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바른보수 찾아 나선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7.17 10:17:22
  • 호수 1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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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보수 청산 선봉에 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혜훈 의원이 바른정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지난달 26일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바른정당 대표 및 최고위원 지명대회’ 결과 기호 1번인 이 대표가 총 1만6809표로 득표율 36.9%를 기록, 하태경(33.1%)·정운천(17.6%)·김영우(12.5%) 최고위원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보수정당 사상 최초의 선출직 여성 대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소신’ ‘뚝심’의 대명사.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는 당선사에서 ‘자강론’을 외쳤다. 바른정당이 보수의 본진이 돼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다른 보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일부 보수 인사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이 대표 취임 후 바른정당은 지지율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은 전당대회가 있던 그 주, 바른정당이 지지율 9%를 기록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이어 전체 2위, 야당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비록 다음 여론조사서 전체 2위 자리를 한국당(9%)에 내줬지만 불과 1% 차이로 오차범위 내에서 쫓고 있다. 의석수, 자산, 고정지지층의 규모 등 모든 부분서 한국당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는 바른정당이지만, 저력을 발휘해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 대표의 ‘뚝심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 당선되고 15일이 지났습니다(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1일 기준).
▲15일밖에 안 지났어요? 몇 달은 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 예. 15일 맞네요.
▲그만큼 정신이 없네요.


- 인터뷰가 많으시죠?
▲오늘(지난 11일)은 인터뷰가 3개뿐이었어요. 그런데 지방 일정이 있어 경북 영주·안동을 돌고 지금 올라온 거예요. 또 장관과 감사원장 등등해서 예방 일정이 4개 정도 있었어요.

- 당선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단 시간을 1, 2분 내기도 힘들어요. 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일정을 수행하다 보니 체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예요.

- 무리하시는 건 아닌지.
▲당 대표 기간 내내 이럴 것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초반에 인사드려야 할 곳이 많으니까.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 장관, 청와대 인사, 각 당 대표 등을 찾아봬야 하고, 또 인터뷰까지 해야 하잖아요. ‘임기 초만 죽었다 생각하자’ 그렇게 임하고 있습니다.

- 취임 후 당 시스템에 변화가 있나요?
▲회의 방식을 바꿨어요. 이전에는 개인 생각까지 공개발언 시간에 했습니다. 그러면 언론은 그게 개인의 입장인지 당의 입장인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지도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다음날 회의서 다뤄야 할 안건을 각자 올리게 했습니다. 그중 우선순위를 정한 뒤 비공개 회의를 거쳐 당의 공식 입장으로 나가게 바꿨습니다. 

현재 당 대표 입으로 나가는 게 당의 공식 입장입니다. 대신 보충하고 싶은 것, 공식 입장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최고위원들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소수 의견도 존중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당론에 일사분란하게 굴종하는 것이 싫어서 한국당을 나온 사람들이니까요.

- 겹경사입니다. 아시아·유럽정치포럼(AEPF) 초대 부의장이 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유∼ 사실 걱정입니다. AEPF는 제가 지난해부터 준비해오던 일인데요. 아시아와 유럽이 함께 논의할 일이 많아 지난해 내내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획에 없던 당 대표로 당선돼 이 두 가지 일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보수정당 최초 선출직 여성 대표
소신과 뚝심 대명사의 ‘자강론’


- 초대 부의장이니까 역할이 만만치 않을 것인데.
▲그야말로 ‘뉴 본 베이비(Newborn Baby)’잖아요. 회의 방식, 아젠다 세팅, 결의문 채택 프로세스 등이 서로 다른 유럽과 아시아정당 연합체가 하나가 돼 협업(Co-Work)해야 하니까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 문재인 대통령의 G20 정상회담은 어떻게 보셨나요?
▲고생하셨죠. 인수위도 없이 취임하자마자 국정 현안이 산적해있는데 정상외교까지 소화하시는 건 엄청난 일입니다. 정상회담서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지 정할 시간도 없이 내몰린 거잖아요. 참 힘드셨을 걸로 짐작이 되고 어쨌든 고생하셨다고 평가해드리고 싶습니다.

- 잘한 점과 아쉬웠던 점은?
▲한·미·일 공동성명 발표는 굉장히 ‘시의적절’했다고 봅니다.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정부에 가지고 있는 불안함은 ‘과연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 수 있느냐’잖아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성공단계에 있고 한미 정상회담 중에도 도발을 멈추지 않은 게 북한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우리와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만 매달리다 보면 국민들은 불안해하지 않겠어요? 역대 우리 정부는 부시 8년, 오바마 8년을 거치며 북핵 제재에 함께 공조를 하자고 말은 했지만, 실제 공조의 액션에 들어간 적은 없었습니다. 

당 지지율 한때 2위까지 올라
“보수 본진될 것” 자신감 보여

트럼프정부 들어 이제 그 공조가 실행되려고 하는 찰나, 우리 쪽에서 북한과의 대화 얘기를 꺼내 이 공조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까 우리 국민들은 걱정했어요. 그러나 다행히 한·미·일 공동성명이 그런 불안을 상당히 완화시켜줬습니다. 
단,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G20 정상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우려와 공감을 했음에도 마지막 합의문에 북핵 문제가 한마디도 언급이 안 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재인정부가 재협상을 하자고 말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일본 측에서 합의를 파괴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벌써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고 했는데 이건 합의를 깨는 발언이거든요. 일본 자민련 소속 의원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자발적인 것이었다” “비즈니스였다” “상업적 거래였다”며 정말 천인공노할 발언을 했잖아요. 재협상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 바른정당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자릿수 돌파를 위해 어떤 것들을 구상하고 있는지?
▲‘바른보수를 찾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전국을 다니며 우리 바른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 뭘 하려는 건지, 우리가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들인지를 국민들에게 만나서 알릴 계획입니다. 

특히 집중적으로 찾아갈 지역이 영남 중에서도 대구·경북(TK)인데요. 여기는 낡은 보수가 가짜뉴스를 퍼트려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된 피해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아예 2달 동안 TK서 먹고 자면서 생활하려고 합니다. 

- 지금 분위기에선 호남보다 영남 공략이 더 힘들어 보입니다.
▲맞습니다. 왜냐면 잘못된 편견의 피해자들이라 그렇습니다.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자는 ‘문준용 제보조작’만큼이나 심각한 국사범(國事犯)으로 다뤄야 합니다. 대선기간 중 홍준표 당시 후보(현 한국당 대표)가 퍼트린 가짜뉴스도 마찬가지죠. 

“홍준표발 가짜뉴스, 
문준용 건만큼 심각”

홍 후보가 문재인 당시 후보를 여론조사서 앞섰다? 그건 명백한 가짜뉴스입니다. 이걸 무작위 살포했는데 왜 조사해서 처벌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전 홍 후보 측의 가짜뉴스 유포도 문준용 제보조작만큼 심각하게 다뤄야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봅니다.


- 극우성향 단톡방에 취재차 들어가 있는데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것을 보면 심각한 수준입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 많아요.

- 최근 바른정당은 ‘종북몰이 보수,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한국당이 해체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는데요.
▲그 토론회는 제가 아닌 하태경 최고위원이 주최하신 자리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한국당은 시대의 흐름으로부터 유리돼 수십년전의 사고방식·가치관·관행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해체될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전 해체보단 자연 소멸된다고 봐요. 대한민국과 점점 유리되는 세력은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잖아요.
 

- 대표님은 한국당이 종북몰이 보수의 주체라고 생각하는지?
▲한국당은 그 일을 앞장서서 하는 정당이죠. 지난번 대선 때 홍 후보가 “문재인이 집권하면 김정은이 집권하는 것”이라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수천명의 당원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얘기했어요. 그게 종북몰이가 아니고 뭔가요? 그런 말을 공당서 하고 있는 거예요.

- 몇몇 지역 정가서 한국당 탈당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시대의 흐름과 완전히 유리돼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점점 멀어지는 낡은 세력은 결국 자동 소멸하게 되죠. 자동 소멸하는 저 난파선 안에 사람들이 살려면 하루라도 빨리 바른정당의 구명보트로 옮겨 타야 합니다. 우리는 살려고 한국당을 뛰쳐나오는 사람은 태워줄 겁니다.

- 문준용 제보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바른정당서 특검 주장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검은 주호영 원내대표의 개인 의견입니다. 당의 공식 입장은 아니구요. 특검은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단, 개인적으로 저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정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 마지막으로 바른정당 대표로서 어떤 각오로 임기를 마치실 건가요?
▲대한민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는 ‘건강한 진보’ ‘건강한 보수’, 두 날개가 튼튼해야 균형을 잡고 비상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보수라는 한 날개가 망가졌어요. 그동안 보수 진영이 보여줬던 잘못된 문화·구조·관행이 누적된 상태서 박근혜라는 대통령이 이 문제를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 거예요. 


초토화된 보수는 하루이틀 만에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복원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바른정당은 힘들고 고난의 행군이지만, 그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많은 보수 유권자는 물론 대한민국의 건전한 국민들께서도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는 저희들에게 애정과 인내를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더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주시길 바랍니다.


<chm@ilyosisa.co.kr>


[이혜훈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미국 UCLA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제17·18·20대 국회의원(서울 서초갑)
▲바른정당 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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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