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는?’ 청와대 조직 대해부

말 많은 권력요직 “국민도 잘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민정수석실, 부속실 등의 청와대 비서실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일요시사>에서 한창 말 많은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사표 제출을 지시받은 수석 비서관은 정책조정·정무·민정·외교안보·홍보·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인사 등의 10개 조직이다. 

10개의 조직
수석 비서관

2013년 초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청와대에는 총 9명의 수석 비서관이 있었다. 전임 이명박정부서 9명의 수석과 이에 준하는 6명의 기획관이 존재하던 것을 ‘슬림화’하겠다는 목적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임기를 거치면서 박근혜정부의 조직도 조금씩 몸집이 커졌다.

잇단 인사 실패가 발생하자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며 인사수석실을 신설했고 임기 3년 차에 들어선 2015년에는 국정기획수석을 정책조정수석으로 개편했다. 한때 대통령을 특별 보좌하는 특보단이 신설됐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의 비서와 기타 특명을 받은 기밀사항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 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실무를 장리하며 소속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대통령의 비전과 철학과 가치를 담는 유일한 제도적 기제이기도 하다.


청와대 비서실 조직을 보면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중요시 하는 정책영역이 무엇이며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 비서실 조직은 아주 중요하다.

청와대 비서실 조직은 5가지 기능적 이슈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범정부 및 조정 이슈를 담당하는 조직은 비서실장, 국가 안보실장, 인사위원회, 연설 기록 비서관이 있다. 정책적 이슈를 다루는 조직은 국정기획수석, 경제수석, 미래전략수석, 교육문화수석, 고용복지수석, 외교 안보수석 등이 있다.
 

운영 이슈는 민정수석, 총무 비서관, 의전 비서관, 경호실이 담당하며 외부 관계는 정무수석이,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홍보수석이 담당한다. 장관 내지 차관급의 별정직 공무원이 역임하는 수석비서관은 역대 정권에 따라 명칭 변동이 있었으나 공통적으로 대통령의 정책 입안과 결정을 실질적으로 보좌하는 책무를 맡아왔다.

▲특별감찰관 = 2014년부터 시행된 특별감찰관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전임 대통령들이 친인척 및 가족 비리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자 재발 방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독립된 지위를 가지는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족, 비서실 내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들의 비위행위(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상시 감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으로 탄생한 특별감찰관 제도는 출범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취임한 이석수 전 감찰관이 미르·K스포츠재단 및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 내사 중 사임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병우 비서관이 있는 민정수석실도 고위 공무원에 대한 감찰 사안이 있을 때 특별감찰반을 꾸려 운영할 수 있다.

때문에 특별감찰관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 기존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은 한시적 운영, 특별감찰관은 상시적 운영이라는 것이다.

비리 재발 방지 대책으로 특별감찰관 공약
출범 2년 채우지 못한채 사실상 마비 상태


▲비서실장 =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관인 비서실을 총괄하는 자리다.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대통령의 명을 받아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직제상으로는 장관급이지만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기 때문에 국무총리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이명박정부 때는 대통령비서실과 경호실이 통합된 ‘대통령실’을 운영했으나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며 비서실과 경호실이 다시 분리됐다. 역대 박근혜정부 비서실장 중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건 김기춘 전 실장이다.

78세 고령으로 비서실장에 오른 김 전 실장은 참모진 인사 등에 깊숙이 관여하며 ‘기춘대원군’이라 불렸다. 김기춘을 비롯해 허태열,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임명된 이원종 전 실장은 취임 5개월 15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국과 동떨어진 발언을 한 이 전 실장은 실제로 아무 것도 모르는 ‘허수아비’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니었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후 김대중정부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 의원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비서실장 직속으로는 총무비서관과 제1·제2부속비서관, 의전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 등 5명의 비서관이 있다.

정책 입안과 결정
실질적으로 보좌

▲총무비서관 = 총무비서관은 비서실의 인사관리와 재무·행정 업무, 국유재산과 시설·물품 관리, 경내 행사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특히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내부 사이버 보안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이 전 비서관의 승인이나 묵인 없이는 연설문을 포함한 청와대 문서 유출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부속비서관 = 부속비서관은 총 2명이다. 제1부속비서관은 청와대의 내부 일정을, 제2부속비서관은 본래 대통령 부인의 일정을 담당하는 역할이지만, 현 정부에선 1·2부속비서관이 통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맡고 있는 탓에 ‘비서실 안의 비서실’이라 불릴 만큼 요직이나 그만큼 부패하기 쉬운 조직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봐야 하는 문서나 자료도 통상 부속비서관을 거쳐 전달된다. 보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부속비서관의 몫이다.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최순실에게 매일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의전비서관 = 대통령의 일정 관리와 접견 및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 등을 담당한다. 일정 관리에 있어 부속실과 차별되는 점은 부속실의 경우 청와대 내부 일정을, 의전실의 경우 공식·대외 일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국빈급 오·만찬도 의전비서관이 챙긴다.


▲연설기록비서관 = 대통령이 발표하는 연설문 작성을 담당한다. 연설문은 연설기록비서관이 작성한 뒤 통상 부속실로 넘어간다. 박근혜정부에선 출범 때부터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이 ‘대통령의 펜’ 역할을 해왔다.

명칭 바뀌어도
업무는 비슷

여담으로 조 전 비서관의 글쓰기 실력은 정치권 안팎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를 영입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의혹이 나온 뒤 돌연 사표를 내고 사흘간 잠적했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 = 정책조정수석은 2015년 대대적인 청와대 조직 개편과 함께 생겨났다. 이전에는 국정기획수석이라 불리던 직책이 정책조정수석으로 바뀌었다. 사실 국정기획수석은 이명박정부 때 신설된 자리다.

4대강, 세종시 등 굵직굵직한 정부의 중점 사업을 관리하면서 수석 중에서도 파워가 가장 센 ‘왕수석’으로 통했다. 박근혜정부 역시 출범 때부터 핵심과제를 반드시 챙기겠다는 의지로 국정기획수석 자리를 정책조정수석으로 부활시켰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담당하는 업무는 비슷하다. 국정과제의 기획과 관리가 주 업무이다. 박 대통령이 안종범 전 수석을 정책조정수석에 임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책조정수석이 되기 전 경제수석이던 그는 기초연금, 생애주기별 복지 등 박근혜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기획한 ‘정책 브레인’으로 꼽힌다.


▲정무수석비서관 = 정무수석의 ‘정무’란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뜻한다. 대 국회·정당 업무 및 행정과 치안에 관련된 사안을 챙기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유능한 정무수석은 여야 의원들을 넘나들며 ‘정부-국회-국민’의 가교 역할을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뭐 하는 사람이냐”는 핀잔을 듣는 경우가 이전에도 왕왕 있었다.

‘박근혜의 여자’라 불렸던 조윤선 전 정무수석도 재임하는 11개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증언하며 ‘역대급 무능한 정무수석’이란 비난을 들었다.

실제로 정부와 국회의 훌륭한 가교가 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소통하며 그의 국정철학을 충분히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최순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재원 전 정무수석은 출입기자들에게 “외롭고 슬픈 박 대통령을 도와달라”고 말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모든 고급 비밀정보가 집중”
국가 권력 최정점 민정수석

▲민정수석비서관 = 민정수석의 ‘민정’은 백성의 뜻을 살핀다는 뜻이다. ‘민정을 살핀다’는 건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말인데 말 그대로 국민 여론 및 민심 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일컫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1960년대 박정희정권 때 신설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심을 살필 뿐 아니라 국정원·경찰·검찰·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의 업무도 총괄, 검찰과 법무부에 대한 인사검증 권한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 기관에서 나오는 정보는 모두 민정수석실로 모여든다.
 

사실상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인사에 대해 ‘민정이 손썼다’는 얘기가 과거 정부서도 종종 나왔다. 얼마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에 출석할 때 보인 ‘당당한’ 태도도 괜한 것이 아닌 셈이다.

▲공직기강비서관 = 민정수석실에 소속된 공직기강비서관은 1995년 김영삼정부 때 신설된 직제다. 기존 민정수석실 내 사정1비서관이 맡던 업무였던 주요인사들의 인사정보 관리를 전담하기 위해 생겨났다.

민정수석실 내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이 특별히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건, 박근혜정부의 첫 담당자였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때문이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2014년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연루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현행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실서 근무할 수 있는 인원은 총 443명이다. 이 중에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10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400여명의 직원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하지만, 국민에게 권력을 이양받아 나랏일을 돌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밑 파워게임
부서간 완력도

이밖에 경제수석비서관은 재정경제, 금융, 산업통상자원, 중소기업, 건설교통 및 농림해양수산 업무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통일, 외교, 안보, 국방 및 교민 업무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교육, 문화체육과 관광진흥에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은 보건복지와 여성가족, 노사관계, 고용노동에 관련한 업무를, 홍보수석비서관은 청와대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홍보기획과 국정홍보 관련한 업무를, 인사수석비서관은 청와대 및 국정에 인사배치 및 임명과 관련한 업무를,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은 과학기술, 정보방송통신, 기후환경 등에 관련한 업무를 보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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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