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5.29 10:26:13
  • 호수 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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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권위와 여건을 상실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정부의 출범으로 대한민국은 변화하고 있다. 그중 가장 극명한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외교·안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은 대북 문제라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그 해답을 찾고자 <일요시사>는 외교·안보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를 만났다.
 

‘리틀DJ(김대중)’ ‘정치9단’ 한화갑 총재는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호남서 태어난 그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헌정 사상 첫 정권교체의 순간임과 동시에 거물 정치인으로서 ‘한화갑’이란 이름 석자를 알린 분기점이었다.

한 총재는 김대중정부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임기 첫 한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미국, 일본 등 세계열강을 숨 가쁘게 오가며 대한민국의 외교적 활로를 뚫고자 노력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4선 국회의원(14·15·16·17대), 여당 대표 등 자신의 이력에 화려함을 더했다. 이제는 정치원로가 된 한 총재는 남은 일생을 한반도평화재단 일에 몰두하며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에 바치고 있다.

9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 시점에 <일요시사>는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한반도평화재단 사무실을 찾아 한 총재를 만났다.

다음은 한 총재와 일문일답.


- 이번 대선 정국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누가 당선될 것인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대선 기간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누가 가장 지지를 많이 받는지 드러났습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유권자에게 표를 구할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이하 민주당) 원내 다수당으로서 국정을 원만히 운영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당·후보 지지도, 정치 환경적인 측면서 민주당이 앞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정치 환경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입니까?
▲이번 대선은 여당이 없는 초유의 선거였습니다. 덕분에 여야 구별 없이 모든 정당이 완전 경쟁하는 구도로 진행됐습니다. 즉, 야당끼리의 경쟁이었습니다. 그렇게 5개 주요 정당이 맞붙는 초유의 정당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기존의 여야 대결이 아닌 국민의 욕구를 얼마만큼 실천해줄 수 있느냐에 성패가 갈리는 정당정치의 토대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시대정신이 변화한 결과라고 봐도 될까요?
▲국민들의 의식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지역성만 고려해 투표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는 영남 출신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팔아 정치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나가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 지난 박근혜정부를 평가해주신다면?
▲이렇게 무능하다는 게 전 국민에게 폭로됐습니다. 박근혜정부의 4년은 그야말로 낭비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서 국사를 가지고 논쟁 한 번 해봤습니까? 장관도 자리만 지켰지 한 일이 없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닌 자기네들 자리 지키는 정부로 끝났습니다. 탄핵이 안 됐으면 민주 국가라고 말할 자격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문 대통령의 당선이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문 대통령의 당선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로 인해 당선이 어렵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어쨌든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을 압도할 만큼 다른 대선주자가 정치 지도자로서 국민들에게 리더십을 각인시켜주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전 후보가 그랬습니다. 결국 살아난 보수 진영에 의해 ‘호남 대통령’이라는 지역주의에 기반한 프레임에 갇혔고, 3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만약 안 전 후보가 문 대통령을 압도하는 정치적 자질을 보여줬다면 이러한 프레임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은 아직도 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격렬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보수 진영서 문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과거처럼 국민 앞에 나서서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수는 문 대통령을 반대할 만한 모든 권위와 여건을 상실한 상황입니다. 탄핵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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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정부의 파격 인사가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문 대통령은 보수든 진보든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인데요. 주변이 정돈된 다음 국민의 목소리를 얼마만큼 수렴해 소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계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들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면 그 공은 대통령의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사람이 마음껏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용병술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임기 초지만, 문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국민의당은 북핵 문제나 4강 외교를 풀어가기엔 경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을 봐도 국무장관이 재벌 총수 아닙니까. 그 사람이 무슨 외교 경험이 있나요? 외교부는 수십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관은 자기 주관대로 기관을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외교부에는 수십 년의 외교 역량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을 빌려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국민의당의 논리대로라면 의정활동을 가장 오래 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죠. 전 강 후보자가 UN서 세계 문제를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외교의 영역을 넓히는 데 보탬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6월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일각에서는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합니다. 외교·안보 쪽 핵심 정책 목표를 명확히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두른다는 지적인데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미정상회담이 조속히 이뤄져야 합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북핵 문제는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일례로 북핵 문제에 있어 성과를 낸 1994년 제네바 합의도 우리나라와 북한이 대화해서 협정을 맺은 게 아닙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한 것이죠. 미국이 주도하지 않으면 UN 결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만의 독자적인 정책을 쓸 수 없는 것이 북핵 문제입니다. 북한도 우리와 대화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그러나 이게 현실입니다. 북핵 문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 중국과의 공조보단 미국과의 공조를 좀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우린 미국과 동맹관계니까요.

- 지난 정권의 사드 배치 합의로 미·중 사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사드 문제는 박근혜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또 중국의 양해도 못 구한 것이 실패의 원인입니다. 중국과 국민에게 ‘북한의 핵탄두를 막기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솔직하게 털어놨어야 한다고 봅니다.

- 그렇다면 사드를 국내에 배치한다는 결정은 옳았다고 보시나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중국은 우리만큼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중국은 UN 결의도 무시한 채 북한에 돈과 기름을 주지 않습니까.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중국의 말만 듣고 우리가 미국과 관계를 끊어버리면 북한만 이로울 뿐입니다. 애초에 중국이 북핵을 막았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중국에 북핵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면 사드를 철수하겠다고 요구해야 합니다.
 

- 문 대통령은 줄곧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결국 사드 배치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데요.
▲북한에 대해서는 양동작전을 써야 합니다. 사드 배치가 안보를 위한 결정이듯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도 안보를 위해서입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은 한반도 평화유지 비용인 것이죠. 전쟁이 발발하면 하루 1억달러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은 1년에 1억달러가 소요됩니다. 교류협력을 통해 공존을 하면서 평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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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정부는 개성공단 재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북한에 개성공단 같은 것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북한에 우리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통일은 안 됐지만 우리 경제인의 활동 영역이 한반도로 확대돼야죠. 그것이 실질적인 통일입니다.

우리는 말이 같고 문화가 같고 피가 같은 단일 민족입니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에서의 우리 영역을 넓혀가서 최종적으로 영토까지도 합쳐야 합니다. 차츰차츰 넓혀가야 합니다. 남북이 같은 영토처럼 왕래할 수 있고 가족도 만날 수 있으면 그것이 통일 아니겠습니까.

- 북한과의 교류협력은 북한을 도와주는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편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우리가 비료, 쌀을 원조할 때 북한에 돈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국내 물품을 우리 정부가 사서 줬죠. 국내산 쌀을 사면 우리 농민에게 돈이 갑니다. 과거 경수로 지어질 때도 노동력만 북한 것이지 물자는 전부 우리 쪽에서 갔습니다. 돈은 남한 사람들이 버는 것이지 북한이 아닙니다. 

- 지난 대선 정국서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개성공단 재개가 북한 노동자들을 위한 공약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북한 노동자에게 200달러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 중소기업은 훨씬 더 돈벌이가 되죠. 우리 기업 돈벌이시켜주는 공약입니다. 

- 그렇다면 북한과의 교류협력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까요?
▲미국과 협의해 발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정부 때 햇볕정책은 클린턴 미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이 같이 수반됐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 문재인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여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직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당장 남북 교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대통령 되기 전부터 주장했지만, 취임하고 3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습니다. 그런 전례를 생각한다면 급하게 갈 필요는 없습니다.

-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문제가 최대 난제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너무 서둘렀습니다. 그런 자세로 접근하면 외교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다른 열강과의 외교도 마찬가지입니다.

- 일본 측은 합의한 사안을 이행하라는 입장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이 담긴 무라야마·고노 담화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이를 무시하면서 우리 측에는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담화 내용을 가지고 “너희는 이제 와서 왜 다른 말을 하느냐”고 일본을 압박해야 합니다. 사실 일본은 우리에게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할 자격이 없습니다.

-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위해선 어떤 점에 주안을 둬야 할까요?
▲문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까 연구하겠지만 사실 박근혜정부가 잘못한 것을 시정만 해도 박수받을 것입니다.

- 반대로 국민은 어떤 시선으로 문재인정부를 바라봐야 할까요?
▲국민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언제든지 시비를 가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는 좋은 정치를 가질 수 있는 길입니다. 대통령은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며, 그 권력은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권력은 결코 대통령만의 것이 아니라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chm@ilyosisa.co.kr>


[한화갑은?]

▲전남 신안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제14·15·16·17대 국회의원
▲전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
▲전 민주당 대표
▲현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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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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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