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호텔 며느리 의문사 후일담

사설감옥에 갇혀 있다 의문의 죽음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코리아나호텔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일어난 코리아나 안주인 이모씨의 자살. 우울증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향간의 소문을 뒤엎는 제보자가 나타났다. 바로 자살한 이씨의 어머니. 이씨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남편 방용훈 코리아나 사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의 주장은 과연 믿을만 한 것일까?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편지의 실체, 그리고 의문의 죽음을 파헤쳐 본다.

방용훈(65)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자녀들이 지난해 한강서 투신해 숨진 어머니 이아무개(당시 56)씨에 대한 자살교사 및 존속학대, 공동감금 등의 혐의로 외가 쪽에 의해 고소당했다. 고소인들은 방 사장을 고소하진 않았지만 그도 자녀들의 이런 행위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자살로 종결
계속되는 의혹

방 사장의 장모 임모(83)씨와 처형 이모(59)씨 명의의 고소장에는 고인의 네 자녀 가운데 첫째인 큰딸(33)과 셋째인 큰아들(28)이 피고소인으로 적시돼있다.

고소인들은 고소장과 함께 고인의 SNS 문자 메시지들, 고인에 대한 학대를 증언하는 주변인 등의 녹취록, 고인이 남편과 자녀, 친정, 친구, 손위 시동서 등에게 남긴 5통의 유서, 친정 가족 4명의 진술서 등을 제출했다.

고소인들은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검찰은 사건을 서울 수서경찰서로 내려보냈다. 경찰은 최근 고소인 조사를 마쳤다.


지난해 9월 고양시 덕양동 가양대교 북단 강변서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사장의 부인 이모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이씨에 대한 부검 결과 타살 혐의점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차량에서 이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발견된 점 등을 들어 자살로 잠정 결론 내렸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차량에는 휴대폰 등 다른 유류품은 없었다.

유력 언론인의 제수이자 호텔 사장의 부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방 사장은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의 친동생이자 조선일보사 주식 10.57%를 가진 주요 주주다.

일각에선 이씨가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실제 경찰 조사 결과 이씨가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말도 나왔다.
 

이씨가 자살을 선택한 동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서 차량에서 발견된 유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이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 유서 속에 죽음의 이유부터 배경까지 기록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나왔다.

“평소 학대했다” 할머니가 손주 고소
“사위도 관여” 주장에 재수사 움직임

이후 이씨의 친정으로부터 방 사장과 자녀들이 이씨를 평소 학대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 사장의 장모 임씨는 방 사장에게 보낸 A4용지 11장 분량의 편지를 통해 “방 사장이 자녀를 통해 이씨를 지하실서 고문했고 관련된 증거를 방 사장이 인멸하려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임씨와 와 처형 이씨는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에 방 사장 자녀들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고 검찰은 경찰에 사건 수사를 지시했다. 임씨 등 방 사장의 처가는 고소장에도 방 사장 자녀들이 이씨를 학대했다는 내역들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 사장의 딸이 2015년 11월, 이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과도로 그의 복부를 3회 찔러 상처를 입혔고 방 사장의 딸과 아들이 지난해 5월말부터 8월말까지 감금해 고문하며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방씨 부자들
도끼들고 침입?

지난해 9월 이씨가 목숨을 끊은 것도 방 사장 자녀들이 지시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방 사장 처가는 또한 지난해 9월 방 사장 자녀들이 이씨 사후 보험회사 직원들과 함께 있는 자리서 “친정식구들이 방씨 집안 돈 150억원을 삥뜯었다”고 말한 부분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이들의 주장과 장모 임씨가 지난해 9월 방 사장에게 보낸 편지 등을 바탕으로 수사 중이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숨진 상태라 조사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는 ‘방용훈 장모 편지’의 진위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인터넷상에는 '방용훈 사장 장모 편지'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확산됐다.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된 편지는 원문 그대로를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하지만 해당 편지가 실제 방용훈 사장 장모가 쓴 편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은 편지 원문에는 “방서방, 자네와 우리 집과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네. 이 세상에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처럼 찢어지는 것은 없다네. 병으로 보낸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로 보낸 것도 아니고 더더욱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도 아닌데...”라며 “악한 누명을 씌워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들을 시켜 다른 곳도 아닌 자기 집 지하실에 설치한 사설 감옥서 잔인하게 몇달을 고문하다가 가정을 지키며 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내 딸을 네 아이들과 사설엠블란스 파견 용역직원 여러명에게 벗겨진채 온몸이 피멍 상처투성이로 맨발로 꽁꽁 묶여 내집에 내동댕이 친 뒤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음에 내몰린 딸을 둔 그런 에미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네”고 적혀 충격을 준다.

이어 “남편이 죽으면 집앞의 산이 뿌옇게 보이고, 자식이 죽으면 삶 자체가 안보인다네. 지금 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 것도 입에 넣을 수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심지어 숨마저 한숨 한숨 괴롭게 쉬고 있다네. 온몸에 뼈가 다 녹아내리고 온 살이 다 찢겨 나가는 느낌이네”라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편지는 진짜?
내용보니 경악

하지만 편지 말미에 “단지 감사한 것은 우리 딸은 가기 전에 하나님을 받아들여 하나님 품 안에서 잘 쉬고 있다네. 나는 자네와 애들들을 다 용서하고 싶네. 나는 딸은 잃었지만 자네는 아내를 잃었고 아이들은 에미를 잃은 것이니 말일세”라면서도 “나는 솔직히 자네가 죄인으로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걸 기대했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으려 했는데 우리 딸이 가고 난 뒤의 자네와 아이들의 기가 막힌 패륜적인 행동을 보니”라고 적어 고소를 암시하고 있다.

지난 2월23일에는 처형 이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려다 지난해 고소당한 방 사장과 아들 방씨에 대해 서울고검이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재기수사명령은 항고에 일리 있다고 판단할 경우 불기소 처분을 취소하고 다시 수사하도록 명령하는 것을 말한다. 방씨 부자를 고소한 방씨의 처형 이모씨가 불기소 처분에 항고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방 사장은 자신의 아들 방씨와 함께 지난해 처형 이모씨가 사는 이태원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려 한 혐의를 받은 바 있다.

‘사설 감옥에 가두고 가혹하게…’
떠도는 투서 두고도 의견 분분

지난해 11월 이씨가 경찰에 고소장과 함께 제출한 3대의 CCTV 영상을 보면 방 사장의 아들은 같은 달 1일 맨발 차림으로 서울 이태원동 이모 집 주차장에 나타났다. 그는 주먹보다 큰 돌맹이를 집어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방 사장도 피켈(등산용 얼음 깨는 도끼)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 방씨는 이모 집 현관문을 돌맹이로 세차게 반복적으로 내리쳤다.

방 사장은 현관문 앞에 놓인 박스를 발로 걷어찬 뒤 현관문을 향해 피켈을 휘두르려는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집 주변을 배회하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문의 손잡이를 좌우로 돌려보다 여의치 않자 차를 타고 떠났다.

당시 아들 방씨는 어머니가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관련해 이모인 이씨가 SNS에 뜬소문을 퍼뜨린다고 의심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방씨 부자가 이러한 행동에 방 사장의 처형인 이씨는 이틀 뒤 방 사장 부자를 주거침입 등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아들은 기소유예, 방 사장은 무혐의 처분했다.

이씨 쪽 변호인은 한 매체와의 통화서 “방 사장 주거침입 행위가 고스란히 찍혀 있다. 검찰 처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항고했고 결국 서울고검은 서울서부지검에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유서 비공개
밝혀진 것은?

아직까지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부인 이씨가 남긴 죽음의 이유부터 배경까지 기록돼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유서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 세간의 궁금증은 증폭되어만 간다.

정말 사설 감옥서의 감금은 있었는지, 복부를 찌르고 고문했는지, 방 사장이 아내의 죽음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이번 고소 사건으로 이씨의 사망과 관련된 추가적 사실과 모든 의혹이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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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