 전부터 한국과 중국을 누비며 민간외교관 신분으로 양국 관계를 물밑에서 조율해 온 윤 회장은 현 상황을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입장서 다각도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회장과의 일문일답.

-올해로 한중수교 25주년입니다. 현재 한중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국가 간의 관계는 결혼 생활하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20년 넘게 무탈하게 살다가 최근 위기를 맞은 부부죠.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백년해로 하는 것이고 대화가 잘 안되면 결혼 생활이 복잡하게 얽혀 서로 불행한 상태에 접어드는 거죠.
 

-위기의 원인은 사드입니다. 중국은 왜 이렇게 사드에 민감한가요?

▲한국과 미국은 사드를 통해 북한의 핵 도발을 막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 말을 믿지 않아요. 북한의 핵 공격 억제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미국이 중국 견제 용도로 사드를 활용할 거라고 보고 있죠.

수교행사 따로…현 상황 반영
사드 두고 미·중 ‘대리전쟁

-이 상황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추가 배치 결정은 자위권 차원서, 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내려야 할 결정입니다. 단호한 결정이었고 시의 적절했다고 봐요. 하지만 결정 이후 나온 뒷말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결정 이후의 뒷말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에서 사드 배치는 국가적 중대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사업 기준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건 너무 안일한 위기 대처 방식이에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현 상황을 국가위기 상황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재난 지역은 일반 지역과 예산 집행 방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처럼 국가재난 상황으로 가정하고 정부·여야·진보·보수할 것 없이 초당적, 거국적으로 사드 문제를 다뤄야 해요.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명확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외교 무대서 한국의 대응은 어떻습니까?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사드 추가 배치에 중국이 반발하자 ‘방어 차원’이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적절한 대응이었습니다. 사드가 방어 차원의 자위권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주권국가의 외교부장관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고, 오히려 더 강하게 말했어도 괜찮았다고 봅니다.

-중국은 북한 미사일 문제보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더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중국 역시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자국의 입장서 사드 배치를 두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양국 모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권리가 있어요. 국가 간에 중대한 현안을 두고 갈등을 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전 정권인 박근혜정부서 중국과의 대화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정부의 대응이 아쉬웠다는 말씀이시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밀월관계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때가 있었죠. 그때 외교적으로 사드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관계가 지금만큼 악화되진 않았을 겁니다. 문재인정부가 그 짐을 한 아름 떠안은 셈이 됐어요. 또 국정 농단 사태가 일어나면서 외교시스템이 아예 정지된 것도 현 정부로선 상당히 부담이었을 겁니다.

-어려운 상황서 정권이 출범한 지 100일이 됐습니다. 현 정부의 대중외교 전략을 평가해 주신다면?


▲정상적으로 정권을 승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딱 잘라서 평가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취임하자마자 4대 강국(미·중·일·러)에 특사를 보내는 등 발 빠르게 외교 관계를 복원한 건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없으십니까?

▲저는 특사보다는 밀사가 필요다고 보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 방법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현재 중요한 건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입니다. 정치권의 공개적인 특사보다는 중국 정부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밀사를 파견해 한국의 입장을 진정성 있게 전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죠.

-특사보다 밀사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특사로 갔지만 중국 정부는 눈에 보이는 외교적 홀대를 했습니다. 중국이 한국 정부에 보내는 시그널이라고 봐도 되죠. 중국은 한국 정부와 사드에 대한 대화를 계속 거부하는 중입니다. 이럴 땐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악수를 하는 것보단 비공개적으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밀사 파견이 사드 문제 해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거라 보십니까?


▲사실 사드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사드의 본질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중 양국의 힘겨루기 싸움의 중간에 있습니다. 구한말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던 대한제국처럼요.

-사드 문제에 있어서도 ‘코리안 패싱’이 진행 중인 건가요?

▲6·25전쟁 때처럼 한반도서 미중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거죠. 물론 그때와 한국의 위상을 비교할 순 없지만 세계정세는 비슷하다고 봅니다.

"경제보복은 미국이 나서야"
"문재인정부 위기를 기회로"

-그래서 중국의 경제보복에도 속수무책인 건가요?

▲중국의 경제 보복 문제는 한국의 입장보다는 한미동맹 차원서 미국이 나서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게다가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돼있다고 할 정도로 대중무역 의존도가 높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이 중국과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중국과의 냉각기가 장기화되면 한국이 입는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요?

▲롯데그룹을 보세요. 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큰 피해를 봤죠. 자동차, 제조, 전자 심지어는 김치, 콩, 두부, 고사리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중국산이 안 들어온 데가 없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드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무엇인가요.

▲시기가 문제일 뿐 사드는 한반도에 배치됩니다. 최종적으로 사드 배치가 완료되면 중국은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할 것이고 양국 관계는 지금보다 최악으로 치달을 겁니다. 서로 ‘강대강’으로 치받고 있는 상황서 미국과 중국의 빅딜, 말 그대로 극적인 타결이 결국 해결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중국 간의 빅딜을 언급하셨는데요.

▲빅딜이라는 건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하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좋다, 사드로 절대 너희를 탐지하지 않을게, 믿어줘’라고 했을 경우 중국이 ‘그래, 믿을게. 대신 너희들도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공격하지 않겠다는 평화 조약을 체결해줘’라는 일련의 예상 가능한 조건들을 제시해 합의를 한다면 이게 바로 빅딜이자 극적인 타결이지요.

-미국과 중국은 북한을 두고도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총론에는 동의하고 있어요. 다만 북한을 제재하는 각론서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번 유엔 안보리 회의서 새 대북제재안에 찬성한 건가요?

▲중국은 국제사회서 이미 미국과 함께 세계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두고 미국의 의도대로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걸로 보입니다. 다만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이 너무 큰 부담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원유 수출 금지에는 반대하는 등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붕괴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뭔가요?

▲전쟁이 발생해 만약 북한이 무너진다면 중국은 당장 미국과 국경을 맞대야 합니다. 또 북한 난민 수백만 명이 대륙으로 들어가는 문제도 있죠. 중국 입장서 생각해보면 현재 태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도 북한이 좋아서 보호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중국은 통일한국을 바라지 않겠네요.

▲중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 모두 통일한국보다는 현상 유지가 나쁘지 않을 겁니다. 통일의 견인차보다는 방임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현 상태 유지가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사드나 대북 문제에 한국 정부가 끼어들 자리가 없네요?

▲미국은 한국의 건국을 함께한 옛 친구이고, 중국은 21세기 새로운 동반자이자 새 친구입니다. 한국으로선 옛 친구와 새 친구에게 마땅한 도리를 다하고 저자세도 고자세도 아닌 정자세로 작금의 폭풍 속을 헤쳐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이 취해야 할 정자세는 무엇입니까?

▲한국은 주권국가예요. 할 말이 있을 땐 당당하게 요구하고 협상 자리서 비굴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방식, 즉 할 말은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한국의 국가위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또 미중 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새 친구를 위해 옛 친구를 버릴 수 없고, 옛 친구를 위해 새 친구를 사귀지 않을 수 없다는 자세로 새 시대에 걸맞은 외교를 추구해야 합니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대중 수출 의존도를 줄여야 합니다. 수치상으로 한국의 대중 의존도는 26%에 달해요.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개인무역이나 보따리상 같은 거래를 가상하면 실제로는 더 높을 겁니다. 한 나라와의 거래량이 전체의 30% 가까이 이른다는 건 양쪽 나라에 모두 부담이 될 수가 있습니다. 다변화가 필요합니다.

-어떤 나라를 눈여겨보고 있으신지요.

▲우선 그동안 닫혀있던 중동의 이란 시장을 전략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이 1970∼80년대 누렸던 중동 특수를 한 번 더 경험할 수 있는 시기예요. 중국의 대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인도도 새로운 시장으로 이미 세계 앞에 다가와 있어요. 세계 시장은 국제 각축장입니다. 다른 국가에 기회를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문재인정부의 대중외교에 있어 조언하실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위기는 돌이켜보면 기회입니다. 이 위기를 문재인정부가 잘 극복해 기회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사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양국은 21세기의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 총리를 2번이나 역임하고 외무장관을 3번 역임한 파머스턴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단지 영원한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
 

<jsjang@ilyosisa.co.kr>

 

[윤석헌 회장은?]

윤석헌 회장은 현재 아세아-태평양 경제문화연구회와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중국 국제상회(한국의 전경련 격) 고문에 임명됐고, 중국 국영회사이자 중국 최대 건축회사인 중국건축의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 내 가장 정통한 중국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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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