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발 개헌 프로젝트 ‘3월 발의설’ 실체

기다리다 지친 MB, 임시국회서 직접 띄운다?


우리나라 헌법 제72조(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와 헌법 제130조 1, 2, 3항에 ‘국민투표’와 관련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법에 따르면 기타 사항으로 제한된 자를 제외하고 19세 이상의 모든 국민은 투표권을 가진다. 대통령은 늦어도 국민투표 18일 전까지 국민들에게 투표 날짜와 안을 동시에 공고해야 한다. 또한 국민투표에 관한 운동도 가능하다. 국민투표에 관한 ‘참/불’ 권고 운동은 국민투표일 공고일로부터 투표 바로 전날까지다.

이승만-종신 박정희-유신 전두환-직선제 개헌
역대 9차례 개헌 중 청와대 주도 총 7 차례

한나라당은 지난 9일 개헌 관련 의원총회를 통해 개헌을 논의하기 위한 당내 특별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초 사흘로 예정됐던 개헌 의총이 친박계의 무관심 속에 일정을 하루 앞당겨 이틀 일정으로 마감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이와 관련, “의총에서 의원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 논의를 위한 당내 특별기구를 구성키로 의견을 모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열린 개헌 의총은 전날에 비해 다소 맥빠진 분위기였다. 참석 인원이 전날 130명에 비해 13명이 줄어든 117명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전날 32명 참석했던 친박계는 고작 10여 명에 불과했다.

홍준표, 개헌 국회 발의 ‘불가능’
대통령이 주도하면 ‘적극 참여’

이처럼 당내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개헌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또 다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친이계가 ‘개헌 속도전’에 나서고 있지만 당 지도부 이견으로 당내 특위 구성이 표류하고 있다. 또한 야당도 국회 내 개헌 논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기에 개헌 논의는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과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 등 정치권에서 이 대통령이 개헌을 직접 발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헌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개헌 논의의 공을 국회에서 이 대통령쪽으로 살짝 넘긴 형국이다.
‘정략적’이라면서 친이 주류계의 개헌론에 대해 연일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홍 최고위원은 “지금은 국민적 열망이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국회가 개헌을 주도하기 힘들다”면서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하고 의회는 60일 이내에 가부 간 투표를 해주면 된다”라고 이 대통령의 개헌 발의를 요구했다.

홍 최고위원은 “지금은 의회가 개헌을 발의하려면 전체의 2/3이상을 찬성으로 만들어야 하고 당 내에서도 2/3이상의 찬성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국회 내 발의 자체가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가 60일 이내에 표결해야 되므로 개헌은 당내 문제가 아닌 국회 전체의 화두가 될 것”이라면서 “당내 정리도 안 된 개헌 문제는 계파 투쟁의 일환으로 전개되고, 다른 계파 사람들은 순수성을 의심을 하고 있다. 이렇게 추진해서 개헌이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홍 최고위원은 또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나도 개헌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용의가 있다”면서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시 야당 설득 등 총력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당 이 대표도 이에 가세해 지난 1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이 대통령은 ‘개헌은 의회가 맡아 해봐라. 해서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태도인데 그러면 안 된다”면서 “개헌 소신이 있다면 발 벗고 나서서 국민과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라고 대통령의 개헌 발의를 촉구했다.

이 대표는 지난 9차례 개헌 중 7차례가 대통령이 발의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현재 권력 구조만을 논의하는 개헌이든 뭐든 이 대통령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야 개헌이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국민참여당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도 최근 “한나라당 안에서도 개헌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하고 싶으면 대통령도 발의권이 있으니 (개헌을 발의)하는 게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의회·국민’ 설득해야”
유시민 ‘대통령 발의가 국민 안심’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직접 발의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개헌을 반대하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이 발의해도 국회 통과는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분위기다. 명백히 어려운 싸움에 이 대통령이 ‘도박’을 하겠느냐는것이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무산될 경우 정권의 레임덕 초래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여당도 개헌 후폭풍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친이계 일부에서는 개헌 논의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 이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거나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헌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지만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이 무게를 얻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실패의 가능성은 있지만 개헌 이슈를 소멸시키지 않고 나머지 임기 동안 정치적 악재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개헌 이슈는 한 동안 끌고 가야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편 개헌 전도사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 1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철회한 것도 바로 여야가 합의해서 통과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면서 이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각 부서가 자기의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권한을 나눠야 한다. 청렴, 공정 사회로 가기 위해서도 개헌이 돼야 한다. 개헌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이지 지금 대통령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한나라당이 당내에서 개헌을 하기로 했으니까 한나라당 지도부가 나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민주 등원 선언 직후 ‘홍준표’ 청와대 지원 사격?
손학규-박지원 ‘설마 대통령이?’ 경계 한 목소리

한편 민주당 손 대표는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개헌 추진을 위해 이 대통령이 직접 발의를 해야 된다는 주장과 관련, “‘대통령이 그렇게(당에서 하라) 말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했다”면서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개헌 발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난 16일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통령 개헌 발의 주장에 “우리 입장은 다 밝혔다. 청와대는 더 이상 개헌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 방송 좌담회에서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대통령은 물가, 경제 등 할 일이 많다. 대통령이 헌법에 매달리면 다른 것을 못한다”면서 “국회에서 국가 미래를 위해 해달라”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개헌이 필요하지만 주체는 국회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은 이미 청와대 참모들에게 개헌의 ‘개’자도 꺼내지 말라는 개헌 함구령을 내렸다”면서 “국회에서 잘 논의해 달라는 입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실제 자신이 직접 개헌을 주도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 좌담회에서 “지금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개헌은 늦지 않다”면서 “청와대가 주관할 생각이 없으며 이것은 국회가 할 일”이라고 국회로 공을 넘긴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계속된다면 이 대통령도 정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개헌 ‘당 지도부’가 나서야
대통령 나서면 될 것도 안 돼

헌법상 이 대통령은 개헌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직접 발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청와대 내 관측이다. 정치적 부담이 크고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평소 지론과도 배치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 같은 측면에서 청와대 관계자들은 여당 내 대통령 개헌 발의 거론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오랜 시간 논의된 문제이고 18대 국회에서 개헌하기로 약속까지 했던 사안인데 갑자기 대통령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발언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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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