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없는’ 정계개편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5.08 10:34:20
  • 호수 1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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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갔다 저리 갔다’ 철새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선 후폭풍이 몰아친다. 정계개편이라는 일대 지각변동이다. 원내 6개 정당이 대선 후에도 유지될 것이라 보는 시각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이합집산의 신호가 대선 전부터 감지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합집산이 권력만 좇는 형태로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일요시사>는 5월 들어 대한민국을 찾은 정치 철새들의 도래지를 살펴봤다.

“정치권 빅뱅이 일어날 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같이 단언했다. 비록 자신이 정권을 잡게 될 경우를 전제로 들었지만, 이 전제와 상관없이 정치권에는 정계개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안 후보뿐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도 정계개편을 예견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세종문화회관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서 자신이 당선될 경우 “대대적인 정계개편에 나서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 빅뱅
이미 시작됐다

기폭은 바른정당서 일어났다. 비유승민계 10여명의 의원이 지난 2일 바른정당을 집단 탈당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으로 복당키로 결정했다. 이들은 복당 선언과 함께 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탈당 과정이 석연찮다.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후보는 누차 대선 완주를 선언해왔다. 기자들이 유 후보에게 타 후보와의 단일화를 물을 때마다 “수백 번도 넘게 들은 얘긴데, 끝까지 간다”고 밝혔다. 내우외환에도 흔들림 없는 강변이었다. 유 후보는 안으론 집단탈당, 밖으론 지지율 부진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소속 의원들이 당 후보를 제쳐두고 경쟁 후보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는 헌정 사상 유례 없는 탈당이었다. 이에 일각에선 ‘명분 없는 탈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정농단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당을 나왔음에도 인적 청산이 되지 않은 한국당으로의 복당은 대선 후 정치공학만을 고려한 이합집산이라는 평가다.


탈당의 모양새 역시 좋지 않았다. 탈당파는 당을 나오기 전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심야회동을 가졌다. 홍 후보는 이 자리서 “좌파 집권을 막아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기간 중 경쟁하고 있던 타 후보와의 회동은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당내서 격한 반응이 나온 건 당연지사다. 바른정당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배신자들은 그들에게 과분한 칭호다. (이들에게) 적절한 칭호는 저렴한 표현이지만 ‘쫄보’라고 본다”고 일침을 가했다. 바른정당 김영우 의원은 “지금 탈당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가 않다. 이런 웃지 못할 코미디가 어디 있단 말인가”라며 날을 세웠다.

쪼그라든 몸집
교섭단체 위협

직격탄을 맞은 유 후보는 “(탈당파와) 같이 어렵고 힘든 길을 가고 싶었는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도 “처음부터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안았다. 어렵지만 그 길을 계속 가겠다”고 흔들림 없는 완주를 재확인했다.

탈당이 뼈아픈 이유는 비단 대선에 타격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른정당은 몸집이 줄어들어 당의 존립까지 위협받고 있다.

탈당의 물꼬를 튼 것은 한국당으로 이동한 이은재 의원이다. 바른정당 소속이던 그는 지난달 28일 탈당을 선언하고 한국당으로 넘어갔다. 더군다나 “바른정당을 떠나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다”고 입장을 밝혀 파장을 낳았다.

바른정당 소속 의원은 33명서 32명으로 줄어들었고 이 의원 탈당 이후 10여명의 추가 탈당자가 발생했다. 이에 원내교섭단체 정족수를 겨우 유지하는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모양새다. 탈당파 10여명에 속한 김성태 의원은 “추가로 (탈당에) 합류할 의원이 있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진앙지 역할을 한 의원들이 바른정당 내에 남아 있어 탈당은 현재진행형이라 봐도 무방하다.
 

탈당의 근본적 이유는 유 후보의 낮은 지지율이지만, 유 후보와 김무성 의원의 갈등이 땔감 역할을 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앞서 김 의원은 유(승민)·안(철수)·홍(준표) 3자 단일화를 추진한 바 있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의원은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막아야겠다는 애국적인 생각으로 (3자 단일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대위원장이 당 후보의 의사와 배치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바른정당 10여명 탈당…개편 초읽기
“박통 구속시킬 땐 언제” 뒷말 무성

유 후보는 김 의원과 갈등설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번 탈당파 의원 대부분이 친김무성계라는 점에서 유 후보의 말은 설득력을 잃었다. 김 의원은 탈당 소식이 전해진 당일 당사를 방문해 충격에 빠진 당직자들을 위로하는 등 잔류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지만, 탈당은 시간문제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렇다면 바른정당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의당 노회찬 공동선대위원장은 유세 현장서 유 후보를 만난 뒤 가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서 “어제 (유세 현장에) 모인 분들은 한국당으로 가려는 분들이고, 경기도 지역구 의원들 중 일부는 국민의당으로 가려고 한다. 잔류파와 함께 세 갈래로 나뉠 것”이라고 진단했다. 즉, 바른정당이 대선 후 나노 단위 분열을 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다.

남은 요소들을 고려하면 결국 한국당과의 연대·합당이 점쳐진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홍 후보의 지지율은 대선 막판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는 보수 유권자들이 미우나 고우나 한국당 후보를 선택한다는 방증이다.

반면 유 후보는 TV토론서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지지율 답보상태에 머물었다. 이러한 현주소를 봤을 때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의 최종 행선지는 한국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바른정당이 원내교섭단체 지위(현역 의원 20명 이상)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대선 후 한국당과의 연대·합당을 예상케 하는 요소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선 교섭단체 간 협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그 지위를 상실하기 일보 직전이다.
 

비록 정운천·황영철 의원 등 탈당파 중 일부가 결정을 번복하면서 정족수에 미달하는 사태는 피했지만, 대선 후 다시 한 번 탈당 바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선 후 또?
2차 여부 주목

만약 2차 탈당 러시가 현실화되면 바른정당은 민주당·한국당 도움 없이 법안 통과가 불가능해진다. 앙금은 남아 있지만, 정치적 결이 같은 한국당과의 연대·합당이 바른정당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범보수권이 한국당을 중심으로 모인다면, 범진보연대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서 “정권교체를 하면 안정적인 의석 확보가 필요한데 1차 협치 대상은 국민의당·정의당 등 기존의 야권 정당들”이라며 “국민의당은 뿌리가 같은 만큼 통합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협치를 꼽았다.

이른바 ‘통합정부론’이다. 이는 집권 후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전략이다. 120석이 안 되는 의석수로는 민주당 단독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측면이 고려된 것이다. 이에 문 후보는 박영선·변재일 등 비문 진영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통합정부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주로 구 야권 정당들과의 협치에 초점을 맞춰 실무 작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 통합정부론 “국민당·정의당 함께”
벌어진 문·안…제2의 바른당 예상도

다시 말해 국민의당·정의당과 협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가겠다는 포부다. 합당이 아니기 때문에 형식적 측면에서 다당제를 유지하지만, 한국당과 함께 실질적인 양당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이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다. 정치권은 대선 후 민주당의 규모뿐 아니라 실질적인 영향력도 지금보다 더욱 커질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한 신호가 정치권 밑바닥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 관심은 1년 뒤에 치를 지방선거다. 지방선거 출마를 고려하는 인사들은 권력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움직임은 대선 후 대세 정당을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 역할을 한다.

지방의원들은 속속 민주당행을 선택하고 있다. 유진우(김제)·류영렬(완주)·배성기(진안)·김상철(전 도의원) 의원 등 전북지역 전·현직 지방의원들은 최근 전북도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입당을 선언했다. 비슷한 시기 충북지역 무소속 박계용(영동)·최연호(옥천)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 입당을 발표했다.

키는 국민의당에
연대 예상 많아

협치의 관건은 국민의당의 결정이다. 앞서 국민의당-바른정당의 합당·연대 시나리오는 있었지만, 국민의당-민주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두 정당 모두 수권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안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면서 대선 후 두 정당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

“1번(민주당), 3번(국민의당)은 어차피 합당할 것”이라는 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예상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대선 후 국민의당서 민주당 복당을 희망하는 금배지들이 속출할 것이라 내다보는 목소리도 있다. 안 후보는 “민주당과의 합당은 없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선 고소·고발전 막후

대선 국면서 각 후보와 정당·캠프 간 고소·고발전이 치열히 전개됐다. 검증 공방이 과열 양상을 띠며 관련 서류가 검찰로 날아들었다. 그중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이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을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 혐의로 고발한 건이 가장 주목받았다. 고발장이 접수된 서울중앙지검은 공안2부(부장검사 이성규)로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문 후보 아들 준용씨의 ‘고용정보원 특혜 채용’ 의혹도 살펴보고 있다. 민주당은 관련 의혹을 제기해온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이 밖에 국민의당은 안 후보를 공격할 목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있다며 안민석 의원 등 민주당 의원 6명을 고발한 상태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도 자신이 안 후보 지지 발언을 했다는 문 후보의 TV토론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이는 ‘보여주기식’ 고발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가시적인 수사 성과가 나오기 어려움에도 정치권 인사들이 고발장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선거가 끝나면 화합을 명분으로 고소·고발을 취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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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