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위로 전철 다니는 사연

사고 나면 대형사고…시한폭탄 안고 열차 운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하철 1호선 북쪽 시종착역인 소요산역에는 출구가 한 개뿐이다. 열차가 멈추면 소요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이 출구 밖으로 쏟아진다. 출구 오른쪽으로 걷다보면 ‘쇠둔치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과 철도가 보인다.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오가는 철도다. 그리고 철도서 채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유소가 하나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재의 A주유소는 2006년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주유소는 도로와 철도 사이에 있다. 주유소 정면으로 뻥 뚫린 도로에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얇은 담 너머 철도로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수없이 오갔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신호로 울리는 ‘땡땡’ 종소리도 쉬지 않고 들려왔다. 세 가지 소리가 한데 섞일 때면 옆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철도와 주유소 뒤편 담벼락 사이에는 제멋대로 자란 풀이 가득했다.

주유소 옆 철도
1일 수십회 운행

B씨는 2013년 주유소를 인수해 운영하는 과정서 늘 소음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열차가 다니다보니 소음 문제가 끊이질 않았고, 밤이면 열차가 오가면서 튀는 불꽃에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B씨는 “주유소에는 5만 리터의 무연 휘발유를 포함해 25만 리터 용량의 기름 저장 탱크가 있다”며 “승용차 기준으로 6200대를 동시에 주유할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정전기나 작은 불꽃으로도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주유소 특성상 열차 운행이 대형 사고의 불씨가 될까 두려웠다는 것.


B씨의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공사와 관련해 주유소 뒤편으로 고가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다.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사업(총연장 20.87㎞)은 단선 비전철 철도노선을 단선 전철철도로 만드는 사업으로,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10월31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은 착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공사에 돌입했다. 이 노선은 동두천-소요산-초성리-전곡-연천 등 5개 역을 지난다. 

이 중 초성리역은 이전되고 기존 한탄강역은 없어지며, 소요산·전곡·연천역은 개량된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 등 대륙철도와 연계까지 고려한 대형 사업이다. 교통망이 부족한 연천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큰 사업이기도 하다.

주유소 주인 안전 진단 요구
공단·감리단 측 ‘절레절레’

전체 2개 공구 중 초성리역을 기준으로 동두천-초성리 구간(1공구)은 한화건설과 가야 경남기업, 초성리-연천 구간(2공구)은 포스코건설, 태평양건설, 포스코 엔지니어링이 맡아서 각각 시공 중이다. 

A주유소는 1공구 구간에 일부 포함된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A주유소 주변 일부 공사 구간의 고가화 때문이다. 이른바 소요고가의 시공이다.

현재 열차 건널목 관리는 직원 1명이 20∼30분마다 흰색과 빨간색 깃발을 들고 나와 교통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면 자동차가 멈춰 길게 늘어서는 모습이 1시간 동안에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직원과 차단기 외에 사람과 자동차의 통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4월18일에는 해당 건널목서 70대 경비원 이모씨가 승용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건널목 간수 일을 하던 이씨는 운전자 곽모씨가 몰고 가던 아반떼 승용차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운전자는 “건널목을 지날 때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운전자가 차단기가 내려오기 직전 차를 빨리 몰아 건널목을 통과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은 교통 정체, 안전 문제 등 열차 운행 과정서 드러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소요고가의 시공을 추진했다. 고가 위로는 철도, 아래로는 자동차가 지나가도록 만들어 교통 순환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다. 

소요고가는 현재 철도 위치보다 A주유소 쪽으로 가깝게 설계돼있다. 고가가 완성되면 열차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수평으로 가까워지는 대신 위로 높아진다. 최종 완성될 경우 철도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약 19m 정도다.

공단은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 제15조 규정에 의거, 언론사에 공고하고 보상 계획의 열람을 안내 통지했다. 이번 사업에 편입되는 토지의 보상 문제와 관련해선 지난 2014년 2월 초 <문화일보>에 공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토지 보상 안내 과정서 우리 주유소 일부가 공사 지역에 포함됐다는 것을 알았다”며 “지금도 철도와 주유소 간 거리가 멀지 않은데 고가가 생기면 너무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우려했다.

이때부터 A주유소와 발주처·감리단·시공사 사이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불거졌다. 앞서 공사 시작되기 전에도 소음이나 안전 문제 등에 대해 항의를 제기했던 B씨가 공단이나 동명감리단(이하 감리단), 시공사 등에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 사항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B씨가 문제 삼은 부분은 ▲안전 검사 여부 ▲설계 과정에서 위험물 처리시설(주유소) 고려 여부 ▲작업 조건 변경과 선로 변경 가능 여부 ▲주유소 진입 동선 대책과 보상 방안 ▲사고 발생 시 대책 마련 여부 등이다.

B씨에 따르면 A주유소 내 위험물은 인화성이 강하고 발화점이 낮기 때문에 순식간에 발화해 화염과 폭발 등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열차는 대형 운송수단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과 재산 피해 규모가 큰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다. 또 사고가 발생하면 도로처럼 우회 노선이 없어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씨 입장에선 2013년부터 제기한 소음 및 안전 문제가 소요고가의 시공으로 ‘현실적인 위험’으로 다가온 셈이다. 

B씨는 “주유소 운영은 생업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명확한 답변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가 시작점 부근에 위험물 처리시설이 위치하는 만큼 대형 사고나 안전사고에 노출돼있는 현 상황을 공단 등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게 골자였다.


바닥에 깔린 철길
교통 정체 심각

오랫동안 철도 전기 관련 사업을 해온 전문가는 “화재 발생 여부를 단언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아무래도 위험물(기름)을 취급하기 때문에 화재 가능성이 다른 곳보다는 높을 수 있고, 일단 사고가 나면 큰 피해가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B씨는 “내 요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전 여부를 판단해달라’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면 확답을 달라’ 정도”라며 “민원을 제기하고 전화로 상황 파악과 대책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돌아온 답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B씨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공단이나 감리단은 B씨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또 “안전하다. 문제없다”며 “개인의 요구로 안전 진단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민원 제기 사항을 최대한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A주유소 측에서 제기한 안전 관련 사안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고 체계가 시공사-감리단-공단 순으로 돼있는 만큼 건설사는 지시사항을 이행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고가화 과정서
안전문제 불거져


시공사 측은 지난 3월27일 B씨와 마주앉았다. B씨가 3월23일 공단에 민원을 접수하고 나흘 뒤 시공사와 면담이 진행된 것이다. 공단에 들어간 민원에는 안전상의 문제와 소요고가 시공으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영업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포함됐다.

먼저 공사가 완료될 경우 유조차 진입이 어려워 유류공급을 받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와 동시에 대형차 진입도 불가능하며 교각 끝점과 주유소 캐노피(덮개 부분) 끝점 간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감전 위험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고압선과 인접해 있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전기안전진단보고서’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다.

민원 내용을 검토한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요구사항과 (공단·감리단 측의 입장이) 상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대형차 진입 문제, 시야 확보, 고압선 지장 여부 등에 대해 추후 정밀 조사를 실시한 후 요구 사항 반영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취재 들어가자 “검사 의향 있다”
초기 허가 과정서 협의도 누락돼

시공사가 제출한 보고서를 받은 감리단 측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감리단 측은 지난 5월 B씨와 감리단 사무실서 만나 민원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감리단 관계자가 “국가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결국 진행될 것” “계속 민원을 제기해봤자 손해를 보는 건 B씨”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안전 검사를 진행했다는 감리단 측의 주장에 “감리단서 했다고 주장한 ‘안전 검사’는 주변 주유소 관계자 몇몇에게서 나온 의견일 뿐”이라며 “주유소 몇 군데를 돌아다녀 얻은 답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감리단 측은 “공사 구간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의견을 구했을 뿐, 전문가가 포함된 제3기관에 용역 발주 절차를 거쳐 수행한 정식 안전 검사를 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공단 측 역시 안전 진단 요구 등 B씨의 민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서 공단 수도권본부 재산지원처 용지부 차장만 만났을 뿐, 공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담당자나 안전 관련 전문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B씨는 “공단 관계자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추측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하면서도 상상이 현실이 되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는 질문에는 말을 얼버무렸다”고 설명했다.

B씨와 이야기를 나눴던 공단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가 취재를 시작하자 “나는 토지 보상 문제만 담당하고 있다”며 “해당 사안에 대한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고 답했다. 

공단 측은 민원인의 요구가 계속된다면 안전 검사를 해줄 의향이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B씨가 지난 3월 민원을 제기한 이후 묵묵부답이었던 공단이 3개월이 지난 후에야 답을 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공단은 소요고가 시공이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단 수도권본부 수도권사업단 경원선진접선PM 관계자는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에 의거, 소요고가와 A주유소 간의 이격거리는 확보된 상태”라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 ‘특고압 가공전선과 지지물 등의 이격거리’ 항목에 따르면 특고압 가공전선과 그 지지물, 완금류, 지주 또는 지선 사이의 이격거리는 사용전압이 15kV 이상 25kV 미만일 경우 20㎝ 이상 확보하면 공사가 가능하다.

또 공단과 감리단 측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바는 주유소 영업보다 철도 운행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주유소가 처음 운영을 시작했던 2006년에도 철도는 운행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지적이다. 

소요산의 이름을 딴 소요산역은 1976년 1월11일 영업을 시작했고 2006년에는 수도권전철이 들어왔다. 시기상으로 수도권전철이 들어온 시기와 A주유소 영업 시작 시기가 겹친다.

이 때문에 공단과 감리단 측은 철도안전법 제45조 ‘철도보호지구에서의 행위제한’ 조항에 따라 A주유소 허가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철도안전법 제45조는 철도경계선(가장 바깥쪽 궤도의 끝선)으로부터 30m 이내의 지역에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또는 인공구조물의 설치 등의 행위를 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도지사에게 신고해야 한다. 

감리단 측은 “A주유소가 철도보호지구 내에 있기 때문에 허가 과정서 ‘민원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등의 단서 조항이 붙었을 것”이라며 “당시 허가 조건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동두천시에 확인한 결과 A주유소 허가 과정서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A주유소의 경우 철도경계선서 30m 이내인 철도보호지구 내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 쪽에서 코레일 혹은 공단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이 누락됐다는 얘기다.

동두천시청 건축과 관계자는 “협의 과정이 누락된 게 맞다. A주유소 허가 과정서 단서 조항이 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요구해도
답 없어 ‘분통’

B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지만 한국은 아직도 ‘위험공화국’이 맞는 것 같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법, 상식이 통하지 않는 탁상행정, 여전히 만연해 있는 공무원의 안전 불감증 등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안전한 나라는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답답해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차’ 하면 불붙는 주유소
정전기만으로도 폭발

지난달 13일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한 주유소서 기름 탱크 교체 작업을 하던 중 공기 중으로 기화된 기름, 이른바 유증기에 불꽃이 튀면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용접 작업 중이던 작업자 한 명이 숨졌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주유소는 정전기만으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는 정전기 발생이 잦아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소방당국은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주유소에선 유증이 많이 발생한다. 춥고 건조한 시기에 정전기로 인해 유증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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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