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진도 땅값 미스터리

원주민은 법대로 헐값에 외지인은 맘대로 고가에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토지가 관광단지 개발구역에 포함됐다.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가 오르는 것은 보통의 상식.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진도군서 벌어졌다. 개발구역에 속한 토지가 6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것. 진도군이 대명리조트에 개발 부지를 헐값에 넘겼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전라남도 진도의 대명리조트가 지난해 12월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갔다. 진도군은 “의신면 송군 일원에 30만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한 리조트 업계 국내 1위 기업인 대명리조트가 건설 중인 진도 대명리조트가 오는 2022년까지 1007실 규모로 완공된다”고 밝혔다.

특정 기업체
밀어주기 일환?

오는 2019년 하반기에 1단계 사업으로 540객실을 준공한 뒤 2020년 275객실(2단계), 2021년 83객실(3단계), 2022년 109객실(4단계)을 마지막으로 완공될 예정이다. 총 3508억원이 투입된다. 비치 콘도, 타워 콘도, 비치 호텔, 오션 빌리지, 마리나시설 등이 들어선다.

진도군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대명리조트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투자 선도지구로 선정된 의신면 초사권 일원에 국비 92억원을 투입, 관광기반시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진도군이 대명리조트가 개발부지를 헐값 매입하게 중재에 나서는 등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근거는 다양했다. 


앞서 진도군과 대명산업은 지난 2013년 4월 관광단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당초 대명그룹은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 일원 51만5000㎡에 1500억원을 투입, 570실 규모의 해양 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MOU 체결 당시 75%가량 토지매입을 완료했다. 그러나 원활한 사업의 진행을 위해서는 나머지 25%의 부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

문제는 해당 부지를 둘러싸고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해당 부지는 초사리 631번지다. 이 부지가 관광단지 개발구역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고, 해변을 바라보는 모래사장까지 포함하고 있어 대명리조트가 필수적으로 매입해야 할 부지로 평가된다.

관광단지개발구역 포함 초사리 토지
올라도 모자랄 판에 6분의 1로 폭락

그런데 진도군과 대명리조트 간 MOU 체결 이후 개별공시지가가 급락했다. 이곳은 2006년부터 2013년까지 5000원서 4300원 사이에서 개별공시지가가 형성됐다. 관광단지 개발건이 발표되기 전인 2013년 1월1일 기준 개별공시지가는 4710원이었다.

하지만 MOU 체결 뒤인 이듬해 개별공시지가는 788원으로 6분의 1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통상 관광단지 개발 조성은 호재성 이슈로 분류돼 토지가격이 급등하는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일각에선 관광단지 조성을 위한 핵심 땅의 공시지가를 폭락시켜 대명리조트에 넘기려는 진도군 측의 속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631번지 소유주인 A씨는 “초사리 631번지는 모래사장을 끼고 있어 대명리조트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의 핵심부지”라며 “관광단지 조성이라는 호재를 맞은 땅이 6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업 추진을 위한 핵심 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대명리조트를 위해 진도군이 나서서 토지 소유주를 압박하고 있다”며 “사실상 군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진도군이 사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 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토지 전문가
이 군수 설계?

진도군도 개별공시지가 산정에 대해 이례적이라며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진도군조차도 이와 관련 “해당 부지의 지목은 답(논)인데 실질적으로 임야처럼 사용됨에 따라 개별공시지가를 재산정하는 과정서 지가가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일반적으로 관광단지 개발에 대한 호재가 있는 부지의 개별공시지가가 떨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당시 개별공시지가 산정 과정서 실사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보지도 않고 개별공시지가를 6분의 1로 떨어뜨린 셈.

진도군은 2014년 631번지 개별공시지가 산정 과정서 해당 부지를 실사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진도군 관계자는 “실사를 하지 않고 개별공시지가를 산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주변이 모두 임야로 변해있어 (실사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말했다.

A씨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A씨는 “토지 가격을 정하는 데 사진을 남기는 등의 자료를 만드는 것이 개별공시지가 평가에 있어서 기본인데 그조차 하지 않았다”며 “공무원 개인이 일을 벌이기는 불가능하고 윗선 개입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국감정원의 한 관계자는 “토지의 개별공시지가를 산정하는 과정서 답인 지목의 실사용을 임야로 재설정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이 과정서 실사조차 하지 않고 개별공시지가를 산정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도군의 석연치 않은 행보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진도군은 대명산업과의 MOU 체결전 관광개발 예정지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소유주들에게 토지 매각 동의서를 받았다. 관광단지 개발 사업자에게 일정가격 이상 받지 않겠다는 취지의 동의서였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동의서 설득이 쉬운 진도민 토지 소유주들의 토지 매매가를 외지인보다 낮게 산정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단지 내 초사리 주민이 소유하고 있던 산274, 산286-1, 산306-1은 대략 평당 3만원 수준에서 매매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서울, 인천 등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던 산275-1, 산275-3, 산290, 산306, 산294-1 등의 부지는 4~7만원대에 형성됐다.

수상한 특혜 매매 의혹
다양한 방법 동원 포착

진도군은 이에 대해 “진도민과 외지인의 매매가격 차이는 없었다”며 “토지의 형질에 따라 가격이 차이 나는 부분을 두고 의혹을 제기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동의서 자체가 진도군의 특혜라는 해석이 나왔다. 진도군이 해당 부지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을 대비해 리조트단지 조성 사업자에게 해당부지를 일정 가격에 매각하는 내용이 담긴 동의서를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받았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확보한 부지는 전체 개발 부지 가운데 75% 수준. 진도군이 토지 소유주를 대상으로 동의서를 받기 시작한 2012년은 이미 대명리조트와의 관광단지 개발 사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 과정서 대명리조트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도군청 공무원들은 당시 진도군 관광단지 개발사업에 대기업을 유치시켜 관광단지 조성할 테니 토지 상한가를 확정한 동의서에 서명할 것을 토지 소유주들에게 종용했다는 전언이다.

일반적으로 관광단지 조성 개발 이슈가 부각되면 토지가격이 급상승하는데 진도군이 대명리조트의 존재를 숨긴 채 미리 동의서를 받아둬 대명리조트가 부지를 헐값에 매입하는 모양새가 됐다. 

땅도 보지 않고
공시지가로 평가
 

A씨는 “당시 공무원들이 동의서를 받는 과정서 대명리조트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숨긴 것으로 보인다”며 “대명리조트가 관광단지 개발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땅값이 오를 텐데 이를 숨기고 진도군이 동의서를 받아 대명리조트가 토지를 헐값에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주장했다.
 


진도군과 대명리조트 측은 부지 헐값인수 논란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진도군청 관계자는 “동의서를 받았을 당시 해당부지는 맹지였다”며 “동의서 조건은 평당 매각가가 3만원부터 시작해 헐값 매도에 일조했다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대명리조트 측도 “초사리 지역 개별공시지가는 1제곱미터 당 약 1500원선에 형성돼있는 상황에서 개별공시지가의 20배 이상의 금액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있다”며 “헐값에 (초사리 개발부지를) 사들인다는 의혹은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 위한 악의적인 루머”라고 반박했다.

공교롭게도 진도군이 대명리조트에 개발부지를 헐값에 넘기려한다는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논란이 됐던 부지는 조도면 관매초등학교 부지다. 관매도리 458번지에 위치한 관매초등학교는 관매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1943년 개교 뒤 70년간 운영되다 2012년 폐교됐다.

관매초등학교는 지역주민이 땅을 기증하고 울력을 해서 세워졌다. 폐교가 됐으니 부지를 가지고 있던 교육청은 해당부지를 지역주민에 돌려주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지역발전에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어 진도군에 매각했다.

그러나 진도군이 대명리조트에 땅을 넘기려 하면서 잡음이 불거졌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선 사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지적이 자연스레 나왔는데, 이 같은 지역주민의 반발은 당연했다. 민박사업을 주로 하는 지역주민에게 리조트 사업 관련 기업이 들어오는 것은 섬 발전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결국 진도군은 대명리조트에 특혜를 몰아주려다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부지 매각이 무산되는 모양새가 됐다.


연속해서 진도군이 대명리조트에게 특혜를 몰아준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부동산 개발분야에 정통한 이 군수가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지역주민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 이 군수는 지난해에 비해 재산변동이 가장 많은 기초단체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전년에 비해 재산이 10억2625만원 증가한 것이다. 토지 관련 지가 상승이 그를 웃게 했다. 이 군수 본인과 배우자 명의 토지 등의 공시지가 상승 등이 영향을 미쳤으며 경기도 오산의 토지 매각으로 신규 예금도 늘었다.

이 군수는 1972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한국토지공사 창립사원으로 입사한 후 26년간 재직하며 상임이사, 산업단지 본부장, 해외사업실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한국토지신탁 사장을,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전남개발공사 사장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다. 진도군수 직에 오른 것은 2010년부터다.

부지 정리에
윗선 개입했나
 

전남 개발 관련 관계자는 “최근 진도에 섬 개발관련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설익은 계획으로 애꿎은 도민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개발에 전라도가 멍들고 있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