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정국진단> 유준상 “대통령 탈당과 탄핵이 답”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0:27:47
  • 호수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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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합의 총리 임명 등 5가지 제안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은 분당의 기로에 섰다. 갈라서느냐, 아니면 화합하느냐의 결정만 남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러온 혼란은 그렇게 집권여당을 점차 암흑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당장 해법이 절실한 상황. 당의 큰어른인 새누리당 유준상 상임고문은 다섯 가지 돌파구를 제시, 현 정국 수습에 팔을 걷어붙였다.

100만 촛불이 켜졌다. 새누리당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점은 모든 게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집회 참석자의 규모는 하루하루 늘어나고 있다. 특검 조사, 거국중립내각 구성 얘기는 도돌이표를 반복 중이다. 심지어 최순실과 관련된 의혹 보도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150만, 200만의 촛불로 번질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당은 반목만을 거듭하며 위기 탈출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지도부는 신뢰를 잃었고 비주류는 네거티브에 몰두하니 해법이 나올 리 없다.

결국 상황 수습에 실패한 당 지도부가 상임고문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 16일 여의도의 한 중식당서 이정현 대표, 박명재 사무총장,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고문단 11명을 초청, 고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유준상 상임고문은 현 정국을 헤쳐 나갈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하며 당의 변화된 모습을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일요시사>는 회동 직후 유 고문과 만나 현장서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 과연 유 고문은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다음은 유 고문과의 일문일답.


-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문 잘 보고 있습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진 후 이번에 <일요시사>에서 내놓은 표지가 참 맘에 듭니다. “물러나라” “부끄럽다”.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촌철살인이었습니다. 창간 때부터 <일요시사>의 애독자여서 그런지 변화된 기획을 보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 오늘(지난 16일) 상임고문회의는 어떻게 성사됐나요?
▲이정현 대표의 요청에 의해 모였습니다. 당 지도부에선 이 대표와 박명재 사무총장, 염동열 수석대변인이 나왔고, 상임고문단에서는 나를 비롯해 김수한, 김종하, 박희태, 서정화, 정재철, 김동욱, 나오연, 권해옥, 이형배, 이연숙 고문이 참석했습니다.

- 최순실 사태에 대해 이 대표는 고문들에게 뭐라고 말하던가요?
▲당이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 놀라게 만든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더군요. 또한 수습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점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현 정국에 대한 보고도 있었습니다. 이 대표는 요즘 수면제를 3알 먹어도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토로했습니다.

- 당 어른들의 따끔한 충고가 이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각자 한마디씩 해줬습니다. 따끔한 충고도 있었고 진심어린 조언도 있었습니다. 김종하 고문은 이 모든 일이 4·13 공천파동서 시작됐다고 말했고, 이형배 고문은 국민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버렸다는 민심을 전해줬습니다.
 

이연숙 고문은 현 상황이 4·19혁명 이상이라며, 국민들이 화가 많이 났는데 지도부에선 이를 진정시킬 대책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박희태 고문은 친박-비박이 이렇게 분열하면 되겠냐며 충고한 뒤 몸 바쳐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했고요. 김수한 상임고문단 의장은 중진들의 발언이 갈등의 화근이 된 점이 있다며 이 대표에게 고독한 싸움이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잘해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상임고문단 이정현 만나 당 쇄신 촉구
5가지 돌파구 제시 “모든 걸 바꿔라”

- 유 고문님은 어떤 말씀을 해주셨나요?
▲우선 척박한 호남 땅에서 두 번의 선거를 승리하고 집권당 대표가 된 이 대표에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기는 내우외환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나라 안에선 100만 국민들이 횃불을 들었고, 나라 밖에서는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한반도 대북·국가안보 정책의 위기가 찾아왔지 않습니까. 구한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인 거죠. 그래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내 나름의 다섯 가지 해법을 이 대표에게 제시했습니다.


- 다섯 가지 해법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는 대통령의 탈당. 둘째는 여야 합의에 의한 총리 임명. 셋째는 야당이 얘기하는 거국중립내각 수용. 넷째는 국회서 탄핵 절차를 밟으면, 대통령이 즉시 수용하겠다고 밝힐 것. 마지막 다섯째는 여야가 합의한 특검, 국정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선언을 할 것. 이 다섯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표에게 내가 제안한 내용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제안 내용 중 탄핵이 눈에 띄는데요.
▲우리나라는 법치주의가 근간인 국가입니다. 만약 검찰 조사 결과 탄핵의 사유가 있다면 대통령이 먼저 떳떳이 절차를 밟을 것을 선언해야 합니다. 탄핵은 부결될 수도, 가결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부결된다면 임기가 이어지는 것이고, 가결된다면 총리 대행 체제로 전환돼 조기 대선 날짜가 잡히겠죠.

결과적으로 헌정이 중단되는 사태는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탄핵을 진행하면 수용하겠다는 뜻을 대통령이 먼저 밝히라고 말한 것입니다.

- 과연 다섯 가지 제안이 대통령께 잘 전달될까요? 최순실 사태도 결국은 대통령이 비선을 통해서만 의견을 들은 점이 문제였잖습니까.
▲이 대표는 나름 박 대통령에게 건의를 열심히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 총장의 말에 따르면, 청와대 인사 개편, 최순실 귀국 후 수사, 특검, 책임 총리도 다 이 대표가 건의해 대통령이 받아들인 사안이라고 합니다. 박 대통령에게 가장 진솔하게 건의했던 사람이 이 대표인 만큼 잘 전달되길 기원합니다.

- 박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습니다.
▲유 변호사가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한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는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에요. 어째서 변호사로 이런 사람을 선택했는지 매우 안타깝다는 입장입니다. 가능하다면 하루 빨리 변호인을 교체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당 내외서 높은 상황인데요.
▲책임 있는 공당의 대표로서 사태를 수습하고 물러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지노선으로 잡은 게 다음달 20일쯤이라고 하는데, 만약 이전에라도 중립내각 총리가 임명된다면 본인은 즉시 물러날 생각이라고 고문단에게 말했습니다.

- 그러나 당 안팎에선 이 대표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말하길 눈이 많이 내리고 있는데, 그 눈을 치우고 가야지 그냥 놔두고 갈 순 없다고 하더군요. 모든 걸 정리하고 대표직을 물러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 그런 이 대표에게 어떤 얘기를 해줬나요?
▲나라와 당을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리라고 말했습니다. 국가를 위한 충신이 돼야죠. 마케팅서 한번 버려진 상품은 다시 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마케팅은 실패했습니다.

- 구국의 결단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다음달 20일로 마지노선을 정해놓지 말고 당을 화합할 수만 있다면 사퇴를 앞당기라는 의미입니다. 모레,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필요하다면 사퇴를 하라는 뜻입니다.

- 그러나 이 대표는 1월 전대카드를 꺼내든 상황입니다.
▲그 자리에서도 1월21일 전대를 치를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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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외위원장 만나 “젊은피 중심돼야”

- 전대 날짜를 두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귀국을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동석한 박 총장이 나서서 설명했습니다. 1월27일부터 설 연휴가 있으니 1월21일을 전대 날짜로 잡은 것이지 반 총장을 의식했다든지 어떤 노림수가 있다든지 하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해 했습니다.


- 어쨌든 기존 지도부의 결정에 반발한 비박계가 중진급 12명을 중심으로 비상시국위원회 대표자 회의를 꾸렸습니다. 사실상의 분당 수순 아니냐는 주장이 일고 있는데요.
▲비박계 12명의 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빠른 시일 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하나로 합쳐야 합니다. 지금 분당하면 누구에게 득이 되겠습니까. 찢어지면 친박-비박 양쪽 다 공멸할 게 자명합니다. 그러면 새누리당은 영원히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게 되겠죠.
 

- 그 와중에 이 대표는 ‘10% 대선주자’ 발언을 꺼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이 대표가 거론한 남경필, 오세훈, 김문수, 원희룡은 우리당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김무성, 유승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표에게 말을 순화해서 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당의 지도자가 그렇게 말하면 당이 어떻게 화합할 수 있겠습니까.

- 비박계는 당의 분열을 불러온 건 친박계라며 2선으로 물러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비박계 주장에도 일리가 있어요. 결국 당 내홍은 진박, 친박이 주도한 공천 파동서 시작된 것 아니겠습니까. 공천 파동만 없었으면 새누리당이 180석을 무난히 넘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누가 봐도 골수 친박인 자들은 뒤로 물러나고 중립적이고 젊은 인사들이 당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의 외연이 확대되고 분당을 막을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일각서 나오는 재창당 주장에 찬성하시는 입장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재창당 수준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단, 그러한 작업은 필히 젊은 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 현재 원외당협위원장 5명은 이 대표의 사퇴를 외치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을 만나고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어제(15일) 단식하고 있는 현장에서 원외당협위원장 5명(이준석, 김상민, 최홍재, 김진수, 이기재)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나도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시절 지방자치제 관철을 위해 9일간 단식을 했던 사람입니다.

단식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니 물 잘 마시고 조심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너희같은 젊은 위원장, 젊은 피들이 중심이 돼 새누리당이 보수정당, 중도정당, 실용정당으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당을 새롭게 만들어 가라고 조언했습니다.


- 새누리당이 어려움을 딛고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것이라 예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기문 21%, 문재인 19%, 안철수 10%, 이재명 8%, 손학규·박원순 6%, 유승민 4% 정도로 나옵니다. 정치권서 가장 유력하다는 문재인 또한 19%밖에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기문도 지지율이 20%를 조금 웃도는 수준입니다. 안철수는 말할 것도 없고요.

결국 내년 대선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과 정치권의 시선이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야가 현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당리당락에 집착한다면, 지금 거론되는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젊은 인재,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능력 있는 인물의 등장이 절실합니다. 만약 새누리당서 그런 인재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정권 재창출은 힘들 수도 있습니다.


<chm@ilyosisa.co.kr>


[유준상은?]

▲11∼14대(4선) 국회의원
▲전 대한롤러경기연맹 회장
▲민주당 전 최고위원
▲현 아시아롤러경기연합 부회장
▲현 새누리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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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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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