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발 정계개편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8.14 10:26:00
  • 호수 1127호
  • 댓글 0개

당권 잡아도 문제 못 잡아도 문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계개편의 핵’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다시 한 번 움직였다. 대선 패배 이후 잠행을 거듭하던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 8·27전당대회(이하 전대)에 당 대표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국민의당은 친안(親安)과 반안(反安)이 나뉘어 내홍을 겪고 있다. 일각에선 전대를 기점으로 당이 찢어지는 사태까지 예상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안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 선언 후 예상되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취재했다.
 

“결코 내가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연 안철수 전 대표가 당 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차기 대선 출마라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기자회견장서 “다음 대선에 나서는 것을 우선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철수 출마
정치계 ICBM

안 전 대표의 선언은 국민의당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안 전 대표의 선언이 있던 날 논평을 통해 “반성문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음에도 국민의당 대표로 출마한다고 도전장을 낸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상대적으로 말을 아꼈다. 바른정당 전지명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정계서 물러났던 정치인이 다시 정치복귀 선언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다만 안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 선언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한국당은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다가 안 전 대표가 극중주의(진보·보수가 아닌 완전한 의미의 중립노선을 고수하는 것)를 표방하자 그때서야 “오락가락하던 과거 행적을 볼 때 실천에 옮겨질지 미지수”라고 비판했다.

다른 당보다 국민의당 내부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선언 당일 당내 의원 12명은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반대한다”며 성명을 냈다. 그들은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며 안 전 대표에게 출마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반안(철수)계 의원들과 호남 출신 의원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호남 출신 황주홍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서 “3·15부정선거 때의 최고책임자가 4·19혁명 이후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대선에 출마한다면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반안·호남 반발
집단 탈당설도

안 전 대표와 투톱을 이뤘던 박지원 전 대표 역시 “명분도 실리도 없고,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안 전 대표의) 출마를 만류했다”며 “당 의원 40명 중 30명 이상이 반대하고 있고, 당 고문단도 분노의 경지까지 도달해 탈당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말처럼 당 고문단인 동교동계는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동교동계서 한때 집단탈당설까지 나오며 안 전 대표를 압박했지만 그는 ‘마이웨이’를 선택했다. 이에 동교동계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출마를 철회했으면 좋겠다”며 거듭 철회를 압박했다.
 

지난 8일은 동교동계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순간이다. 정대철 상임고문을 비롯해 홍기훈, 박양수, 박명석, 이훈평, 최락도, 이경재, 이창근, 류의재 등 원로 고문단 9명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여 안 전 대표의 출당 건의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반대 목소리는 결국 허공의 메아리로 그쳤다. 안 전 대표는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전대 후보 등록 첫날 서울 여의도 당사를 찾아 절차를 마쳤다. 등록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안 전 대표는 “지금은 당이 위기상황”이라며 “이번 전대는 혁신 전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정배·정동영 등 다른 당 대표 출마자를 중심으로 반안 조직이 공고해지고 있다. 여기에 결선투표제가 전대 룰로 결정돼 구도는 ‘친안 대 반안’ 대결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결선투표제는 과반을 득표하는 당선자가 없을 시 1·2위 후보자를 대상으로 재투표하는 선거 제도로 당 설립자이자 지명도가 가장 높은 안 전 대표 대 다른 반안계 후보의 대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안 전 대표는 이 같은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왜 출마를 강행하는 것일까. 중론은 국민의당 창당 때부터 이어져온 ‘호남 중진 대 친안계(새정치)’의 갈등을 이번 기회에 매조지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란 해석이다.

정계개편의 핵, 국민당에 직격
‘친안 VS 반안’ 파워게임 비화

이는 안 전 대표가 발표한 출마선언문의 행간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외연을 넓혀서 전국 정당으로 우뚝 서겠다”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매진하겠다” 등 호남과 진보를 겨냥한 듯한 발언이 안 전 대표의 입에서 쏟아졌다. 친안계 내에서도 “호남색을 빼야 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안 전 대표의 출마가 ‘호남색 빼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지난 대선 국면을 주목한다. 

즉, 안 전 대표가 지난 대선서 ‘호남당’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란 해석이다. 대선 패배의 원인을 진단한 안 전 대표의 생각이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민주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실제 대선 직후 수많은 언론과 정치전문가들이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요인으로 ‘전국의 세’를 꼽은 바 있다. 반면 호남 정당으로 불리는 국민의당은 상대적으로 세 확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친안 측에서는 ‘호남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호남서 압도적 의석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문재인 당시 후보보다 호남서의 득표가 적었던 것을 두고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호남색 빼기를 진단한 안 전 대표와 친안계가 들고 나온 처방전이 바로 당 대표 출마 카드다. 여기에 호남·반안 측이 쉽사리 국민의당을 탈당할 수 없다는 판단은 안 전 대표가 수많은 철회 요구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이유로 작동하고 있다. 


동교동계와 호남·반안 측이 연일 출마 철회를 요구했지만, 안 전 대표는 후보 등록일 첫날 당사를 찾아 그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호남색 빼기
작심한 듯

결국 ‘나가려면 나가’라는 식의 신호라고 해석될만하다. 그러나 동교동계 및 호남 진영은 섣불리 국민의당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일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입당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당 의원들이 민주당을 떠날 때 ‘친문 패권주의’를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지난 19대 대선서 당선됨에 따라 민주당은 국민의당 의원들이 떠날 당시보다 친문 세력이 더욱 공고해졌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복당할 명분이 약할뿐더러 민주당 내에서의 반발도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있는 상황서 민주당은 지지자들의 반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당 친문계와 그 지지자들은 국민의당 의원들이 친문 패권주의를 주장하며 떠난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서 민주당 지도부가 이들을 덥석 받아들였을 때 얻을 표와 잃을 표를 가늠한다면 쉽게 결정 내리기 힘든 게 사실이다. 큰 실익이 없다면 굳이 입당을 받아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이들이 입당해 당내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새로 민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이라도 요구한다면 민주당이 그려놓은 큰 그림이 오히려 망가질 수도 있는 일이다. 계파 갈등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극중주의 내건 안의 본심은?
정동영·천정배 전격 단일화?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안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당선되면 반대파가 집단 탈당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민주당 입당’이라는 구심력보다 ‘안철수 반대’라는 원심력이 더 강하다면 입당 여부와는 관계없이 집단적으로 국민의당을 뛰쳐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방선거를 앞둔 정계개편의 시작을 의미한다.

정계개편은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정동영·천정배 의원 중 한 명이 당 대표로 당선되면 민주당과의 연대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안 전 대표가 당선되면 바른정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이 손잡는 그림은 새로울 것이 없는 시나리오다. 대선을 전후로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설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두 정당이 합당에 나서기엔 호남과 영남이라는 현실적 걸림돌이 존재한다. 

곧바로 합당으로 이어졌을 때 불거질 반발도 예상해야 한다. 이에 서로 간의 연대를 통해 접촉면을 늘려간 후 합당으로 나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안철수 당 대표’다.

안 전 대표는 출마선언문 발표서 “바른정당과의 연대는 너무 앞서나간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함께 발표한 극중주의 전략은 결국 바른정당을 염두에 뒀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친안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바른정당과의 공조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국민의당 일부 초선 의원들은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를 추진 중이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만들어 지난 1일 회동을 가진 ‘한국판 제3의 길 모색과 실천을 위한 모임’도 공조의 일환이다. 현재는 구성이 국민의당 의원들에 한정된 모임이지만, 향후 멤버십을 넓혀 바른정당 등 뜻을 함께하는 다른 당 의원들에게 문호를 넓힐 방침이다.

국민의당-바른정당 의원들이 힘을 합쳐 함께 토론회를 꾸리고 있다는 점도 심상치 않다. 일례로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과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최근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가능한가’ 등을 주제로 공동주관 토론회를 열었다. 이 의원은 대표적인 친안계 인사 중 한 명이다.

대선 직후 안 전 대표 스스로가 바른정당과의 공조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안 전 대표는 대선 후 새로 꾸려질 원내지도부 구성에 대해 “바른정당과 연대·공조 능력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출마 선언 때 “함께 하는 정치세력을 두텁게 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반발하는 의원들 사이에선 ‘안철수 리더십’ 보이콧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가 당선되면 반안계 의원들이 탈당해 국민의당의 원내교섭권을 박탈할 것이란 극단적인 시나리오다.

당권 레이스는 이미 불이 붙은 상황이다. 안 전 대표보다 앞서 출마를 선언했던 천정배 의원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서 “안 전 대표의 출마는 구태 중의 구태”라며 “몰염치의 극치, 협박의 정치이자 갑질의 정치”라고 비난했다.

바른정당 겨냥
극중주의 호소

같은 날 또 다른 당권 주자인 정동영 의원 역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 때나 출마해 당선될 수 있다면 사당화의 명백한 증거”라며 “안 전 대표가 공당이 아닌 사당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안 전 대표가 내세운 ‘극중주의’에 대해서도 “‘새 정치’라는 말이 모호했듯이 극중주의라는 구호 역시 모호하다”며 기회주의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반안 전선을 구축을 위한 정동영-천정배 단일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8일 호남 중진 의원들은 조찬 회동 자리서 이 같은 얘기가 언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회동에 참석한 장병완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나오는 순간 단일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닌 (안 전 대표가 출마하는 순간부터)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밝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당 ‘제2제보조작’ 사태
“지지자들 실체가 없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이 안철수 전 대표의 당대표 출마 지지 선언을 ‘제2의 제보조작’ 사건으로 규정했다. 안 전 대표 출마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국민의당 지역위원장 109명의 실체가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7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 의원은 “(안 전 후보의 당대표 출마를 요구했다는 지역위원장) 109명이 지지 선언을 했다고 하는데 실체가 없다”며 “제2의 제보조작사건이다”라고 전했다. 이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이후 꾸준히 “109명 명단을 공개하라”며 조작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지역위원장 109명 누구?
이상돈 의원 의문 제기

앞서 지난 6일 국민의당 김현식, 고무열 지역위원장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9인의 서명을 확보하는 과정에 일부 거짓과 왜곡이 개입됐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며 “서명과정에 참여한 지역위원장들의 증언에 의하면 취지가 불분명한 질문에 대한 단순한 지지의사 표명이 전대 출마에 동의하는 ‘서명’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 전 대표 측은 109명의 명단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서명을 주도한 김철근 전 선대위 대변인은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명단을 발표하면 ‘줄 세우기’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명단을) 준비를 했던 10여명의 지역위원장들이 있는데 그 분들하고 의논을 해서 명단은 발표하지 않은 게 바람직하겠다고 해서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