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비껴간 충청대망론 흑역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5.08 10:49:56
  • 호수 1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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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들러리로 끝났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 정권이 대한민국을 이끌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시작된 이번 대선 레이스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용두사미’로 끝난 충청대망론이다. <일요시사>는 1960년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충청 출신 대선주자들의 흑역사를 정리해봤다.

충청대망론은 충청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고픈 지역의 열망이자, 이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다. 역대 대통령 중 대망론을 달성한 사람은 제5대 윤보선 대통령이 유일하다. 충남 아산 출신인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물러나자 자유당을 밀어내고 집권한 민주당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당시는 의원내각제였다. 실권은 대통령이 아닌 총리에게 있었다. 이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대망론이라고 할 수 없다.

끊긴 대망론

더군다나 윤 전 대통령의 집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이듬해 3월 대통령직서 내려왔다. 박정희 군부독재의 시작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하야 후 다음 대선에 연이어 출마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하고 말았다.

뒤를 이은 정치인은 김종필(JP) 전 총리다. JP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등장해 정권 2인자로 군림하며 이름값을 올렸다.

정치적 입지를 다진 JP는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했다. 개헌으로 치러진 첫 직선제였다. 그러나 직선제는 오히려 그의 대권가도를 가로막았다. JP는 충청권의 약세를 실감하며 4위에 그쳤다. 대중에 명실상부 충청의 맹주로 각인됐지만,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3당 합당의 대주주로 나서며 대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얻는다. 1990년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총재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민주당) 총재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손잡고 민주자유당(민자당)을 탄생시켰다. 내각제 개헌을 통해 대권을 잡으려는 JP의 노림수였다.

그럼에도 JP는 철저히 2인자에 머물렀다. 노 전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외치던 JP 대신 대통령제를 주장한 YS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서열서 밀려난 JP는 민자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자민련 총재가 된 그는 이념적 차이가 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했다. 이른바 DJP 연합이었다.

호남-충청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DJ는 JP를 정권의 첫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JP는 인사권을 행사하는가 하면 국민연금 등 국가 주요 정책서 권한을 사용하며 실세 총리로 군림했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 대북 관계 등에서 DJ와 갈등을 보였고, 결국 총리직을 사퇴했다.

YS·DJ 정권서 JP는 철저히 2인자에 머물렀다. 이는 충청이 가진 정치적 취약점을 대변했다. 영남의 YS와 호남의 DJ는 충청 지역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JP와 손을 잡은 측면이 강했다. 적어도 충청은 그렇게 진단했다. 자민련 창당 후 치른 15대 총선에서 JP가 꺼낸 ‘핫바지론’은 이러한 자괴감의 표출이었다.

윤보선이 마지막, JP·회창도 역부족
기문·희정·운찬에게 기대 걸었으나…

JP에 이어 충청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정치인은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이회창 전 총재였다. 황해도 서흥서 태어났지만, 부친 및 선대의 고향이 충남 예산이어서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분류됐다.


법조인이던 이 전 총재는 청렴·원칙의 대명사로 불리며 유력한 대선주자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 역시 순탄치 않은 정치 역정을 경험한다. 첫 도전인 1997년 대선에서 DJP 연합에 석패했다. 같은 충청 출신인 이인제 전 의원에게 충청 표가 일부 넘어간 게 결정적이었다.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청 행정수도 공약에 안방을 내주며 무너졌다. 2007년 세 번째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19대 대선은 충청 입장에서 숙원을 풀 절호의 기회였다. 반기문, 안희정, 이인제, 정운찬 등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모두 대선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사람은 충북 음성 출신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었다. 귀국하기 전 그는 각종 여론조사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후보보다 앞선 지지율을 보이며 충청의 숙원이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귀국 후 지역의 열망은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각종 구설로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린 것이다. ‘정치 교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캠프 내에서 알력 다툼이 발생하는 등 내부 단속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다른 후보의 네거티브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현실 정치의 벽을 실감한 것이다. ‘조카의 국제사기 사건’ ‘박연차 23만달러 수수 의혹’도 그를 괴롭혔다. ‘충청-영남 연합’으로 대권에 도전하려던 그의 계획도 순조롭지 못했다. 결국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출마 선언 3주 만에 백기를 들었다.

반 전 총장은 물러났지만 대망론이 끝난 건 아니었다. 충남 논산 출신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주목받았다. 문 후보의 강력한 대항마로 가능성을 보인 안 지사는 충청이 가장 주목하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안 지사는 부족한 조직에도 선전을 이어갔다. 민주당 경선이 본격화되자 개인적 인기를 선보이며 지지율 20%를 웃돌았다. 확장성 면에서 문 후보보다 낫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문 후보의 ‘대세론’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 경선서 석패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됐다.

다음 기회로…

반 전 총장, 안 지사의 중도 하차로 주목받은 사람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였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그는 방향을 잃은 충청 민심을 수습하며 대권을 노렸다.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 손잡고 부족한 조직을 보완했다.

그러나 문 후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그는 ‘통합정부’라는 차선책을 선택, 주연이 아닌 조연을 택했다. 마지막 주연 후보가 인막의 뒤안길로 사라진 순간이었다. 결국 충청은 본선 주자 0명이라는 성적표에 만족하며 다음 대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선 이끈 충청 인사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선대위에서 활동한 충청 인사의 면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선대본부 종합상황본부 실장은 대전의 대표적 ‘친문’인 박범계 의원이다. 같은 대전의 박병석 의원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선을 총괄 지휘했다.

안철수 선대위의 대표적 충청 인사는 김세환 대전 서갑 지역위원장이다. 그는 선대위 공보단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대전 대덕특구 기관장 출신인 신용현 의원은 여성위원장으로 여성 정책을 총괄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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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