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 검증> ①재산

  • 최현목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3.20 13:54:28
  • 호수 1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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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억' 잠룡들 주머니 털어보니…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선 정국의 막이 올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궐위 후 60일 이내 대선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오는 5월9일을 19대 대선일로 공표했다. 대선일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 <일요시사>는 숨 가쁘게 흘러갈 대선 정국서 후보 검증을 갖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첫 번째 항목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재산이다.

자천타천 대선주자들이 난립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주자만 8명(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김선동, 김기천, 김환생, 장성민, 최석규). 경선 예비후보 등록, 출마선언까지 범위를 넓히면 총 32명의 대선주자들이 레이스를 펼치는 중이다(더불어민주당 4명, 국민의당 6명, 자유한국당 11명, 바른정당 2명, 정의당 1명, 민중연합당 1명, 늘푸른한국당 1명, 무소속 6명). 대선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를만하다.

김영삼정부 출범 후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가 실시되고 있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제도는 공직자윤리법 제10조에 의거,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 국가의 정무직 공무원, 1급 이상의 국가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부장판사급 이상 법관 등의 재산변동사항을 관보 등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를 살핌으로써 부의 도덕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다음은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에 이름을 올린 유력 대선주자 7명의 최근 재산 공개내용이다.

[문재인] 14억

지난해 3월25일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6년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재산은 14억2949만원이었다. 이 중 건물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건물은 전체 42.02%(7억9715만원)를 차지했으며 예금이 31.62%(5억9983만원)로 뒤를 이었다. 토지는 15.55%(2억9504만원)의 비중을 보였고 정치자금 예금계좌는 5.24%(9950만원)를 차지했다. 채무는 4억6776만원이 있었다.

전체 재산은 그 전년(2015년) 대비 약 1억2800만원이 늘어난 수치다. 2015년 재산공개 때 문 전 대표는 13억74만원을 신고한 바 있다. 재산 증가는 토지와 건물의 가액변동에 의해 일어났다. 소유 건물로는 경남 양산시 매곡동 소재 단독주택 2채와 어머니가 소유한 부산 영도구 소재 아파트, 장남 명의의 서울 구로구 소재 복합건물 등이었다.

토지는 경남 양산시 소재 주차장과 논, 대지, 제주도 임야를 신고했다. 모두 문 전 대표 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본인 소유의 2001년식 렉스턴과 배우자 소유의 2013년식 스포티지R을 신고했다.

다른 대선주자들과의 차이점은 5건의 지식재산권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모두 본인 저서로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이 드립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 등이다. 최근 <대한민국이 묻는다> <운명에서 희망으로>가 출간돼 지식재산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안희정] 9억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총 8억8625만원을 신고했다. 2015년 대비 2911만원 소폭 상승했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재산은 44.78%(6억9698만원)를 차지한 예금이다. 건물은 36.66%(3억2500만원)를 기록했다. 토지는 16.38%(1억4523만원)였으며, 채무는 29만원이 남은 상태였다.

이는 부모와 배우자, 두 자녀의 재산이 포함된 금액이다. 안 지사의 두 아들은 예금 979만원, 235만원을 각각 가지고 있었다. 안 지사는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재산이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재산이 배우자 또는 아버지 명의로 신고됐다. 유일한 자동차인 2013년식 뉴투싼ix도 배우자 명의였다. 본인 앞으로 된 것은 5541만원의 예금과 유가증권 27만원이 전부다. 그는 현재 충남도 관사에 거주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제주도 땅이다. 가격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증여 당시 6370만원에서 지난해 1억7517만원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 안 지사는 ‘안희정의 함께, 혁명’ ‘콜라보네이션’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문 전 대표처럼 지식재산권을 신고한 적은 없다.

[이재명] 23억

탄핵 정국을 주도하며 ‘사이다 발언’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받은 이재명 성남시장은 총 23억2253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2015년 22억3302만원서 약 8951만원 상승한 수치다.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전체 재산에서 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44.15%(11억7579만원)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 30.64%(8억1600만원), 예금 22.80%(6억709만원)가 뒤를 이었다. 채무는 3억4071만원이었다. 콘도미니엄·골프 회원권(5540만원) 등도 신고했다. 차는 본인 명의의 2006년식 체어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장은 상장주식 9억721만원을 소유하고 있다. 재산 신고가 된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투자 종목을 보면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LG디스플레이, 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이 주를 이룬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주식 2000주는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매도했다. 대신 같은 기간 배우자가 SK이노베이션 2066주를 매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대 재벌은 안철수, 1629억
문재인 ‘책’ 지식재산권 5개

삼성물산 주식도 전량 매도했다. 반면 현대중공업과 SK이노베이션, 성우하이텍, LG디스플레이는 각각 500주와 800주, 9000주, 500주 늘었다. 이중 성우하이텍은 2012년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계속 보유해온 투자종목이다. 성우하이텍은 범퍼 레일 등 자동차 차체용 부품을 제작·판매하는 기업으로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시장의 주식 사랑은 처음 재산이 공개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번도 비중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2016년 44.15%로 2015년 32.70%보다 10% 넘게 상승했다. 금액도 2015년 8억4389만원서 2016년 11억7579만원으로 3억3190만원이 올랐다. 부동산의 경우 본인과 모친 명의 아파트만 보유하고 있다. 이 시장 또는 가족이 소유한 토지는 없었다.

[안철수] 1629억

정치권의 대표적 부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재산은 총 1629억2008만원으로 나타났다. 2015년 대비 무려 841억7077만원이 늘어난 금액이다. 2014년 처음 재산을 공개했을 때 신고한 금액은 1569억2494만원이었으며, 2015년 787억4931만원으로 줄어들었다가 2016년 1629억2008만원으로 회복했다.

안 전 대표의 재산은 간단명료하다. 가장 큰 유가증권의 비중이 92.96%(1458억7809만원)서 85.03%(669억6000만원), 93.38%(1521억3116만원)으로 총액 증감 폭만큼 움직였다.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예금은 6.37%(103억7102만원)다. 다른 대선주자들의 총액을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유가증권은 모두 본인이 설립한 (주)안랩의 주식이다. 2014년 236만주를 가지고 있던 것이 2015, 2016년 186만주로 50만주가 감소했다. 그럼에도 총액을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안 전 대표가 지난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안철수 테마주’인 안랩 주가가 2배 이상 치솟은 데 따른 것이다.

그 외 안 전 대표와 배우자가 소유한 유가증권에는 11억원 상당의 엠스퀘어송도제1차 회사채가 있다.

재산 대부분은 안 전 대표 본인 것이며 배우자는 예금, 유가증권만 있을 뿐이다. 차도 본인 명의로 2대가 있다. 2012년식 제네시스는 지금까지 타고 있으며, 2013년식 그랜드 카니발은 2014년 재산공개 전 매매했고, 이어 2014년식 올뉴카니발2.2를 구매했다.
 

정치자금 예금계좌는 3617만원이었다. 2012년 대선 후보로 나섰을 당시 ‘안철수 재단(현 동그라미 재단)’을 세우고 1211억1413만원을 출연한 사실도 2016년에 그대로 신고했다.

[홍준표] 25억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재산이 줄어들었음에도, 안희정·이재명 등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보다 많은 25억3763만원을 신고했다. 홍 지사는 2008년 이후 20억원대 재산을 유지하고 있다. 홍 지사는 건물의 비중이 가장 높았는데 62.47%(19억6000만원)를 차지했다. 예금이 33.13%(10억3950만원)로 뒤를 잇는다.


취임 후 경남도 부채를 줄이는 데 성공한 홍 지사는 정작 본인 재산은 지난해 4억424만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재산공개자 중 재산 감소폭이 가장 컸다. 당시 홍 지사는 장남 결혼에 따른 재산 고지 거부와 생활비 사용, 부동산 가액 변동 때문에 재산이 줄었다고 밝혔다.

실제 장남의 독립생계유지로 재산 5억8247만원이 2016년 신고 때 빠졌다. 차남의 채무 7800만원을 상환하는 과정서도 재산의 감소가 있었다. 내용에 ‘채무 상환 등의 이유로 예금을 사용했다’고 적시돼있다.

홍 지사는 본인의 이름으로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배우자의 2008년식 제네시스, 차남의 2012년식 i40를 신고했다. 그 외 본인은 타미우스콘도미니엄 회원권(1710만원), 배우자는 현대성우리조트 회원권(1520만원), 일동레이크골프클럽 회원권(2400만원)을 가지고 있다.

[유승민] 44억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2015년 35억2072만원이던 재산이 2016년 44억4468만원으로 증가했다. 약 9억원의 상승폭이다. 건물과 예금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그중 가장 비중은 높은 것은 48.61%(22억1930만원)를 차지한 건물이다. 44.61%(20억3647만원)의 예금이 뒤를 이었다. 토지는 3.06%(1억3971만원)로 비중이 낮았다.

건물의 재산변동이 가장 컸다. 2015년 38.59%(13억6700만원)던 건물의 비중이 2016년 들어 48.61%(22억1930만원)로 10%가량 상승했다. 대부분의 재산은 본인과 배우자 앞으로 신고됐다. 그러나 슬하의 두 자녀가 각각 1억5291만원, 1억8819만원 등 거액의 예금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증여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주식 사랑, 비중 30%↑
남경필 채권 49%, 영등포 잔금

앞서 유 의원은 지난 2015년 딸의 재산이 총 2억6803만원이라고 신고했다. 이는 전년도(2014년)에 신고한 액수에 비해 약 2억원 이상 늘어난 금액이었다. 이에 조부모로부터 세대생략 증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유 의원은 관련 의혹에 대한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27일 진행된 관훈클럽(중견 언론인들의 단체, 총무 박제균) 토론회서 한 패널이 “2014년에는 없던 따님 예금이 2015년에는 약 2억원이 등록됐는데 증여세는 2015년에 냈느냐?”라고 묻자 “작년(2016년)에 냈다”고 답했다.

[남경필] 35억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재산은 34억5738만원으로 2015년보다 8065만원이 늘었다. 채무 감소와 토지·건물 가액 변동, 예금 저축 등에서 변화가 있었다. 채권의 비중이 49.65%(24억8526만원)로 가장 높은 것이 다른 주자들과의 차이점이다.

남 지사의 채권 비중은 처음 재산이 공개됐던 2006년 이후 한번도 40%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채권의 비중이 가장 높았던 지난 2006년 68.95%(27억500만원)서 10년 새 20%가량 감소했다. 2006년 재산공개 내역을 보면 해당 채권은 ‘영등포 토지 매도 후 잔금’이라고 기록돼있다.

두 아들 앞으로 각각 56만원, 162만원의 예금이 신고됐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재산은 모두 남 지사 본인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토지다.

남 지사는 16억6016만원가량의 과수원·임야를 소유하고 있다. 그중 제주 서귀포시 서호동에 있는 과수원 땅값이 2015년 대비 3392만원 올랐다. 비상장주식으로 가지고 있던 <경인일보> 주식 1억7000만원은 백지신탁했다. 신고된 차량은 본인의 앞으로 된 2014년식 모닝 한 대가 전부였으며, 회원권은 따로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2016년 남 지사의 채무는 15억4800만원으로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농협은행으로부터 빌린 5억 중 3억을 상환했으며, 국민은행으로부터 2억1800만원을 신규 대출받았다. 또한 본인 명의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청명마을동신아파트 임대보증금 2억원이 채무로 잡혀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교안 지지층 어디로?
최대 수혜자는 홍준표? 안철수?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5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기존 황 권한대행 지지층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가 다가올 ‘장미대선’ 구도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보수 또는 중도보수를 표방한 대선주자들의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다. 그중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황 권한대행의 표심을 상당 부분 흡수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했으며, 최근 출마 선언을 한 한국당 김진태 의원에게 표심이 쏠릴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도에 기반을 두고 보수로의 외연확장을 꾀하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가장 큰 수혜자로 꼽는다. 보수층이 느끼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거부감을 고려한다면 지난 대선 때 각축전을 벌였던 안 전 대표에게 표심이 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변수는 이런 표심이 특정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옮겨갈 것인지, 아니면 분산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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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