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 검증> ③병역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4.03 10:24:12
  • 호수 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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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도 ‘짬밥’이 통할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선 정국의 막이 올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궐위 후 60일 이내 대선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오는 5월 둘째 주 조기 대선 실시가 유력하다. 대선일까지 채 2달이 남지 않은 상황. <일요시사>는 숨 가쁘게 흘러갈 대선 정국서 후보 검증을 갖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세 번째 항목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병역이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의 4대 의무(교육, 국방, 근로, 납세)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선거철이 오면 후보들이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가 단골손님처럼 주목받는다. 만약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 이행을 거부했다면 유권자들은 그 후보에게 여지없이 철퇴를 가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16대 대선 때 불거졌던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 아들에 대한 병풍 의혹이었다. 이 전 총재는 결국 해당 의혹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선거서 패배했다. 사건 이후 ‘용꿈’을 꾸는 정치인들이 아들을 강제로 군대에 보내는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서 후보자 본인과 아들의 병역 이행 여부는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김정남 피살 등 안보 이슈가 연이어 불거지면서 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후보자들을 원하는 목소리가 유권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후보자 본인과 아들의 병역은 물론 복무기간 단축, 모병제 등 안보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특수전사령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출신이다. 지난 1975년 8월 문 전 대표는 강제징집에 의해 끌려가듯 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소 퇴소 후 특수전사령부로 배치됐다.

당시 여단장은 전두환 준장, 대대장은 장세동 중령이었다. 폭파병으로 근무한 문 전 대표는 특수전 훈련으로 특전사령관 표창, 화생방 훈련으로 여단장 표창을 받았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978년 2월 만기제대했다.

그는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표창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민주당 대선 경선 5차 합동토론회서 문 전 대표는 ‘내 인생의 한 장면’으로 공수훈련 때 찍은 사진을 소개하며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 최우수상을 받았고 전두환 장군, (12·12사태서) 반란군의 가장 우두머리였는데,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안희정 충남도지사 측은 “과도한 안보 콤플렉스 아니냐”고 따졌다. 안 지사 측 캠프 인사인 박영선 의원은 광주서 “(전두환 표창장을) 자랑하는 듯 말해 사실 좀 놀랐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은 “국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전두환 표창’을 폐기하라”고 반응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종북 논란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달 26일 “군대 피하는 사람들, 방산 비리 사범들, 국민을 편 갈라 분열시키는 가짜 보수세력, 특전사 출신인 나보고 종북이라는 사람들이 진짜 종북”이라고 지적했다.

문 전 대표의 아들은 충남 논산훈련소 조교로 현역 복무한 뒤 지난 2004년 만기제대했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취업 의혹에 휩싸인 상태다.

문 전 대표는 현행 21개월인 복무기간을 18개월까지 줄이고 단계적으로 더 줄여 나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 전 대표는 최근 “참여정부 국방개혁 2020에 따라 복무기간이 26개월에서 18개월로 줄어들 예정이었으나 이명박정부 때 21개월에서 중단됐다”며 당시 군·병역 개혁을 이어갈 뜻을 전했다.


운동권…면제, 안희정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병역면제를 받았다. 안 지사가 징집대상이었던 지난 1980년대는 운동권 대학생들을 병역 대상에서 제외하던 시절이었다.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한 안 지사는 이후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이 발생했고 안 지사는 이와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개월간 수감됐다. 그해 말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문 특전, 안 군의, 홍 방위
유·손 육군 만기제대 신고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 전두환정권은 운동권 학생들을 군대 대신 교도소로 보냈다. ‘운동권 사람이 군대에 가면 위험인물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였다. 이에 감옥서 10개월 수감생활을 했던 안 지사는 군대를 면제받았다.

안 지사 슬하에는 두 아들이 있다. 장남은 대학 재학 중 의경에 입대했다가 지난해 제대했고, 차남은 현재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상태로 입대를 앞두고 있다.
 

안 지사는 다른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복무기간 단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특히 문 전 대표가 내세우는 18개월 단축에 대해 특정 계층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장애 6급…면제, 이재명

이재명 성남시장도 병역면제를 받았다. 어린 시절 공장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왼팔이 끼는 사고로 장애 6급 판정(골절 후유증에 의한 주관벌내반주 및 완관절부불유합좌)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 이 시장은 야구 글러브와 스키장갑을 만드는 대양실업서 일할 당시 뼈가 골절돼 기형이 됐고 그 후유증으로 팔이 굽어 지금도 넥타이를 한 손으로 맨다.

이 시장도 슬하에 아들이 두 명 있다. 장남은 공군 병장으로 제대했으며, 차남은 공군 이병으로 복무 중이다.

이 시장은 부분적 모병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전문 전투병 10만명을 모집하는 대신 의무병 복무기간을 10~12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이다. 전문 전투병의 연봉을 3000만원으로 가정하면 연평균 3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군의관으로 3년, 안철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군의관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1991년 2월 입대한 안 전 대표는 해군 군의관(대위)으로 3년여간 복무했다. 군의관은 의대에 진학해 6년을 수료한 의대생 또는 의대 졸업생 등이 복무하는 제도다.

지난 1995년에 출간한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를 통해 안 전 대표는 군의관 시절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백신을 만들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안 전 대표 슬하에는 아들 없이 딸만 1명 있다.
 

안 전 대표 역시 안 지사와 같이 복무기간 단축에는 부정적이다. 안 전 대표는 복무기간 단축은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부사관 지원과 특기병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15일 안 전 대표는 “복무기간 단축과 모병제는 시기상조”라며 “인구절벽을 앞두고 병력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서 복무기간 단축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부사관 비율(11만6000명->15만6000명)과 전문특기병 지원제(5만명 추가)를 확대해 정예화 군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부안서 방위로, 홍준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40여년 전 병역의무를 완수했다. 전북 부안서 방위병으로 14개월간 복무했다. 그는 지난달 21일 전북 언론인 간담회서 자신의 처가가 부안이라고 밝힌 뒤 “5·18 직후 부안서 군부대 방위 생활을 1년 2개월 동안 하면서 전북도민으로 있었기 때문에 전북이 나를 배척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고향인 경남 창녕이 아닌 전북서 군복무를 한 것에 대해 홍 지사는 “방위 근무가 창피해 고향이 아니라 처가로 주소를 옮겨 복무를 했는데 당시에는 지역감정이 심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홍 지사가 굳이 부안을 선택한 이유는 부인의 고향이 부안 줄포였기 때문이다. 마침 군대를 다녀와야 할 형편이었던 홍 지사는 주소지를 옮겨 입대했다.

그 당시 옮긴 주소지가 해안가였기 때문에 방위 복무처가 많았고 시력이 0.5, 키 169㎝, 몸무게 46㎏밖에 되지 않아 4급 판정을 받았다. 방위생활을 마친 홍 지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홍 지사는 슬하에 2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은 전투경찰이었으며 차남은 해병을 나왔다. 두 사람 모두 만기제대했다.

홍 지사 또한 복무기간 단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서 “다른 후보들의 ‘군복무 단축’은 표를 얻으려는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비난했다.

육군 병장 제대, 유승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지난 1981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유 의원은 1979년 1월5일 경북 안동 36사단 훈련병으로 입대한 뒤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방사)서 복무했다.

복무 기간 동안 여러 사건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입대 후 10개월이 지나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가 터졌다. 또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 군부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이듬해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 저격사건 등이 일어났다. 유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하루도 군화를 벗고 편히 잔 적이 없을 정도로 군기가 엄했다고 기억했다.
 

19대 국회 전반기에 육군 중장 출신인 같은 당 황진하 의원을 꺾고 국방위원장을 지내 “병장이 별을 꺾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유 의원의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육군 출신으로 만기제대했다.

유 의원은 ‘안보는 보수, 민생은 개혁’이라는 평소 지론대로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 의원은 복무기간을 단축할 시 군 유지가 어렵다며 논의 자체를 그만둘 것을 다른 주자들에게 제안했다.

육군 병장 제대, 손학규

국민의당 손학규 전 대표는 지난 1969년 육군에 입대해 1972년 만기제대했다. 자신의 저서에서 군 생활 3년간의 경험이 현재 삶의 밑바탕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0년 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당 홈페이지에 ‘1969∼1972년 육군병장 만기제대’라고 적고, 자신의 군번까지 공개했다. 당초 손 전 대표는 해병대에 지원했지만 평발이어서 떨어졌다고 한다. 손 전 대표는 슬하에 아들 없이 딸만 둘을 뒀다.

안희정·이재명 면제 사연은?
여성 후보 심…아들 곧 입대

손 전 대표 또한 복무기간 단축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그는 복수의 언론과 인터뷰서 “대통령 선거 때마다 군복무 기간 단축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의 공약 제시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형 모병 주장]
[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서 “(정권을 잡는다면) 장관 자리에 최소한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은 임명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날 심 대표는 “정의당은 충분히 준비된 안보 공약을 만들고 있다”며 “진보 하면 안보가 약하다고 하는데 과거 진보 정치에선 일정 부분 근거가 있었지만, 정의당으로 넘어오면서 튼튼한 안보 위에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있다. 진짜 안보를 책임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 후보’ ‘진보 정당’인 점 때문에 일각서 제기되는 안보 부문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심 대표의 아들은 현재 경희대 철학과 4학년으로 졸업 후 입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심 대표는 군과 관련한 대선 공약으로 4년제 전문병사 10만 도입, 징집병사 규모·기간 단축 등 ‘한국형 모병체제’를 제시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회창 발목 잡은 병풍 의혹 전말
그 사건만 없었다면…

지난 2001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이회창 명예총재는 16대 대선 주자로 나섰다. 이 전 총재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상대로 선거유세 초중반까지 유리한 판세를 이어갔지만,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이 불거졌다.

모병 담당 부사관 출신인 김대업씨가 이를 폭로했다. 이 전 총재의 장남이 최초 병무청 징병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추후 정밀신체검사에서 178cm. 45kg으로 군 면제를 받은 것에 대한 의혹이었다.

김씨는 이 전 총재 장남의 비리를 은폐하려고 지난 1997년 대책회의가 열렸고 전태준 전 의무사령관에게 장남의 신검부표를 파기토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새천년민주당까지 나서 이를 공격하자 여론은 악화됐다.

결과적으로 병풍 의혹은 이 전 총재의 대선 패배에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병역기피를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이 전 총재를 외면했다. 여파는 17대 대선까지 이어졌다. 이 전 총재의 대권행보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한 셈이다.

이 전 총재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병풍 의혹이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해당 의혹으로 대선에 영향을 주려 한 점, 주장의 진실성이 부족한 점 등을 들어 김씨에게 1년10개월 형을 선고했다.

병풍 의혹을 둘러싼 논쟁은 한동안 계속됐다. 한나라당은 이 의혹이 조직적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검찰이 의혹의 당사자인 이 전 총재의 장남 및 부인 등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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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