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사는 기업들 막전막후

불황 맞아? 골라 골라 ‘빌딩 쇼핑’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방면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건물주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빌딩 인수를 통해 임대업을 하기도 하고 사옥으로 쓰기도 한다. 최근 빌딩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기업들을 알아봤다.

부영은 최근 빌딩을 잇달아 사들이면서 상업부동산 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사옥을 매입한 이후 포스코건설 송도사옥까지 손에 쥐었다. 1년 2개월 새 1조2000억원을 쏟으며 공격적으로 매입에 나서는 모양새다.

자사브랜드 홍보
높은 임대수익률

업계에 따르면 부영은 지난달 24일 건물주인 PSIB에 포스코건설 송도사옥 매매 잔금(1500억원)을 납입하고 등기 이전도 마쳤다. 포스코건설 송도사옥은 인천 연수구 송도동 36번지에 있는 쌍둥이 빌딩이다. 정식 명칭은 포스코이앤씨타워다.

연면적 14만8790㎡ 지하 5층~지상 39층 2개동 규모다. 지난 2007년 9월 착공해 2010년 5월 완공됐다. 3600억원가량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완공 당시 이 빌딩의 소유자는 PSIB였다. PSIB는 포스코건설과 테라피앤디가 지분 49%, 51%를 각각 가지고 있는 합작회사였다.

포스코건설이 지난해 6월 테라피앤디 지분을 근질권을 행사해 데라피앤디의 지분을 모두 취득해 PSIB의 주인이 됐다. 이후 PSIB는 지난해 9월 부영주택에 송도사옥 소유권을 30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부영은 계약금과 1차 중도금(16.7%)을 시작으로 올해 2월 잔금을 모두 치르며 송도사옥 등기이전까지 마치게 됐다.


부영은 매매계약 체결 당시 송도 사옥을 포스코건설이 5년간 책임 임차하는 조건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연면적 3.3㎡당 매각가격은 670만원 수준.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시아 최고 수준 수익률
국내외 기업들 인수 열풍

앞서 부영은 삼성생명 사옥과 삼성화재 본사 사옥을 잇달아 인수한 바 있다. 이번 포스코건설 사옥 인수까지 최근 1년2개월 동안 대형 빌딩 3채를 매입했다. 

지난해 1월에는 서울 태평로2가 150번지에 있는 삼성생명 사옥을 5000억원에 매입했다. 이 건물은 지하 6층~지상 21층, 연면적 5만4653㎡ 규모다.

삼성생명은 본사를 서초구 삼성타운으로 옮기게 돼 이 건물을 매각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1984년 준공 이후 본사로 사용해왔다. 현재 이 건물 꼭대기에는 ‘삼성생명’을 대신해 부영의 아파트 브랜드인 ‘사랑으로’가 새겨졌다.

삼성화재 본사 빌딩도 부영이 품었다. 서울 중구 을지로 29번지에 있는 삼성화재 본사 사옥은 지하 6층~지상 21층 규모로 매각가 4000억원대로 알려졌다. 

대형빌딩에 군침
이용가치 많아야


외국계 기업도 국내 빌딩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인 안젤로고든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생명의 ‘메트로빌딩’을 861억원에 매입했다. 안젤로고든은 부동산자산운용사 마스턴투자운용과 함께 지난해 12월 말 삼성생명 소유의 메트로빌딩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메트로빌딩은 연면적 1만3215㎡, 지하 1층~지상 10층 규모다. 안젤로고든은 메트로빌딩을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로 개발해 분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여의도의 랜드마크로 평가 받는 서울국제금융센터(IFC)도 외국계 투자운용사에 넘어갔다.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 브룩필드는 AIG코리안부동산개발과 IFC 인수를 위한 매각절차를 지난해 11월 마쳤다. 인수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총 2조5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IFC는 연면적  50만5236㎡ 규모로 업무공간과 상업시설을 갖춘 여의도의 랜드마크 빌딩이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이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캐피탈타워를 매입했다. 매입 금액은 47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블랙스톤은 이번 캐피탈타워 인수를 시작으로 국내 상업부동산 투자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전해졌다.

떠도는 매물들
누구의 손으로

블랙스톤은 전 세계에 투자한 부동산 자산운용 규모가 1010억달러(약 114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운용사로 국내 시장서 빌딩 쇼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계 보험사 안방보험도 국내 빌딩 매입 행렬에 참여했다. 중국 안방보험이 유안타증권 을지로 본사 빌딩을 인수할 것으로 보인다. 매도자는 하나자산운용이다. 안방보험은 이번 거래로 처음으로 국내 빌딩을 인수하게 됐다. 현재 매매 관련 최종협상만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안방보험은 지난해 삼성화재 을지로 본관 사옥(약 4500억원)과 강남캐피탈타워(약 5000억원) 입찰에 참여하며 국내 부동산 매입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외국계 자금이 국내 빌딩 매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높은 수익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하이투자증권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상업용 부동산으로 몰려드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기대수익률이 높아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사무용 빌딩은 신축 빌딩 증가와 함께 공실률이 10%대로 높아졌다. 하지만 높은 공실률에도 임대료는 잘 떨어지지 않아 연 4~5%대 임대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명목 임대수익률뿐 아니라 몇 개월간 임대료를 받지 않는 렌트프리(Rent free) 마케팅을 감안한 유효수익률도 4%대로 높다.

국내 부동산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은 서울 청계천로의 랜드마크 빌딩인 시그니쳐타워를  매입한다. 올 들어 국내에서 이뤄진 상업용 부동산 거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시그니쳐타워 소유주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이하 신한BNPP)이다. 신한BNPP는 이지스를 이번 매매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는 2개월가량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잇단 매입 부영 업계 큰손으로
임대업 하거나 사옥으로 쓰기도

시그니쳐타워는 연면적 9만9991㎡ 규모로 2011년에 완공했다. 이 건물을 보유한 신한BNPP 부동산 펀드의 주요 투자자는 싱가포르 부동산 투자회사인 아센다스(지분율 30%)다. 지난달 9일 예비입찰은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예비입찰에 참여한 투자사는 이지스를 비롯해 동양자산운용, 에머슨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국내 운용사들과 이 건물 투자사인 아센다스, CBRE글로벌인베스트먼트-아부다비투자청(컨소시엄), 블랙스톤-미래에셋 등이다.

이지스가 제시한 가격은 3.3㎡당 2300만원대 중반으로 총 7000억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는 국민연금 자금을 건물 매입에 동원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스가 국민연금으로부터 위탁받는 돈은 향후 7년간 총 5500억원에 달한다.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한 목적으로 빌딩을 매입하기도 한다. LG생활건강은 올 1월 서울 가로수길에 자리한 빌딩을 225억원에 인수했다. 건물은 대지 연면적 885.84㎡, 4층 규모다. 업계에선 자사 브랜드로 구성된 멀티숍을 운영할 것으로 보고있다.


이 건물에는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과 가방 브랜드 쌤소나이트가 입점해있다. 향후 업계에선 LG생활건강이 가로수길을 선택한 것으로 명품 브랜드가 많은 곳에 자사의 주요 브랜드를 모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안정적이고
매력적이다

하이투자증권 장문준 연구원은 “아시아 시장서 한국 상업용 부동산은 일본만큼 안정적이고 동남아보다 위험이 적다. 수익률 역시 매력적”이라고 진단했다. 서울 임대수익률은 세계 2위 수준으로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 불고 있는 빌딩 사자 열풍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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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