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국민이 보고 있는 헌법재판관 9인

박근혜만? 대한민국 운명이 9명에 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9일 국회의원 234명을 태운 탄핵 열차가 ‘가결’역에 정차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정족수 200명(재적의원의 3분의 2)을 훌쩍 넘긴 압도적 가결이었다. 이날 국회의장 명의의 탄핵소추 의결서가 청와대로 전달되면서 오후 7시3분을 기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제 박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관 9명의 손에 달렸다. 재판관 9명 가운데 3분의 2인 6명 이상이 찬성하면 박 대통령은 짐을 싸야 한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열린 7차 촛불집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전국 100만이 운집한 집회에서 국민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일부 시민들은 탄핵 가결이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앞으로 행진하자고 주장했다. 1000여명의 시민은 헌재 앞으로 몰려가 “탄핵안을 인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 재판관 9명은 역사의 한 가운데서 시민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언제쯤 결정?
시민들 압박

재판관들은 비선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의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소추안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법치국가 원칙, 직업공무원 제도 등 헌법을 폭넓게 위반했다. 또 “헌법질서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거나 침해, 남용했다”고 적시했다.

헌재는 최장 180일 동안 탄핵안을 심리, 인용 또는 기각·각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 박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에 돌입한다. 반면 기각·각하 결정이 나오면 박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한다. 시민들의 눈과 귀가 헌재에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3명, 국회에서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으로 구성된다. 소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현재 5기 재판부의 경우 박한철 소장,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대통령이 지명했고 김이수·안창호·강일원 재판관과 이정미·김창종·이진성 재판관은 각각 국회와 대법원장이 추천했다.

박한철 소장은 이번 탄핵 심판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의 임기가 내년 1월31일에 끝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내년 3월13일 임기가 끝나는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 남은 7명의 재판관 중 두 사람만 반대 입장을 내도 탄핵안은 기각된다.

박 소장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재판관에 임명됐고, 2013년 4월 박 대통령이 그를 소장에 임명했다. 부산 출신 박 소장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 직전 임명한 조대환 청와대 민정수석과 사법연수원 동기(13기)다.

3분의 2인 6명 이상 최종 판단 주목
보수7·진보1·중도1…과연 결과는?

박 소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수사를 지휘한 공안통으로 꼽히며 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재판관 시절 낙태죄 처벌, 야간 옥외집회 금지에 합헌 의견을 내는 등 사회 안정을 중시하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2013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형법상 모욕죄에 대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소수 의견인 위헌 입장을 밝혀 마냥 보수 성향은 아니라는 평도 있다.


당시 박 소장은 “모욕죄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비꼬는 말이나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인터넷상 거친 신조어 등도 처벌될 수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정미 재판관은 2011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임명됐다. 헌재 사상 최연소이자 5기 재판관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울산 출생으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재판관 취임사에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 따뜻한 배려심을 가지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여러 사건서 이 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냈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사후매수죄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을 당시 이 재판관은 위헌으로 다수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선거 종료 후의 금전 제공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사퇴 의사 결정이나 선거 결과에 부정한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없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또 독신자는 친양자를 입양할 수 없도록 규정한 옛 민법조항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소수 의견 쪽에 섰다.

그는 “편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타파돼야 할 대상인 바 이를 이유로 독신자의 친양자 입양을 봉쇄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헌재 내에서 가장 진보 성향을 가진 것으로 꼽히는 김이수 재판관은 2012년 야당인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서울남부지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 등을 지낸 김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심판 당시 유일하게 기각 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은 “이석기 전 의원의 발언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지만 통진당 전체가 이를 적극 옹호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제적으로 정당을 해산해선 안 된다”고 소수 의견을 냈다. 조합원 자격을 현직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 제2조를 두고 헌재가 8대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유일하게 위헌 입장을 냈다.

박한철·이정미
퇴임이 변수로

김 재판관은 “다른 직종으로 변환이 쉽지 않은 교사라는 직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시적인 실업 상태인 해직 교원과 구직 중인 교사 자격 소지자의 가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교사 직종에 속하는 사람들의 단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서 경찰이 물포를 발사한 행위가 헌재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도 “물포는 국민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해를 가할 수 있는 장비”라며 소수 입장에 섰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천한 이진성 재판관은 서울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서울중앙지법원장, 광주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한 판사 출신이다. 보수 성향이 짙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한 언론이 분석한 재판관 성향 데이터에 따르면 김이수 재판관 다음으로 진보 성향을 띄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이 재판관은 김 재판관과 함께 자주 소수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강제추행 범죄를 저지를 경우 신상정보를 등록하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도록 한 법 조항에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등록 조항에 대해서는 “재범의 위험성을 전혀 요구하지 않고 특성이나 불법성의 경중을 고려해 등록대상 범죄를 축소하거나 별도의 불복절차를 두는 등 덜 침해적인 수단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제출 조항에 대해서도 “비교적 경미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는 등록대상자에 대해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다수 보수 성향
판결에 영향 있나

경북 구미 출신인 김창종 재판관은 5기 재판관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인사로 꼽힌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 김 재판관은 간통죄 위헌 결정서 다수 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은 “간통죄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김 재판관은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현행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도 다수 의견(합헌)을 냈다.


당시 헌재는 “건전한 성 풍속·도덕을 확립하기 위한 국가 형벌권의 개입은 성매매 자발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당하다”며 생계유지 등의 이유라도 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안창호 재판관은 대검 공안기획과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낸 보수 성향 인사로 분류되며 새누리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헌재가 간통죄 처벌 규정에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폐지를 반대한 두 명의 재판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정미 재판관과 함께 안 재판관은 “간통은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혼인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훼손하고 가족 공동체의 유지·보호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 영역에 포함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소수 의견을 개진했다.

헌재 발 빠른 행보
촛불 행렬 헌재로?
 

사법고시를 폐지하는 번호사 시험법 부칙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도 “사시의 폐해는 응시 횟수를 제한하고 합격률을 높여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폐지하는 것은 수험생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로스쿨만 두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법조계 진입이 불가능해질 수 있어 두 제도를 병행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재판관은 김영란법 조항 중 배우자가 금품 등을 받은 것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공직자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미신고 행위만을 처벌하는 조항은 우리 형사법체계서 국가보안법 외에 찾기 어려운 극히 이례적인 입법”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면서 “금품 수수 통로를 차단하려면 배우자를 직접 처벌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단을 내렸다.

강일원 재판관은 2012년 여야 합의로 재판관이 됐다. 대법원장 비서실장,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5기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2012년 여야가 합의로 강 재판관을 추천할 때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각종 사안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강 재판관은 성매매특별법 사건서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합헌이라는 데 다수 의견과 같이 했지만 “성 판매 여성은 형사처벌 대상이라기보다는 우선적으로 보호받을 사람”이라는 등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그는 김영란법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을 맡아 합헌 입장에 섰다. 강 재판관은 사건번호 2016헌나1,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심이기도 하다.

서기석 재판관은 지난 2013년 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법원 헌법연구회 초대 회장, 사단법인 행정판례연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공·사법에 두루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서 재판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부임 후 35일 만에 재판관으로 자리를 옮겨 당시 이례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당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일명 효순·미선이 사건서 관련 수사 기록 제출을 거부하던 검찰에 “미군 재판 기록을 제외한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2008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조용호 재판관도 임명권자가 박 대통령이다. 서울고법원장 재직 기간의 절반 이상 행정·특허 소송을 담당해 행정법 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와 관련해 유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음악파일 교환서비스인 ‘소리바다’ 사건과 관련해선 음악 저작권자의 음반복제와 전송권이 침해됐다고 판단, 소리바다 측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도 했다. 직장 상사의 성희롱 사건 재판서 여직원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해고가 지나치다고 판결하면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조 재판관은 사시 폐지 관련 헌법소원 사건서 헌재가 합헌을 결정할 때 “로스쿨 제도를 통해 양성되는 법조인이 사법시험을 통해 선발된 법조인보다 우수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성매매특별법 사건에선 “성매매 근절을 내세워 삶의 밑바닥에 내몰린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며 전부 위헌 의견을 폈다.

여론 탄핵 요구↑
개별 의견 부담↑

재판관들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주말도 반납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이 헌재에 쏠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형 사건이기에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4일 헌재는 주심 강일원 재판관을 비롯, 이정미·이진성 재판관을 수명재판관으로 지정하고 탄핵심판 사건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수명재판관은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거를 정리해 단순하게 압축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진성 재판관은 지난 15일, 수명재판관으로 지정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이름으로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라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놨다.

일각에선 재판관들의 대다수가 보수 성향인 것을 들어 탄핵 인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반면 탄핵은 진보·보수 성향에 따라 갈릴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여론이 탄핵 인용 쪽으로 완전히 쏠려 있는 상황이 헌재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 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국민의 75% 이상이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15.2%)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다. 탄핵 심판 시 재판관 개별 의견을 명시하도록 2005년 법이 개정된 것도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당시 재판관들은 개별 의견을 담지 않았고, 이는 내용이 부실하고 책임 소지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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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