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와대-페이퍼컴퍼니 커넥션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6.12.05 10:20:19
  • 호수 1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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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회사에 VIP 행사 맡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현목·박창민 기자 =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보통 이런 회사를 ‘페이퍼컴퍼니’라고 한다. 이른바 유령회사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청와대가 이런 수상한 회사와 거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청와대가 정부 부처에 이 업체와 거래하라고 지시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A사는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영빈관서 치러진 수많은 행사를 도맡은 행사 대행 용역회사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2015년 교육정보화종합시상식 행사 운영의 수의계약 사유서’에 따르면 “VIP(박 대통령) 행사 경험이 풍부한 본 업체(A사)와 수의 계약을 진행하게 됨”이라며 “실적이 우수하며, 정부부처 VIP행사 관련 다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교육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청와대 행사 싹쓸이
부러움의 대상

실제로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A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청와대 영빈관서 있었던 ‘어린이날 청와대 초청행사’(2015년 5월5일 청와대) ‘제3차 규제개혁 관계 장관 회의’(2015년 5월6일 청와대 주최) ‘제9회 장애인기능올림픽 선수단 축하 오찬’(2016년 4월19일 장애인고용공단) ‘바이오 산업생태계, 탄소자원화 발전전략 보고회’(2016년 4월21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의 행사를 도맡았다.

A사는 이외 다수의 청와대 관련 행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A사가 진행한 행사는 모두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졌다.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이 체결하는 모든 계약은 경쟁입찰이 원칙이다. 하지만 예외 조항이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6조(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는 경우)에 따르면 5000만원 이하인 물품의 제조·구매·용역 그 밖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A사가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수주한 금액은 1000만원서 1600만원 사이기 때문에 수의계약 요건에 해당된다.

업계에선 A사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고정적으로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일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행사 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일감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청와대 일을 많이 한 업체는 보기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 역시 수의계약으로 한 업체에게 이렇게 많은 일감을 주는 것은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의계약으로 특정 업체만 쓰는 것은 특혜라고 의심하기 딱 좋다. 이 때문에 청와대 수의계약을 하는 담당자가 이런 의심을 안 받으려고 서로서로가 조심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어떻게 맡았나?
누가 밀어줬나?

그런데 A사가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인터넷에는 A사와 관련된 정보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외에도 A사의 견적서에 나와 있는 주소와 세금 계산서에 나온 주소도 일치하지 않다. 직원도 없다. 이쯤 되면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해볼 만하다는 게 중론이다.

먼저 <일요시사>가 입수한 A사의 견적서에 따르면 회사 대표로 P씨가 등재돼 있다. 그런데 회사 주소지는 A사의 이사로 등재돼 있는 Y씨의 집. 견적서에 나온 A사의 주소는 경기 김포시 김포대로 355-1 번지로 돼 있다.
 

하지만 이 주소에는 허름한 주택만 있을 뿐 사무실로 보일만한 곳은 없었다. 등기부등록부에 따르면 지목은 임야로 돼 있는데, 사실상 적절치 않은 곳에 회사 주소가 등록돼 있는 셈이다.


석연치 않은 점은 또 있다. 견적서에 기재돼 있는 A사의 사업자 번호 141-00-00000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애견 쇼핑몰 O사가 등장한다. 홈페이지의 O사 주소지는 경기도 파주시 상지석동 745-7번지로 돼 있다.

같은 A사 사업자 번호에 두 개의 회사 주소가 존재하는 셈이다. 혹시나 다른 회사가 아닐까 확인했지만, 홈페이지 하단에 에 있는 회사 대표자에 P씨의 이름이 있다. 핸드폰 번호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진짜 주소는 어딜까. A사의 사업자등록증에 따르면 회사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운정역길 35-31(상지석동 745-7번지)이다. 그런데 이 주소에는 사무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2층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주택의 소유주는 P씨이며, 그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직원 없고 홈페이지도 없어
수상한 회사와 이상한 거래
부처에 거래 지시한 의혹도

결국 청와대 일감을 받고 있는 업체가 사무실 하나 없는 셈이다. A사의 직원은 대표이사인 P씨와 이사인 Y씨 말고는 없다. 이쯤 되면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청와대 행사 정도 수의 계약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될 텐데. 수상한 회사”라고 말했다.

그런데 A사는 견적서를 과도하게 부풀린 의혹도 있다. A사는 주로 행사 제작물 총괄 기획 및 관리를 담당한다. 실내현수막 제작, (실내 현수막) 수정 작업, 현장설치 및 철수, 행사 좌석배치도, 참가자 네임텍(비표)제작, 참석자 명패 제작 및 출력, 회의용 펜접시 세팅, 좌석라벨지 출력 및 소모성 문구류 등을 행사 전반에 필요한 물품 제작 및 보급한다. 회의용 디지털 음향장비 대여 및 철수도 한다.

이중 특히 과다하게 견적서를 부풀린 것으로 보이는 항목은 실내 현수막 제작과 (실내 현수막) 디자인 및 수정 작업, 회의용 음향장비 대여다. 올해 4월21일 청와대 영빈관서 박 대통령이 참석한 ‘바이오 산업생태계, 탄소자원화 발전전략 보고회’(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주제)도 A사가 행사 대행을 맡았다.

A사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견적서에 따르면 총 1233만원 행사 비용이 들어갔다. 복수의 행사 대행업체에 따르면 이 견적서가 과다하게 청구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행사 내부 현수막 제작비용과 현수막 디자인 및 수정 작업 비용이 소비자 단가보다 비싸다는 것.
 

견적서에 청구된 현수막 제작비용은 총 77만원이 들어갔다. 이 현수막은 3.4m(가로)X5.7m(세로)의 대형 현수막이다. 업계에선 현수막 제작 단가를 ‘1mX1m=1㎡=1만원’으로 산정한다.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3.4mX5.7mX1만원=19만3800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비싸게 잡아도 적정가격은 30만원을 못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A사가 현수막 비용을 과도하게 청구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사무실 주소
찾아보니 주택

현수막 디자인 작업 비용도 과다하게 청구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A사는 디자인 작업 비용으로 150만원을 청구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디자인은 질과 시간, 인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어떻게 작업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현수막 디자인에만 150만원이 들어간 것은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자인이라는 것은 산정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행사에서 A사는 음향장비 대여로 500만원을 청구했다. 업계에선 이 부분도 과하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행사 대행 업계 관계자는 “예산을 아끼려 했다면 충분히 절감할 항목이다. 콘서트도 아니고, 클럽 음향 같이 값비싼 조명장비도 대당 50만원에 대여한다. 2대 만으로도 홀을 충분히 울리고 남는다. 회의에 그런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과하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과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 부처와 해당 기관에 A사에 행사를 맡기라는 정황도 포착됐다. 특히 보수단체서 박 대통령 예방행사가 있을 당시 청와대 행정자치 비서관실에서 A사를 추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견적서 주소는 김포
사업자 주소는 파주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보수 단체가 주최하는 박 대통령 의전 청와대 지침에 따르면 ‘이벤트 업체 협의(청와대 추천)·기획·A사 010-0000-0000’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단체는 청와대 지침대로 A사에 행사 용역을 맡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보수 단체 역시 청와대 지침이 내려가 A사에게 용역을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럴 경우 해당 기관에선 청와대가 추천한 A사에 행사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 부처의 설명이다.


그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청와대 의전실과 업무를 조율했던 한 관계자는 “청와대서 추천한 곳에서 안 했다가 밉보이기 십상이라 (청와대서)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마치 손님이 행사를 기획하는 꼴이다.

반면 A사에 행사 용역을 줬던 관계 부처들은 청와대 추천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는 “작년에도 (A사가) 우리행사를 했었다. 알고 있던 업체기 때문에 선정했다. 청와대 행사 경험이 많은 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고용노동부가 추천해줬다. 청와대 오찬 행사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과거의 업체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 관계자는 “오랫동안 행사를 꽤했던 업체다. 문제될 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청와대 추천은 없었다”고 말했다.

견적서 부풀린
뻥튀기 의혹도

청와대 역시 해당 부처에 ‘추천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행사는 해당 주무 부처에서 기획한다. 청와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며 “하지만 주무부처가 경호 문제로 행사 선정이 어려울 경우가 있다. 이때는 몇 군대 업체를 소개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A사측 해명과 반박

A사는 청와대가 정부 부처에 행사 대행 일감을 몰아준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실체가 모호한 페이퍼컴퍼니 의혹도 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요시사>는 A사 관계자와 전화 통화를 통해 해명과 반박을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A사가 청와대 관련 행사를 많이 했던데.

▲개인적으로 청와대 일을 한지 25년이 넘었다.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있다.

▲사업자 등록증에 보면 서비스, 영상촬영, 이벤트 대행 등 다 들어가 있다.  

-견적서에 나온 주소랑 사업자 번호 주소와 다른데.

▲사업장 주소는 파주로 돼 있으며, 사무실은 김포로 돼 있다.  

-사무실 같지는 않고 주택이던데.

▲맞다. 사무실로 겸용해서 쓰고 있다.  

-사업자 번호를 검색하니 애견 용품 쇼핑몰이 나오던데.

▲사업자 번호를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애견 쇼핑몰은 P대표의 부인이 운영하고 있다. 부업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페이지도 없고, 청와대 행사를 많이 하는데 업체에 대한 정보가 없다.

▲꼭 홈페이지가 있어야 정상적인 회사 인가? 수십년 간 문제없이 이렇게 해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청와대 일감을 이렇게 많이 받았나?

▲우리는 청와대 행사 특성상 경호나 의전 때문에 매뉴얼이 까다롭다. 그런 매뉴얼들을 가급적으로 많이 해본 업체를 정부 부처에서 선호한다. 나는 부처에 있는 공무원들을 많이 알아서 일을 하는 것이다. 누구의 특혜를 받은 것은 아니다.  

-청와대서 부처에 A사를 추천했다.

▲그런 일 없다. 우리는 청와대 추천으로 일한 사실이 없다. 업무 편의상 각 부처에서 내려보낸 것 같은데, 우리는 부처의 연락을 받고 일을 한 거다.  

-그래도 청와대 일감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우리 말고도 많다. 왜 우리한테만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업체보다 청와대 행사를 더 많이 하는 업체도 많다. 대부분 해당 부처와 유대 관계를 맺고 일을 한 거다.  

-일각에선 견적서를 과다하게 청구했다고 하는데.

▲그 업체들은 청와대 행사를 한 적 없는 업체일 것이다. 디자인도 다 외주 업체에 주는 것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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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