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판결> ‘체면 구긴’ 검찰 후일담

큰소리만 떵떵…이러니 누가 믿어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검찰이 ‘넥슨 공짜 주식’과 관련 진경준 전 검사장과 넥슨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대표를 법정에 세웠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주요 쟁점 사항인 뇌물 관련 혐의가 무죄로 결론 나면서 이들의 형량이 검찰 구형에 비해 턱없이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검찰이 주요 혐의 입증에 실패하면서 논란은 고조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지난 13일, 특정법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진 전 검사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당초 검찰이 구형한 13년, 벌금 2억원, 추징금 130억7900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량이었다.

지음관계라니…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은 김정주 NXC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아 검찰의 구형(징역 2년6월)이 머쓱한 상황은 배가됐다. 사실상 주요 쟁점인 뇌물 관련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진 전 검사장은 김 대표로 인해 얻은 130억원에 대한 이익은 추징당하지 않고 고스란히 챙길 수 있게 됐다.

뇌물 관련 혐의는 이들 형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뇌물죄가 성립되면 검찰의 구형에 맞게 형량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특임검사팀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제3자뇌물수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진 전 검사장을 구속 기소했다.


진 전 검사장은 2005년 김 대표로부터 넥슨 주식을 사들이는 데 사용한 4억2500만원을 받는 등 총 9억5300여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았다. 진 전 검사장은 이후 해당 보유 주식을 10억원에 팔고 그중 8억5300여만원으로 넥슨재팬 주식 8537주를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임검사팀은 이중 공소시효 10년 내에 있는 8억5300만원을 뇌물로 봤다.

또 진 전 검사장이 2008~2009년 넥슨홀딩스 명의로 리스한 제네시스 차량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2009년 3월 차량 인수자금 3000만원을 김 대표로부터 받은 사실도 뇌물로 판단했다. 이와 함께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11회에 걸쳐 가족 여행 경비 5000여만원을 받은 사실도 검찰의 기소 대상에 올랐다.

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넥슨 주식 매입자금의 출처를 감추기 위해 재산신고를 허위로 하고 지난 3월 넥슨 주식 매입 경위 의혹보도가 나오자 3차례에 걸쳐 허위 소명서 및 자료를 제출한 혐의도 있다.

공직자에 130억 편익제공 혐의 13년 구형
재판부는 “입증 실패…대가성 없음” 무죄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과 김 대표 사이에 금품이 오간 상황은 인정했지만 둘 간 직무 연관성이 없고, 대가성이나 개연성이 확인되지 않아 뇌물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이 검찰이란 이유만으로 비상장 주식을 받았다고 해서 대가성을 인정할 직무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김 회장이 주식 등을 제공한 지난 10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대가성을 입증할만한 어떤 사건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이 쉽게 납득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재판부가 진 전 검사장의 직무를 너무 소극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진 전 검사장의 직무 범위를 일반 검사 수준으로 해석한 게 아니냐는 것.


진 전 검사장은 일반 검사와는 달리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검사장 직을 맡고 있어 논란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보험 성격의 뇌물로 판단할 여지가 있는 김 대표의 진술도 구체적인 대가를 받은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뇌물죄 성립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김 대표는 “진 전 검사장이 검사이기 때문에 (금품을) 제공한 점을 부인할 수 없고 나중에 형사사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줬다”는 진술을 했다.

또 진 전 검사장이 허위로 재산신고를 한 부분에 대해서도 해당 사실을 인정했지만 적극적으로 서류를 조작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공무집행 방해에 대한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 국민여론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공직자는 대가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3만원 이상의 식사를 제공받으면 처벌된다. 하지만 진 전 검사장은 김 대표로부터 130억원의 재산상의 이익을 편취했지만 검찰이 혐의 입증에 실패하면서 재판 결과에 아쉬움을 남겼다.

재판부가 진 전 검사장과 김 대표의 관계를 ‘지음 관계’로 해석한 대목도 재판부와 검찰 간 온도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지음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일반적인 친한 친구 사이를 넘어 서로 지음 관계에 있다고 보인다”며 “두 사람의 관계와 김 대표가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 대표의 재산이 많아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인 수억원을 친분 관계로 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번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법조계는 의외라는 반응이 중론이다. 한 법조계의 관계자는 “공직자에게 수억원을 제공하고도 무죄를 선고한 것은 관련 정황 증거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식구 감싸기 논란
즉각 항소 만회시도

다만 검찰은 진 전 검사장의 처남 회사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청소 용역 일감 147억원을 받은 부분에 대한 제3자 뇌물수수죄는 혐의 입증에 성공했다. 진 전 검사장은 조양호(67) 한진그룹 회장 내사 관련 부정한 청탁을 받은 대신 처남 회사를 대한항공 용역사업에 참여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처남이 운영하는 주식회사 블루파인매니지먼트는 2010년 8월, 대한항공 청소용역 사업에 참여해 이익을 챙겼다. 진 전 검사장의 부탁을 받고 처남의 청소용역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게 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대한항공 서용원 전 부사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번 재판결과 주요 쟁점 사안인 뇌물죄 입증에 실패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검찰의 수사가 느슨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판결문 곳곳에 검찰의 수사에 대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문구가 수차례 포함됐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현안 브리핑을 통해 “검찰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재판부가 포괄적 뇌물죄 적용을 소극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며 “우병우 황제 소환에 이어 진경준 무죄로 검찰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항소, 달라질까

검찰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제식구 감싸기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공직자의 금품수수에 대한 경험칙(통념)에 반한 판결로 읽힌다”며 “검찰 입장에선 항소를 통해 명예회복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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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