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은밀히 공식 대선 전담팀 꾸리는 내막

정중동 행보 박근혜 “돌아오라 ‘비밀병기’들이여~”


오는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발걸음이 눈에 뛴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복지와 경제 분야에 대한 견해를 밝히며 정책 행보를 이어온 박 전 대표는 15일 강원도 춘천을 찾아 한나라당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특별위원회’ 고문 자격으로 특위 발대식에 참가했다.

특위 발대식은 겉으로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행사지만 오는 4·27 강원도지사 재보선 예비후보들의 정견 발표가 있어 재보선 지원 유세의 성격도 겸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당 지원 유세 공식 참석은 근 3년 만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으로 당의 공식적 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전 비서실장 유정복 등, 최측근 ‘믿을맨’ 속속 복귀 임박
당 평창 특위 고문직으로 복귀, 슬슬 대선모드 ‘워밍업?’

내년 4월 총선까지 13개월, 당내 대선후보 경선까지 15개월, 오는 2012년 대선까지 21개월 남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들 중 일부는 벽에 걸려있는 달력에 대선을 목표로 남은 날짜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박 전 대표의 수첩에 적혀있을 ‘공식 출정 D-day’가 언제일지에 모든 정치권의 이목이 쏠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일 평창특위 행사 참석
당 공식 행사 참석 ‘3년 만’

박 전 대표는 대선을 2년 앞둔 지난해 12월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어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일 주일 후에는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시켰다. 이 연구원에는 박 전 대표 자신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국가미래연구원을 박 전 대표의 공식 대선 전담팀으로 보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남아있다. 실질적으로 박 전 대표의 막후와 측면에서 지원 및 엄호 사격을 해 줄 정치권 인사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경제 가정교사 격인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만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행보의 연장선에서 박 전 대표는 올해 들어 ‘정치’가 아닌 ‘정책’ 행보에 공을 들였다. 지난달 11일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안과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을 발의하는 등 각종 정책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주로 복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러다 지난달 16일 ‘주된’ 정치 현안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주로 원론적 입장이었지만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정치권은 ‘아전인수’격 해석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재검토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이 약속한 것인데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하면 책임도 대통령이 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달 25일 “국민의 행복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것”이라면서 “나라의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행복한 국민이 발휘하는 역량이 모여 국가 도약을 또 이루게 되는 선순환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여기서 박 전 대표가 사용한 ‘국가 경쟁력’이란 단어는 ‘개헌 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의 언급과 묘한 대구를 이뤘다. 이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 답변 과정에서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경쟁력 지수 상위 20위권 이내 나라 중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는 두 나라밖에 없다”면서 “이제 국민을 상대로 개헌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게 임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12년 대선 600일 남긴 시점은 4·27 재보선 직후
박 전 대표 측 인사 “600일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이에 근거해 박 전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인 자신의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박 전 대표는 개헌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자신이 개헌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부절적하고, 개헌보다 시급한 민생 문제를 해결해 국민 행복 지수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예산 등에 집중된
현안 발언 ‘촌평 수준’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 전 대표는 이달 들어 국가재정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7일 임시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정부 사업 대행에 의해 발생한 공기업의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집중 관리해야 한다”면서 “채무가 크지 않더라도 최근의 증가 속도가 빨라졌고 저출산 고령화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면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9일에는 “성장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서민 생활에는 무엇보다 생필품 등의 가격 안정이 중요하다”면서 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 중심치를 현행 3%에서 2%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당 내 기반 재정비, 정책 싱크탱크 설립, 복지·재정 정책 행보를 두루 거친 박 전 대표는 천안함 피폭 1주기인 오는 3월26일을 전후해 한반도 정세와 안보 관련 ‘작심 발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최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 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외교 안보, 남북 관계에 대한 보고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내년 선거의 화두는 복지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서도 전방위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4·27 재보선 이후 박 전 대표의 대선 공식 전담팀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인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복귀 시점을 4·27 재보선 이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실제로 “구제역 사태가 진정되면 장관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장관직 사퇴와 동시에 국회로 돌아오는 유 장관은 그 후 일정 부분 역할을 맡지 않겠냐는 게 정치권 일각의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유 장관 측 한 인사는 “실제로 장관님과 박 전 대표님과의 교류와 관련해서는 장관님 본인밖에 모른다”면서 “그간 교류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도 힘들겠지만 교류가 있었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전혀 모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마도 구제역이 진정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4월이나 5월 경에 (국회로) 복귀하시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 유 장관의 후임으로 친박 성향의 이계진 전 의원이 점쳐진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원주고 출신의 이 전 의원이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가정 하에 이 전 의원의 ‘입각’ 혹은 ‘19대 총선 공천 보장’의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의 입각 결정은 유 장관의 사퇴와 시기적으로 맞물릴 공산이 크다.

유정복→이계진 교체설
교체 전후로 캠프 움직이나?

강원 출신 이 전 의원의 활발한 행보는 향후 영남 출신의 박 전 대표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것이 여권 전반의 분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친이계 일각에서 이 전 의원의 입각에 ‘부정적’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최측근인 ‘박근혜의 입’ 이정현 의원도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구 방문과 의사 진행 일정을 제외하고 ‘웬만한’ 언론 노출은 자제하고 있다. 이 의원의 발언은 자칫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오해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27일 200자 원고자 20장이 넘는 장문의 글을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대통령 임기 40% 남은 시점, 대선 붐을 경계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이 의원의 장문의 글은 ‘박 전 대표와 사전 협의가 되지 않았겠냐’는 것이 정치권 전반의 분위기다.

박 전 대표의 측근 그룹은 전체적으로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재보선이 끝나는 5월 이후 미묘한 변화의 움직임이 관측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 측 한 인사는 “달(月)의 개념이 아니라 일(日)의 개념으로 본다. 아마도 대선 600일 전에는 비공식적이더라도 바닥에서는 뭔가 움직임이 있지 않겠나. 600일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공교롭게도 그 인사의 발언 에 따른 대선 600일 전은 오는 4·27 재보선이 끝난 직후다. 재보선 이후 박 전 대표의 움직임과 그를 둘러싼 인사 및 그룹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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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