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박근혜 하야 꼼수’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2.27 10:17:24
  • 호수 1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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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검찰총장과 얘기 끝? 머리 굴리는 '박통'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치권서 ‘탄핵 전 하야’ 시나리오가 재부상하고 있다. 수세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전격 하야 발표를 할 것이란 내용이다. 점차 탄핵 인용 쪽으로 추가 기울고 있는 현 상황서 박 대통령이 내릴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것. 범여권과 청와대가 기획관으로 지목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대통령 하야설이 제기됐다. 1월1일을 전후로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란 예상이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하야를 하면 본인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뿐더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누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후 어떠한 발표도 나오지 않았고 하야설은 잠잠해졌다.

여태 버티더니
이제 와서 왜?

당시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지 않은 이유는 본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무죄에 대한 의지는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박 대통령의 발표를 보면 잘 녹아 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10여명으로 구성된 법률대리인단을 꾸리는 등 탄핵 기각에 힘을 쏟았다.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적극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법률대리인단의 여론전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최후 변론을 지연시키는 작전도 헌재가 27일로 못 박으면서 무산됐다. 사활을 걸었던 지연작전이 무위로 그치면서 박 대통령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현재 3월 초 선고가 유력해진 상황이다.


박 대통령 측에는 헌재의 탄핵 결정을 지연시킬 수단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에 최후 수단으로 하야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략적 판단을 열어주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역풍을 맞긴 했지만, 맞불 집회는 보수 결집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하야설을 통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볼 수 있다.

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물론이고 특검을 피해갈 수 있는 상수라는 점에서 하야는 매력적인 카드다. 특검이 종료되면 검찰이 사건을 이어받아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정치권이 뽑은 박영수 특검팀보다 자신이 임명한 김수남 검찰총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하는 게 편할 수밖에 없다.
 

하야를 할 경우 적어도 구속은 피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만약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되기라도 한다면, 탄핵 인용 후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수사의 키가 검찰로 넘어가면 수사팀을 새로 꾸려야 한다.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수사팀이 기록을 검토하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2∼3개월이 훌쩍 지날 수 있다. 재정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하야를 발표하는 순간 정국은 60일간의 조기 대선모드로 전환된다. 검찰의 수사를 피할 순 없겠지만, 자신을 향한 민심의 화살을 대선으로 돌릴 순 있다. 야권의 비난도 피할 수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시작부터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예상 또한 하야에 무게를 싣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야설의 진앙지는 어디일까. 정치권은 범여권과 청와대를 지목하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정당 일부에서 하야설을 골자로 한 ‘질서 있는 퇴진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힘이 야권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반전을 노린 정치적 포석이 퇴진론이란 것이다.

퇴진론은 극심한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 여야 정치권이 나서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 길을 열어주자는 게 핵심이다. 그 속에는 박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전제로 깔려 있다.


제 발로 나갈까
인용 예상했나?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보름 전 탄핵 결정 뒤 후폭풍에 대해 얘기한 적 있다”며 “탄핵 결정 후 국론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여야의 정치력이 강화돼야 한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박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전제로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당시 정 원내대표는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날 정 원대대표는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이 문제(퇴진론)에 대해선 이미 청와대서도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기획설에 불을 지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청와대와 대통령은 탄핵 심판 전에 국민을 통합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방안이 있는지, 탄핵 이전에 어떤 정치적 해법이 있는지 적극 모색해야 할 때”라며 “대통령이 하야하고 정치권은 사법처리의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해결해야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7일 바른정당 김성태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결단이 헌재 결정 이후 극단적 대립을 수습할 수 있다”고 퇴진론을 언급한 바 있다.

퇴진론은 미국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닮아 있다. 당시 미 의회는 닉슨 대통령에 대한 사임을 전제로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닉슨 대통령은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게 사면받았다.

헌재 결정 앞두고 ‘하야설’ 재부상
범여권-청와대 기획설 “사면 전제”

그러나 사면 때문에 퇴진론은 정치권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야권은 물론 바른정당 일부서도 퇴진론은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는 최근 국회 최고위원회의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온전히 이뤄지도록 협조해야 한다”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품격을 지키고 국가와 국민, 헌법 정신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탄핵 소추 전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거부하고, 이제 와서 하야를 검토한다는 것이 사실이면 비겁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도 냉랭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크게 신경 쓸 것 없다는 모양새다. 전제조건인 사면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박 대통령의 성향상 실제 자진 사퇴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하야를 하기엔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만약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더라도 헌재가 탄핵심판 절차를 계속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서 “우리당에서 일관되게 주장한 게 탄핵까지 가지 말고 박 대통령의 하야 내지는 2선 후퇴였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면 국회서 총리를 추천해주겠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거부한 것”이라며 “곧 탄핵 결정이 내려질 판에 이제 와서 갑자기 해묵은 얘기(퇴진론)를 꺼내는 저의를 모르겠다”고 받아쳤다.


특히 우 원내대표는 사면을 전제한 부분에 대해 “박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갔을 때 사법처리를 막을 생각으로 제안하는 거라면 정말 턱도 없는 소리”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날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이미 청와대서 그런 일(자진 사퇴)은 하지 않겠다고 의사 표명을 분명히 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금까지 언행으로 봐서 (하야를) 하지 않을 것 같다”며 “첫 번째 사과성명을 하면서 진솔하게 고백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도 물러나겠다고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런 혼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뜻이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서 “지금 ‘질서 있는 퇴진’을 끌고 오는 것은 여론호도용 물타기”라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헌재의 박 대통령 탄핵과 범죄에 대한 법적 심판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하야설이 실제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국회 탄핵소추위원은 그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tbs 라디오에 출연해 “결국은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그 전에 박 대통령이 선제적인 조치가 가능한 것을 검토하고 있지 않겠나”고 내다봤다.

또 다른 국회 탄핵소추위원인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cpbc 라디오서 “하야를 하고 안 하고는 대통령의 자유의지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마지막 순간에는 대통령 측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아보려고 할 것”이라며 “인용이 거의 확실시된다면 헌재로부터 탄핵 결정을 받느니 하야를 택하겠다고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야권서는 “턱도 없는 소리”
하야하면 탄핵은 끝? 가능도

우선 청와대는 하야설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최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복수의 언론을 통해 “대통령 하야설은 터무니없는 얘기고, 내부적으로 전혀 검토한 적도 없다”며 “정치권에서 자꾸 그런 식의 얘기를 흘리는데 우리 입장은 명확하다. 더 이상 언급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못 박았다.

이제 와서 하야를 하게 되면 죄를 인정하는 셈이다. 이는 무죄를 강변해온 박 대통령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사면 전제’와 ‘국론 분열 방지’ 중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촛불 집회와 맞불 집회 양측이 여론전을 펼칠 경우 비등한 싸움이 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박 대통령 하야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야를 할 경우 박 대통령은 연금 및 유족연금, 기념사업 지원, 경호·경비, 치료, 사무실 및 비서 제공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의전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현재 탄핵 찬성 여론은 80%에 육박한다. 이는 지난해 12월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변함없는 흐름이다.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국민의 뜻은 그만큼 확고하다. 사면 전제를 받아들였을 때 일어날 역풍을 고려한다면 야권이 한국당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종합해봤을 때 하야설은 범여권과 청와대의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만약 하야를 할 시 탄핵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느냐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SBS 라디오서 “파면할 상대가 없어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헌재는 탄핵 심판을 종료할 수 있다. 그게 원칙”이라고 전했다.

나라 위해?
사면 전제?

그러나 단서는 존재한다. 임 교수는 “위헌 행위가 장래에 반복될 위험이 있거나 헌법 질서의 수호 유지를 위해 긴요한 경우에는 (심판 청구 이익의 예외 조항에 해당돼) 최종 결정까지 갈 수 있다”며 “대통령이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를 해서 탄핵을 받아야 한다면, 탄핵 결정을 내리는 것이 헌법 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해 긴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심판 청구의 예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하야하더라도 헌재는 최종 결정까지 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더불어민주당이 본 박근혜정부 4년
경제파탄·국기문란 “역대 최악”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3일 박근혜정부 4년을 평가한 자료집을 발간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근혜정권의 지난 4년은 무능한 국정으로 민생을 파탄 내고,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자리에서 정책위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안전대책 부실 ▲가계부채 증가 ▲청년층 등 실업난 ▲주거 빈곤 심화 ▲경제민주화 공약 불이행 ▲노동개악 ▲위안부협상·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 강행 ▲개성공단 폐쇄 ▲국정교과서 강행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언론장악 ▲국민연금의 삼성 경영승계 도구화 등을 지적했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
가계부채 1300조 넘어

세부적으로 정책위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언급하며 “대기업 기부금 불법모금, 전 방위적 인사개입, 도를 넘은 권력남용, 부당한 특혜 편취 및 제공,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 희대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경제 정책에 대해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돌파하고 실업난과 주거 빈곤은 더욱 심화됐음에도 쉬운 해고와 임금삭감, 비정규직을 확대시키는 노동개악을 추진했다”며 “민생은 외면당했고, 경제는 파탄 났다”고 비판했다.

정책위는 “이번 자료집 발간을 통해 국민에 박근혜정부의 실정을 상세히 알리고, 향후 새롭게 출범될 민주정부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성공한 정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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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