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이 노리는 사람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1.02 11:32:11
  • 호수 10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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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위 걷는 왕년의 실세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때 ‘끗발’ 날리던 정권 실세들이 담장 위를 걷는 신세가 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정부서 잘 나갔던 인사들이 줄줄이 특별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판이 커진 탓이다. 예상치 못하게 수사 대상에 오른 6인의 면면을 살펴봤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빌딩 18층.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본격 수사 착수를 알리는 현판식이 지난 달 21일 오전 9시에 열렸다. 박영수 특검과 박충근·양재식 특검보, 수석파견검사인 윤석열 검사, 어방용 수사지원단장이 줄을 당기자 하얀천이 벗겨지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라고 적힌 현판이 드러났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박 특검과 4명의 특검보 등이 박수를 쳤다. 박 특검은 “국민의 뜻을 잘 읽고, 법과 원칙에 따라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올바른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

박 특검과 윤 검사 등이 박수를 치며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던 순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로 특별검사팀 소속 파견검사와 검찰 수사관, 특별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특검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자로 지목된 관계자들의 집무실과 자택도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지금까지 특검팀의 행보는 법조계서도 예상 밖의 일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판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정권 실세들을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특검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처했다.

‘타깃 1호’ 김기춘


특검팀의 김 전 실장 자택 압수수색은 그에 대한 수사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브리핑서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증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피의자로 입건돼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지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수사 단계에서 검찰은 김 전 실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하는 데 그쳤고 압수수색 등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김 전 실장에 대해 2014년 김희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문체부 1급 실·국장 6명의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만 적용했다.
 

하지만 상황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으로 급반전했고, 특검팀도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유의미하게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이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청와대 비서관 회의 내용서 지시한 내역을 담은 비망록에는 그의 인사전횡, 권력남용 정황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다.

일각서 제기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도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는데…지금은 용의자
대부분 직권남용 혐의…줄줄이 압수수색

실제로 특검팀은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 9473명의 이름이 적힌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일부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이 블랙리스트 배후에 김 전 실장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재임 중 김진태 전 검찰총장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 전 총장과 자주 통화를 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정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서울중앙지검의 자체 판단이 아니라 김 총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던 일로 밝혀졌다.


‘특검 성패 핵심’ 우병우

우 전 수석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실을 알고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는데도 최씨에 대해서 조사를 한 적이없다.

또 최씨의 측근인 차은택씨가 문화창조융합벨트의 예산을 횡령하고 인사에 개입한 것에 대해서도 내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 전 수석은 최씨의 국정농단을 알고도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해 묵인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수사를 방해한 적권남용 의혹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2년 전 세월호 사건 수사 과정에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 전 수석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있던 2014년 6월5일 오후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해양경찰청 본청을 압수수색하던 광주지검 수사팀에 전화해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를 압수수색해야 하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팀이 세월호 침몰 당시 청와대와 해경 간 통화 내역 등 민감한 내용이 일부 보관된 서버를 압수하려 하자 우 전 수석이 청와대 측 입장이나 의견을 전달하려 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우 전 수석은 가족회사 ‘정강’서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과 의경으로 복무한 아들의 보직 특혜 의혹도 있다. 가족 회사를 만들어 정강이라는 회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자금을 유용한 의혹이 있다.

또 이 과정서 처가에서 부동산을 차명 보유했으며 재산 신고를 축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아들이 의경 보직을 받았는데, 경찰 간부의 운전병으로 차출돼 특혜라는 의혹도 나왔다. 당시 경찰 측은 우 전 수석 아들이 “코너링을 그렇게 잘 해서 거기에 갔다”고 해명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비위 의혹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서류를 지난달 26일 인수했다. 특검팀은 이날 검찰 특별수사팀으로부터 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을 수사한 서류 사본을 넘겨받았다. 특검팀이 우 전 수석의 비위 의혹 전반에 관한 자료를 확보한 것은 특검법에 수사 대상으로 명시된 최순실 비호, 직권남용 의혹 외에 우 전 수석의 개인 비리 혐의 전반으로 수사 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부상하는 의혹’ 조윤선

특검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설 전망이다. 조 장관이 그 리스트를 작성 및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문체부는 가장 먼저 측근비리의 진원지로 지목받았다.

이른바 ‘최순실 차은택 예산’은 조 장관이 장관직에 앉은 뒤 수천억원대로 불어났다.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폭넓은 보복 조처를 시사하는 블랙리스트도 발견됐다. 블랙리스트는 반정부인사로 분류할 만한 문화계 인사들의 이름과 직업이 빼곡하게 나열된 명단이다.
 

2014∼2015년 작성된 것으로 파악된 블랙리스트에는 박원순·문재인 등 야권 정계 인사를 지지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명목을 들어 낙인을 찍은 경우도 수천명에 달했다. 조 장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해당 리스트가 실제로 있느냐는 질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부인한 바 있다.

이에 따른 위증, 증거인멸 의혹 등의 조사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 장관은 문체부 관계자에게 서울 서계동 사무실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를 교체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관련 작업을 했던 문체부 예술정책국 예술정책과의 컴퓨터 2대 하드디스크를 지난달 초 교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편 조 장관과 김 전 실장은 현 정권이 불편해하는 문화계 인사 1만여명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혐의로 지난 12일, 문화예술단체로부터 특검에 고발됐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 책임자와 작성 경위 등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도 예상된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당시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을 소환키로 했다.

‘못잡나 안잡나’
[정유라]

특검팀이 독일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를 지난달 27일, 인터폴에 적색수배 요청했다.(정씨는 지난 1일(현지시각), 덴마크의 올보르시 한 주택서 현지경찰에 의해 불법체류죄로 체포됨) 특검팀 측은 “정유라씨에 대해 금일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했다”며 “인터폴 적색수배는 여권 무효화를 신청만 해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적색수배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국제수배다. 180여개 인터폴 회원국 어디서든 신병이 확보되면 수배한 국가로 강제 압송된다.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나 조직폭력사범, 50억원 이상의 경제사범 등이 주 대상이지만 그 외 체포영장이 발부된 주요 형사범도 요청 가능하다.

특검팀은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등을 받는 정씨에 대해 법원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독일 사법당국과의 공조 절차에 들어갔다. 정씨를 기소중지·지명수배하면서 압박 강도를 높였다. 외교부를 통한 여권 무효화 조치에도 착수했다. 정씨는 독일 현지서 변호인을 선임하고 특검 수사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핵심 관계자에 대해서도 보강수사를 벌여 정씨 부정입학과 교육부 주요 재정지원사업 수주 간 대가성 입증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화여대는 올해 교육부 주요 재정지원사업 총 9건 중 8건을 따낸 바 있다.


앞서 검찰은 정씨의 특혜입학 의혹과 관련해 면접위원 및 교직원들을 줄소환한 바 있다. 최 전 총장과 남궁곤 전 입학처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등 핵심 관계자들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연금으로 장난?’ 문형표

문형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있던 2014년 7월, 산하기관인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을 의결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은 지난달 27일, 문 이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으며 이튿날 오전 1시경 긴급체포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의 의견을 듣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소속 투자위원회 결정만으로 찬성을 의결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합병 반대 권고도 무시됐다.

칼날 피해갈 수 있을까
뇌물 혐의 입증이 관건

특검은 이처럼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을 밀어붙이는 과정에 청와대 등 윗선의 입김이 들어간 게 아닌지, 문 이사장이 여기에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게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 문 이사장이 국민연금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한 정황은 이미 드러나 있다. ‘청와대 뜻’을 거론하며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특검도 “문형표 당시 장관이 합병 찬성을 직접 지시했다”는 관계자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이러한 의혹을 확인하고자 문 이사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영장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이사장은 지난해 11월24일 검찰 소환 조사에서 “국민연금 의사 결정에 관여한 바 없고, 청와대 지시나 삼성 측과의 사전 교감도 없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최 민원 해결?’ 홍완선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장이 삼성 합병 당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특검팀에 두 차례 걸쳐 밤샘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지난달 26일 오전 9시30분쯤 홍 전 본부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한차례 불러 이튿날 새벽까지 밤샘 조사를 진행한 데 이어 다음날 특검 사무실로 재소환했다.

앞선 조사에서 특검팀은 홍 전 본부장을 상대로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자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을 국민연금이 승인한 대가에 해당하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 전 본부장이 고문으로 있는 투자회사인 프라이머리 인베스트먼트에 삼성이 돈을 지급했다는 의혹도 특검팀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특검팀은 홍 전 본부장을 포함한 합병 의결 과정의 핵심 관계자 조사와 국민연금·복지부 압수수색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삼성 ‘합병 민원’을 해결해주려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특검팀은 홍 전 본부장에 대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영장청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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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