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 교도소 탈출 백태

도망가면 뭐하나 다 잡혔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영화 <쇼생크 탈출>의 백미는 주인공 앤디가 악명 높은 쇼생크 감옥을 탈출한 후 팔을 벌리고 비를 맞는 장면이다. 18년간 돌망치로 벽을 파낸 주인공의 집념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탈주범들은 경찰에게 붙잡히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탈주의 끝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감옥의 담을 넘으려는 탈주범들의 기상천외한 탈주 노력을 살펴봤다.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탈옥을 시도하다 교도소 직원들에게 붙잡힌 사실이 알려졌다.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정씨는 8월초 교도소 작업장에서 몰래 만든 4m 높이의 사다리를 이용해 탈옥을 시도했다. 정씨는 사다리를 이용, 교도소 내 3곳의 담 중 2곳을 뛰어넘고 마지막 담을 넘는 과정서 발각됐다.

연쇄살인 정두영
사다리로 담 넘어

정씨는 지난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부산과 경남 등지서 강도·살인 행각을 벌였다. 정씨는 철강회사 회장 등 9명을 둔기 등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정씨는 검거된 이후 잔인한 살해 수법의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 안에 악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재소자의 교도소 탈주 시도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터져 나온다. 이들의 시도는 정씨의 사례처럼 탈주 과정서 발각되기도 하고,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처럼 탈주 성공 후 도주극을 벌인 경우도 있다. 경찰과 대치 끝에 탈주범의 자살로 마무리된 사례도 몇 차례 있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탈주극을 벌인 지강헌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지씨는 500만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등 총 17년형을 선고받았다.


1988년 10월8일 지씨를 포함한 12명의 미결수들은 교도소 이감 과정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수갑을 풀고 호송버스를 탈취했다. 지씨의 탈주극은 인질극으로 이어졌다.

지씨 일행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 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 2명이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지씨는 유리조각으로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쏜 총을 맞고 과다출혈로 숨졌다.

탈주범의 자살로 탈주극의 전말이 온통 베일에 가려진 사건도 있다.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박봉선은 역시 살인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은 신광재, 폭력 초범이었던 김모군과 함께 탈옥을 도모했다. 감옥 쇠창살을 자르고 교도소 담벼락을 넘는 등 세 사람의 탈주 방식은 대범했다.

실사판 쇼생크 탈출? 현실은 달라
탈주범들 대부분 한 달 내 붙잡혀

1990년 12월27일 이들은 감방 창문에 설치된 철책 2개를 쇠톱으로 자르고 사물함으로 쓰던 선반으로 사다리를 만들어 4.5m 높이의 교도소 담을 넘었다. 세 사람의 행각은 이틀 만에 경찰의 감시망에 걸렸다.

박씨와 신씨는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탈주 당시 경찰에게 빼앗은 총으로 자살했다. 공범이었던 김모군은 경찰에 연행됐으나 단순 공범 수준이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두 사람의 자살로 직경 2㎝의 쇠창살이 어떻게 잘렸는지, 어떻게 수시로 복도를 오가는 교도관의 눈을 피했는지 등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무기수로 수감 중이던 재소자가 귀휴제도를 통해 교도소 밖으로 나갔다가 잠적 후 자살한 사례도 있었다.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홍승만은 2015년 4월 귀휴 허가를 받고 나갔다가 연락이 끊겼다.


1962년부터 시행된 귀휴제도는 6개월 이상 복역한 수형자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교정성적이 우수하면 1년 중 20일 내로 귀휴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홍씨가 잠적 8일 만에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대도’ 조세형 탈주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전문털이범이었던 조씨는 부유층과 권력층 집만 골라 털어 대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조씨의 범행은 피해 사실을 극구 숨기려 드는 피해자들의 행태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82년 검거된 조씨는 1983년 결심 공판날 구치소로 돌아가기 전 구치감 문을 부수고 복도로 나와 환풍기를 뜯고 탈주했다. 조씨는 탈주 후 다섯 차례나 주택에 몰래 침입해 음식, 현금, 옷가지 등을 훔쳤다. 조씨의 도주극은 장충동 주택가서 그를 발견한 한 청년의 신고로 5일 만에 막을 내렸다.

관련 경찰들
여럿 옷벗어

법원서 탈주를 시도한 일도 발생했다. 2000년 1월 특수강도죄로 14년을 복역한 정필호는 호송버스서 재소자 두 사람을 만나 탈주 계획을 전했다. 정씨는 감방 내 방범창틀을 잘라낸 뒤 화장실 시멘트 바닥에 갈아 날카롭게 만들었다.

정씨는 2차 재판기일이었던 2000년 2월24일 춥다는 핑계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옷을 껴입고 흉기를 허리춤에 감췄다. 이후 정씨는 광주지법서 교도관이 수갑을 풀어주자 그 틈을 타 흉기로 교도관을 찌르고 도주했다. 낮에는 서울 지역 야산서 은신하고, 밤에는 도심 부근에 내려와 도피 행각을 벌이던 정씨는 탈주 13일 만에 경찰과 격투 끝에 검거됐다.
 

유치장서 온몸에 연고를 바르고 배식구를 통해 탈주한 사례도 있었다. 2012년 9월 강도·상해 피의자였던 최갑복은 대구동부경찰서 유치장서 경찰이 졸고 있는 틈을 타 탈주했다. 최씨는 연고를 발라 몸을 매끄럽게 만든 뒤 가로 45㎝, 세로 15㎝ 유치장 배식구를 빠져나가 대중을 경악케 했다.

신창원·이낙성 희대의 탈옥
경찰과 대치 자살로 끝내기도

최씨가 배식구를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30여초 남짓. 이후 그는 2m 높이의 창문에 매달려 창살 사이를 벌리고 1분 만에 도망쳤다. 최씨의 탈주 행각은 미국 CNN이 뽑은 ‘희대의 탈옥 사건’으로 뽑힐 정도로 기상천외했다.

최씨는 탈주 직전 3번에 걸쳐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탈주 당시 근무 중이던 경찰관들은 근무소홀 등의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최씨는 1990년 7월에도 경찰 호송버스 뒤쪽 쇠창살을 뜯고 탈주했다가 이틀 만에 검거된 바 있다.

대부분 재소자들의 탈주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짧게 끝나는 것에 반해 탈주 후 1년6개월 이상 도주해 경찰을 놀라게 한 탈주범들도 있다.

신창원은 19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경찰을 농락해 ‘희대의 탈주범’으로 불린다. 절도 등으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신씨는 1989년 3월 공범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 집주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6개월간 수배생활 끝에 같은 해 9월 검거된 신씨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탈주 당시 신씨는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돼 복역 중이었다. 신씨는 노역작업 중 손에 넣은 작은 실톱날 조각으로 4개월에 걸쳐 화장실 쇠창살을 잘라냈다. 당시 부산교도소는 교회 공사를 위해 교도소 외벽 일부가 철거되고 철제 울타리로 대체된 상태였다.

관리는 허술
제보 결정적

신씨의 탈주는 감방 동료 사전 포섭설, 교도소 묵인설이 제기될 정도로 신출귀몰했다. 신씨는 부산교도소에서 오랜 시간 모범수로 지내고, 15㎏ 이상 감량하는 등 탈주를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가 외부환기통을 타고 공사장서 주운 밧줄을 이용해 공사장 담을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였다. 교도소 탈주에 성공한 신씨는 화훼농가에 침입, 옷을 훔쳐 입고 택시를 타고 서울로 잠입했다. 2년6개월에 걸친 도주극의 시작이었다.

신씨는 도주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경찰과 맞닥뜨렸지만 유유히 따돌려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그는 경찰이 쏜 가스총을 맞고도 도주한 적이 있으며, 그 과정서 빌라 5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신씨의 변호사였던 엄상익 변호사는 <신창원 907일의 고백>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탈옥, 검거 순간, 도주 당시 행적 등의 얘기를 담았다. 책에는 신씨가 도주 과정서 다방 종업원, 주유소 종업원 등 15명의 여자들과 동거했으며 절도 행각으로 생활비를 마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화제를 모았다.


신씨의 도주 행각은 집에 방문한 가스수리공 이모씨의 눈썰미 덕분에 막을 내렸다. 이씨는 한 아파트에 가스레인지 수리를 하러 갔다가 신씨로 보이는 남자를 발견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1999년 7월 신씨를 검거하면서 그의 도주극은 끝을 맺었다.

신씨가 검거 당시 입고 있던 화려한 티셔츠가 큰 관심을 받는 등 그는 도주극 내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씨는 검거 이후 무기징역 외에 22년3개월의 형을 추가로 언도받고 복역 중이다.

보호감호 도중 치핵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탈출해 1년7개월 만에 검거된 이낙성 역시 경찰에게는 악명 높은 탈주범이다. 이씨는 1986년 절도 혐의로 처음 체포된 후 1988년 강도·상해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1년 강도 혐의로 또 다시 체포돼 징역 3년에 보호 감호 7년을 선고받았다.

2004년 1월부터 청송감호소서 보호 감호를 받던 이씨는 2005년 4월 경북 안동시 한 병원에 입원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주했다. 이후 그는 지하철 2호선 사당역 근처에 내린 후 종적을 감췄다.

이씨가 1년7개월간 자취를 감춘 사이 청송보호소 보안과장이 직위 해제됐고, 이씨의 탈주에 협조한 친구 염모씨가 구속됐다. 또 극히 열악한 수용환경과 이중처벌 논란이 있었던 청송보호감호소가 폐쇄되기도 했다.

경찰은 2005년 6월 전국 10개 경찰서에 이낙성 수사 전담반을 추가 편성했다. 그 이후에도 4개월 이상 도피행각을 벌인 이씨는 같은 해 10월 서울 영동병원에서 체포됐다. 이씨는 검거 당시 윗니 몇 개가 완전히 빠졌고 아랫입술, 턱 등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이씨는 ‘정종철’이라는 가짜 이름을 대는 등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도주했다. 병원 관계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근처 은행 지점 앞에서 이씨를 체포했다.

목숨 건 도주
허무하게 막 내려

사망설, 중국 밀항설 등 갖가지 소문이 돌 정도로 철저히 숨어있던 이씨의 도주는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씨는 도주 기간 동안 인력시장을 찾아가 중국집 등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검거 이후 “도주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장기 탈옥수' 신창원은 지금?

‘최장기 탈옥수’신창원의 근황이 화제다. 탈주범들은 대부분 탈주 후 한 달 이내에 경찰에 검거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와 비교하면 신씨의 2년6개월간 도주 행각은 기함할 수준. 신씨가 도주 기간 동안 움직인 거리는 4만㎞에 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4만㎞는 서울과 부산을 약 50회 왕복한 만큼의 거리다.

그의 탈옥으로 수많은 경찰들이 옷을 벗었다. 경찰은 신씨를 검거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띄우고 전경을 동원하는 등 총력을 다했으나 번번히 눈앞에서 놓치면서 망신살을 샀다.

신씨가 부산교도소를 탈주했던 1997년부터 가스수리공의 제보로 1999년 검거되기까지 전국이 들썩일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신씨가 체포 당시 입고 있던 화려한 빛깔의 티셔츠가 대중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였다.

신씨는 재검거 된 후 항소심에서 22년6개월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는 교도소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하며 지난 2004년에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신씨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였다.

신씨는 국가와 교도소장 등을 상대로 4건의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다. 당시 모든 소장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자아냈다.

2009년 신씨는 자신이 작성한 편지 12통의 발송이 불허되자 교도소장을 상대로 서신발송 불허처분 취소와 300만원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보다 앞서 신씨는 교도소 내 수용자 인성교육의 문제점을 담은 신문기고용 서신 발송이 불허되고 외부 서신 2통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정보비공개 처분취소와 손해배상금 150만원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 건의 행정소송은 신씨가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 취하의 이유는 뚜렷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승소를 하기도 했다. 신씨는 “교도소에서 기자 접견을 막고 편지를 외부로 보내주지 않아 피해를 봤다”며 2008년 국가를 상대로 3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대법원까지 갔다. 1·2심 재판부는 신씨의 정신적 고통을 인정해 일부 승소 판결했고, 대법원은 “소액사건에서는 원심 판결이 대법원 판례에 위배될 때 상고할 수 있는데 원심이 대법원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했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들어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이와 별개로 신씨가 수감생활 중 디스크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1·2심 재판부의 판결이 있었다.

국가 등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신씨는 2011년 11월 독방에서 자살을 기도해 또 한 번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신씨는 11월18일 새벽 4시10분경 교도소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졸라 자살을 기도했다. 당시 신씨가 머물던 독방에서는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발견되기도 했다. 정확한 자살 기도 원인은 공개된 바 없지만 부친의 사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동안 조용하던 신씨의 근황은 뜻밖에도 이해인 수녀를 통해 전해졌다. 이해인 수녀는 지난 4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신씨와 연락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는 “(신씨가) 시의 매력에 빠져있다더라.다섯 편을 쓰면 제게 보내겠다고 해서 격려해줬다”고 전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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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