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낙하산 숙청 리스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7.31 10:22:04
  • 호수 1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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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벌 떨고 있는 적폐 기관장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기관장들이 벌벌 떨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서 이른바 ‘적폐기관장’ 10인을 발표하면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질 조짐이다. 각종 비리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공공기관장부터 그 동안 중도 사퇴한 공공기관장들까지. 전임 정권 공공기관장들의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됐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은 지난 18일 ‘적폐 공공기관장’ 10인의 명단을 발표하고 이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인사에 속도를 내는 시점과 맞물려 공공기관장 물갈이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노총·한노총  
블랙리스트 공개 

지난 18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서 기자회견을 열고 10명의 적폐 공공기관장을 발표했다. 공대위 측은 “적폐 기관장의 경영농단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공부문서 가장 시급히 적폐를 청산해야 할 공공기관을 1차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이번에 발표한 적폐 기관장 선정 기준에 대해 ▲국정농단 세력 또는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알박기로 임명됐으나 아직 사퇴하지 않은 기관장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을 위해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성과연봉제 폐기 등 새로운 정부의 정책 수행을 거부하는 기관장 ▲국정농단 세력에 적극 부역한 전력이 있는 기관장이라고 밝혔다. 

적폐 기관장에 이름을 올린 공공기관장 10명은 다음과 같다. 


[코레일 홍순만]

홍순만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지난 28일 사임했다. 홍 전 사장은 1956년 서울서 태어났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토교통부서 근무했으며, 2015년 인천광역시 경제부시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 5월 한국철도공사 7대 사장으로 임명됐다.

홍 전 사장은 김학송 전 사장과 이승훈 사장처럼 친박(친 박근혜) 인사로 분류된다. 이뿐만 아니라  과연봉 불법행위, 노사관계 파탄, 중대재해사고 책임 전가 등을 이유로 적폐기관장 명단에 올랐다. 임기 중인 2016년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한국철도공사 전국철도노동조합 총파업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조합원을 민주노총의 용병, 즉 총알받이라고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올해 1월 말 노조에서 신청한 성과연봉제 효력중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서 받아들여 사태는 일단락된 상태다. 

[코레일유통 유제복]

유제복 코레일유통 사장은 제주도 출신이다. 1978년 제14회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했다. 1979년 전매청 기술사무관을 시작으로 전매청이 담배인삼공사로 변경된 이후 본사 제조국장, 부산지역본부 본부장 및 경인지역 본부장과 KT&G 영주공장장, 광주공장장 및 본사 원료본부 본부장 등의 주요 요직을 거쳤다. 

박근혜 정부때 투하
물갈이 본격화하나


유 사장은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 등으로 노조의 비판을 받아왔다.  국정농단세력에 의한 낙하산인사로 규정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유통 대주주) 홍 사장과도 결탁했다고 노조 측은 주장하고 있다. 

[석유공사 김정래]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1954년 강릉서 태어났다. 현대건설에 입사해 줄곧 현대그룹서 일했다. 현대종합상사, 현대중공업, 현대오일뱅크 등을 거쳤다. 현대중공업서 전무와 부사장, 사장까지 역임한 뒤 퇴임했다. 2016년 2월 한국석유공사 사장에 올라 재직하고 있다.
 

김 사장은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 등으로 노조의 비판을 받았다. 또 임기 동안 학교 동문과 현대그룹 출신 등 측근 4명을 특혜채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노조 측에선 밀실경영 및 울산사옥 매각시 투기자본 특혜, 외유성 출장시 7성급 호텔 숙박(1년간 해외출장비만 약 1500만원 지출) 등 모럴해저드 및 적폐의 집합체로 지목됐다. 

[보훈복지 김옥이]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은 1947년생으로 여군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3년 11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김 이사장은 친박 낙하산으로 불리며 전문성이 의문시됐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과정서 동의서명 강요, 승진조건 지부장 회유 등 사내 정치 공작을 자행했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또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입은 실적 부진을 메우기 위해 경영 목표 달성 등을 제시하며 공단이 돈벌이를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해당 문건에 대해 “사실상 과잉진료를 주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과잉진료는 결국 국가유공자 및 국가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병원 서창석]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은 1961년생이다. 서울대학교 의예과를 졸업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냈다. 서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로 서울대병원 의료농단의 핵심이다.

서 원장인사에 최순실씨의 주치의인 이임순 순천향대학교 교수가 개입했던 것으로 특검수사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에게 불법 성형시술을 했던 김영재 원장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교수로 임명, 김영재실(봉합사) 도입 과정서 특혜를 주는 대가로 금품 수수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조작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최근 허위사망진단서가 우여곡절 끝에 정정됐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 담당교수 선임과정부터 청와대에 의료기록 무단 유출 등 서 원장과 부원장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노동연구원 방하남]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1957년 전라도 완도서 태어났다. 한국노동연구원서 연구조정실장과 고용보험연구센터 소장, 노동시장연구본부 본부장 등을 거쳤다. 

방 원장은 2013년 전 정권의 초대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노동부장관 당시 전교조 탄압 등 노조 파괴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으로 재임하며, 노동개악과 불법적인 성과연봉제 강제도입을 옹호해 노동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공대위는 “국정 농단 세력과 함께 노동정책을 망쳐 온 당사자로서 새정부 노동연구원 수장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동서발전 박희성]

박희성 한국동서발전 사장(직무대행)은 1958년 대구서 태어났다. 박 사장은 대구상고, 계명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동서발전 감사실장, 상생조달처장 등을 역임했다.


박 사장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며, 미폐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과연봉제 유지하자며 조합원 회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새정부 국정철학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장 퇴출 압박한 노총
성과연봉제 일방도입 등 사유

이명박정부에선 동서발전 노무팀장으로서 노조 파괴를 직접 지휘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대법원서도 사측의 부당노동 행위가 인정 돼 3000만원의 손해 배상 판결을 받았다 

[수산자원 정영훈]

정영훈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이사장은 1960년 전남 완도서 태어났다. 부산수산대 식품공학과를 나와 기술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해수부 수산정책관과 국립수산과학원장 등을 거쳤고, 미국 델라웨어대서 석사학위를 부경대서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정 이사장은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을 강행했다. 또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이 임명한 대표적인 ‘알박기 인사’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법률구조 이헌]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사법시험 26회 출신이다. 이 이사장은 새누리당 추천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주도적으로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이사장은 당시 ‘특조위 활동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임기 내내 특조위 활동과 배치되는 언행을 했다. 
 

2016년 5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 공공기관장 신분으로 유일하게 박 전 대통령을 수차례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적폐기관장 중 가장 먼저 사임한 사람은 이승훈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이다. 지난달 20일 이 전 사장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이 전 사장은 거듭된 인사 실패와 청탁, 3년 연속 경영평가 낙제점을 받아 공조위의 비판을 받았다.

적폐기관장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지만,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박기동 전 한국가스안전사장도 자진 사퇴했다. 박 전 사장은 감사원이 채용비리를 적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고 수사가 착수되자 지난 18일 감사원과 산업부에 사의를 표했다. 직원들에게는 지난 22일 퇴임 소식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사장을 비롯해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들은 최근 잇따라 자진 사퇴하고 있다. 지난 5월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사의를 표했다. 이달 들어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이 중도 사퇴했다.  

평판조회 위해 
관계자들 접촉

지난 정부에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사퇴가 이어지면서 새정부의 내각 구성 완료 후 기관장 임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내각 구성이 마무리되면서 청와대는 최근 공공기관장 전원에 대한 평판조사를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수석실은 최근 사정기관에 공공기관장에 대한 세평을 수집해 보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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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